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칼빈주의

중일사랑 2015. 6. 4. 21:25

우리는 칼빈주의 5대 교리가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TULIP이라 영어 약칭으로 불리는데, T는 Total Depravity (전적 타락), U는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L은 Limited Atonement (제한 속죄), I는 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혜), P는 Preservation of the Saints (성도의 보존) 등이다.

이를 설명하자면, 인간은 구원에 관한 한 완전 부패해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면에서 완전히 무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구원과 연관해서 완전 무능한 것이지 다른 방면에서는 도덕적으로 생활도 하고, 근면하게 직장 생활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적으로 무지해서 구원에 관하여는 절대로 스스로가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무조건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따라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하실 자를 선택하시는데, 그 선택하시는 조건은 어떤 사람의 장점이나 미모 등이 아니라 무조건, 곧 하나님께서 자기 기쁘신 뜻을 따라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한 속죄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죽으신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양들만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 즉 만인 구원이 아니라 선택된 그 사람들만을 위해서 죽으셨다. 그리고 불가항력 은혜란 그렇게 선택받고 그리스도께서 위해서 죽으신 그 선택된 사람들에게는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는 저항 불가의 은혜가 주어지고, 결국 믿음의 길로 나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믿은 것 같으나 나중 돌이켜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누구나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은 이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보존은 성도의 견인(堅忍)이라고도 (Preseverance of the Saints) 불리지만, 성도의 보존이 더 낫다. 왜냐하면 선택받은 성도는 끝까지 견뎌내고 최종 구원에 도달한다는 것인데, 성도들이 인내하여 그렇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번 택하신 자들은 끝까지 보존하여 그렇게 최종 구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예증)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의 저자이자 교도소 사형수 전도 왕으로 불리는 박효진 장로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이덕진 목사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 중에서 전남 화순군의 “수만리”란 곳에 부흥회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하나님이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간증한 바 있다. 그는 1990년도 강도사 시절에 1천만 원 고료 간증 수기 모집에 응하여 “빛 가운데 사로잡혀”란 제하의 간증문을 제출하여 금상(金賞)을 받았다 한다. 그 간증문이 출간되면서 많은 교회에서 간증 초청이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간증 집회를 하게 된 교회들 중에서 “수만리” 교회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오셔서 집회를 해달라고 했다. 어디입니까? 전남 화순군 화전민 마을 수만리란 곳의 교회입니다. “교인은 전부 5명입니다.” 그 5명도 목사, 사모, 큰 아들 (후에 목사 됨), 딸, 외부인 한 사람 (초등학교 15명 학생의 교사 2인 중 1인인 기독교사) 등이란다. 그 외부 성도는 집이 광주라서 그곳에 와서 잠을 자는 동안만 교회 출석을 한다고 했다. 그런 교회에 가서 집회하기란 무척 난처했는데, 초청하는 목사의 말이 “강사님이 오셔서 전도하고 집회하면 됩니다!” 라고 했다. 전도하기 위해서 집회보다 하루 일찍 오셔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기도를 하기만 하면 그 초청하는 목사의 말이 귀에 울렸다 한다. 그 당시 교도소 집회를 많이 할 때였는데, 교도소 집회 시에는 다른 교회들에서 섬기는 집사들이지만, 연락해서 같이 가서 돕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연락을 하여 집회가자고 해서 그 두 집사들과 함께 그 수만리란 곳에 갔다. 그 돕는 집사들이 300만 원 정도 준비해 오고 차도 산길에 튼튼한 차량을 준비해 왔다. 이렇게 3명의 일행이 수만리에 가보니 산을 넘고 넘은 외진 곳인데, 화전민 마을이 5개가 있었는데 그 중간에 학교가 하나 있었다. 교회에 가보니 정말 아름답게 지어져 있었다. 아니, 교인은 5명뿐이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멋진 교회를 지었던가?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빵빵 하니까 목사님이 나왔는데, 앞을 못 보는 맹인이었다. 깜짝 놀라, 엇! 하니, 왜 놀랬어? 라고 했다. 거기에 더하여 양쪽에 지팡이를 짚었는데, 우편 다리가 위에서부터 없었다. 다리가 펄럭 펄럭했다. 따라 오시오! 따라 들어갔더니, 그 초청 목사는 자기가 이 교회로 오게 된 기가 막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는 원래 광주에서 목회했는데 목사고시 1등을 한 머리가 좋은 분이었다 한다. 얼굴도 잘 생겼다. 교회는 2, 300명 정도 성도로 10년차 담임 목회하고 있는데, 시력이 갑자기 죽더니 맹인(盲人)이 되고 말았다 한다. 그러자 교인들은 우리는 맹인 교회가 아니니 내 보내자! 하고 다른 편에서는 목사님 앞을 못 보는데 지금 나가라면 어떻게 하냐? 우리가 평생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갈려 싸웠다 한다. 그래서 견디기 어려워 사임을 했더니 못된 사람이 퇴직금 지급하면서 얼른 사택 짐 빼라고 했단다. 사모님은 상처로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처량했는데, 택시를 무조건 탔는데 갈 데가 없어서,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줄 테니, 사람들이 없는 빈집이 가장 많은 곳으로 (산골이든 어디든) 데려다 다오! 라고 하니, 멀어도 괜찮으냐? 하더니 택시 기사는 이들을 태우고 바로 그 수만리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학교 옆에 내려놓고 택시는 돌아갔다. 아이들 불러서 여기 어디 빈집 없는가? 찾아서 주인에게 이야기하고 거기서 살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금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기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가련해서 죽어 버리기 위해서 금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목사가 자살할 수는 없고. 물만 마시고 금식을 하다가 몇날 며칠인지도 모르게 의식이 몽롱해진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이 산골짝에도 택한 백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불렀지만 다 가고 없어서 내가 너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 음성을 듣고 벌떡 일어나서 아이들 초청하고 전도를 시작했다. 외부인 그것도 맹인이 한 사람 들어와서 전도해도 어른은 들은 척도 않고 아이들 15명이 모여서 교회를 1년 반 목회를 했다. 사모는 광주에서 왔다 갔다 하고. 이 목사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따졌다고 한다. “차라리 맹인 목회를 할망정 아이들 목회는 못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날이 밝으면 짐을 꾸려서 지역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마루로 나왔는데 마루 끝이 그만 밑으로 꺼져 버렸다. 굵은 녹슨 못이 그의 다리로 차고 들어와서 빠져 나갈려야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고함치고 발버둥 쳐도 나갈 수도 없이 하루 반 만에 사람들에게 발견이 되었다 한다. 다리가 붓기 시작해서 곪기 시작하는데 전주 예수 병원에 갔더니, 그래서 서울대 병원에 긴급후송 했는데, 거기서는 다리를 얼른 잘라야 한다고 해서 잘랐다 한다. 이제 다리가 잘려서 어디 갈수도 없고 수만리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기가 막혀 미국 맹인 선교단체에 자신의 기막힌 사연을 적어서 편지를 보냈더니, 그곳에서 재정을 지원해서 자기 퇴직금 보태서 그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 주었다. 어른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어느 날 테이프를 던져 주었는데 들으니 이덕진 목사의 간증이었다. 이 사람을 초청하면, 무엇인가 되겠다 싶어 초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덕진 목사는 그런 사연을 듣자 더욱 기가 막혔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집회를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2시간여를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주셨다. 온 동네 사람 불러서 경품권 부흥회, 달란트 집회를 하자. 오는 이들에게 무엇인가 상품을 주고 초청하는 것이다. 교사할 때의 경험이 그런 아이디어를 주었다. 같이 도우러 온 집사님에게 38만원 짜리 시계, 퐁퐁, 양말, 별의 별 실용품들을 광주에 가서 사오라고 해서 경품권 초청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우리가 오라면 듣지 않을 테니 동장님에게 종합 선물 세트를 드리고 동장으로 하여금 마을 사람 모으도록 해 보자. 첫째 날은 불고기, 다음은 볶음밥, 셋째는 잡채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마을 스피커로 오늘 교회에서 서울에서 유명한 분들이 와서 집회를 하는데 . . . 하면서 온 동리에 선전을 하게 됐고, 이리해서 첫 날 집회에 모인 인원이 55명이었다. 4시 반부터 할머니 한 사람이 오늘 여기 불고기 주냐? 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할머니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55인분의 불고기를 다 차리는 동안 사람들이 다 왔다. 성경도 없는 분들이라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몰랐는데, 교도소 집회 할 때 자기를 도왔던 분이 생각났다. 서울 지방 검찰청에 근무하다가 회(膾)를 잘못 먹어서 회(膾)의 촌충(寸蟲) 알이 위 벽을 뚫고 뇌에 들어가서 7년간 간질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 치유 받은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나중 목사가 된 구 목사인데, 교도소 집회를 하면, 이 구 목사의 촌충(寸蟲) 간증이 1번 순서이고, 다음은 영화 상영, 다음이 이덕진 목사의 집회 이런 순서였다 한다. 바로 이 촌충 강사를 부른 것이다. 이 구 목사는 유머 감각이 탁월했는데, 오더니 맹인 목사를 보더니 이 목사 귀에다 대고는 “하나님이 용도 변경해서 사용하시는구만!” 이라고 했단다. 이 분야의 한국의 최고 권위자 이현재 박사가 이 사람은 절대 치유 불능이라 판정했는데, 독일에 간 자기 아내의 언니가 눈물로 자기 동생 남편을 놓고 기도했더니 어느 날 다 죽어가는 데, 환상이 나타나고 주사 바늘이 온 몸에 꽂혀 있는데 바늘을 이렇게 온 몸에 꽂으면 어떻합니까? 하니 내가 너를 위하여 주사를 놓지 않느냐?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경험을 한 구 목사의 간증이 첫날 집회였다. 찬송가나 성경이 없으니 찬송가 82장 1절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 . .” 이것만 계속했고, 박수 세게 치면 달란트 뽑는 것 두 장, 더 세게 치면 세 장을 주었다. 집회 후에 경품 다 뽑아 드리고, 그 다음 날에는 동장(洞長)까지 포함해 참석했는데 사방 5리 안에는 개만 집 지키고 사람은 다 모였다. 둘째 날에는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 일대기 영화를 상영했다. 흥미가 대단했고 다시 82장 찬송하고 경품 나눠주고 흩어졌다. 마지막 날인데 이덕진 목사가 집회를 하였다. “나는 원래 교사를 하던 사람이었고 여기 목사님이 초청을 해서 여러분 전도하려고 왔습니다” 하면서 시작을 하는데, 갑자기 한 할머니가 좌우를 보면서 “야!” 하면서 봉투를 부스럭 거리며 내놓는다. 이틀간 얻어먹고 이제 미안해서 빈손으로 못 가니 부조(扶助)를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설교를 다 마치고 이제 82장 “나의 기쁨” 하려고 하니, 한 분이 손을 들고 “목사님!” 하고 불렀다. “우리도 아는 찬양이 있는데 . . .”라고 했다. “교회도 한 번 안 나가신 분들이 무슨 아는 찬양이” 라고 하니, “아니요! 우리 여기 다 주일학교 출신들이요!” 라고 했단다. “예?” 놀라 물었더니, 그 당시 70년 전에 한국명 노나복 선교사가 광주에서 사역하면서 말을 타고 무등산을 두 개 넘어 화순 그 “수(水)만리”까지 와서 전도를 해서 7년간 어린이들 모아 주일학교를 했다고 한다. 어른들은 한 명도 응답이 없고, 아이들만 모였다 한다. “그 때 우리가 어려서 ‘예수 사랑하심은 예수 권세 많도다!’ 라는 찬양을 배웠는데, 요즘도 그 찬양 있나요?” “있고말고요.” 다 같이 “예수 사랑하심은 . . .” 하면서 박수를 치고 찬양을 하기 시작하는 데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모두가 다 성령님의 압도하는 감동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반주 없이 1시간 반 동안 그 찬송만 했는데 그 찬송 다음에 기도를 시작하니 다 쓰러져 버렸다. 죽을 때까지 교회 나오겠다는 결신자가 45명이나 되었다. 70년 전에 미국 선교사 노나복 선교사가 뿌린 씨앗을 이제 하나님은 거두신 것이다. 한 할머니가 말하길, 70년 전에 그 노나복 선교사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들을 모두 느티나무 아래로 모아서 하나님께 절절하게 기도하면서 이 아이들만은 꼭 하나님께서 버리지 말아 주세요! 라고 잘하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를 하나님은 마침내 들어주셨다고 했다. 70년 전에 뿌려진 그 복음의 씨를 기억하신 하나님은 한 목회자의 눈을 멀게 하시고 다리를 절단시켜서라도 끝까지 이 영혼들을 건져내셨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 맹인 목사님에게 축도를 시키니 “하나님, 이 영혼들 때문에 내 눈을 멀게 하시고, 내 한쪽 다리를 꺽으셨죠? 나는 이제 원이 없습니다!” 엉엉! 우는 바람에 축도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 지금까지 그 수만리 교회를 이덕진 목사 교회가 지원하고 있고 그 아들은 목사가 되었다.

이 간증은 “성도의 보존” 역사가 아니겠는가?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예증)

터키에서의 순교자들 (2007년 4월 18일자 Der Spiegel 참조):

2007년 4월 18 일 수요일 13시경 터키 중동부 도시 말라트야에 (Malatya) 있는 기독교 출판사에 5명의 수니파 무슬림 청년들이 성경공부에 관심 있는 양 들어와 독일인 선교사 1명과 현지 기독교인 2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야만적 만행이 자행되었다. 이슬람 기업이 운영하는 학생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19, 20세 전후의 대학 재수생으로 구성된 5명은 수요일 아침 10시경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고 복음을 전하는 질베 (Zirve) 출판사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된 성경 공부 반에 참석하는 양 위장해서 들어가 준비된 권총으로 위협하고 선교사들과 성도들의 손발을 묶고 3시간여 칼로 저들의 몸을 난자질한 후에 3명을 차례로 칼로 목을 베는 끔찍스런 만행을 가한 것이다. 저들은 그 전부터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을 양 행세하면서 선교사들의 성경 공부 반에 와서 얼굴을 익혀 놓았다가 이런 악행을 자행하였는데 핸드폰으로 만행을 녹화하기까지 하였다.

이 사건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부터 동남부로 약 500 Km 떨어진 도시 말라트야의 도심의 한 3층 기독교 출판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오후 1시경 출판사를 방문한 사람이 문이 잠겨 있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의 출동으로 4명의 범행자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달아나기 위해 3층에서 뛰어내린 우두머리 귀나이딘은 (Yunus Emre Günaydın) 혼수상태에 병원으로 우송되었다.

독일출신의 모 국제 선교기관의 틸만 (Tilmann Geske) 선교사는 1961년 생으로 지난 1998년 터키로 들어와 9년여 간 말라트야를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시신은 156군데가 3시간 동안 칼로 난자당한 끔찍한 모습에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다. 그런 악형 중에도 그는 주님을 배반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선교사의 부인 수산나 (Susanne) 선교사는 미살과 (13) 미리암 (8) 그리고 아들 누카스와 (11세) 함께 ATV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저들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자기들이 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9년 반 동안 터키 말라트야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범한 삶을 살려고 이 나라에 왔습니다. 터키인들이 독일에 와서 회교인으로서 사는 것처럼 우리도 터키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믿습니다. 저의 남편은 헛되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죽은 터키인들의 피도 헛되고 헛되게 흘려지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터키와 말라트야를 위하여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나는 남편이 말라트야에 묻혀 지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으로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 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내 옆에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습은 그렇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무덤에 다녀오곤 할 것입니다. 어린 딸들은 꽃을 (아빠의 무덤에) 놓아두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돌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많은 현지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 그들의 신앙은 얼마나 강한 것이었던가? 156군데나 칼로 난자질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배반하는 말 한 마디 하지 아니했었다. 그들 순교사 가족들과 말라트야의 기독교 공동체는 지금까지 수차례의 죽음의 협박 속에서도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보여 왔다.

현지 기독교인으로 터키 현대 선교역사에 첫 순교자가 된 네자티 아이든과 (45세) 우우르 육셀도 (Necati Aydın, 36, and Uğur Yüksel, 32) 순교의 피를 흘렸다. 그들의 시신(屍身)에서도 심한 고문의 흔적과 코뼈가 부러진 것을 볼 때 오랜 시간 고문을 당한 후 참수 되어지는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역력했다. 잔혹한 무슬림 살해자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아서 어떤 고문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슬람을 강요하고 기독교를 부인할 것을 종용하고 그들의 신앙을 조롱하는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네자티 아이든은 (Necati Aydin 35살) 말라트야 교회의 지도자로서 앙카라 쿨툴루쉬 교회에서 지방으로 파송한 사역자였다. 그는 1990년 대학 시절에 예수를 영접하고 이즈밀 메시야 교회에서 꾸준히 성장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터키 동북부 에르주룸 출신으로 11명의 형제 중 막내로서 신앙으로 인한 심한 가정적 사회적 핍박을 이기고 꾸준히 중심을 지킨 모범적인 터키의 영적 지도자중의 하나였다.

그의 형 하템 아이든의 인터뷰 글을 참조할 때 그는 먼저 훌륭한 무슬림이었다. 쿠란을 암기하여 외울 수 있고 이슬람을 잘 알았다. 그러나 대학시절 현재의 아내가 된 셈사(Semse) 자매가 시내버스에서 건네 준 성경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이즈밀의 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군대를 마친 후 그는 완전히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셈사와 결혼하여 한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과 함께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말라트야 공동체를 섬기고 있었다. 그의 개종 소식을 들은 가족은 그에게 여러 면에서 심한 핍박과 회유를 강요했지만 그는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것입니다" 라는 편지를 보냄으로 가족들과 더 멀어졌다. 그는 무슬림 가족 가운데 태어났지만 그가 말한 대로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멋진 죽음을 맞았고 그가 활동했던 이즈밀에서 많은 형제, 자매들의 눈물과 축복 속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우우르 육셀은 1976년 터키의 동부도시 엘라자으의 한 시골 마을의 알레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분명하지만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말한다. 2001년 이즈밑 지방에서 전기공으로 근무할 당시 성경통신 과정으로 성경을 접하면서 조금씩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후 H.의 도움으로 이스탄불에서 보내면서 L. 교회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2004년 말라트야로 자리를 옮기면서 네자티 형제와 함께 말라트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였다. 네자티 형제의 도움으로 그는 깊은 신앙의 세계를 맛보며 매일 매일을 천국에서 사는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2005년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의 주민 등록증 종교 란에 기독교로 바꾸는 일을 시도했으며 그는 언제나 동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전하다 죽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말라트야 공동체가 여러 번의 위협과 협박 가운데 있었지만 이를 떠나지 않고 전기공으로서 출판사의 일을 하면서 충성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장례식은 부모님들에 의해 아무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참석하지 못한 채 자신의 고향 마을 엘라자으에서 이슬람식으로 치루어졌다.

이 사건은 기독교 현대 터키 선교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터키 현대 선교역사에 있어서 선교사들의 순교사건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이러한 순교의 피로 인해 이 땅은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너무나 느렸다. 그러다 1999년 대지진 사건이 있은 후부터 조금씩 가속도가 붙어지면서 선교의 열매들이 맺혀가기 시작했다. 터키 종교청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1997년에서 2004년 사이에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공식적인 절차를 밟고 종교를 바꾼 사람은 338명으로 발표되었다. 2004년 이후로는 실제로 종교 란을 반드시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 통과되었다. 2000년에 1000명 내외의 프로테스탄트의 숫자가 현재는 4000을 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 동안 터키 현지 기독교인들은 돈과 해외 도피용으로 기독교를 택했다는 비난을 받아 오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건전하고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자라났는가를 증명해 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성 밖에 던져지고 죽음 직전에 이른 참극을 직접 체험해 보면서 믿음 안에서 자라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 그리고 동역자로 일했던 디모데처럼 (딤후 3:10-11) 이 터키의 순교자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의 명령을 발하고 있다: “여러분이여 생명을 주를 위해 바칠 각오로 전도하십시오!”

남편을 떠나보낸 두 순교자의 아내들이 보인 그 절제되고 담대한 모습, 저들의 무너져 내려가는 가슴을 붙들어 주시고 더욱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신 성령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조금도 흩트림 없는 언행으로 오히려 위로와 소망으로 이웃을 섬기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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