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6일부터 며칠간 서울 사랑의 교회 등지에서 이스라엘 신학 포럼이 개최되었고 배리 호너 박사가 (Dr. Barry Horner) '이스라엘, 유대민족 그리고 교부들'을 주제로 강의하며 초대교회부터 흘러 내려온 반유대주의의 흐름에 관해 소개했다.
먼저 그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철저히 유대인의 교회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승천하시기까지, 계속해서 본질적으로 유대인이었다는 것과, 심지어 사도들도 충성스러운 히브리인이었고, 그 당시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도 구약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도,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집'을 (마 10:6) 향한 것이었고, 또한 갈릴리 외딴지역을 포함한 이스라엘 내 이방인들을 위한 큰 긍휼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마 8:1-13, 5:21- 28)"고 말했다.
그러나 "주후 70년과 135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분리가 점진적으로 일어나 이방인과 뚜렷하게 구별된, 유대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살인자들이란 이유로 끊임없이 비하되었다"며 "여기에는 유대인들은 큰 죄인들(롬 3:9; 행4:27)임에 비해 이방인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죄인들이었다는 잘못된 성경적 결론이 내포되었다"고 보았다.
배리 박사는 어거스틴의 칭의 개념이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친 점 등을 언급하며 그가 기독교 역사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지만 종말론에 관한 문자적 해석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4세기 말경 암브로스와 어거스틴에 의한 격렬한 대체주의의 굳힘 이후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증가하던 권위는 그 어떤 종말론도 허용하지 않는 것을 확고히 했다"며 "오히려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유대민족의 굴욕을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배리 호너 박사는 "이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는 하나님의 언약적 계시에 따른 이스라엘의 민족적, 국가적 또는 영토적 가망성을 부정하는 것이다"며 "무천년주의 진영에서 종종 '유대인' 구원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왔지만 그들이 소망하는 최종 결과는 회심 후에 교회로 흡수되어 모든 유대인의 정체성을 몰수당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후 312년경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 교회와 세속적 국가를 결합한 것이 반유대주의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며 주후 325년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 연설을 언급했다.
그는 "니케아 공회 연설에서 콘스탄틴은 니산월 14일에 지키는 유대인의 유월절과 일요일에 지키는 기독교의 부활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데 일치했다고 선포했다"며 그가 모든 교회에 유포한 개인적인 권고의 글을 인용했다. "성스러운 축제인 부활절에 관하여 질문이 발생했을 때 모두가 이 절기를 한날에 지켜야 편리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 모든 절기 중 가장 거룩한 이 절기를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끔찍한 죄로 그들의 손이 오염되고 그들의 생각이 가려진 유대인들의 풍습을 따른다는 것은 특별히 적합하지 않다고 공표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들과는 그 어떤 것도 공통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혐오스러운 유대인의 무리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기를 소망한다... 그런 악한 (유대)민족과 소통함으로 당신의 영혼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당신들의 의무이다"
배리 박사는 "국가교회를 대변한 그들의 공식적 표명은 장차 열기를 얻어 수세기를 거쳐 흘러가는 동력을 제공했다"며 "종교개혁이 일부 복음으로 인한 구조를 제공하였지만, 이것은 계속해서 어거스틴의 종말론에 스며들었고 궁극적으로 20세기의 끔찍한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를 진심으로 회개함으로 시작되는 종말론의 부활이 필요하다"며 "그리고 나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적 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귀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나님의 말씀이 패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롬 9:6) 바울이 선언했듯이 이러한 이유로 유대민족은 '그들의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이고 계속해서 사랑을 입은 자일 것'이라는 것은 사실로 남아있다 (롬 11:28)"고 결론 맺었다.
이런 배리 호너 박사의 강연 소개는 한 기독신문에서 가져온 것인데, 호너 박사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없다. 배리 호너 박사의 주장의 요지는 한 마디로, 지금까지 교회사에서 교회가 곧 이스라엘이라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지금도 저 중동의 이스라엘 유대인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주장이고, 또한 지난 교회사 기간 동안 기독교회가 유대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은 너무나 심대하였으므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로 답한다면,
첫째로, 교회가 유대인들에게 행한 잔학한 일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될 수 없고, 잘못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독일 제3제국에서 자행된 유대인 학살극은 기독교회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독교회에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닐 것이다. 독일 교회가 나치에 동조한 것은 아주 수치스런 일이며 죄악이었지만 그 중에 깬 성도들이 (본 회퍼 같은 인물) 나치 독일에 저항하고 고백교회를 세운 것은 잘한 일이었다. 비교하자면 일제시대에 일본의 신사참배에 굴복한 한국교회는 수치스럽고 죄악된 행동을 한 것이고, 그 중에 용기있는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감옥과 순교를 불사함으로 우리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 맥락에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교회의 잔인성과 폭력성만 정죄될 일이 아니라, 그 이전에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행했던 잔인함과 적대적 행위들도 똑같이 정죄받아야 마땅하다. 호너는 이 점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을 처형하는 일에 앞장섰고,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가는 곳마다에서 복음을 대적하였다.
그 이후로도 유대인들의 기독교회에 대한 적대행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대적 행위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데, 그 생생한 모습은 친 이스라엘 영화 제작으로 알려진 김 누구의 "회복"이란 영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독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테러는 (이스라엘 내에서) 그치지 않고, 교회에 대한 예배 방해나 투석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민주국가 중 유일하게 전도를 금지하는 법이 있어, 전도 하다가 체포되면 징역 5년이다. 반면 교회는 오늘날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저들을 테러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교회는 하나도 없다. 저들에게 전도하고자 하고, 사랑으로 대하고자 한다.
이상한 일은 그렇게 친 이스라엘 주장을 펼치는 미국 일부 성도들은 왜 유대인 전도에는 열의도 없고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중동의 이스라엘은 친 이스라엘 교회에 대하여 정확하게 구분하는 정책을 취한다. 저들의 물질적 지원이나 정신적 지지는 받되, 복음은 분명하게 거절한다는 것이다. 복음에 대하여는 극력 적대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친 이스라엘 성도들은 알아서 기어준다. 즉 이스라엘을 전도하려고 아예 생각지를 않는다. 그리고 말하길, "우리는 당신 유대인들을 개종시킬 의도가 전혀 없다! 단지 당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지지할 뿐이다"고 공적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친 이스라엘 깃발을 높이고 이스라엘의 방패가 될 뿐이다.
얼마나 모순적인 행동인가? 유대인들을 복음으로 개종시킬 의도가 없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그리고 정치적으로 지지하고 물질로 도와주는 것이 정말 유대인들을 사랑하는 행동일까? 저들을 지옥보내고자 작정하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이스라엘 유대인을 사랑한다면, 저들에게 전도하는 행동으로 보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특별히 이스라엘을 여타 나라들과 구분해서 정치적으로 지지 할 이유는 없다. 유대인들의 국가도 지상 여러 나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영적으로 저들이 특별한 민족인가? 그런 것도 없다. 저들도 이제는 (구약시대와 달리) 세상 여타 민족들처럼 똑같이 복음으로 구원 받아야 할 피조물일 뿐이다. 구약시대처럼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이고, 이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백성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적대 행위를 체험한 초대 교회 당시 사도 요한은 자신이 유대인이었지만, 계시록에서 유대교인들을 "사단의 회(당)"으로 정죄하였다 (계 2:9, 3:9). "사단의 회당"이란 유대교의 회당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유대인 대적자들을 (바리새인들과 같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마 12:33) 지칭한 것과 일맥 상통하는 사고이다. 이는 아주 무서운 규정이 아닐 수 없다. 유대교 회당이 사단의 회당이란 것은 계시록에 언급된 그 소아시아 지역의 유대인 몇 회당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유대교 전체를 지시하는 말이고, 그렇다면 유대교는 그들이 안식일을 당하여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듣지만 모두 사단의 소속이라는 말이 아닌가? 이것은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다.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유대교에 대하여 품고 있는 환상을 깨도록 만들어 준다. 유대교는 기독교에 근사한 친척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모든 종교는 유대교에서 시작해서 어느 것이나 사단에게 속하는 것이다. 성경의 정확한 구분을 우리가 따른다면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둘째로, 호너 박사는 바로 지적하길,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철저히 유대인의 교회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승천하시기까지, 계속해서 본질적으로 유대인이었다는 것과, 심지어 사도들도 충성스러운 히브리인이었고, 그 당시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도 구약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호너의 이런 지적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호너가 지적한 그 초대 교회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그 당시 오직 유대인들이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나중 스데반 순교를 계기로 유대인 성도들이 흩어지면서 저들이 시리아 안디옥에 이르러 거기서 유대인 아닌 헬라인들에게도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고 거기서 비로소 이방인들도 교회에 합류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전에 베드로의 전도를 통해서 (행 10장) 로마인으로서 유대교 개종자였던 고넬료 친지 가족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여 교회의 일원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여하간 중요한 사실은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유대인들 중심의 교회였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 당시에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 성전을 근거지로 유대교가 주후 70년까지 지탱하고 있던 당시, 유대인들만 참여하던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에 비하여 "참 이스라엘"이었다는 사실이다. 유대교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주님의 표현대로 독사의 자식들이었고, 계시록의 표현대로라면 "사단의 회당"이었다. 반면 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었다! 당시 교회는 오로지 유대인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결과였다. "이스라엘 회복"이란 이사야 후반부에서 예고했듯,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을 가리킨다. 그 회복은 사 40:3-5을 세례요한의 회개 사역에 대한 지시로 이해할 때(사 복음서가 전부 그렇게 해석하듯) 예수님의 복음에 참여하는 이스라엘이 곧 이사야가 의미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던 예루살렘 교회와 그를 대적하던 유대교 회당들과 성전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고, 주님을 대적하는 유대교 회당들과 유대교는 사단의 회당임이 분명하지 아니한가? 호너 박사는 왜 이런 단순한 논리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가? 따라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은 오직 참 이스라엘인 교회에만 해당되고 교회에서 성취될 일이다. 여기에 무슨 저 중동 유대인들의 지리, 관습이 포함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참 언약 공동체에게만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의 교회나 구약의 이스라엘이나 성도 구성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구약에도 유대인 중심에 이방인 개종자들이 더러 있었다. 오늘날 참 이스라엘인 교회에도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함께 있다. 그렇지만 구성 비율에서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구약시대에는 유대인이 절대 다수였고, 이방인은 한 두 명이었다 (다말이나 라합, 룻, 밧세바 등). 반면 오늘날 참 이스라엘 교회에는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들 성도에 비해 절대적으로 수자가 열세이다. 이는 복음의 세계화 추세에 따라 일어난 현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약 시대에 저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역사하셨던 것은 창 12:1-3이 말씀하듯, 세계 만민을 복 주시기 위한 목적이었다. 즉 전체를 축복하고자 일부를 선택하신 일이었다. 이는 저주 하에 처한 세상을 구원하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명자로 세운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선교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자기 사명을 망각하고 국수주의 선민사상에 사로잡혔을 뿐 아니라, 자신들마저 이방인들의 우상에 감염되고 타락해 버렸다. 이리하여 구약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는 역사를 감당하심으로, 그는 참 아브라함의 씨가 되셨다. 곧 만민이 그를 통해 구원/ 축복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장에서 논리적으로 이상한 것이 있던가? 성경적으로 그릇된 논리라고 말할 것이 있던가? 반면 호너 박사의 주장은 아주 비성경적이고, 기본적인 논리에서 맞지가 않게 보인다. 초대교회가 유대인 중심이었다면, 그들과 공존했던 유대교가 참 이스라엘일 수 없고, 교회가 참 이스라엘이라는 논리를 호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동일한 것이다.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고, 저 유대교는 사단의 회당에 불과한 것이다. 저들이 재림 직전에 주님께로 대거 대량 대부분 회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성경적인 사고가 아니다. 주님과 사도 바울부터 유대인을 구원하고자 했고, 그들 중의 남은 자는 모두 구원에 참여하였다. 그런 식으로 (롬 11:1 "이리하여" thus) 구원역사에서는 항상 "남은 자"만 구원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롬 11:26).
셋째로, 호너 박사는 결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패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롬 9:6) 바울이 선언했듯이 이러한 이유로 유대민족은 '그들의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이고 계속해서 사랑을 입은 자일 것'이라는 것은 사실로 남아있다 (롬 11:28)"고 말했다. 인용된 사도 바울의 말씀은 구약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은 그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때문에 사랑을 입은 자들이고 계속 사랑을 입을 것이라고 호너는 말했다.
여기서 바울 사도를 인용하여 호너가 주장하는 바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나 기독교를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유대교를 신봉하는 유대인들이나 기독교를 배척하는 중동의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일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초대 교회 당시 유대교 신봉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교회로 이스라엘이 갈라졌을 때, 유대교 유대인들은 이제 버림받은 유대인들이고,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만 참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런데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유대인들만 있던 초대 교회는 이제 이방인이 절대 다수인 교회로 변했다. 그렇지만, 유대교와 유대인 교회의 이중 공존 방식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도 유대교 신봉 유대인들과 기독교에 속한 유대인들 교회 (여기에 이방인들 교회도 있지만) 두 공존 방식은 이전이나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이방인 교회가 절대적을 많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 (메시아 따르는 유대인이라 하여 Messianic Jews), 곧 교회에 속한 유대인들만이 참 이스라엘이다. 그들과 이방인 성도들은 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룬다.
요컨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속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의 유대교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참 이스라엘과 거짓 이스라엘인 것이다. 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구약에 주신 그 약속은 해당되고 그들에게서 성취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폐기된 것이 없다. 이런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호너는 마치 저 예수님을 배척하는 중동 이스라엘의 유대교 성도들과 불신 유대인들에게 구약 약속이 해당되는 양 오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 약속은 항상 참 이스라엘, 곧 남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저 중동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800만 여명 중에서 1만명 정도 기독인을 제하면 모두 불신자 내지 유대교도들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기독교를 적대하고 있다. 그러니 저 중동의 이스라엘은 구약의 언약 약속들과 상관이 없다. 예수님께 속한 유대인 성도들과 그들과 합해진 이방인 성도들, 곧 기독교교회에 구약 약속은 성취되고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