성경신학

5.18광주 사건

중일사랑 2015. 5. 19. 19:10

그 당시 많은 유언비어들이 돌았는데 경상도 출신 공수단을 광주에 파견해서 전라도 사람을 몰살하려 한다느니, 처녀 가슴을 도려내었다느니 하는 식이었다. 여하간 수십년이 흘렀는데, 그 당시 광주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서 군부 정권을 대항해서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 불린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 하면, 이런 사건에 대하여 혹은 정당이나 투표 같은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하겠는가? 특히 전라도 출신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보다는 정치문제나 광주 5.18사건 이야기 같은 것이 나오면 열을 올리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즈음도 그냥 지나치며 보았지만, 제자가 페이스북에다 광주사건과 연관해서 선동적인 글을 날랐고, 또 다른 선교사인 듯 보이는데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페이스북에 전라도 정당을 옹호하기에 모든 시간을 쏟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선동적이고 반 정부적인 글들은 편을 가르고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주입시킨다. 악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참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국민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되게 치유하려하고 문제를 어찌하건 간에 덮어서 나라의 안녕을 도모함이 마땅하거늘,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전라도 경상도 지방색 문제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일본 왜놈들이니 짱깨들이니 하면서 열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왜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그렇게 열을 올려야 하는가? 왜 내가 한국인이라고 일본 왜놈들이라고 열을 올려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조금 초월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할까? 


우리는 세계 시민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자답게 세상을 초월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을 내 몰라라 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전부 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슨 경상도 전라도를 찾는가? 무슨 왜놈 떼놈을 말하는가? 그런 마음이 과연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정당은 이상하게도 경상도는 좀 보수적이고, 전라도는 진보적인 그리고 종종 친북성향을 보여왔다. 정당하게 좀 객관적으로 본다면 친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의 정강이나 사상은 우리 성경적 입장과 많이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동성애 인권을 지지한다느니,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고 우리 민족끼리 잘 해야 하고 부시 (아들) 정권 때에는 김대중을 무시했다고 부시를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성토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사상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이지, 그것이 전라도 정당이 주장하느냐? 경상도 정당이 주장하느냐? 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친북 진보적 성향의 비성경적인 정강을 가진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자세를 취하는가? 이해하기 어렵다. 경상도 사람이라도 경상도 정당이 비 성경적인 사고를 펼치려 한다면 반대해야 마땅하고 반대로 전라도 정당이라도 성경적인 사고를 더 많이 주장한다면 그곳을 지지함이 기독인의 자세일 것이다. 주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고 자기 학교 자기 출신 지역 등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기독인으로 거듭난 사람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당대 지도자들을 질책하셨지, 그들의 정치 사상을 가지고 논한 적이 없으셨다. 예컨대, 로마 편에 섰으니 너는 매국노 아니냐? 이런 식으로 판단하신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고 외식하는 경우라면 가차없이 화를 선포하셨지만, 어떤 지상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논하신 것이 아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약 6천명, 제사장, 레위인 성직자 계층이 약 2만명, 기존 종교 당국자들이나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 제도는 완전 썩었다고 간주하고 사해 인근 쿰란 동굴들에서 집단 생활을 하며 자신들이야 말로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간주하고 있던 에센파가 약 6천명 정도라고 요세푸스의 저작들이 언급하는데, 로마 편에 붙어 혹은 헤롯 정권에 붙어 지도적 자리에서 고관들로 행세한 이들이 제사장 계급이고, 바리새인들은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 살로메 여왕의 통치 때 (주전 76-67년 Salome Alexandra; 유대 역사상 유일한 여왕) 권세를 좀 휘둘렀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정치적 세력을 얻지 못했고 다만 율법을 정교하게 해석해서 일반 백성들의 신앙적 관례들을 주장하는 식으로 민중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예컨대, 안식일에는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십일조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규정들을 율법을 해석함으로 지도한 자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고 여겨진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가장 대적한 자들이었는데, 이들이 보기에 주님은 자신들의 율법 해석을 준수하지 않고 범하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권력이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행위에 분노는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강제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나중 때가 성숙했다고 판단하자 바리새인들은 주후 66년 1차 반란을 획책하고 선동하고 지도하는 일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여하간 주님 당대에 주님은 정치정당을 골라서 지지하거나 반대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영적인 입장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요 성도라면 우리나라의 정치 정당 정파를 따라 말하거나 생각하려 말고, 성경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이 나라의 안녕과 복음화, 그리고 온 세상의 복음화의 안목에서 말하고 생각함이 천만 지당한 일이리라. 


끝으로 우리 주님은 사실 이 지상에 정치적 군사적 어떤 왕국을 (혹자는 다윗 왕국의 재건이라 한다) 재건하고자 오신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는 그렇게 정치적 물질적 군사적 다윗 왕국의 재건을 예언하는 듯 말씀하는 곳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예컨대, 사 9:6이하, 암 9:11이하, 렘 23:5 등), 그런 구약 예언은 신약 기자들이 해석하는대로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예언의 특성상 당대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당대 관례들과 지리적 요소들을 가지고 미래사를 묘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우리는 "겉옷과 알맹이의 원리"를 가지고 구약 예언들을 이해하고자 해야 한다. 즉 구약에서는 정치 군사적 물질적 다윗왕국의 재건을 의미할 수 있다 할지라도, 신약 기자들은 구약 예언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보좌에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심 등에서 전부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예언들을 예수님의 복음 전파와 연결시켜 이해해야 한다. 다윗 왕국의 재건은 정치 군사적 왕국의 재건이 아니라, 인류의 최대 원수인 마귀와 죄악의 세력을 십자가로 멸하시고 영적인 권세로 이제 주님은 만왕의 왕이신 것이다. 그분의 우주적 왕권은 어떤 지역의 일개 왕국의 왕권이나 아니면 지상의 어떤 정치 군사적 왕권 정도가 아닌 것이다. 온 우주를 총괄하는 영적이고 우주적인 왕권이다. 이 우주적 왕권을 행사하고 계신 이가 우리 주님이시다. 

우리의 정치 성향은 바로 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이어야 한다. 지상의 어떤 일개 정당이나 어떤 나라의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정권을 잡아서 그래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것이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왕권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이 위대하신 왕의 훌륭한 사신으로 섬겨야 마땅한 것이다. 이 예수님의 왕권은 모든 인류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모든 세력까지 통치하는 것이니 이 절대적인 왕권을 알지 못하는 자들만이 전라도 혹 경상도 정당을 옹호하는데 열을 올리거나 자기 민족적 국수주의 행태를 보일 것이다. 


왕이신 나의 예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영원히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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