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그리고 믿음의 배짱”
[이 간증은 무역센터 부총재 시절인 지난 2006년 2월 11일 영국 런던의 한 교회에서 가진 것]
이희돈 장로는 (1959년생) 얼마 전에 (2020년 9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61세) 세상을 떠났다. 왜 이렇게 의인들을 하나님은 그렇게 빨리 부르실까?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사 57:1).
이희돈은 서울 출신으로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9세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HMC 종신교수와 세계무역센터협회(WTC) 총재로 재임 중이다. 9·11 테러 발생 당일 이 총재는 세계무역센터 110층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아침에 먹은 음식이 잘못돼 모임에 30분 늦게 도착해 화를 면했다. 비행기 동체가 꽂힌 무역센터 77층이 이 총재의 방이었다.
세계무역센터는 세계 92개국 320개의 무역센터를 관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무역센터 이사를 역임했고, 수석부총재가 되었다. 60살 이상이 돼야 이사가 될 수 있는데 나는 38세에 세계이사가 됐다. 아무 것도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런던에는 세계무역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왔다. 유럽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 사람들은 내가 미국의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러나 믿음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 있는 것이다. 비전은 하나님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을 위한 꿈을 가지고 할 수 있음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런 작은 믿음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시간이 없다. 15분마다 스케줄이 잡혀있다. 삶은 우선순위의 문제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가 중요하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야 다른 나라와 교류할 수 있다. 전세계 320개의 무역센터는 하루 한 곳을 다녀도 3년이 걸린다. 그러나 새벽기도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이번 달에도 세계를 두 번 이상 돌아다녔다. 어떤 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돌아다녀야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기도하지 않는 삶은 결단코 비전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매주 금요일에 철야기도를 한다. 성전에서 혼자 침낭에서 잔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이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런 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겠는가.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나는 시간의 십일조도 드린다. 1년의 10분의 1은 해외선교에 나선다. 나는 한 번도 휴가를 보낸 적이 없다. 오지에서 선교사들과 보낸다.
유럽에서 무지하게 고생하며 꿈을 키웠다. 역경은 왜 오는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나를 축복하기 위해서다. 내가 유럽에 올 때 나의 부모님은 비행기 표만 주었다. 그것도 원 웨이 티켓이었다. 가서 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머니가 준 봉투 속에는 돈은 없고,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울 것이다.’는 글이 쓰인 종이만 있었다. 공항에는 아무도 안 나왔다.
40세에 수상급들과 겨뤄 WTC 수석부총재 올라
주1회 철야 기도…“정성 없이 어떻게 이끄시나”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선교에 대한 꿈을 잊지 않았다. 성적은 중간이었다. 유럽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시간의 50퍼센트는 전도에 투자했다. 갈 표만 가지고 전도여행을 떠났다.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 찾아갔다. 직원은 학장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위의 사람이 보내서 왔다“고 말하자 놀라서 면담을 주선했다. 직원은 내가 대통령의 소개서를 지침하고 온 줄 알았을 것이다. 학장은 소개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학교에 들어오려면 정식으로 입학 원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명했으나, 나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다. “옥스퍼드가 투자해서 손해 볼 것 없다. 빨리 잡으라. 배낭 메고 오는 사람 봤느냐?”고 반문했다. 하루를 기다리니 스칼라십을 줬다.
그래도 걱정이 됐다. 다음으로 캠브리지 대학의 캠브리지 미션을 찾아갔다. 나는 옥스퍼드에서 스칼라십을 받았으나 먹고 입고 잘 데가 없으니, 일하며 먹고 입고 자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담당자는 다음 날 오라고 했다. 학교 층계에서 자고 다음날 가니 중국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말은 모르나 중국 글은 안다고 하자, 중국성경을 가져왔다. 성경은 다 알기 때문에 한문 글자를 보고 설명하자 반색을 하며 중국계 선교 담당을 맡겨줬다. 그렇게 해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 다녔다. 과연 하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유럽에서 미국에 갔다. 박사 학위가 끝나지 않았을 때다. 사람들은 내가 받은 학위를 가짜라며 믿지 않았다. 학력이 너무 많이 겹친다는 것이다. 그 나이에 그렇게 학위를 받을 수 있느냐고 의심했던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못 이룰 것이 없다. 마음에 믿음이 있고, 하나님과 같이 여행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센터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국에 가겠다고 하자 선배들이 미쳤다고 했다. 이번에는 절대 안 된다. 결혼도 안 했고, 돈도 없고, 재정 증명해 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 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보내겠다는데 자기가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한 다음 글을 썼다. 내가 미국에 들어가야 할 10가지 이유를 용지 1장에 써서 그것만 미국대사관에 제출했다. 직원은 결격 사유가 많아 영수증을 안 주고 영사에게 보고했고, 한참 후 영사와 면담했다. 그는 “이 글을 당신이 썼느냐? 이렇게 믿느냐? 미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3시간 만에 비자를 내주었다. 나는 1년에 2백만 불 이상 헌금한다.
내가 수석부총재가 될 때 굉장히 어려웠다. 아내만 나를 믿어줬다. 우리 총재에게 출마해도 되겠느냐 하니 ‘노’라고 답했다. 그러나 아내는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이 누구를 쓰시겠느냐. 당신 같은 사람에게서 쓰여져야 하나님의 뜻인 줄 안다”며 격려했다. 기도하는 중에 ‘30밖에 없는데 30으로 하겠다고? 그러면 네가 다른 점을 얘기해 보라’는 생각이 떠올라 기도했다. ‘하나님, 세계무역 센터에서 총재를 보기 전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사람 보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회의가 열렸다. 각국의 수상도 하고, 나보다 20~30세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내 이름은 거론도 안됐다. 미국과 유럽이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 팀의 리더가 일어나 “지금까지 일하는 것을 봤는데 데이빗 리가 최고 적격자다”고 말했다. 총재도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데, 하나가 되어 이 사람을 뽑자”고 지지하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작년에 제네바 회의에서 나에 대한 재신임 투표가 있었다. 반대파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내가 후계자가 (총재) 되니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비밀투표를 했다. 그러나 재신임됐다. 이렇게 해서 파워 있는 수석 부총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일은 굉장히 익사이트하다.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은 미국에서 굉장히 우대받는다. 그러나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그 실력 가지고 밥 먹고 살겠냐고. 나는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주신다”고 말했다. 나중에 이 말은 북미자유 무역협정의 (NAFTA) 근간이 됐다. 29살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가 됐는데 교수 임명 시 “네가 실력이 있어 된 것이 아니라 희소 가치가 있어서다. 나이도 젊고 여러 나라에서 공부했고, 여러 나라 언어를 알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추월당한다”며 과소 평가했다.
미국에 갔으나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눈물밖에 안 나왔다. 가장 비참하고 힘든 상황이었다. 그 후 실력을 보장받기 위해 여러 나라에 논문을 보냈는데 교토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초청했다. 나는 아내에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말했다. 아내는 기도한 후 말했다. “늘 선교 나가겠다고 말한 사람이 지금 안 나가면 언제 나가겠는가.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처음으로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결국 아내의 말대로 멕시코 적도 지방의 선교사로 나갔다. 학교에서는 돌아와도 자리 없다며 만류했다.
선교지는 목욕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벼룩이 개미떼처럼 덤벼들었다. 무지 고생했다. 전도의 열매가 무어냐고 기도했다.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너는 별만큼 선교하는 사람을 별만큼 도우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응답받았으니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잔칫집에서 앞자리에 앉았다가 주인이 뒤로 나가라 하면 얼마나 창피한가. 뒤에 앉았다가 앞으로 나오라 하면 영광이다. 하나님이 나오라 할 때까지 기다리자”며 반대했다. 국제 무역센터에서는 날마다 나오라고 펙스를 보냈다. 나오라고 사정해도 안 나가자 반대로 내 주가가 올라갔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수직 상승했다.
노르웨이 국왕과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궁정에 초대받았다. 그 후 다시 초대받았으나 예배시간과 겹쳤다. 두 왕가의 약속을 취소했다. 예배드리기 위해 비행기 타고 갔다. 새벽기도는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다. 사탄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 나는 5개 국어를 한다. 내 친구들은 방언을 하지만 나만 못했다. 나는 외국어로만 기도한다. 새벽기도에서 동시통역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못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아지처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무나 기쁘다. 하나님께 맡기면, 꿈이 인정만 되면, 하나님 앞으로 향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받으신다.
이희돈 장로의 다른 간증:
2년 전 세계 최고 기업가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패트리윰 회장, 홍콩 상하이 뱅크 회장과 같은 여러분이 이름만 들어도 아실 만한 최고의 경영인 100여 명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얘기할 때 약 20년 후인 2025년에 일어날 일들을 마치 내일 일을 얘기하듯이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주제가 1년 후, 10년 후가 아닌 20년 정도는 앞서 보면서 마치 내일처럼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 일을 바라보고 세상 일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도 20년 후를 바라보고 내일처럼 얘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를 확실히 믿고 있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고 또 세상이 되어야 할 일을 성경이 우리들에게 확실히 알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것도 그런데 천국의 도래를 바로 내일 앞처럼 얘기할 수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선교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선교라는 것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선교라는 모임은 하나님께서 가장 정제되고 훈련된 사람을 모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주시고, 하나님의 명예를 주시고 그기에 덧붙여서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공급하겠다는 것을 확신 시켜 주는 것이 선교에 대한 놀라운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보며 지난 일 들을 회고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세계 무역 센터라 함은 전 세계의 320개의 무역 센터를 관장하고 전 세계 75만의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 세계 최대의 무역기관입니다. 유엔이나 다른 나라와 같이 겉으로는 국제기관이라는 모습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를 무역으로 이끌어 갈려고 하는 미국에 의해서 이끌어 가는 전적으로 미국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록펠러가 유엔을 창설하여 앞으로 돌아오는 세계는 무역이 전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현재 무너졌던 세계 무역센터 본부인 뉴욕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을 세웠습니다. 무역 센터를 통해 전 세계의 무역에 대한 건물뿐 아니라 무역에 필요한 금융, 서비스까지 전 세계를 이끌어 가는 전 세계의 최대의 조직입니다. 저는 현재 세계무역센터의 수석 부총재를 맡고 있고 그곳까지 올라가는 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그러한 일들을 보며 저처럼 저런 사람도, 저런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될 수가 있다면 여러분이 할 수 없다는 이유를 한번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발견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일하시지 못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쉽게 우리 자신의 한계를 제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처음 오게 된 동기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얘기하길 원합니다. 저는 처음에 유럽에서 첫 번째 학위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위 공부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제 친구를 잘못 만나서, 친구들이 전부 공부한다고 하니까, 공부 안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 될까 봐 할 수 없이 저도 공부해야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력이 모자라 다른 사람은 다 장학금을 받는데 저는 장학금 없이 해외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다 국비 유학생이 되었었는데 저만 전공이 안된다고 국비 유학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전공을 바꾸면 국비유학생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바꿔봤자 실력도 안될 테니까" 했습니다. 지금도 주장하기를 그 과목이 장학금을 안주는 과목이어서 못 받았다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꿈이 뭐였냐 하면 만둣집 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만두 집하는 꿈을 왜 꾸었냐고 하면 정말 만두로서 세계를 제패할 자신이 제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내가 만두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아내만 제가 잘났다고 하면 되니까 상관은 없습니다. 만두에 대한 이상한 애착이 있는 이유는 내일이나 시간이 되면 얘기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다 박사 받으러 간다고 하니까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한가 지 꿈이 있었습니다. '세계를 그대 품 안에!' 언제나 그 말이 저를 끓게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얘기했습니다. "만두로 세계를" 이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믿음 생활을 하는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가고 대학원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프러포즈를 하니까 다 좋은데 한 가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습니다. 왜 마음에 안 드느냐 했더니 제가 꿈이 작아서 만두 가게밖에 못하는 사람하고는 도저히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결혼하는 자매들이 많이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전혀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혼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결혼 시기가 넘어가고 만기가 되면 점점 더 '믿음이 있으면 좋고' '믿음이 없으면 내가 믿게 하면 되고' 하면서 점점 더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 희생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 아픔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님한테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세상의 나 같은 남편감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고 했지, 만두 가게 해서 당신이 공부하면 다 먹여줄 것이지, 당신이 공부하면 애도 봐줄 것이지" 했습니다.
또 그 자매님은 딸밖에 없는 집안인데 원하면 우리는 아들이 셋이니까 데릴 사위로 가줄 것이 지라고 했는데 그래도 전혀 안된다고 했습니다. 꿈이 부족한 사람하고는 결혼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님은 결국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가니 제가 만두가게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친구들과 같이 좋다! 내가 무시당할 수 있느냐? 아니면 확실하게 한국 만두라서 그런 것 같으니 내가 프랑스가서 만두 배우면 마음을 바뀌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의 부모님께 결심을 얘기했습니다. "어머님 제가 유학을 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어머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꿈이 있는 것은 참 좋다 가라!" 그래서 제가 그러면 장학금은 안되니까 가는 몇 달 치 혹은 1년의 향토 장학금을 좀 주십시오! 했습니다. 부모님이 1년을 대주시면 1년 후에는 돌아오던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보고 가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학을 떠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 떠나는 날까지 아무것도 안주시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어떻게 된 걸까 했습니다. 비행기 표를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게 비행기 표를 받았습니다. 열어보니 원 웨이 티켓이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묻기를 그 당시도 그랬지만 원 웨이 티켓이 왕복보다 더 비쌀 때였기 때문에 왜 굳이 왕복 표는 싼데 비싼 원 웨이 티켓을 끊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했더니 "남자는 한번 믿음을 가지면 확실히 해야 하는데 네가 돌아오겠다는 생각 가지고 갈 수 있겠느냐?" 하셔서 생각해 보니 아니라고 하면 향토 장학금도 못 받을 것 같아서 1년이 안되면 6개월만 있고 비행기 타고 오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비행기가 떠날 때 얼마나 줄지 생각해보니 1년 치는 주셔야 생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봉투를 받았습니다. 봉투를 받고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 비행기는 JAL기였습니다. 경유해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였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부모님과 헤어지는 아쉬움보다 얼마 들었을까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타자마자 봉투 받은 것을 정말 감사하고 기도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은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과 그분에 대한 꿈과 하나님이 여러분을 연단만 하시면 쓰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봉투를 열었습니다. 한 장의 정성 어린 종이가 접혀있는 것이 나왔습니다. 종이를 펼쳐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은행구좌를 써 놓으셨구나 하면 펼쳐보았는데 딱 한 구절이 적혀있었습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눈을 의심했습니다. 돈이 바닥에 떨어진 줄 알고 아래를 뒤지다가 여승무원에게 안전 벨트를 매라고 경고를 받았습니다. 떠나보내시면서 원 달러도 안 주시고 보내셨습니다.
그냥 단 한마디만 적혀있었습니다. "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지금도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 죽었다 돈 한 푼 없는데 어떻게 하나' 했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기도하니 하나님께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면 가능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제가 혹시 하나님 앞에 서서 간증할지 어떻게 압니까?" 했습니다. 유럽에 아는 사람 없었습니다. 먼저 간 친구가 공항에 마중 나왔습니다. 돈 한 푼 없이 그 친구 집에 일주일간 머물렀습니다.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국립대학 지원을 했습니다. 들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다음날부터 살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일할 때 없는지 광고를 살폈습니다.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그 당시 잘 몰랐습니다. 못 살아 보이면 중국인이냐 하고 물었고 좀 잘 살아 보이면 일본인이냐? 할 때였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 광고가 크게 난 것을 보았습니다. 영여 교사를 뽑는데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태어난 사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지원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쳐다보니 친구가 "될 것을 바래라 이제 정신도 이상해지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실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도전해 나가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실리 없습니다.
그것을 계속 바라보니 친구가 "설마 네가 지원할 거냐?" 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습니다. 지원했는데 처음에 안 받았습니다. 코리아가 중국의 일부이냐고 해서 중국이 한국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3일 후에 시험을 쳤습니다. 40 몇 대 일이었습니다. 발표날이 되어 집에 있기 눈치도 보이고 하여 학교에 가봤습니다. 이름이 붙었습니다. 저는 제가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내 영어가 이 정도였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친구랑 영어를 쓰면서 얘기하니 폼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는 '그런데 이상해 너 실력이 그렇지 않는데'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는 본토 발음을 몰라서 그래 본토에 와서 비로소 내 실력을 인정을 받은 거야'라고 했습니다.
합격된 사람을 발령해 주는 곳에 갔습니다. 40명이었으므로 최소한 40번째는 가겠지 했습니다. 39번째까지 발령이 안 났습니다. 그런데 저를 건너뛰고 2기로 뽑은 1번을 보냈습니다. 10번이 넘어가도 또 안 보내 주었습니다. 이렇게 당할 수 없다 해서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왜 내가 1기로 뽑혔는데 안 보내 주냐고 했습니다. 2기도 또 10번이 지나도 안 보내주었습니다. 다시 찾아갔습니다. 저보고 좀 더 기다릴 수 없나 해서 '안된다 꼭 가야 한다' 고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사실 네가 왜 된 것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책을 보여주더니 그 책에 유럽공동체가 점차 다른 나라를 개방하기 시작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아시아인을 차별한다 해서 비 영어권도 한 사람을 할 수 있게 예외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지원 안 했은데 너만 아시아인으로 지원해서 혼자 왔기 때문에 뽑은 것이라 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이 몰랐냐고 했더니 법령이 일주일 전에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엄청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통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소리 없이 일주일 더 기다렸더니 제가 불쌍했는지 공립학교로 보내주었습니다.
가르치면서 교과서를 보니, 무슨 귀신을 섬기는 이야기, 미국의 유명한 가수 마이클 잭슨 같은 사람의 노래 등이 실려 있어, 그런 본문을 빼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찬송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부모 모임이 있다고 참석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자기를 학교에 배정해 준 그 교육청 직원이 부르더니 학부모들이 당신의 수업 내용을 알고 지금 당신에게 이런 이런 사실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잘 지키려면 당신이 그들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의 입장대로 굽혀라. 그렇게 하겠다고만 한다면, 당신은 해고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조언을 해 주었다. 그래서 그 모임에 참석했더니, 당신은 영어 본토인이 아니라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거나 수업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당신은 무슨 권세로 교과서는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찬송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가르치느냐? 당신이 고치지 않으면 당신을 해고하겠다. 결단해라!" 고 했다. 그래서 그들 앞에 나가서 "당신들이 나를 해고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이 나를 해고하기 전에 당신들과 같은 생각에 굴복하려면 내가 먼저 사표를 내고 물러나겠다. 당신들은 과거에 하나님을 잘 섬긴 민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적이 되었고 지금 내가 당신 아이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데 당신들이 나를 싫어하고 당신 아이들을 망할 길로 되돌리고자 한다. 나는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학부모 모임은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고 결정을 했다. 그들은 이희돈을 해고한다고 결정했다. 정말 안정적인 직장, 유학을 하면서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자리를 이렇게 상실하게 되었다. 재정을 이제 걱정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렇게 해고를 당하고 어찌할찌 정말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그 교육청 직원이 이희돈을 불렀다. 당신은 내 조언을 듣지 않고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느냐? 당신은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학부모들이 모두가 다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들이 모두 당신을 싫어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외가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 그래서 그러는데, 내가 당신을 이제 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에 자리를 알아 보아 주겠다. 그렇게 해서 더 좋은 학교에 교사 자리를 얻게 되었고, 거기서는 신앙적인 가르침도 제재없이 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대우도 더 좋았다. 하나님의 대의를 위해, 복음을 위해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해고를 당했지만,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 버리셨다.
다른 간증으로는, 이희돈 장로의 아내가 형편이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을 때, 하나님을 완전히 빚쟁이로 영원히 빚쟁이로 만들어 버릴 방법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희돈 장로가 교회 재정을 맡아 보게 되었을 때, 헌금 장부를 검토하다가 자기의 십일조 항목을 보게 되었는데 아주 이상한 액수에 이상한 날짜에 기록된 것이 보였다. 아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월급을 받은 때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이렇게 늦게 드렸나?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십일조 액수도 자기가 아내에게 주었던 월급 십일조보다 3, 4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딴 주머니를 관리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좀 책망을 하고자 물었다. "왜 이렇게 액수가 많은 것이냐?" 따졌더니, 아내가 말하길, 당신이 지금 받는 월급은 당신의 잠재력에 너무나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그 잠재력을 믿고 하나님께 이렇게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좋다. 그것은 이해가 되는데, 나를 믿어주니 고마운 일인데, 왜 이렇게 십일조를 늦게 내었느냐? 그러자 아내는 답하길, 형편이 어려우니 우리를 맘껏 축복하시도록 하나님을 영원히 빚쟁이로 만들 생각을 곰곰 해 보았는데, 평생에 빚쟁이를 만들 생각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했다고 한다. 즉 미리 일생에 딱 1번만, 미리 십일조를 기한보다 먼저 드리게 되면, 선불 십일조를 드리면, 영원히 하나님을 빚쟁이를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월급 받기 1달 전에 벌써 선불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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