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이야기
사랑의교회 전도 파수꾼 이재명 집사
1994년 9월 21일 9시 저녁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켜는 순간 지존파 악당 놈들의 현장 검증 과정을 그대로 방영하는 것이 아닌가? 놈들이 살기 등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 악당은 "압구정동의 야타족을 못 죽여서 한이다"라고 발악을 한다. 산 사람을 곡괭이로 찍어 죽이고 사람의 각을 떼어 화장을 하고, 인육을 먹은 것을 자랑하며 또 한 놈은 어머니를 못 죽인 것이 한이란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저런 똥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 저것들의 어미도 아들 낳았다고 미역국 먹었겠지 중얼거리며 TV를 꺼 버렸다.
지존이란 단어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명칭인데 TV와 신문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존파! 지존파! 하며 온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난리 법석을 떨며 왜, 저 야단들인가? 말세야 말세라고 탄식을 했다.
이튿날 새벽기도를 하고 돌아오는데 문득 26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으며 그때 전도한 사형수의 얼굴이 기억 났다. 나는 스스로 놀라며 "어어 이게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잊혀 졌던 옛일이 생각이 나다니 이상도 하다. 그 놈들도 구원의 대상이 된단 말인가? 아니야 그 놈들은 안돼 자문자답을 하는데 연이어 예수님 옆에서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은 한 강 도가 생각났다.
그래 인간들은 모두 구원의 대상이야. 사람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악마의 하수인 사단의 꼭두각시 저놈들을 전도하자 결심하고 기도했다.
그런 결심을 한 후에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도용하여 지존파란 범죄 조직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무참히 죽이고도 더 못 죽여 한이라고 악을 쓰며 "저를 낳은 어미를 못 죽인 것이 한이다"라고 발악하는 저 악마 놈들을 주님께서 저에게 전도할 마음을 주시니 우리 교회의 소명으로 생각하며 전도하겠습니다.
저놈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26년 전인 1968년도에 실정법을 범하지 않은 저를 불의한 검사의 손에 의해 상해죄 및 재물 손괴 죄명으로 전격 구속, 기소되게 하여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 채 겨울, 봄, 여름 3계절을 그 처절한 연단과 고통, 인내의 훈련을 시키시고 14차 공판에서 무죄로 석방하셨군요. 그때 주님께서는 저의 연약함과 우둔함과 지혜 없음을 아시지요? 천만이 넘는 성도 중에 어찌 저를 사용하십니까? 이 전쟁은이땅에 없었던 살인과 사단의 집단과의 영적 전투이며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버금가는 싸움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 전할 때 항상 함께 하신 주님 도와 주십시오. 저에게 담대함과 지혜와 용기와 건강을 주십시오. 복음 전할동역자들과 많은 기도의 동지를 붙여 주십시오. 우리 한국교회의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병든 국민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도덕성을 회복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승리하셔서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역사 하심을 만천하에 알게 하시며 영광을 받으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동역자님들에게 지존파 놈들을 전도합시다 제안을 했더니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놈들은 재판도 하지 않고 한강 고수부지나 시청광장 같은데 끌어 내어서 빨리 공개 처형으로 죽여야해요. 그렇게 해야범죄 증가가 덜 될거요 새로 들어선 문민정부가 치안을 확립하지 못했는데 지존파들이 체포된후 치안이 잡혔어요. 그놈들은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오히려 그 시간에 딴 사람 전도해야지 시간 낭비야 괜히 오해받을일 하지 말자고."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 기도하며 각개격파로 한사람씩 설득을 하여 복음 제시할 평신도 8명으로 전도 특공대를 조직하였다. 그 명단은 전폭 9수의 진도종합건설 부사장 김병채 집사, 전폭 7수의 연대장 출신 2특공대 임용보 집사, 전폭 7수의 여장부 박준숙 권사, 전폭 2수의 대학교수 송달 집사, 전폭 8수의 전천후 특공대 바울 이성준 집사, 전폭 2수의 회사대표 차신철 집사, 전폭 2수의 열정의 이인수 집사, 전폭 8수의 나, 참으로 막강한 팀이다.
옥 목사님을 뵙고 지존파 7악당의 명단을 옥 목사님께 드리면서 "목사님 저희들이 지존파 놈들을 전도하기로 작정하고 특공대를 조직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 요청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며 "뭐라고요 그놈들을 전도 한다구요, 나는 기도도 나오지 않는데 두고 가시요" 평소에 친근하게 대해 주시던 존경하는 지도자로부터 격려는 커녕 무안을 당하니 묵시적인 모멸을 당한 것 같아 우두커니 선 체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순간 그래 며칠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었잖아 지존파 놈들이 저지른 엽기적인 살인 만행에 온 세상이 놀랐었지 미국의 유명한 일간지는 1세기에 한번 발생하기 어려운 범죄다. 독일 신문은 광주사태와 견주어 볼 때 100배이상의 충격을 주었다고 보도 했었잖아 목사님의 분노는 당연해 인식전환을 위해 기도하자 그리고 은밀하게 기도후원 그룹을 만들어 대처 하자는 생각을 하며 목사님 방을 나왔다.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을 상대로 접촉을 시도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처음 접촉을 한 목사님은 무서워서 동참이어렵다고 하였으며 어떤분은 나의 행동이 소영웅주의자 같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창호,정우길 두 분 목사님을 비롯한 젊은 부목사 8명의 기도후원 그룹이 되어서 특공대는 16명이 되었다.우리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3주 특별기도에 돌입하여 영적전투를 준비하며 주님의 도움을 간구했다. 우리는 그때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합의했었다. 그것은 지존파 악당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일에 모든 일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기로 약속했었다.
그 놈들은 모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대부분 결손가정의 아이들로 인격 파탄자 사탄의 꼭두각시가 되었기 때문에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하겠다 생각이 되어 특별 면회를 하기전에 그 놈들과 관계를 갖기 위해 먼저영치금을 넣어 주어 음식을 사먹도록 하기로 하고 서울 구치소를 찾아가 교도관들에게 절차를 문의 했더니 민원실 근무자 모두가 겁먹은 얼굴 표정들을 하였으며 담당 교도관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놈들은 온 국민이 빨리 죽기를 원하는데 영치금을 넣어 준다고요. 그놈들 구치소 밥도 오감 해요, 선생님은 대체 어디서 왔습니까?" "서초동에 있는 교회에서 왔습니다."그랬더니 비웃는 말투로 "뭐요? 교회요! 거기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목사님이십니까?" 묻기에 엉겁결에 ""사"자는 "같은 사"자입니다"하고 대답을 했다.
교도관이 "교회 부근에 구제 대상이 많을 텐데 그냥 가시죠" 하며 영치금 접수를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도당신과 같은 감정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든 사람의 영혼구원을 위해 노력하지요 받아 주십시오." 거듭 요청을 하자 교도관이 나를 가르켜 목사님 같이 끈질긴 사람 처음 본 다며 저 중앙홀에 가서 컴퓨터 담당 교도관에게 재수들의 번호를 알아 가지고 영치금 원부를 써 오세요. 영치금을 넣어 주는 사람과 받는 지존파와 관계를 기록하는 관계란에 "이웃" 이라고 써서 7명에게 3만원씩 영치금을 넣어 주고 5일 마다 계속 3번을 넣었는데 마침내 두목 김기환으로부터 "천하에 둘도 없는 악마가 드립니다." 로 시작한 첫 편지가 왔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조차도 면회 한번 오지 않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영치금을 받으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재판 과정이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반성을 모르는 철면피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진정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이재명 선생님께 깊은 마음의 정을 느낍니다. 제가 저지른 사건이 무슨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되었음을 선생님 앞에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다시 한번 뜨거운 인간애를 느낍니다. 이재명 선생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안녕이 함께 하시길 지옥에서라도 빌겠습니다."
악마의 대리인 김 기 환
나는 김기환의 편지를 받고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감옥의 지존파 놈들에게 임하셨음을 확인하게 되어 기뻤다.
공판에 참석하면서 영치금을 넣으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에 기도하며 그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여섯 놈과 한 여자에게 나는 너희들의 감옥의 선배이다로 시작한 편지로 놈들을 질책했다. 그들은 답장을 보내왔다. 계속 편지를 보내고 영치금을 넣어주고 방한복, 담요, 양말 등을 넣어 주었다. 1심에서 이경숙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사건의 정황과 본인의 뉘우침이 정상 참작이 되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악마들의 마음을 녹였다. 그들이 저지른 극악 무도한 죄악을 차츰 뉘우치는 편지를 보내왔다. 검찰 고위층으로부터 복음 전하기 위한 특별 면회를 시켜 주겠다는 확약을 받았는데 자꾸 연기되어 안타까웠다. 이유를 알아보니 타종교에서도 그들 지존파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 때문이란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문득 바울 사도 선생의 옥중 서신이 생각났다. "하나님, 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은 능력이니 편지를 써서 전도하자. 복음서신을 쓰자. 서울 구치소에서 서신을 검열하는 교도관들이 이상한 편지이기 때문에 거의 다 읽어 볼 것이고, 한 감방에 7-8명이 있어 내 편지를 헤어지도록 돌려읽는다니, 동시에 6개 감방의 40여 명에게 복음 전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됐다. 기도하고 복음 제시의 편지를 썼다. 10페이지에 7,000자 장문의 편지를 써서 우송했다.
편지 내용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과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구원의 목적, 성경을 쓰신 목적,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설명하고 기독교의 가장 중심되는 부분인 은혜, 인간,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믿음을 설명하고 1. 성경은 왜 읽어야 하며 2. 기도는 왜 해야하고,어떻게 해야하며 3. 예배는 왜 드려야하고,어떻게 드려야하며 4. 예수믿는 사람들의 교제는 어떻게 해야하며,전도는 왜 해야하는지 누구나 할 수 있다 너희들도 전도자가 될 수 라고 양육을 했다.
세 사람은 영접했는데 3통이 되돌아 왔다. 나는 다시 써 보냈다. 두사람이 영접했다. 지존파가 감방에서 전도를 시작했다. 김현양이가 과실 치사로 구속된 택시 기사 박씨를 전도했다.
박씨가 보석으로 석방되어 나를 찾아와 신앙지도를 받았다. 12월 2일 강동은이 전도한 안건모(37세)가 나를 찾아와 신앙 지도를 요청해 전도 폭발을 했다. 그는 대기업의 홍보과장이었는데 부주의로 절도범으로 구속돼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찾아왔다. 죽고 싶다고 했다. 복음설명을 하여 구원의 확신과 용기를 심어주고 항소심 지도를 했는데 얼마 후 선고유예 판결 선고를 받고 찾아와 나에게 "이 선생님은 은인이십니다." 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전도 폭발하고 옥 목사님께 인사시켰다. 백병옥이 아버지 백용관씨가 찾아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으며 강문섭의 형 강화군수도 왔다.
또 한 통이 되돌아 왔다. "김기환이 보내면서 선생님 사랑은 죽도록 감사하여 은혜 갚을 길 없습니다. 제발 예수 믿으란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94년 봄에 동생들과 술자리에서 만일 김기환이를 불교에 귀의하게 하면 그 사람이 석가모니고 나를 예수 믿게 하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너희들은 이 지존자 김기환을 믿어라 했으며 맹약을 했습니다. 한번 먹은 마음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라고 썼다. 나는 질책과 설득의 편지와 복음을 다시 써 보냈다. 드디어 김기환이 주님을 영접했다. 지존파 여섯 놈으로부터 나와 동역 자들에게 성탄카드가 왔다. 김현양이의 여동생 미옥이가 오빠를 도와 주어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만남"이란 시를 지어 6명에게 보냈다. 성탄절에 김기환이 구치소에서 세번 예배를 드렸다. 94년 12월 중순까지 오고간 편지가 32통이나 됐다.
나는 옥한흠 목사님께 그들이 회개한 것과 영접한 사실을 보고 드렸다. 옥 목사님께서 깜짝 놀라셨다. 목사님께서는 감동적인 편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하셔서 드렸다. 그런데 12월 25일 성탄절날 예배 드리는 중에 나와 온 교인이 놀랐다. 뜻밖의 일이다. 옥 목사님이 구원에 대해 설교하시다가 이렇게 고백하셨다. "나는 목사될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교회의 전도폭발팀이 지존파를 전도했습니다. 이재명 집사가 지존파를 전도하기 위해 특공대 명단을 가지고 왔을 때 냉대했습니다. 나는 가르치기는 하고 솔선 수범을 안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온 교인 앞에서 다시 회개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으로 변화시키시고 은혜 베푸시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시며 옥 목사님은 울음섞인 소리로 김현양과 강동은의 편지를 한 장씩을 낭독 하셨다. 현양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크고 넓고 깊어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감옥은 저에게는 천국입니다." 하고 고백했고, 동은 이는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이 선생님이 넣어 주신 방한복을 몸이 약한 분에게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 적막이 감돌며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앞뒤좌우를 돌아보니 여자 성도들이 옥 목사님의 편지 읽으시는 소리를 들으며 울고 있었다.
성탄절의 1,2,3,4부 예배가 모두 이같은 분위기였다. 그는 좋은 지도자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는 지도자다. 나는 그분을 더욱 존경한다.
그날 동시다발로 "우리지" 교회 신문과 "목마르거든"에도 지존파 회개 기사가 크게 실렸다. 온 교역자와 교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어지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 집사님 큰일 하셨습니다. 대단하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는 인사가 쏟아졌다. 큰일이라 예상되어 당황해졌다. 나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주님, 제가 경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우를 범했습니다.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녁에 우리교회 교인들이 전화를 많이 걸어왔다. "누가 하기는 해야 하는 일인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 집사님이 하셨군요. 어떻게 전도할 마음을 먹었으며 접촉을 했습니까? 무섭지 않았습니까" 하며 질문도 많았다. 그 중에 우리교인이며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인 설희관씨가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 "이 집사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옥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우리지 신문도 읽어보았습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신문이 상업성에 치우쳐 사건을 확대해서 부정적으로 다루어온 게 사실입니다. 제가 명예를 걸고서 지존파 사건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한번 다루어 보려고 하는데 이 집사님께서 승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절한 요청을 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입니다. 저는 승낙할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설교하신 옥 목사님께 말씀드려 보십시오"하며 기사화 하는 것을 거절했다.
설차장이 "저는 옥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이 없습니다. 집사님께서 저의 뜻을 옥 목사님께 말씀드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하며 간청을 했다. 옥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이젠 우리 교인들의 감정이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 같으니 우리교인이 한국일보 기자라면 취재에 응합시다." 그래서 94년 12월 29일자 한국일보가 특종으로 전 사회면에 기사 화했다. 신문에 기사가 나가자 우리교회에 각종 언론사로부터 전화가 빗발치게 걸려와 옥 목사님과 나와 통화하기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이어서 국민일보와 각종 일간지와 모든 기독교 신문에 지존파 회계기사가 실렸으며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 에서도 방송을 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지 사랑의교회와 이재명의 이름이 유명해졌으니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1995년 1월 4일부터 10일간 중국선교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그 아이들에게서 많이 왔어야 할 편지가 한 통도 오지 않았기에 서울구치소 교무과장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대해 주던 교무과장이 신문에 지존파 전도한 사실이 보도되는 바람에 법무부로부터 문책을 받았다면서 나에게 항의를 했다. 나는 이해를 시키며 기도하며 감수를 해야 했다.
1995년 1월 19일 오후 2시 서울 고등법원 형사법정에서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가 국선 변호인 3명을 기독교인으로 선임을 했는데 김기환, 강동은의 변호인 이기영 변호사(장로)와 김현양, 강문섭의 변호인 박태연변호사(권사) 문상록, 백병옥 변호인 심규철 변호사(권사)였다. 나와 이인수 집사님이 방청을 했다.
김기환,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상록, 백병옥, 순서로 사실 심리를 하는데 변호사 세분의 심문이 매우 진지했으며 돋보였다. 김기환을 제외한 다섯 명의 피고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했으며 1심에서와 같이 거듭 사죄를 했으며 강동은, 김현양은 "이재명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진술을 했다. 이기영 변호사가 "김기환피고인이 만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면 좋은 길과 나쁜 길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택하겠습니까? 좋은 길을 택하겠지요?" 라고 질문을 하니까, 이 김기환은 일백번 죽었다 일백번 살아나도 지존파의 길을 갈 것입니다. 발악성의 대답을 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법정을 적막감이 흘렀다. 나는 다시 김기환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나에게 잘못을 고백한 것은 거짓말이었느냐?" 하며 나의 충고와 변호사의 정성을 무시하고 법정에서의 오만 방자했던 행위를 신랄하게 질책하고, 한번밖에 없는 다음 결심 공판에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김기환 네가 저지른 악마의 야만적인 살인행위의 잘못을 재판부와 검찰과 변호사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당부했다. 1995년1월26일 결심공판법정에 나는 우리교회의 전도폭발 담당 두 분 목사님과 평신도 지도자 8명의 방청을 안내했다. 피고인 가족들도 나왔으며 신문기자도 많았다.
검찰은 1심 형량대로 여섯명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어 세 분의 변호사가 변론에 들어갔는데 사선 변호사 이상으로 변론을 하여 방청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으며 법정의 분위기가 숙연했다. 특히 나이 어린 강문섭과 백병옥이 극형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재판장이 피고인들에게 최후 진술 기회를 부여했다. 김기환은 장문의 최후 진술을 써와서 울면서 읽어 내려갔다. 모든 사람에게 사과 드립니다.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길을 잘못 들어섰습니다. 나이 어린 강문섭과 백병옥을 살려 주십시오. 이재명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진실성과 논리가 정연했다.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도 최후 진술을 미리 써온 것을 읽으며 사죄했다. 그리고 "동생 강문섭과 백병옥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강문섭과 백병옥은 "할말이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 2월 9일 판결은 전원 사형이 선고됐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참회와 종교에 귀의한 것을 인정하나 워낙 무참한살인행위로 국민을 경악케 했다는 사실과 국민 정서를 설명하며, 판결에 앞서 많은 고뇌를 했다고 토로했다.
나는 편지를 써서 그 아이들에게 상고를 권유했다. "법에 보장된 혜택을 거부하지 마라. 인간의 생명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전도에 힘쓰라."
1994년 10월 30일 편지에 내일 지구가 멸망 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고 말한 것은 너희들이 구원받고 전도에 몸을 바치라는 말이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 아이들은 전원 상고를 했다.
우리교회에서 그들에게 소홀하게 한 일이 있다. 사랑의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지연이 되니까 김기환과 문상록은 천주교예식으로 영세를 받았다.
예상대로 상고 3개월 후인 5월 20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돼 사형이 확정됐다. 같은 공범이었는데김현양이가 탈출시켜 신고를 한 이순이(28세)가 형사 5명의 보호를 받으며 나를 찾아와 지존파를 돌보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6명의 사형수는 매달 내가 넣어주는 "생명의 삶" 이라는 책을 매일 펴고 감방 식구들과 예배를 드리며 전도에 힘쓰고 있다. 영치금을 계속 넣어 주며 필요한 의류와 책을 넣어 주고 추석에는 교회의 이름으로 떡을 넣어 주었다. 서울 구치소의 면회금지와 서신 왕래금지가 철회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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