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핵에 이를 수도 있는 대형 사건을 외면하는 방송들
조선일보
입력 2019.12.20 03:19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공작이 드러나는 가운데 KBS 공영노조가 "의혹의 몸통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며 "KBS는 대통령의 선거 개입 증거를 즉각
보도하라"는 성명을 냈다. 그제 청와대 비서진이
후보 매수 등에 개입했고 이는 송철호 후보 출마가 대통령 뜻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KBS는 18일 메인 뉴스에서 이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KBS 공영노조는 "(KBS 보도에) 문재인 대통령은 쏙 빠져 있다"고 했다.
KBS만 보도하지 않는 게 아니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1주일간 울산 시장 선거 관련 기사를 단 한 꼭지도 보도하지 않았다. '조국
가족 수사 언제 끝나나… 유죄 나올 때까지?'라는 제목의 뉴스에 김기현 전 울산 시장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느냐"는 육성을 끼워
넣었을 뿐이다.
울산 시장 선거 공작 사건은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는 중대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보다 훨씬 가벼운 선거 개입 문제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직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하면 탄핵 소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지경이니 많은 국민은 청와대의 선거 공작 사건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이 무슨 일로
싸운다는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선거 공작 보도 외면 뿐이 아니다. 선거제도를 국민 누구도 알 수 없는 해괴한 제도로 바꿔
특정인들을 당선시키고 범여권의 과반수를 보장하려는 심각한 사태에 대해서도 주요 방송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MBC는 한국당이 국회에서 벌인 선거법 변경
반대 집회만 이틀 연속 네 꼭지나 보도하며 비판했다. KBS 공영 노조는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는 비호하고, 그 권력에 저항하는
국민을 폭도처럼 보도하는 방송들"이라고 했다. 이런
언론 환경을 믿고 권력은 지금도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차마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마음대로
넘고 있다
[사설] 훨씬 가벼운 혐의로 前대통령은 2년형을 받았다
입력 2019.12.20 03:20
작년 지방선거 때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내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에서 내게 일본 오사카 총영사와 공사 사장 자리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불출마 대가로 공직을 주겠다고 청와대가 제안했다는
것이다. 임씨는 다른 인터뷰에선 "한병도 당시 정무수석이
어차피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우니 다른 자리로 가는 게
어떠냐며 고베 총영사 자리를 제안했다"고 했다. 제안을
거절했더니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이 연락해왔다고 한다. 청와대가 송 시장 지지 선언을 한 무소속 국회의원의
지역구 숙원 사업 해결을 논의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의 주요 참모들이 송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후보 매수'를 시도하고 청와대 권한을 활용해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선거 개입과 후보 매수는 선거 제도의 공정성을 허물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다. 전
정권 청와대가 선거 여론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댓글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정보 경찰들은 선거 동향 파악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정권의 선거 범죄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국정원 댓글의 수천, 수만 배에 해당하는 드루킹 대선 여론 조작
사건으로 대통령의 최측근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방선거에서 경찰을 동원한 표적 수사로 야당 후보들을
공격해 선거에서 떨어뜨리더니, 같은 당 경쟁 후보는 매수까지 했다고 한다.
그 책임에서 대통령은 자유로울 수 없다. 송 시장 출마를 요청한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송
시장 측 업무 일지가 나왔다. 대통령 최측근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한꺼번에
[사설] 어제 하루 국민이 접한 어이없는 일들
입력 2019.12.20 03:18
19일 하루 동안 대한민국에서 벌어졌거나 알려진 일들은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에 조대엽씨를
임명했다. 그는 첫 조각 때 장관에 지명됐다가 만취 운전 전력과 그에 대한 거짓 해명 때문에 물러났다. 문 대통령은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윤창호씨 사건 때 "음주
운전은 실수가 아니라 살인 행위"라고 했다. 그래서 '윤창호법'도 만들어졌다. 그래
놓고 만취 운전으로 장관직에서 낙마한 사람에게 청문회가 필요 없는 자리를 줬다.
교육부는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1998년 취임과, 총장
부친의 2001년 이사장 취임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며 최 총장의 면직과 부친의 임원 승인 취소를 결정했다. 누가 봐도 최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비위를 폭로했던 일에 대한 보복이다. 고인이 된 부친에 대한 임명 취소는 치졸하기 그지없다. 같은 날
나온 정부의 두 조치가 남에겐 가을 서리 같고 자신에겐 봄바람 같은 정권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문제의 서울 흑석동 건물을 매입하기 하루 전 친동생도 인근 재개발 건물을 사들인 사실이
알려졌다. 김 전 대변인은 사퇴하면서 "아내가 나와
상의하지 않고 투자해서 나는 몰랐다"고 변명했다. 아내와
동생이 자신에게만 비밀로 하고 같은 지역 부동산을 동시에 사들였다는 말인가. 김 전 대변인은 최근 그
건물을 팔았는데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구입과 매각 시점이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가.
이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경제부총리는 다주택 보유 공직자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사실상 지시했다. 총선용 쇼일 뿐이다. 정책 실패로 부동산 광란을 일으킨 정권이 왜
그 뒷감당을 공직자들에게 강요하나.
지난 10월 주한 미 대사관저 난입 사건에 대해 징계를 받은 경찰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친북 단체 10여명이 대사관저 담을 넘어
들어가 1시간 넘게 시위했는데 경찰은 "대처에 잘못이
없었다"고 한다. 중국대사관저가 공격받았어도 경찰이
이랬겠나.
작년 7월 동남아로 이주했다는 대통령 딸이 아버지 동창인 갤러리 대표에게 일자
[최보식 칼럼] '文 대통령의 예능 실력'에 환호하는 다수 국민에게
입력 2019.12.20 03:17
나라가 허물어져도 국민의 절반은 현 정권 지지할 듯
이게 선택한 나라 운명이라면 무슨 수로 막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구내식당에서 직장인들과 점심을 들며 최저임금
문제 등 고충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해 알았다.
대통령 동정(動靜)은 그 자체로 뉴스 가치가
있다. 특히 이런 이벤트는 언론에서 알아서 잘 포장해준다. 대통령
행사는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조율되지만, 마치 대통령의 '깜짝
방문'으로 참석자들이 어리둥절해하고 그 자리에서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언론 매체는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예의로 "이런 만남은 국민이 계시는 곳에 대통령이
찾아가 애로 사항 등 국민 목소리를 경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코멘트까지
넣어준다. 심지어 청와대 관계자조차 생각 못 했던 그 이상의 행사 의미를 부연 설명하기도 한다. "다중 시설에서 이런 국민과의 대화를 한 것은 취임 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런 행보는 국민을 직접 만나 민심을 듣겠다던 대선 후보 시절 약속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은 고용 참사나 경기 침체 같은 최악의 경제 상황을 풀려고
골머리를 썩이는 것보다 이런 식의 민심 소통을 하는 게 점수를 따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 언론 환경도
우호적이고, 이런 효과에 맛 들인 청와대는 부쩍 '소통 예능'을 밀어붙이고 있다. 주인공인 문 대통령도 더욱 실감 연기를 해보려는
것 같다.
독도 구급 헬기 추락 사고 합동 영결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에 대한 방송 보도는 이러했다.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목이 메는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애통해하는 유가족들을 한 명 한 명 다독였습니다. 특히 어린 유가족에겐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잡았습니다….'
이 시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에 대해 대통령의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나, 혹시
대통령도 관련됐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국민들 마음속에 막 피어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유가족 슬픔을 자기 슬픔처럼 여기는 따뜻한 대통령에게 어떻게 그런 의혹을 제기하겠나.
바로 며칠 전 청와대 회의에서는 문 대통령이 '장발장 부자' 사연도 언급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혔지만 주인이 용서하고
경찰관은 국밥을 사주고 한 독지가가 20만원을 건네준 휴먼 스토리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언론이 보도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계신다. 대통령이 이를 직접 보고 반응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면 대통령 역할의 모범 사례다.
하지만 대통령은 다른 불편한 사안들에는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말랑말랑한 감성적 사안만
채택하지, 국가 존립의 근본과 관련된 국민 불안에는 한 번도 제대로 응답한 적이 없다. 언론 보도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많은 국민이 정말 그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왜 한낱 김정은에게 꼼짝을 못 하는지, 왜 굴종하다시피 하는지, '삶은 소대가리' '뻔뻔한 사람'
같은 막말을 들어도 왜 한마디 반응도 못 하는지, 무슨 약점이 잡혀 있는지, 우리 통일부 장관이 북 미사일 시험에 대해 '북한이 억지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에 동의하는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는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인지… 이런 이슈에도 제발 속 시원하게 반응해줬으면 좋겠다.
한때 문 대통령에게는 '그래도 선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의 아픔에 둔감한 냉혈한에 가깝다고 본다. 자신의 정책적 실수와 무지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든 말든
그는 인정하지도 고치려고도 한 적이 없다. 가령 '탈원전'으로 두산중공업 직원들은 매일 평균 다섯 명꼴로 퇴사하고 있다고 한다. 남은
직원들도 순환 휴직 등으로 몰려 있는 상태다. 협력업체 직원들과 부양가족을 계산하면 2만4000가구의 생존이 위태해졌다.
국가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붕괴, 원전 수출 부진 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낳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이 마치 없는 듯 외면해버린다.
한번은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행사장에서 만난 문 대통령에게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이미
결정된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건설만은 재고해달라'고 하자, 딱 한마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기가 모자라지 않잖아요." 이런
수준을 어떻게 선하다는 말로 포장할 수 있을까.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
로컬 프리즘
‘한강의 기적’처럼 일군 원자력과 산림의 붕괴
[중앙일보] 입력 2019.12.20 00:15
김방현 대전총국장
오는 27일은 원자력의 날이다.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것을 계기로 2010년에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하지만 대전의 KAIST와 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전문가들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탈원전으로 원자력 연구와 관련 업계가 붕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KAIST 원자력 전공 학생 10여명은 원자력의 날 다음날인 28일 대전역으로 향한다. ‘탈 원전 반대 국민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지난 1년간 주말마다 거리로 나섰다. 지금까지 이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57만여명이 서명했다. 서명을 주도한 KAIST의 한 학생은 “탈 원전으로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사회적 약자가 먼저 피해를 볼 것”이라며 “이게 촛불 혁명 정부가 강조하는 평등·정의·공정이냐”고 했다.
탈원전에 따른 태양광 시설 보급으로 전국 산림 파괴도 심각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태양광 시설을 설치한 산림 면적은 2445㏊로 축구장 3000개 규모다. 산림 태양광 시설은 2016년 529㏊(917건)에서 2017년 1435㏊(2384건)로 증가했다. 원자력과 산림은 공통점이 있다. 지난 70년간 ‘한강의 기적’처럼 일군 국민의 자산이다. 기술을 해외에 전파하는 것도 유사하다. 산림청은 식목과 조림 노하우를 동남아 등 여러 나라에 보급하고 있다.
현 정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 혁명을 내세웠다. 탈 원전, 4대강 보 해체는 촛불의 실현이고, 자사고 폐지 등은 촛불의 명령이라고 했다. 공수처 설치도 촛불 혁명에 따른 개혁이라 한다. 촛불은 주술(呪術)이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촛불 혁명 결과는 ‘파괴와 해체’에 가깝다. 충남 공주 한일고 등 지방 자사고는 학교 존폐를 걱정한다. 무리한 부동산 정책은 국민 개인의 자유(재산권)를 침해하고 있다.
영국의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인간은 경험과 지식의 제약 때문에 혁명 이후 더 큰 악을 불러들일 위험이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 혁명을 감당해 낼 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포퍼의 경고는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됐다. 촛불 세력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방현 대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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