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질문들

중일사랑 2015. 9. 8. 16:14

질문:

토라 란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답변:

토라는 히브리어이고, 의미는 개개 법규나 가르침, 교훈이란 의미이지요. 오경을 유대인들이 "토라"라 불러요. 그리고 선지서는 느비임 (선지자들), 기타 구약 책들은 (성문서) 

"케투빔" (책들)이라 불리지요. 


질문:

출애굽 연대가 궁금합니다.


답변:

출애굽기 연대는 성경 외적으로 연대가 확실한 사건, 곧 앗시리아 산헤립 대왕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한 주전 701년을 기준해서 거슬러 올라가며 잡습니다. 구약 연대기도 그렇게 정합니다. 그 사건이 앗시리아 산헤립 비문에 적혀 전해져 오기 때문입니다. 
왕상 6:1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라고 했지요. 아까 주전 701년부터 계산해서 올라가면, 솔로몬 즉위 4년은 주전 966년 경입니다. 그 때부터 48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전 1446년이 출애굽 연대가 되지요. 그런데 복음주의 학자들 중에서도 애굽학 전문가인 키친 같은 이는 비평가들처럼 출애굽 후기 연대를 선호하지요. 후기 연대설은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에서 라암셋이란 명칭을 중시하고, 
람세스 왕 때 이스라엘의 노역이 있었다고 보고 그 왕 시절이나 그 이후에 출애굽이 일어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한 주장은 구약개론 신학에서 관련 부분을 참조해 주세요
그리고 출애굽기나 오경 전체는 모세의 저작이며, 모세가 모압 광야 시절 말기에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신 34장 마지막 부분에 모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부분은 아마도 여호수아나 아니면 오경이나 기타 구약을 수집하고 현재 구약을 편집한 에스라 일행의 손에 의해 기록되었을 수 있습니다. 에스라 일행은 오경을 새롭게 자기 시대의 상황에 비추어 사소한 수정을 가했을지도 모릅니다. 오경 2.0


질문:

신명기12장10절에 중앙성소법이 나오는데 교수님 강의설명으로는 아직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사무엘 및 여러 왕들이 여러곳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하셨는데 결국은 솔로몬을 통한 예루살렘 성전의 완성으로 중앙성소법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인가요? 그럼 이전에 길갈, 실로에서 드렸던 제사는 어떤 의미인가요? 설명부탁드립니다. (성경상식이 없는 질문같아 죄송하지만 좀 전 강의를 들으면서 궁금함이 일어나던 차라 바로 질문을 해 봅니다)


답변:

맞습니다 신 12장에서 사방에 안식을 주셨을 때 비로소 중앙성소법이 효력을 발생한다고 했지요. 솔로몬 시대에 성전 건축 이후 그러므로 시행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법이 있다고 모두가 지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구약 신학에서 이 중앙성소법의 문제가 아주 중요하지요. 비평가들은 요시아 왕 시대에 성전에서 발견된 그것이 신명기서라고 보는데,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요시아 시대 성소의 중앙집권화 사상을 가졌던 사상가들 (아마 힐기야 제사장이나 그 주변 인물들)이 모세의 이름으로 가짜로 신명기서를 저술해서 성전에 발견되도록 살짝 두었다가 마치 고대 책이 발견된 양 쇼를 했다고 보지요. 이런 주장은 드 베테라는 독일인이 1805년에 작은 논문에서 주장한 것인데 오늘날에는 비평가들은 그대로 믿고 있지요. 이들은 오경에서 신명기서를 D문서라고 하고 주전 7세기 저작이라 하고 제사법이나 이런 것은 제사장 문서라 (P) 해서 추방 후 저작으로 보지요. 이런 식으로 성경을 불신하는 역사비평신학에서는 신 12장의 중앙성소법이 모세 시대의 것이라면 왜 사사시대나 왕정 시대에조차 시행되지 않았겠는가? 라고 하고 요시아 시대 저작설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질문:

성경에 대한 역사 비평법이 무엇입니까?


답변:

역사 비평법은 성경도 여타 문헌처럼 동등한 차원에서 취급해야 한다는 접근법인데, 오늘날 성경 접근법에서 불신앙적 이해를 가속화시키는 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다루었는지 모릅니다. 계몽사상의 여파로 나타난 역사 비평법은 1) 방법론적 회의, 2) 유추의 원리, 3) 인과의 원리 등의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접근하는데, 모든 것은 일단 오류가 있다고 의심하고 들어가며, 현재 일어나기 불가한 것은 과거에도 그러했다고 하고 (기적의 부인)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기에 초자연적 기적은 개입의 여지가 없다고 보지요. 이런 전제 하에서 성경을 보면 남는 것은 오로지 윤리종교이지요.

역사 비평법은 (historical criticism) 역사적-문법적 해석법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잠시 언급하자면, 중세기 1천년간 성경 해석은 풍유적 해석법이 주도했었는데, 종교개혁과 함께 칼빈은 역사적-문법적 해석을 강조하였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님을 그대로 믿고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중시하고 본문의 문법적 요소를 근거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역사 비평법은 (역사적 비평적 해석)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성을 부인하고 성경도 여타 일반 역사 문헌처럼 역사적 오류나 여러 오류가 개입된 인간의 문헌으로 보고 비평적으로 성경 본문을 접근하는 해석법이다. 따라서 성경 본문은 대개 해석자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콩가루처럼 난도질되어 공중분해되기 일쑤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본문의 권위는 무시되고 해석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난도질당하여 본문이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기능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도록 공중분해 되어 버리기 일쑤이다. 


질문:

레26장의 상벌규정이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말씀해주셨는대요..형통하

는 성도는 축복으로 복을받았다는 개념이 물질적 소유의 축복을 말씀하시는 건

지요..항상 구약의 생활과 오늘날의 생활에 말씀의 적용에 혼란이 오는 부분이 

있는대요..소유와 물질의 부분에서 정립이 잘 되지않네요..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

구약시대의 상벌규정이 오늘날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라기보다 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원리란 하나님의 언약 충실한 자들에게 축복이 그렇지 아니한 자들에 처벌과 징계가 임한다는 것이지요. 물질적 축복만 축복이 아니라, 영적인 성장과 부흥이 근본적인 축복이지요. 물질적 축복이나 건강의 축복은 모두 영적인 온전함에 뒤따라오는 축복이라 할 수 있지요. 

질문:

모세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이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다들 믿음이 좋고 하나님을 알고 배운 인물이었는대요..유독 

모세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요.. 아론을 비롯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

는 수많은 12지파의 자손들이 있었는대 모세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는지요?

제 주변에는 참으로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가짐에는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 그리

고 사랑이 있는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믿으면 어느누구보다 신

실함과 사랑이 있을것 같아서 안타까와 꾸준히 전도를 하고 있는대요..쉽지가 

않네요..왠지 모세의 교훈을 통해서 구원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질문드립니


답변:

모세는 아론의 동생이고, 이 둘은 레위 지파 사람들이지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겠지요. 그 외에 달리 우리가 무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사람을 들어 쓰시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기쁘신 뜻에 따른 것입니다. 

질문:

그 중 호세아에 영적간음과 하나임의 영적신부, 그리고 성막건축, 그안 필요한 정금,값진 보물들, 언약서등...(성전건축을 할대가되면 의례적으로 구약시대를 비교하며)전 여기서 정금 값진 보물들에 대해 오늘날 현대 교회들, 교인들이 삶에 어떻게 적용키는 것이 옳은건지 궁금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빚을 얻어 건축을 하고 성도들은 부모께 용돈은 못들여도 십일조와 성전건축비 작정하고...구약과 신약의 시대를 걸쳐 성령의 시대에 하나님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이런 고민을 하는 제가 믿음의 분량이 적은건지, 사탄의 충동에 자극을 받은건지..ㅋㅋ 


답변:

기본적으로 신약은 구약에서 초점을 맞추는 물질 현상세계를 초월하는 영적 방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구속사의 발전에 따라 영화가 spiritualization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컨대, 구약에서 원수는 에돔 모압 등 주변국들이지만 신약에서는 공중 권세 잡은 자 악령의 세력이고, 구약에서 기업은 가나안 땅이지만 신약에서는 세계화되고 영화되어 온 세상이고 (롬 4:13, 엡 6:3) 혹은 영원한 신천신지에서의 기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세계화되고 기타 많은 부분이 그래요 성전도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이제는 신령한 성전 곧 성도 개개인이나 성도들의 모임이 성전입니다. 성도들도 이제는 제사장적 섬김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적 통치권을 갖습니다 (물론 기도와 순종의 삶으로).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교회당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고 성전 건축을 구약의 그것과 동일 차원에서 말하고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영적으로 무엇인가 하려는데 이런 신약적 가르침을 들이대면서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것 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순종함이 적절하리라 봐요. 물론 교회 지도자들이 특히 목사가 이단적인 가르침을 베풀거나 도덕적 심각한 하자가 있을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목사가 조금 부족해도 (신학적으로) 엄연히 교회 지도자로 세움 받았으니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신학해서 교회에서 사사건건 방해하면 곤란합니다. 덕을 세우고 기도 제목으로 교회 문제를 놓고 씨름해야 합니다


질문:

믿음이 연약한자,불신자들은 구약에 대해 가장 궁금 또는 공격하는 것이 근친상간인듯 합니다. 어떻게 답해주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걸까요.
나름 구속사적 관점에서 설명을 해주지만 ..교수님의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답변:

구약에 기록된 근친상간이란 롯과 그 두 딸 사이의 근친상간을 말하곘지요? 
불신자들이 이런 기사를 근거로 성경을 악평한다면, 오히려 역으로 성경은 인간의 죄악을 남김이 없이 미화하지 않고 가감없이 그리고 있다고 그래서 신빙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롯의 딸들은 당시 세상에 온전히 멸망하고 자기들만 생존했다고 오해하여 자기들의 씨를 남기고자 부친에서 술을 먹여 음행을 했다면 그들도 할 말이 있겠지요. 
그리고 다른 근친상간을 염두에 둔 것이 있나요? 다윗의 자녀들인 암논과 다말은 이복누이 동생을 겁탈한 것이기에 비난받아 마땅하지요. 다윗의 악행도 성경은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기술했지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예외없이 죄인이고 그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지요. 


질문:

5강 강의중 창세기 4장에 불경한 자들이 문명을 많이 일으켰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의 받달과 사상, 과학자들 대체적으로 불경한 자들의 후손의 영향라고 할 수 있는지요.?

큰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인대 과학자가 되고싶어합니다. 저의 친척오빠도 고등학교까지는 신앙이 있었지만 철학과를 가면서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이제는 철학과 교수님이 되어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기독교신학에 대하여 말조차

꺼내기를 싫어합니다..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을거라 생각은 하지만요..직업에 대하여 저도 편견이 전혀 없었는대 교수님 강의를 듣고 새삼 다시한 번 직업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평생 그직업으로 인해 신학을 부정하는 과학의 

사상과 동료들과 함께할텐대요.. 아이의 신앙을 굳건히 받침해야 하는 엄마로써 조금은 생각하게되었습니다..유전자 조작과 생명의 탄생까지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일어나고있는대여.. 어떤직업이라도 아이혼자 신앙이 바르게 서면 영향을 

받지않겠지만 아직은 어리기에 생각과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답변:

그렇군요. 막스 베버라는 학자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에서 칼빈주의 신학 사상이 서구 자본주의의 사상적 토대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슬로간을 삶의 모토로 삼는 칼빈주의를 따르는 성도들은 근검절약하면서 허투로 돈을 쓰지 않고 서구 자본주의 경제를 일으켰다는 주장이겠지요. 칼빈주의와 대조적으로 루터파 사상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솔라 그라티아' 오직 은혜로를 강조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기는 받지만, 은혜 이후의 삶에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방탕의 삶에로 줄달음치는 예들이 교회사에서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중세 내내 기독교 사상이 유럽 전체를 지배했기에 종교 개혁 이후 칼빈주의 사상이 퍼진 나라들과 카톨릭 사상이 지배한 나라들, 그리고 루터파 신학이 지배한 나라들이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기독교권인 전 유럽이 분리되었고 베버는 종교 사상적 관점에서 서구 경제발전을 검토한 결과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베버는 직업을 결정하는 면에서도 신앙 사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지적했습니다. 예컨대, 카톨릭에서는 성직자가 소명을 받은 자이고 나머지 평신도는 그저 세상의 천한 직업들에 매인 자들로 성직과 세상 직업들을 구분해서 성직자들만 하나님의 소명받은 자들로 높였지요. 이에 비해 종교개혁자들은 (칼빈이나 루터)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이며 따라서 성직과 같은 부르심이라고 일반화시켰습니다. 특별히 죄악된 직업을 제하면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이런 직업관이 큰 영향을 끼쳤지요. 카톨릭은 일종의 염세주의라고 할까요 세상 직업을 피하였다면 칼빈주의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직업을 가리지 않고 투철하게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하겠지요. 그 결과는 산업 발전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카톨릭 국가와 칼빈주의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영국이나 독일이 개신교 칼빈주의나 루터사상이라면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이런 곳은 카톨릭 나라들이지요. 
저는 종교개혁자들의 직업관이 카톨릭의 사고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너무 또 좌편향적으로 기울었다고 봐요. 우리는 세상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신성시하지 말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우리 복음 전도의 방편으로 수단으로 삼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다고 세상 직업에 무성의하게 일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섬기듯 물론 세상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되 중심은 어디까지나 직업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일 뿐이며 목적은 전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직장에 매여서 예배도 반쪽이고 기도도 못하고 한다면 그런 직업이 밥벌이는 되겠지만, 무슨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날 기독인들은 세상 직업들을 천시할 것은 아니로되 너무 신성시할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되 목적은 주님의 복음 증거라는 의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거듭나는 일입니다. 거듭나서 성령님의 내적 증거를 받는다면 그는 무엇을 하건 자신의 목적과 궁극적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리 내가 목회자로 섬긴다고 해도 성령님과의 교통이 약하다면 그가 섬기는 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재미 과학자 중에서 정재훈 박사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가 최고 과학자고 회사 사장이지만, 새벽기도에서 성령님의 지시를 받고 기도와 말씀으로 섬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혹은 성악을 하는 이들 중에서 서울대 음대 교수로 초빙받은 테너 이용훈님도 삶의 목표가 분명하더군요. 나는 음악인이지만 더 큰 정체성은 크리스천이다. 음악계에서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고 했지요. “‘교회 나가라’ ‘새벽기도 해라’ 이런 게 아니다. 노래하는 삶이 어떤지, 연주자는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다. 이번에 제자를 9명 받았다. 보통은 실기시험 점수를 보고 고른다. 나는 점수를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나는 대학교 때 노래만 배웠다. 근데 나중에 보니 노래가 노래를 늘게 하는 게 아니더라. 삶이 중요하다. 학생들과 삶을 나누고 싶다.” 
여하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봐요. 어머니가 모니카처럼 매달려 자식 위해 기도한다면 어거스틴같은 성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철학이란 것이 참 무서워요. 나도 그런 비슷한 경우를 보았지요. 신앙 좋던 사람이 철학에 빠져서 머리가 돌아 버리더군요. 기도를 논하지 기도를 하지는 않아요. 모든 것은 머리로 계산하지 무릎을 꿇지 않아요. 그러니 철학이란 신앙 잡는 전문분야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철학적 사유와 논리를 모르면 신학은 불가하다 할 수 있지요. 하여간 인간이란 모순 투성이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제대로 천국 갈 수가 있어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거듭나는 일입니다. 거듭나서 성령님의 내적 증거를 받는다면 그는 무엇을 하건 자신의 목표와 궁극적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구절이 저를 사로 잡는 아침입니다. 아멘 아멘


질문:

만민을 위하여 아브람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택하였는데 
아브라함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답변:

만민을 복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하셨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3)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 18:18)

이 두 구절을 근거로 바울 사도는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고 했지요
즉 창세기의 그 말씀은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방인들도 다 복을 받을 것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던 구약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그것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섬기는 참 하나님을 증거함으로 이방인들을 구원해야 했지요. 그것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너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얻게 되리라는 것은 너 아브라함이 그리고 그 후손이 전도해야 할 사명자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선교사 사명. 이것이 이스라엘 선택의 목적이예요. 이스라엘은 이 사명에서 실패했지요. 자기들 자신도 가누지 못했고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오셔서 그를 통해서 만민이 구원을 받는 축복이 임했지요.


질문:

구약개론을 배우면서 성경속의 말씀 한구절 한 구절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이해하고 싶어졌습니다.

1. 14절에 나오는 가인이 만나는자?
--> 처음 사람음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이였는데요~ 14절에서
가인이 언급하고 있는 \"나를 만나는 자\" 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요?

2. 15절에 가인을 죽이는 자?
--> 가인 이후 어떻게 족보가 형성되어 가는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3. 17절에 가인이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 과연 가인의 아내는 어디로부터 왔을지 궁금합니다??


답변:

창 5:4에서 아담은 셋을 낳은 후에 800년 지내며 자녀를 낳았고, 창 4:17에 의하면 가인은 아내와 동침해서 에녹을 낳았어요. 이런 사실들은 비록 창 2-4장에서 아담, 하와, 가인, 아벨만 언급되었다 해도, 아담의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해 줍니다. 성경은 전부 다 기록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담의 다른 자녀들은 성장하고 수적으로 증가해서 피의 복수자가 될 수 있지요. 범죄자는 자신의 죄때문에 늘 누군가 자신을 해하리라는 피해 망상을 양심에서 떨쳐 버릴 수도 없고 인간의 양심에는 피는 피로 복수한다는 무언의 명령이 늘 약동치는 법이니 그런 사실을 가인이 탄식하는 것이겠지요.


질문:

창6장2절 하나님의 아들에서 천사의 타락으로 보셨는데
성경적인 근거로는 어디에서 찿을 수 있는지요, 강의 중에는 한구절만 말씀하셨
던데...약 20여년전 교단 인정 신학을 할 땐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어서요...좀 난해한 부분인것 같아요ㅜㅜ


답변:

창 6:1이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전통적으로 셋의 후손 경건한 자들을 지시한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유대교 전통에서는 구약에서 그 표현이 대개 "천사들"을 지시한다는 점을 근거로 타락한 천사들로 이해했다. 그런 천사 가설을 언급하는 문헌 중에서 우리는 위경에 속하는 1에녹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벧전 3:19이하, 유다서 6-7절을 들 수 있다. 

유다서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타락한 천사들]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동성애)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주님은 부활 후에 지옥에 가셔서 거기 감금된 타락한 천사들에게 부활의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가 직접 지옥에 가셨다는 것보다는 그의 부활 소식이 지옥에도 전파되었다는 사실, 곧 그분의 부활 사건의 우주적 의의를 강조하는 듯 보인다. 이제 인간의 타락으로 야기된 인류에 대한 사단의 지배권은 박탈되었다! 
이렇게 창 6:1이하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로 이해하면, 4절에 언급된 거인들 곧 "네피림"이 종이 다른 천사와 인간의 결합에서 야기된 잡종임이 드러난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들을 경건한 사람들로 이해하면, 이 네피림 거인들의 기원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왜 그 때에 거인들이 지상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잡종 교배로 인한 돌연변이? 
그런데 많은 이들은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는 말씀을 근거로 천사는 결혼을 못한다고 단정하고 따라서 창 6:1-4의 타락한 천사 가설을 배격한다. 하지만, 하늘의 천사들이 결혼을 아니한다는 말은 그들이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성경에 묘사된 천사들의 모습은 육체 관계가 가능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천사들은 부활체 곧 예수께서 부활 후에 입으신 그 신령한 몸으로 육체와 다른 몸을 가진 존재들인데, 부활 후의 예수님의 행적을 본다면 분명 인간처럼 보이셨고 행동하셨다.또한 창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야웨 하나님과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 두 천사의 모습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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