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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 1973년 여의도 집회

중일사랑 2022. 12. 10. 23:13

그 당시 목포에 살았는데, 그해 수요일 저녁에 개척교회에 출석했더니 그곳 처녀들이 처음 참석한 나에게, 여의도에서 큰 집회가 열리는데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그 날 저녁에 그 목사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설교를 했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이 뜨거워졌고 은혜를 받았었다. 

 

 

빌리 그래함

한국 기독공보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대회 서울대회'는 1973년 5월 30일 오후 7시 30분에 '여의도 5.16민족광장'에서 열렸다. 한국기독공보는 대회에 앞서 1972년 9월부터 관련된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쏟아 냈다.

 

1973년 3월 3일자 '빌리 그래함 대 집회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번 집회에 대해 대한 기대를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의 聯合(연합)의 힘 誇示(과시)할 계기되라'는 부제에서 말해 주듯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대 사회적인 이미지를 확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빌리 그레함 박사의 대부흥회를 계기로 우리 한국교회는 연합해서 복음 선교의 전선을 전국적으로 펴기를 바란다. 전국민을 복음화하는 운동을 전개하려면 전국교회가 초교파적으로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교회가 초교파적으로 단결하여 복음선교의 전선을 펼 때 우리 교회는 힘 있게 선교할 수 있다. 이 기회에 한국의 만여 교회와 4백여 만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어서 전국민의 복음화운동에 선교의 봉화를 높이 들도록 해야겠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과 선교활동을 통하여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삶의 길과 희망을 보여주어야 겠다. 우리 국민의 사는 길은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전국민으로 하여금 깨닫도록 해야겠다."(1973년 3월 3일자 2면)

1973년 5월 30일 열린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집회 첫 날 분위기를 한국기독공보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12만평의 여의도 5·16민족광장에 51만 6천여 명이 운집, 대회장 한경직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내외 정치 경제 학계 연예 등 각계 인사와 국내외 보도진 1백여 명의 대회취재에 열을 띈 첫 날 대회는 6천여 성가대의 우렁찬 '오직 소망은 그리스도'가 울려퍼진 자리에 빌리 그래함은 자신이 50여 국을 순방 집회했으나 한국의 집회는 2천년 기독교 사상 가장 큰 역사적인 전도의 첫날이며 한국이야말로 어느 곳에서나 영적인 면에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역설하고, 예수 믿기로 결심한 자는 일어서라고 하자 2만명이 일어나 대회 첫날의 감동 깊은 서장을 장식했다."(1973년 6월 2일 1면)

한국기독공보는 전도집회를 마무리하고 발행한 6월 9일자 신문 사설(제목:교회의 團合(단합)과 새 使命(사명). 부제:민족 중흥의 긍지와 용기 가져야)을 통해 "첫날 저녁 집회에는 51만, 둘째날 저녁에는 46만, 셋째날 저녁에는 48만, 네째날 저녁에는 65만, 마지막날 주일 오후에는 110만의 인파가 모여서 여의도의 광장을 덮고 넘쳤다"고 보도하며 다음과 같이 집회를 정리했다.

"우리 교회는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를 통하여 얻은 긍지와 용기가 전도의 정열을 살려서 전민족복음화 운동에 총집결하기를 바란다. 성령강림절을 앞둔 '빌리그레함' 전도대회는 한국의 성령강림절의 역사를 이룰 뿐 아니라 세계의 성령강림절의 역사를 이룰 줄로 믿는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 있어서 실현하여 오늘의 구원을 역사의 현실 가운데 이루기를 바란다."(1973년 6월 9일자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