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시사

반기련과 어두운 눈

중일사랑 2016. 1. 12. 08:18

() 기독교 연합이란 (반기련) 단체는 자기들이 보기에 성경의 약점들만 파헤치면서 계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

예컨대,

1) 13:6-11 “여호와(예수) 외에 다른 신을 () 섬기자고 꾀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부모 형제, 처자식 또는 동포(친구)일지라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덮어 숨기지도 말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 여호와의 지엄한 명령입니다라고 선동한다.

*이는 구약시대 신정(神政) 국가에서 가능했던 일인데도 이를 마치 오늘날 그렇게 명령하시는 양 오도하고 있다.

 

2)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聖民=거룩한 백성)이라. 무릇 스스로 (병들어)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14:21). 병들어 죽은 고기 즉, 불량 식품을 예수교인들은 먹지 말고, 이웃에게 먹이거나 팔아도 좋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못돼 먹은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성민(聖民)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교인들입니다.

*이 말씀 역시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명령이다.

 

3) “여호와의 신이 사울(사람)에서 떠나고, 여호와의 악신이 (惡神)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4). 사울은 히브리 왕국의 초대 왕입니다. 처음에 사울은 왕이 되기 싫다고 행구(이삿짐) 뒤에 숨기까지 했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쪽에서 강제로 끌어다가 왕위에 올려놓은 사람입니다. (삼상 10:22). 그런 사울 왕 속에다 여호와는 자신이 부리는 악신(惡神)을 집어넣어 못된 짓(?)하게 하여 그 벌로 비참하게 죽게 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이스라엘 중의 존귀한 자로 세움을 입었으나, 그 은혜를 망각하고 자기중심으로 행동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특히 삼상 15장의 사건에서) 버림을 받았다.

 

여호와는 자신이 부리는 악신(惡神)을 사람에게 집어넣고서 죄를 짓게 하고는 그 죄 값으로 벌을 내린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이집트 왕)의 마음을 강퍅(성질이 깐깐하고 고집이 셈)하게 하셨기 때문에" (10:27) 결국, 이집트 왕 바로는 자기 성품이 아닌 강퍅한 마음 때문에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게 되고, 마침내 이집트 백성 전체가 무차별 도륙되는 재앙을 13번씩이나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은 여호와가 집어넣은 그 강퍅한 마음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그리고 그 죄 값으로 여호와의 징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순종함으로 자신과 애굽 민족 전체에 재앙을 자초하였다.

 

4) “사무엘(여호와의 선지자)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無子)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無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지명)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삼상 15:33). 위의 바이블 내용은 이스라엘과 (사울 왕) 아말렉 (아각 왕)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이야기입니다. 전쟁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을 (아각 왕) 여호와가 칼로 찍어서 쪼개어 죽였다고 하는군요. 위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먼저 아말렉으로 쳐들어가서 발발한 전쟁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특히 청년들이 많이 죽게 됩니다. 청년들이 많이 죽으면, 여인들에게는 아들이 없어지게(무자=無子)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호와는 (사무엘) 여인들이 무자(無子)케 된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데도 이를 망각하고, 그 책임을 아각 왕(사람)에게 씌워 <칼날로 찍어 쪼개어> 죽였다고 합니다.

*아말렉 족속이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에게 행한 패역한 일 때문에 그 후손들이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게 되었다. 25:17-19에서 그 점이 언급되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는 근거와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악인들은 무조건 그를 훼방하고 비방한다.

 

너희(사람들)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1:20). 여호와(예수)를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켜버리게 하겠다고 공갈 협박합니다. 여호와의 입이 직접 쏟아 낸 말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배반이나 거절이란 말이 성립하려면, 이에 앞서서 인간과 여호와() 사이에 어떤 약속이 맺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 그런 약속이 체결된 적이 있었던가요? 아무리 거듭해서 생각을 해봐도, 폭력배들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왜 쳐다봐? 떫어? 죽고 싶어?” 하며 공연히 트집을 걸며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쨌든,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사람을 찍어 쪼개기도 하고, 칼날이 삼키게도 한답니다.

*여기서도 구약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양 근거 없이 비방하고 있다.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이지만, 배반하고 거역할 때 심판이었다. 이는 언약의 상벌규정 사항이었다. 악인들은 성경의 배경도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님을 비방하고 훼방한다.

 

5) [“(예수 가라사대), 풀무 불(지옥)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42). 여호와의 독생자라는 예수가 사람들을 향해서 쏟아 내는 독설이요 악담과 저주입니다. 자기를 믿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에 쳐 넣어 영원히 이를 갈며 신음하게 하겠답니다. “(예수)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4). 예수는 인간 세상에다 전쟁과 불행을 안겨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신이랍니다. 예수 역시 여호와와 조금도 기울지 않는 입이 걸쭉한 XX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나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 당하신 예수님을 믿으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불이 기다린다는 것이 복음의 요지입니다. 지금 회개하고 은혜를 받아들여야 구원이요 축복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인간에게 은혜의 방편을 마련하시고 어떤 선한 행위나 참선이나 고행과 같은 수고 없이 구세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시고 만 가지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집 나간 자식에게 모든 것을 용서해 줄 터이니 돌아와서 순종하라, 그러면 모든 만 가지 축복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말씀을 비방하고 훼방하는 이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6) “또 내(예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兄弟), 자매(姉妹), 부모(父母), 자식(子息)이나, 전토를 (田土)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19:29). 예수를 위하여 부모, 형제, 처자식과 전 재산을 버린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영생 복락을 누리겠지만, 버림을 받아서 불행해진 부모와 처자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의미는 주님을 따르는 일에는 그만한 희생과 대가가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불교에서 승려가 되려면 출가하는 것이 기본인데, 기독교는 그렇게 출가(出家)하라고는 아니 하되, 정신적인 결단은 단단히 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그 우선순위의 (priority) 문제에서 기독인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현세의 잠간의 인간관계를 최우선으로 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7)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평화를 맺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로 삼아 부려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을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너희 신 여호와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 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신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예수교인이 아닌 사람들)들에게서 빼앗아 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여기(근처)에 있는 민족들의 성읍이 아니고, 아주 <먼데 있는 성읍>들에는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 신 여호와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이스라엘 근처)들에서는 숨 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은 너희 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20:10-17). 어떻습니까? 조직 폭력배들의 행패와 예수교의 가르침에 다른 모습이 보입니까? 아니, 폭력배일지라도 저렇게 무지막지한 폭력배가 있어 본 적은 있습니까?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이 직접 다스리며 살아갈 근처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싹 쓸어 전멸시키고, 직접 들어가서 살지 않을 먼 곳에서는 남자들만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모두 차지해도 된답니다. 실제로, 유럽의 예수교인들은 남아메리카의 모든 남자를 도륙시키고 여자들을 모두 차지합니다. 그 결과, 현재의 남미(南美) 사람들이 바로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족 또는 인디오족입니다. 예수교의 역사는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실천해 내려오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도 무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오늘날 기독교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배경은 성전(聖戰) 사고이며, 가나안 7족속에 대한 심판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거룩한 전쟁에 임할 때에 행할 교전 수칙입니다. 원공근린(遠攻近隣) 정책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서 가나안 7족속이 왜 진멸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여 도저히 생존을 허락받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모조리 파멸시키기로 정하셨는데, 그것이 창조주께서 피조물에 대하여 갖는 절대권입니다. 그분은 절대 우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 절대주권의 하나님의 판단을 피조물인 일개 인간이 가타부타 시비를 걸 수가 있다고 봅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 중에서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9:20-21) 참조.

 

8) “바알(타 종교)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왕하 10:27). 예수교 이외의 타 종교의 신전을 헐어내고, 그 자에다 공중변소를 만들었답니다. 예수교인들은 타 종교를 파괴하는 것만으로는 그 증오심이 풀리지 않습니다. 타 종교를 파괴한 다음 그 자리에다 더러운(?) 변소를 만들어 놓아야 속이 시원해집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예수교인들이 타 종교의 신전과 신상은 물론 단군상까지도 때려 부수는 짓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사항도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구속사적 변천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예수교인들이 타 종교를 파괴하느니 라고 비판한다면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비판을 하려면 기본은 알고 비판에 임할 것입니다. 성경의 사상을 전체로 기본적으로 알지 못하고 멋대로 비판하고 비방할 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근본사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시며 통치자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 주권자로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데, 그분을 믿지 않고 섬기지 (예배) 않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그분의 피조물들입니다. , 불신자들은 하나같이 그 모든 문화나 종교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 그분을 대적하는 원수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여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바알 종교 신당을 파괴하고 변소를 만드는 일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악한 우상숭배의 죄를 처벌하는 한 방편이었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즉 구원사적으로 시대가 달라진 지금에는 이 지상에는 한 국가의 형태로 전체 인민이 하나님을 모두 믿고 전체 국민이 하나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구약 신정국의 정체(政體)를 지닌 국가는 현재로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중세 때 유럽이 일종의 신정국으로서 혹은 교황이 혹은 칼빈이나 츠빙글리 등이 신정제 비슷하게 통치한 적은 있었지만, 그들이 구약을 문자적으로 실행하려 했다면 그들이 잘못 구약을 해석한 것입니다. 구약은 오늘날 문자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구원사적인 변천과 함께 오늘날 우리는 구약을 갱신한 신약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사적 변천에 맞추어 갱신된 부분들은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전세계약은 대개 2년인데, 그 기간이 지나면 이전 계약서는 개정되고 개정된 계약서만 효력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이전 계약서에 적힌 사항은 기본적으로 새것과 동일하나 변경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세를 올린다거나 월세를 올린다거나 등의 조항은 갱신된 계약서에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은 구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구약은 사실상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많은 부분들이 그대로 해당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구약의 말씀을 마치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양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단군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파괴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 말씀을 바로 순종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개인의 행동은 자체로 하나님이 판단하시겠지만, 보편적인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하건대, 잘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오늘날 구약시대처럼 타 종교의 우상을 파괴하라거나 무당을 죽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 구약의 말씀은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법이었기에 그 말씀을 그대로종해야 했지만, 오늘날은 구약이 기독교인들에게 문자적으로 해당되지 않습니다.

 

9) “너희는 (예수쟁이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와 불법(不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 (고후 6:14). 여기에서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혼인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인들은 타 종교 내지 비 예수교인들과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교는 의()와 빛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불법(不法) 또는 어둠인데, “어찌 예수교인이 타()와 혼인을 할 수 있겠느냐?”고 호통입니다. 어쨌든, 예수교가 타()와 공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불신자와 결혼을 금하느냐? 자신의 신앙을 팔아먹을 염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를 전도해서 변화시키면 되리라고 하겠지만, 그럴 확률보다는 불신자의 불신앙에 끌려갈 확률이 커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 가치이고 영원한 가치이기에 현세적 인간관계를 영원한 절대 가치에 맞추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10)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 유다 및 에돔 등 3국 연합군이) (이웃 나라)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우물)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물매 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열왕기 하 3:25). 여호와(예수)의 군대는 노략질 전쟁이 그 임무입니다. a)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사람을 모조리 죽이고, b) 가축과 금은 패물을 비롯한 모든 재물을 강탈한 다음, c) 성읍(사람이 살만한 터전)을 쳐서 모조리 헐어 버리고, d) 밭에다 돌을 가득하게 던져 넣어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만들고, e) 모든 샘(우물)을 메워 어느 누구도 물을 마실 수 없게 하고, f) 모든 나무를 잘라 내어 완전 초토화(焦土化)시키라는 것이 여호와(예수)의 지엄한 명입니다. g) 심지어, 아이들을 메어쳐 죽이고, 아이 밴 부녀자들의 배를 갈라 죽이도록 교사하기도 합니다. (왕하 8:11-13, 왕상 19:15). 중동 지방은 여호와(예수)의 군대가 저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기후 풍토가 심히 척박한 사막 벌판입니다. 그런데, 저런 곳에다 저러한 만행 질을 해 놓으면 그 지방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어쨌든, 이것이 여호와(예수)가 예수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거룩한 명령(가르침)입니다.

 

*여기서도 아주 악하게 그러나 무식하게 성경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이 구약 말씀은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지 않고 역시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전쟁 관련 법규인데, 이것을 어떻게 기독교에 적용시키고 무식을 드러냅니까? 혹시 중동의 이스라엘이 이 말씀에 따라서 그대로 행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구원사적 시대 변천을 몰라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니 악한 일일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이단시하며 저주하고 훼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아람 나라 장군 하사엘에게 한 말씀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왕하 8:12) 교시(敎示)한 것이 아니라, 예언입니다. 즉 하사엘이 포학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만행을 자행하리라는 예고입니다. 이것이 마치 그렇게 하라고 선지자가 이방인 장군에게 지시했다고 전혀 잘못해석하고 있습니다.

 

11) “너희 가운데 호강하며 하느작거리던 여자, 너무 호강하여 발바닥을 땅에 대본 일도 없는 여자가, 자기를 가슴에 안아주는 남편이나 아들딸을 외면하고, 궁한 나머지 제 다리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태 째 몰래 먹어치울 것이다. 원수가 너희 모든 성을 포위하고 몰아치면 마침내 이런 지경에 이를 것이다” (28:56-57). 여호와를 믿지도 않고 받들지도 않으면, 자식의 고기를 먹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것도, 남편이나 다른 자식들이 빼앗아 먹을 까봐 몰래 숨어서 먹게 하겠다고 합니다. 너무도 호강스럽게 살아서 땅을 밟아 보지도 않던 아리따운 여자가 남편과 다른 자식들 몰래 자식의 고기를 뜯어 먹는 모습은 참으로 멋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간 세상을 잔인하게 이끌고 있는 여호와라는 신은 어떻게 생겨 먹은 종자일까요? 참고로, 여호와의 협박을 한 가지만 더 들어 보기로 할까요?

 

*이 말씀 역시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할 경우에 당할 심판입니다. 사실 고대 근동에서 이런 조약 상벌 규정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지금 터키 지역에 자리잡았던 히타이트 제국이 주변 약소국들과 맺은 종주권 조약에서 만약 봉신국이 종주국을 배반할 경우에는 여기 규정된 이상의 잔혹한 처벌이 규정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더구나 구원자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을 규정하였는데 종주대왕으로서 그 시대상에 비추어 하등 부자연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12) ". . .너희가 내(여호와)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한다면, 나는 크게 노하여 너희(인간)와 맞설 것이며, 너희 죄(여호와를 믿지 않음)를 일곱 배로 징계하리라. 그리하여, 너희는 아들들의 살을 먹고, 딸들의 살을 먹어야 하게 되리라" (26:27~29). 이 얼마나 끔찍한 공갈 협박이요 저주와 악담입니까?

 

*여기서도 역시 구약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런 말씀이 단지 공갈 협박이 아니라, 그대로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시라) 자기 임의대로 역사를 주관하시기에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실 수 있으시고 그대로 실행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언약 백성이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무지하게 하나님을 훼방하는 반기련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창조주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몰라서 비방하고 훼방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런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깨우쳐지고 무엇인가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위가 창조주 하나님을 격분케 하고 화나게 하는 일이라고 느낌이 온다면 즉시 잘못을 회개하세요.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무모하게 대적하는 대신 그분에게 두 손 번쩍 들고 무조건 항복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을 하나님은 과거를 불문하고 받으시고 자기 자녀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자녀는 천자(天子)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특권과 권리가 어떤 것인 줄 압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 곧 그를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1:12). 그분의 자녀가 되면 죄 용서를 받고, 영생을 선물로 얻으며 죽음의 공포와 사단의 세력에서 (귀신의 세력) 해방을 받으며 믿음과 순종, 거룩함으로 산다면 이 지상에서도 형통하고 영원한 세상에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영광을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컨대, 독일인 초인 철학의 니체나 프랑스 계몽사상의 대부 볼테르 등이 얼마나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 말로가 비참했습니까? 정신병이 들어 미쳐 버립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고 싶은 것입니까? 여기에 제시된 비방 글들 중에서 하나도 내가 보기에 합리적이고 적절한 비판은 없어 보입니다. 성경도 알지 못하면서 무식하게 비판이라고 적어 놓은 글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차라리 가만이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터인데 나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다가 어떻게 그분의 심판을 견디겠습니까?

 

13) 바이블에는 <죽이다>라는 단어가 275개 들어 있습니다. 바이블에는 <진멸>하라는 단어가 104 개 들어 있습니다. 바이블에는 <전멸>하라는 단어가 85 개 들어 있습니다. 바이블에는 <노략>하라는 단어가 92 개 들어 있습니다. 바이블에는 <칼날>로 죽여라(진멸하라)50개 들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이블에는 1) 포르노 따위의 음담패설 (淫談悖說), 2) 사람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사기행각 (詐欺行脚), 3)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과 논리와는 거리가 먼 무지막지 (無知莫知) 등이 난무하고 있어서, 인류 역사 속에 예수교(바이블)보다 더 잔인하고, 지저분하고, 악독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바이블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바는 아주 무지하기 그지없는 말들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렇다고 언급할 일이지, 싸잡아서 일반화시켜 비방하는 일은 전혀 비판할 가치조차 없는 말들로 들립니다. 근거를 대고 비방을 해도 해야지요. 재판정에서 이런 식으로 무조건 싸잡아 성질난다고 비방하고 비판한다고 그 말들이 증거라도 인정받을 수 없음과 같지요.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예수교 지도자)에게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여호와의 식물(예배)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찌니, ,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나, 불알 상한 자나, 제사장(예수교 지도자)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예배)를 드리지 못할찌니, 그는 흠이 있은 즉, 나아와 여호와의 식물(예배)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21:16-21). 불구자나 병자는 여호와에게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문둥병 등 피부병을 가진 사람을 더럽다면서 진 밖으로 내치라고 악을 쓰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중동지방의 사막 벌판을 배회하며 노략질로 살아가던 족속들입니다. 노략질은 농업 민족과는 달리 전쟁이 그 생업입니다. 따라서 진()이란 히브리인들의 생활 근거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불구자나 병자를 더럽다면서 진()에서 내치라는 말은 결국 죽어 버리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만 해당되는 사항이고 오늘날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둥병 환자를 격리시킨 것은 전염성 때문이고, 오늘날도 그렇게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규정인지요.

 

15) "엘리사가...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42명을 찢었더라 . . ." (왕하 2:23-24). 엘리사는 대단히 유명한 여호와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대머리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가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 . "라며 놀렸던 모양입니다. 이 때,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하자, 암 콤 2 마리가 나타나서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는군요. 이 바이블 내용을 몇 년 전, 어느 사이트에 올렸더니, <여호와의 선지자에게는 이 정도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답 글을 올린 예수교인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예수교에 세뇌되면 어떤 종류의 정신세계가 형성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바이블(특히 신약)에 좋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 역시 구약 신정국 이스라엘에만 해당되는 사항인데, 오늘날은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왕하 2장의 말씀도 문맥에서 본다면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한 벧엘 소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변자인 선지자를 대적한 죄를 지었는데, 그 소년들이 살았던 벧엘은 당시 우상숭배 중심지로서 싹수가 노래서 참 하나님의 종을 자신들의 그릇된 우상숭배적 사고로 대적하다 심판을 당했습니다.

 

17) 원수를 사랑하라.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등등, 대략 20-30가지쯤 그럴싸한 말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말은 유교, 불교, 도교 및 힌두교 등등, 어디에서도 만나 볼 수 있는 가르침들입니다. 아니, 세상(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 속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덕목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특히 눈 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바이블 속에 들어 있는 20-30가지쯤 되는 그 그럴싸한 말들도 어떤 근거와 배경 설명 없이 단편적으로 또는 즉흥적으로 떠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이블(예수교) 속에서 떠들어지는 그 좋은 말들이라는 것이 사실은 예수교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탈은 쓰고 있어야 되겠고, 그러려면 그럴싸한 내용은 있어야 되겠고, 마침내, 타 종교 또는 타 집단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을 이것저것 훔쳐 오다 보니, 그렇게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것들을 여기저기에다 너덜너덜 붙여 놓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교의 가르침(바이블)입니다. 아직도, 바이블을 사랑하는 우리 아들딸들에게 읽히고 싶은 양서(良書)라고 판단되십니까?

바이블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矛盾)과 궤변(詭辯)을 역어 놓은 허구(虛構)일 뿐입니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저주(詛呪)와 악담(惡談)을 뭉쳐 놓은 무서운 내용의 악서(惡書)입니다. 이에, 나라의 장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지켜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어린이들 주위에서 바이블을 철저히 차단시켜야 되겠다는 운동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1,000만 서명 운동에 모두모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타락하면 이렇게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황폐하고 어두울까? 만약 성경과 이슬람의 쿠란, 혹은 유교의 공자 논어나 맹자, 대학 중요 혹은 불교나 도교의 경전 등을 동등 차원에 두고 싶어 한다면, 오늘날 이슬람이 지배하는 나라들과 기독교가 주장하는 나라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 보세요. 그리고 유교나 불교나 도교 힌두교가 주장하는 나라들과 기독교 나라들의 차이를 설명해 보세요. 그것이 다 성경과 다른 경전들 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어디서 발전했는지 좀 알아보시고, 오늘날 민주주의 발전 국가들이 개신교 나라들이라는 점을 부인하고 싶겠지요. 일본은 그러면 왜 선진국이냐? 하겠지요. 물론 물질적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은총이라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해서 우리가 다 명쾌하게 설명하고 체계화시킬 수 없다할지라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일본은 물질적 과학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도덕적인 면에서 영적인 면에서 저주받은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또 수많은 남녀가 체육관 같은 곳에서 벌거벗고 집단 성행위를 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여자 배우들이 웃통을 드러내고 서 있는 가운데 무슨 기부금을 내고 남자들이 와서 젖가슴을 만지게 하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 상태이겠습니까? 저들에게는 도덕적 가치관도 없으며 선악간 구분하는 판단력도 결여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모두 유불(儒彿)() 기독교 혼합종교에 빠진 일본인들의 정신 상태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적 사상을 따르는 나라가 흥하고 역사를 주장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서구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강했던 이유가 바로 성경적 사상을 따랐다는 것이지요. 반면 세계 물질의 20-30퍼센트를 점하고 일등 대국이었던 청나라가 왜 말년에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서구 열강에 연패하고 압박을 받았습니까? 서세동점은 우연이 아니라, 성경적 사고에 충실한 서구 세력이 허무한 유불선의 사상을 따랐던 동양을 파하고 지배한 것에 불과합니다. 역사를 자세히 보면 기독교가 왜 진리인지 확실한 증거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