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객원논설위원
입력 2012-07-01 17:39 | 수정 2012-07-01 21:43
“기독교 유일신 사상”을 부정한 목사 문익환
그러기에 김일성을 神으로 떠받드는 북한체제를 긍정했고
‘인간 백정’ 김일성을 형제처럼 껴안을 수 있었다.
김일성의 소위 “민족통일의 염원”은 당연히 한반도 공산화 통일, 즉 赤化(적화)통일이다.
한상렬, 이재정, 문익환 등 목사 또는 신부 타이틀을 가진 이들의 親北(친북) 행각은 난해한 일이다. 神(신)을 인정하는 입장에선 유물론 공산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맑스는 물론 레닌, 스탈린, 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라며 교회를 철저히 탄압해왔다.
그런 면에서 친북(親北)목사·신부 등은 기독교의 겉옷을 걸치고 있을 뿐 그들이 믿는 것은 신(神)이 아닌 증오의 이념이다. 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소개한다. 아래는 89년 밀입북,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온 문익환 목사가 ‘통일과 민족교회의 신학’이라는 책에 쓴 글이다.
文목사는 이 글에서 “나는 기독교의 代贖(대속)의 교리를 잘 믿지 않는다”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은 엄청난 흑백논리를 조장해 피로 얼룩진 죄악의 역사를 엮어왔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교리를 부정한 뒤 이른바 ‘민중’이 신앙의 대상이 되버린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민중’에는 고난 받는 북한 동포는 배제돼 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기도할 때면 ‘고난 받는 당신의 아들·딸들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그런 기도였습니다. 나는 기독교의 대속의 교리 같은 것은 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교회가 민족문제에 얼마나 기여를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저는 상당히 회의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唯一神(유일신) 신앙이며 이 유일신 신앙은 참으로 엄청난 흑백논리를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배타적인 독단에 빠져버림으로써, 기독교는 세계사에 있어서 무서운 죄악을 저질러 온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이 이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익환은 목사의 신분을 가졌지만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을 부정했다. 그러기에 김일성을 신(神)으로 떠받드는 북한 체제를 긍정했고 ‘인간 백정’ 김일성을 형제처럼 껴안을 수 있었다. 그에게 사탄, 어둠, 惡(악)을 부정하는 것은 배타적 독단, 엄청난 흑백 논리로 비춰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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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로회 교단은 보통 '기장'이라 줄여서 부르는데, 북한을 무단 방북해서 김일성을 만났던 문익환이란 사람도 기장 목사였다.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구인 김일성을 만나고 껴안고 볼을 부비며 야단 법석을 떠는가? 방금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 사람은 성경의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과 부활 등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유일신 신앙도 아니고, 그러니까 반증하면, 문익환은 그냥 잡신들, 다신론 신앙론자였는지 모른다. 도올이라 (돌) 자기를 부르는 김용옥이란 사람도 잠깐 한신대를 다녔다고 자기도 신학을 안다고 큰 소리 치고 신학 강의도 하고 그러는데, 김용옥의 부모는 참 성도들이고 그의 형님도 그렇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김용옥의 사상은 다신론 혹 범신론적이거나 아니면 무신론적인지 모른다. 그 시커먼 속을 누가 알겠는가? 예수님 말고는 말이다.
언젠가 기장측 목사들이 광화문에서 가슴에 윤석열 퇴진이란 구호가 적힌 헝겊을 붙이고, 행진을 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도 모두 문익환이나 김용옥 류의 사람들로 추정된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믿지 아니하고 그냥 목사라고 하면서 양 떼를 오도하는 것이다. 기장 교단의 모든 목사가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장 교단의 총회 신학교인 한신대는 그 신학이 가히 세계 최정상 신신학을 달릴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교들은 오늘날 모두 좌경화 신신학화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신학 연구를 가르치고 있다. 가령, 하바드, 프린스턴, 예일,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파리 등등 신학교들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신학교가 마귀의 소굴로 변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런 신학교들은 성경도 순전히 인간이 만들어낸 문헌들로 보고, 역사 비평법이란 방법론의 칼로 성경 본문을 난도질 해댄다. 문서설, 양식 비평, 전승사 비평, 편집 비평 등등이 역사 비평법의 종류들인데, 성경 본문은 원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구전 口傳), 수 세기가 흐른 후에 비로소 문헌에 기록되어 고착되었다고 본다. 그 구전의 시대에 본문의 내용이 전해질 때는 (수 세기 후에 기록되어 하나의 맥락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지만), 여러 조각들로 전달이 되었을 것이라 한다. 그 구전 시대에 작은 조각들로 떠 돌던 것들이 나중 합쳐져서 문헌에 기록되었다 한다. 구전 시대에 전해진 그 조각들을 찾아내는 것이 양식 비평이란 것이고, 그 조각들이 어떻게 하나의 큰 복합체 이야기로 결합되었는지를 (가령, 족장사, 애굽 체류, 시내산 사건들, 광야 여정, 가나안 입성 전승 등등) 연구하는 것이 전승사 비평이란 것이다.
예컨대, 폰 라트란 구약 비평가가 1938년에 "육경의 양식사 문제"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구전 단계에서 작은 문학 단위들이 어떻게 거대한 전승들로 발전 결합되었는지에 대해 자기 주장을 발표했었다. 양식 비평으로 조각 조각들로 분해된 작은 문학 단위들이 어떻게 큰 복합체 전승으로 발전했는가? 에 대해 폰 라트는 육경을 현재적인 모습으로 편집한 신학자(들)는 자신이 모은 그 전승들이나 그 전승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나 자기 당대에서 멀리 떨어진 과거였기에 정확하게 어떤 순서로, 어떤 인과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었는지 파악할 길이 없었다. 편집자는 어떤 근거로 오늘날 우리가 가진 역사 순서 곧 출애굽, 시내산, 광야 여정, 가나안 정착 등의 순서로 배열했을까? 폰 라트에 의하면, 이런 전승들은 여러 지방 성소들에서 신앙 고백으로 낭송되던 신앙 고백문들이었다. 신앙 고백문들은 신 26:5b-10, 6:21-25, 수 24:2b-13 등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신앙 고백문들에서 중요한 사실은 시내산 전승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전승은 추방이후에야 첨가되었다 (느 9장). 가나안 정착 전승은 길갈의 칠칠절 절기에 낭송되었다면, 시내산 전승은 세겜에서의 언약 갱신 의식에서 낭송되었다. 이렇게 원래 지방 성소들에서 낭송되던 신앙 고백문을 나중 야웨 기자가 가나안 정착 전승과 시내산 전승을 합하고, 족장사, 원시사 등과 합하여 역사의 뼈대를 구성했다 한다. 이것이 폰 라트가 말하는 여러 작은 문학 단위들이 구전 시대에 전승들로 결합된 방식이고, 이것이 그가 말하는 오경 혹 육경의 전승사이다.
문서설이란 것은 문헌 비평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오경이 원래 J, E, D, P라는 전혀 별개 독자 문헌들로 있다가, 그것들이 추방 이후에 하나로 편집되어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세 오경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세가 기록한 오경이 아니고, 모세와 전혀 상관이 없이, 솔로몬 시대에 J문헌이 (야웨 기자 문헌) 유다에서 기록되었고, E는 (엘로힘 기자 문헌) 그보다 100년 이후 북왕국에서 산출되었으며, 주전 7세기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 때 신명기가 (D) 저술되었으며, 추방 이후에 제사장 문서라 (P) 불리는 제사 관련 문헌이 (레위기, 민수기 등에 흩어져 있다) 산출되었고, 이것들이 추방 이후에 하나로 편집되었다고 한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순전히 인간적 방식으로 난도질하여 콩가루로 공중 분해 시켜 버리는 성경 분석법이 역사 비평법이다. 이런 비평가들의 성경 연구라는 논문이나 책들을 대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골치가 아파온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왜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아니하는 자들이 신학은 연구해서 신학 교수로 가르치고 신학서적도 발간하고 성경 주석도 출간하는 것인가? 서구에서 성경은 동양에서 논어 맹자에 해당되는 고전 중의 고전에 속한다. 그러니까 신앙이야 있건 없건 고전을 연구해서 고전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신학자들이 서구 비평 신학교들에서는 상당히 많은 것이다.
이런 순전히 세속 문헌을 대하는 접근법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본문에 적용시킬 때,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모두 전설, 민담, 신화, 동화 등으로 격하 기각 당하고 남는 것은 도덕적 교훈들이다. 이러한 신신학의 궁극적 결론은, 신신학의 성경 접근법 혹은 비평법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론을 구세주인 양 절대 의지한 데서 필연적이로 기인될 수 밖에 없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결과 인간의 이성이 경험 세계에 대해서만 확실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것은 이 경험세계를 넘어서는 물자체의 영역은 단지 인간의 의지와 행위를 위해 요구되는 영역일 뿐 이성에 의해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초자연적 하나님과 그의 기적들을 다루어야 하는 신학이 학문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리츨이란 신신학자는 역사 비평법의 3대 원리를 제시하였는데, 1) 방법론적 회의, 2) 유추의 원리, 3) 상관 관계와 인과의 원리 등이다. 첫째 원리는 역사가는 모든 문헌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고, 그의 연구 결과는 다만 개연성을 제시하는 것이지 결코 확실한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성격에 관해서는 우리 자신들의 현재 경험에서 얻은 바에 유추하여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홍해 기적이 없다면 과거에도 있었을 리 만무하다는 식이다. 셋째는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자연 인과율의 지배를 받고 상호 관계 하에서만 일어난다. 즉, 기적들이나 초자연적인 일들은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는 한 마디로 계몽 철학으로 성경을 연구하라는 것인데, 이런 역사 비평법은 전제가 아예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철학으로 지배되므로, 영적 세계, 초자연적인 역사를 말하는 성경의 성격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즉 성경연구 방법론으로서 전연 적절하지 않다.
북한 공산 집단은 무신론을 신봉하고, 기독교나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절대 악으로 간주하고 핍박 근절시키고자 한다. 무신론은 기독교의 창조론을 배격하고 진화론과 손을 잡는다. 무신론과 진화론을 자기 무기로 삼는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물질 세계 곧 현상 세계만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나 사후 세계, 천국 지옥, 최후 심판 등도 부정한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전연 알지 못하고, 열등하거나 추하거나 흉한 난장이, 곱추 등 신체 장애자는 모조건 사회주의 국가에 먹칠을 한다는 이유로 모아서 눈에 뜨이지 않는 수용소로 집결 감금시킨다. 그리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겨 자기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순간 존엄 앞에서 '존다'고 '건성 박수를 친다'고 그냥 총살시켜 죽여 버린다.
공산 집단은 이런 사상적 근거들을 가졌기에, 거짓말 하거나 살인, 선전 선동 기만술, 위장, 조작 등을 식은 죽 먹듯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갖지 아니한다. 종북 좌파들의 사고 세계도 공산주의자의 그것과 유사하여 기만, 조작, 거짓, 위장, 선전 선동에 능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갖지 아니한다. 그래서 부정 선거를 대대적으로 감행할 수 있고, 거짓말이나 조작을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사건들도 자기네 입맛에 맞도록 모두 바꾸어 버리거나 왜곡시키기에 능수 능란하다. 북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관해 선전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사실 거짓 조작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나라는 김영삼이 5.18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김일성 지령하에 남조선 적화통일 운동에 놀아났던 소위 자칭 민주화 투사들에게 대거 면죄부를 주면서 (자유 민주 대한민국 체제 전복 운동가들에게 면죄부를 주다) 그늘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행동가들이 대거 어느 날 민주화 투사로 변모하여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고 무너 뜨리려는 공산주의 연방제 통일론을 주창하며 백성의 마음을 도적질하고 있다. 이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처했는지는, 이런 사악한 김일성 추종자들이 대한민국의 주요 조직을 전부 장악하였다는 사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김일성의 남조선 적화 혁명 사업에 참여하였다고, 솔직하게 죄상을 고백하고 우리가 위하여 투쟁한 민주 사회는 북한 공산 독재 사회가 아니라, 참된 자유 민주주의 체제였다고 반성하고 전향문을 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주사파) 소속 연세대 사업국장 출신 이동호, 서울대 출신 운동권 지도자 김문수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김일성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치부를 숨기고 싶어 자기들은 민주화 투사라 한다. 가령, 임종석 이인영 같은 류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가?
왜 이런 좌파 운동가들이 김구를 내세우고, 1919년 상해 임시 정부 수립 해를 건국의 해라고 나팔을 불어대는가? 왜 이승만은 친일파 매국노로 몰아대며 찢어 죽일 놈이라고 욕을 하는가? 그것은 임시 정부 때 공산주의자들도 참여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김구 같은 자는 어리석게도 북한에 넘어가 김일성과 남북 합 자기들이 오늘날 추구하는 공산주의 남북 연방제 통일의 한 모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태영호 의원의 말을 들어 보자:
태 최고위원은 전날 공개된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KBS '역사저널 그날'이란 프로그램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김구 선생은 마지막까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암살됐단 식으로 역사를 다루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라며 "북한의 대남 전략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땐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다. 김일성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 공산 정권을 세우기 위해 김구 선생을 이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구는 좋게 말해 순진한 사람이었고, 좀 심하게 말해, 공산주의자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한 바보 천치였다. 오늘날 소위 좌파라는 사람들은 김구를 자기들의 모델로 즐겨 내세운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 북한과 손잡고 연방제 통일을 해 보자고 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이런 사람들을 지지하는 기독인들도 있는데, 그런 기독인들도 어쩌면 기장 교단 목사들처럼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자들일 수 있다. 아니면, 공산주의 연방제 통일이 결국 남조선 적화 통일이라는 목표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방금 인용했던 태영호 의원의 주장을 민주당이나 국힘당에서 문제된다고 입을 다물도록 조처하기도 하였다. 국힘당이란 것이 이제는 맛이 사라진 소금, 이제 땅에 버려 짓밟힐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힘당 대변인은 언젠가 "김구 선생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으려 생을 마칠 때까지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고 김구 선생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당의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김구 선생이 남북을 하나로 합치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는가? 그러나 공산주의 집단의 기만 조작, 위선 거짓 탈을 보지 못하고 김일성과 무슨 남북협상을 한다고 동분서주하는가? 김일성이나 그 집단의 거짓 기만 위선 조작 살인 술수 궤계를 바로 보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가 바보들이다. 왜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까지 그렇게 바보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에게 지배와 조종을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고려대 대만대 동경대 하바드 대 출신인 김용옥이란 사람이나,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Minnesota) 주립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신은미란 사람의 행태를 보면 그 점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지성이라 하겠지만, 어떻게 저 야만적이고 반 인륜적인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고 오히려 이상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악령이 사상을 그 점에서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에 가능하게 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겠는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요약하자면, 이 나라는 공산주의 남북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암약과 활약으로 정말로 큰 위기에 처하였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기에 기만 술수 조작 거짓 선동 변장에 능수능란하기에 사전 선거 조작과 같은 반 국가적 죄악도 눈 깜짝 하지 않고 저지를 수 있다. 하나님도 심판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권력을 쟁취해서 자기들의 공산주의 연방제 통일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이기에 이들의 행태가 무서운 것이고, 이런 사악한 자들이 이제는 이 나라 각처 각지를 다 장악한 상태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지금 이 나라는 정체성의 문제란 진창 속에 왕창 빠져들고 있다. 건국일이 상해 임시정부 수립해 1919년이다 (3월 1일 혹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 등), 아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정부수립일이 건국일이다. 임시 정부 수립일이나 3.1운동일을 왜 일부에서 건국절로 주장하는가? 공산주의자들까지 포함된 남북 합작이란 사실에 큰 의의를 찾는 자들은 실제로 나라도 없었던 일제 시절에 건국되었다고 허망한 소리를 주창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을 제한 자유 민주제 건국은 한사코 반대하고 오로지 공산주의자들까지 포함시켜 남북 합작 연방제 공산주의 체제로 가자는 음흉한 생각이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주의 실체를 바로 파악하고 공산주의의 기만성과 사악성 때문에 그 사상을 배격하고 자유 민주제를 수립한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의 자유 대한민국 건국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 이승만의 그런 행동 이면에는 그의 기독교 신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 입국론이란 자유 대한민국의 설계도로 갖고 있었다.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말년에 이기붕과 자유당 실세들에게 농락당한 실책은 있지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국부로 손색이 없고, 우리가 지금 특히 전국 교회가 잡아야 할 국가의 방향성은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이다. 불신자들은 싫어하겠지만, 이것이 우리 교회가 주창해야할 이 나라의 방향성이고, 공산주의는 결코 함께 손잡고 나갈 대상이 아니란 점을 교회 지도자들은 분명하게 선포해야 한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우리는 중립이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이 대한민국을 넘겨주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우리는 분명하게 교회가 합심하여 외쳐야 한다. 이 나라의 장래는 이 나라의 정체성은 자유 민주주의라고. 교회 지도자들은 지금 분명하게 이 목소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은 이리 저리 쏠리며 방향 감각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오, 주님이여, 카눈이란 태풍의 진로도 이 나라를 비켜 가게 하옵시고,
이 나라의 장래도 사악한 자들의 계획과 바람에서 비켜 자유 민주 대한민국 통일로 가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새로운 영적 지도자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시금 성령님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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