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돌 항아리 여섯 개

중일사랑 2022. 5. 29. 23:22

요한복음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돌 항아리들 여섯 개? 도자기를 의미하는 것 같지 않고 돌을 깍아 만든 항아리란 의미인 듯 보인다. 이 돌 항아리들은 유대교의 정결 예식을 위해 준비된 물 그릇들이었다. 유대교인들은 손 씻기로 유명하다 (막 7:2이하 참조).  

 

우리는 '돌 항아리'가 (도자기가 아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나?도 궁금하고 왜 그 돌 항아리들이 여기 "여섯 개" 놓여 있었다고 하느냐? 하는 점도 궁금하다. 돌 항아리 1개는 '두 세 통' 분량의 크기라 했다. 여기서 "통"이라 번역된 헬라어는 '메트레테스'인데, 40리터 분량의 액체 단위이다. 요한은 항아리 1개가 2, 3통 분량이라 했으므로, 항아리 하나는 80-120리터의 크기이다. 중간치인 100리터로 보면, 항아리 6개는 600리터의 분량을 담을 수 있다. 이 많은 양의 물을 주님은 포도주로 변화시켰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렛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6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이라는 것은 결코 확실하지 않지만 가능하다. 6은 완전 수 7에서 1이 적은 불완전성의 수자로 정결 의식의 물로 대표되는 유대교의 경륜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했음을 상징한다 (191쪽).

 

어거스틴은 훨씬 더 나아가서 6개의 항아리를 예수님 시대까지의 세계의 6개 시대들로 파악한다:

 

그가 친히 말씀하신 바를 지키라! 곧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율법은 우리가 기록을 가진 때부터, 곧 세상의 시작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 (창 1:1). 그 때부터 우리가 지금 사는 때까지 여섯 시대들이 지났다. 첫 시대는 아담에서 노아까지, 둘째,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복음 전도자 마태가 합당하게 따르고 구분한 것처럼 세째는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넷째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까지 다섯째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때부터 세례 요한까지 (마 1:17), 여섯째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상 끝날까지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여섯째 날에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으니 이는 여섯째 시대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심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골 3:10).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니 이는 우리로 이제 율법과 선지자들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맛보게 하려 함이다. 물동이가 여섯 개 있었는데 거기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다. 이제 여섯 개의 물동이는 예언이 없지 않았던 여섯 시대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치 관절들로 나누어지고 분리되듯, 이 여섯 기간들은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는 한 빈 그릇들과 같을 것이다. 주 예수께서 그 시대들 가운데 전파되지 아니하면 무익하게 흐르는 시간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예언들이 성취되고 물동이가 가득 찼다. 그러나 물이 포도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체 예언에서 그리스도를 이해해야 한다 (요한복음 9:6 주석).

 


어거스틴은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에게서 유래한 더럽고 비인간적인 제도를 없애고 계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창조 때부터 세례 요한 때까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적으로 선포되고 채워져야 했었다고 바로 지적했다. 어거스틴은 요컨대, 율법과 복음을 루터교에서 하듯 극명하게 대조시키지 않았다. 어거스틴의 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6이란 수자의 상징성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섯 개의 항아리 안에 물을 채우라 하셨고,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을 뿐, 거기에 1항아리를 더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 이전의 유대교 믿음의 명백한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섯 개를 취한다면, 예수께서 성취 완성하신 것은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었고 거기에 아무 것도 추가한 것은 없었다! 요 1:16을 다시 번역하자면, 율법주의 (legalism) 대신 은혜가 아니라 은혜 (율법의 은혜) 자리에 [충만한] 은혜를 (복음의 은혜) 가져오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5:17). 유사하게 가나에서의 기적은 예수님을 '최고 포도주'로 율법을 '좋은 포도주'로 비교한다. 

 


리챠드 보캄은 이 기사를 역사적으로 읽는 데 두 가지 다른 요소를 활용했다. 첫 번째는 최근 몇 년 동안 학문적으로 많이 쓰여진 돌 항아리 자체에 관한 것이다. 몇 가지 주목할 사항이 있다.  첫째, 돌그릇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부정하게 된 질그릇은 부숴야 한다고 요구하는 레 11:32-35의 부정한 것들에 관한 법규들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만드는 데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의식상 부정한 것과 접촉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경제적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제사장 집안에 있거나 적어도 정결에 관심이 있는 가정에 있음을 암시한다.  둘째, 이 매우 큰 그릇은 하나의 돌로 조각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가나에서 멀지 않은 갈릴리 하류 지역에서 채석장과 석조 그릇을 생산하는 작업장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대형 그릇들을 생산하는 기술에는 로마인들이 석조 기둥들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도공용 (陶工用) 녹로 (轆轤) 혹 선반이 (旋盤 turning lathes) 필요했다. 

 

따라서 이 대형 석조 그릇들은 로마가 유대와 사마리아를 점령한 상당히 구체적인 기간을 나타낸다. 따라서 요한이 그들에 대해 언급한 것은 특정하고 제한된 역사적 시기를 가리킨다. 
셋째, 고가의 물건이라 과시적으로 진열된 사치품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 특히 예루살렘의 불 살라진 집의 (로마의 서기 70년 포위 공격으로 파괴된 1세기 주거) 고고학적 증거는 큰 돌 항아리가 (히브리어로 칼랄 Qalal) 그 집의 작업 구역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전시용이라기 보다는 실용적인 의미가 있었다. 

 


또 다른 사항은, 역대상 24:7-18에는 24개의 '제사장 반차'가 (히, mishmar) 제시되었는데, 각 '반차'는 ((班次 반열) 각각 2주 동안 의무를 수행했다. 이것이 제1성전 시대의 역사적 현실인지, 아니면 역대기 기자가 성전을 파괴하고 유배된 후 이상적으로 재건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구심이 있지만, 제2성전 시대에는 그 패턴이 중요하게 되었다. 사실상 그 패턴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탄생하신 대략적인 날짜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제사장이 예루살렘에 산다면 그러한 스케쥴 일정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실제로 그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거주하지 않았으므로 이 일정을 통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언제 언제 이동할지 알 수 있었다. 회당에서 이 반차들을 나열하고 각 반차와 관련된 도시의 이름들을 포함하고 추가 이름 열을 포함하는 여러 개의 비문이 해당 기간(및 이후)의 회당들에서 발견되었다. 여기 각 반차들과 함께 나열된 여러 도시들에 살았던 사람들은 실제로 제사장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행하는 제사장 가족들이었다고 보캄은 추정한다. 

 


이 목록이 왜 그렇게 중요했던가? 첫째, 예수님 당시의 실제 역사적 관습을 드러내는 좋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특히 70AD 이후에 설립된 도시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목록들은 모두 제사장 가족들이 전국에 정착했던 하스모니아 왕조 시대부터 시작된다. 두 번째로, 이 목록들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며, 그 지역에 정착한 제사장 가족들이 성전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요한이 예루살렘에 초점을 맞춘 것과 요한복음이 야고보의 형제인 요한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기반을 둔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리차드의 주장을 고려할 때 중요하다. 반면 마가복음은 갈릴리를 강조하고, 순례자 축제들을 강조하는 사실과 대조된다. 셋째, 가나는 제사장 가족이 살았던 24개 성읍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돌항아리의 역할과 함께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가나의 혼인잔치가 이 제사장 가족의 집에서 거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물론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사실은 정결 의식에 대한 그 가족의 관심 때문에 그런 항아리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러면 요한은 왜 여섯 항아리들이 있었다고 기록하는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번트 하우스에 (그 유적이 발굴된 불 태워진 집 Burnt House) 여러 돌 항아리들이 있던 것처럼, 그 제사장 집안에도 그렇게 많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애굽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 아래서 3만개가 발굴되었다는 돌 항아리들에 대한 다음 글은 참조할만 하다. 

 https://ancientpatriarchs.wordpress.com/2016/02/16/the-secret-of-mysterious-megalith-construction-revealed/

 

한글 번역은 창조 과학회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85&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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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삭사이와만 요새의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 조금의 틈도 없는 돌벽은 부드러운 상태의 암석으로 축조되었다!(The Secret of Mysterious Megalith Stone Construction Revealed! Sakkara Vases, Rock Footprints, Megalit

creat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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