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안녕하세요.
사실 수업에 관한 질문은 아니지만
교수님의 모습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앙을
뵈면서 개인적인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제 가까웠던 지인 중 큰믿음교회라는 곳으로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실하던 동생이었는데 큰믿음교회의 변승우 목사님을
알게된 후 그 곳만이 진실된 교회라며 푹 빠져 살았고, 신학을 그 곳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생 때문에 저도 큰믿음교회를 몇 번 따라가 본 적이 있었지만
제게는 너무나 어색하고 맞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예언, 방언 등을 강조하고, 입신을 매주 체험케 하려는 듯한 목회자들의 태도에 과연 이게 성경적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결국 가까웠던 지인이었지만
그 교회에 출석을 종용하는 태도 때문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연락이 끊겼지만 교수님이 혹시 큰믿음교회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면
큰믿음교회의 관점이 성경에 부합한다 생각하시는지 궁급합니다.
끝으로 교수님의 뜨겁고 열정적인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답변
예언, 방언 등을 강조하고, 입신을 매주 체험케 하려는 듯한 목회자들의 태도에 과연 이게 성경적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경험하고 들은 바를 말씀해 보지요. 몇몇 중국인 목사님들에게 들은 바로, 그곳에는 오순절파와 장로교파가 완전 대립관계라서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알수 없지만, 장로교 사람들은 오순절파의 방언이나 통성기도 등을 싫어하고 조용하고 엄숙한 예배를 표준으로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래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요. 장로교회는 오순절 교회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오순절 교회는 장로교회 신학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오순절 교회들은 기도가 뜨겁고 방언, 은사, 기적, 전도 등에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장로교는 신학이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칼빈 신학이 표준이라고 보지요.
그렇다면 큰 믿음 교회는 어떠한가? 하면 그 실천면에서는 오순절 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 교회가 타교회를 정죄하고 무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신학적인 면에서 잘못되지 않는 이상, 은사, 방언, 입신 체험 등을 모두 배척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입신체험을 한 경우 하늘나라나 지옥 체험을 하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중구난방이지요. 그리고 변목사의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인가 란 책을 보면, 입신한 자들이 보고 들은 바를 적어 놓았는데, 모두가 하늘나라가 이렇다 저렇다 기술하는데, 사실은 그들이 체험한 바는 영적 세계를 상징적으로 그림만화 동영상으로 본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즉 문자적으로 하늘 천국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의 하는 말이 성경과 다르고 성경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점을 참조해서 그들의 실천과 신학이 성경적인지 따져보아야 하겠지요. 이단 시비가 있으니 그들도 조심을 많이 하는 것 같고, 특별히 신학적으로 비 성경적인 것을 들은 일이 있나요?
그들이 자기들만이 진짜 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이고, 자기들을 절대화 표준화시키지 말고 자기들의 신앙 자세도 여러 다양한 신앙 방식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좋겠지요.
우리는 내 기준으로 상대를 따지기 마련인데, 성경을 기준해서 신학이나 실천을 따져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 중에서 곧 나타나는 신앙 현상들 중에서 성경에 언급이 없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없다고 저런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성경 전체의 사고에 유추해서 신앙 행태를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현재로 큰 믿음 교회의 전반적인 것에 대하여 분석해 본적이 없으므로 그들이 잘못되었다 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그들의 장점이 있다면 그것을 본받으려고 하고 그들이 혹시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하겠지요 감사합니다
좀 보충한다면 이렇습니다. 큰 믿음 교회에서 강조하는 방언, 입신, 예언 등의 현상을 여타 교단들이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변목사의 구원관, 성경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관에서의 문제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행함도 뒷받침되어 자기 의가 있어야 들어간다는 주장입니다. 이 문제에서 변목사는 행위 구원론의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변목사를 위해 변명을 한다면, 야고보서도 변목사처럼 말씀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아마 야고보 사도는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를 알았을 터인데,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지만, 그 교리를 악용해서 그저 나는 믿었으니 (십자가 죄 사함) 내 행위야 어찌하건 간에 천국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즉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는 이제 처음으로 믿는 초신자들 (이방인들) 에게 관련된다면, 야고보는 믿음의 경륜이 있음에도 실제로 행함이 없는 그런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다음에 성경관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오늘날 주어지는 계시는 성경을 초월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변목사는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오늘날의 계시라는 것은 입신을 통해서 받는 것이거나 예언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 추정되는데, 그런 주장은 대단히 위험한 주장입니다. 성경이 모든 신앙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어도 유추를 통해서 모든 신앙 현실 곧 신앙인들의 신앙 생활 행태를 전부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제시하는 바를 근거로 신앙인들의 모든 행태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주관적인 환상 예언, 입신 체험들에서 나오는 사상이나 사고는 모두 성경적 사고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고, 만약 성경적 사고에 어긋난다면 이단적인 사상으로 정죄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유일 계시성을 부인하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받을 수 있는 예언들이나 환상들 이런 것들은 성경적 권위 하에 복속되어야 하고 성경이 유일한 권위입니다. 만약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면서 성경과 나란히 두고자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되고 누구도 바른 신앙은 이런 것이다 라고 길을 제시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교황과 전통을 성경의 권위보다 높게 보는지 모르지만, 개신교회는 성경만이 유일한 최종 권위이고 여타 모든 주관적 경험들은 성경의 권위에 복속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필자는 변승우 목사에 대한 세간의 판단, 곧 계시관이나 구원관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좀 더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