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시사

구정을 맞아 기도 제목: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

중일사랑 2016. 2. 7. 22:40


왜 조상 제사는 조상 아닌 '귀신'숭배인가?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 10:20)


서울 구치소 경비교도대 대대장이었던 박효진 장로가 쓴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에서, 기록하길, 자기는 밀양 박가 규정공파 송당 가문의 종손(宗孫)으로 태어났는데, 그 집은 1년에 제사를 열세 번이나 지내야 했었는데, “조상을 잘 섬기고 부모와 나라에 충효(忠孝)하는 것이 인간 최대의 보람이며 사명”이라고 배우면서 자랐다고 했다. 박효진은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고, 기독인들을 적대시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당시 그에게는 제사가 생명보다 더 큰 신앙이었지만, 기독교에서는 “제사는 귀신에게 바치는 우상숭배”라 하여 배척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 그는 아내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제사(祭祀) 문제는 항상 그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고 하였다. “왜 우리 기독교는 제사문제를 그토록 극단적으로 평가할까? 왜 우리나라의 조상 섬기는 제사를 꼭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偶像)이나 이방신에 대한 제사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한국 전통문화로서 조상에 대한 경애와 뿌리 찾기의 한 방편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항상 그의 마음에 맴돌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목사님과 함께 밤늦도록 기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옹기도마라는 마을 앞을 지나치는 순간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엄청난 악취였는데 마치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태우는 듯했다. 그 목사님과 박효진은 그 냄새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 보니, 그들의 눈앞에 환하게 불이 켜진 집이 한 채 나타났고,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환한 전등불 아래 대청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집안사람들은 귀신이 들어오다가 빨랫줄에 걸리지 않도록 빨랫줄을 풀어 마당에 늘어놓고는 제사 상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사 상 위에는 갖가지 제물들이 진설(陳設)되어 있었고, 제사 상 중앙에는 지방(紙榜)과 함께 돌아가신 내외분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다소 긴장하며 다시 한 번 대청(臺廳) 안을 살펴본 순간, 그들의 눈앞에서는 기상천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안(靈眼)을 열어 주셨는지 그곳 제사상에는 이상한 물체들이 와글거리고 있었다.


제사 상 위는 물론이고 제사 상 아래에도, 천장에도 빌로드처럼 진한 흑색의 영체들이 온통 북적대고 있었다.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수백을 헤아리는 엄청난 귀신 떼들이 온 집을 누비고 있었다. 육신을 가진 제한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여서 인지 그들은 마치 공간 이동하듯이 제사상의 위아래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들은 흡사 여름 날 강물 속의 숱한 피라미 떼처럼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종횡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사람들의 몸속에까지 들락거렸다. 수백의 떼거리들이 사람의 입으로 한꺼번에 들어가 그의 온몸을 휘젓고 다니다가 옆구리로 빠져나오질 않나, 다시 제사상 위로 올라가 제물들을 밟아대면서 춤을 추다가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질 않나,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정작 내가 더 놀란 것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오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기에도 섬뜩한 귀신들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북적대고 있을 뿐 정작 제사를 받는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셨다.

“지금 네가 보는 것이 바로 사단의 실체이며 귀신의 실상이다. 인간의 영은 육신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그 날까지는 임의로 이 세상에 들락거릴 수 없다. 영계(靈界)에 들어간 인간의 영이 제사 날이라고 외출하여 제사상 앞에 찾아온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일 뿐!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윗대 조상님들도 죽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 낙원과 음부로 구분되어 들어간다. 제삿날에 후손들이 벌여놓은 이 제사상에는 조상의 영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네 눈에 보이는 저 더러운 귀신들이 대신 몰려들어 무지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외에는 그 어느 제사라도 귀신들의 놀이터요, 인간을 더럽히는 사탄의 유희임을 알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 교수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적이 있지만, 그 후 그는 성균관 유림(儒林)들에 의해 공자에 대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30만부가 팔려나간 1999년부터 시작된 이 소송에서 김경일 교수는 2004년 11월 23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원래 김교수는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였다고 한다. 지인들이 너무 과격하다고 해서 순화시킨 제목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되었다고 한다. 김경일 교수는 이렇게 자기의 주장을 외친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 어른, 기득권자(旣得權者),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토론 부재(不在)를 낳은 가부장(家父長)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君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挾雜)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分裂), 여성 차별(差別)을 부른 남성 우월(優越)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조성 말살(抹殺) 교육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어요.


유교사상의 모든 것이 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해도 (좋은 덕목들도 있다 분명) 김경일의 지적은 틀린 것이 없다. 비단 유교의 공자뿐이겠는가? 불교나 혹은 이슬람이나 이 세상의 모든 종교나 사상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간 창작물에 불과할 뿐 거기에는 인간을 살리는 생명이 없고, 더구나 죽음 이후의 영원 세상을 제대로 안내할 수도 그곳으로 인도할 수도 없다.

공자나 석가모니, 마호메트 등은 위대한 성인(聖人)이라면, 그것은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모두가 다 성도(聖徒)이며 따라서 성인(聖人)이다. 성도들은 구분된 사람들, 하나님께 드려진 성별된 자들이란 의미에서 성인(聖人), 거룩한 자들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그 위대한 성인들의 도덕적 탁월함이나 나름대로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견인(堅忍)불굴(不屈)의 인내와 열성, 용기, 모험 등은 본받아야 하겠지만, 우리가 의지하고 신앙해야 할 대상은 결코 될 수 없다. 그들도 죽어버린 인간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의 제향 (제사의 높임말)

이욱의 “조선 왕실의 제향(祭享) 공간”이란 책은 조선시대 국가 제사 가운데 선왕(先王)과 선후(先后)를 중심으로 하는 왕실 조상에 대한 제향을 종묘 (宗廟), 왕릉 (王陵), 원묘의 (原廟)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종묘는 왕실 제향의 기준이 되는 유교 제향의 특징을 밝히는 부분이다. 반면에 조선시대 왕릉을 비롯한 무덤에서의 묘제(墓祭)는 유교적 예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교 현상으로서, 왕실에서부터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게 여긴 예식이다. 원묘(原廟)는 종묘(宗廟) 외에 또다시 세워진 선왕(先王)의 사당으로, 왕릉과 함께 속제의 (俗祭) 공간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제향”이란 (祭享) 말은 “제사”의 (祭祀) 높임말로 나라에서 올리는 제사를 지시한다.

이 책의 저자 이욱은 조선시대 유교의 국가 제사와 씨름하는 동안 유교가 그에게 던진 화두는 ‘공덕(功德)’이었다고 한다. 유교에서 국가 제사는 신과 인간이 공덕을 매개로 만나는 의식(儀式)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공이 있고 덕이 뛰어난 신(神)을 찾아야 했고 그 공덕에 상응하는 지위를 갖춘 자가 제사를 거행하였다. 이러한 상호 교감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공덕의 논의가 전제되어야 했다. 국왕이 죽으면 공과 덕에 따라 시호를 정하고, 공덕이 있는 신하를 가려 공신(功臣)당에 모시고, 학문과 덕행에 뛰어난 자를 문묘(文廟)에 모시는 제반 과정들 모두가 공덕의 시스템과 연관된 것이었다. 이러한 공덕의 의례화는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윤리를 넘어서 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공덕의 좌표에서 왕실이 이욱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국가 제사에 ‘혈연적 요소’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왕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선 왕실의 제향 공간”이란 책의 목표는 국가 사전의 (祀典 제사지내는 예전禮典) 운영에서 왕실의 제향(祭享)이 가지는 존재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일된다. 이욱은 이 문제를 ‘속제(俗祭)’와 ‘소외’라는 관점에서 풀었다. 이욱에 의하면, 왕실의 제사가 종묘(宗廟)의 정제를 (正祭) 제외하면 대부분 속제의 범주에 속한다. 이욱은 국가에서 왕릉과 다양한 형태의 사당(祠堂)을 배제하지 않고 사전(祀典) 속에 포용하는 정당화의 논리와 그것이 지닌 문화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존재의 정당화는 정제(正祭)인 종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제향 공간을 요청하는 이유를 가리키며, 문화사적 의미란 유교의 토착화 과정 속에 발생하는 문화적 변용을 속제가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국가 제사는 제물에 따라 생축의 제물을 (희생 犧牲) 올리는 제사와 유밀과를 (油蜜菓) 올리는 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 제사를 일반적으로 ‘혈식(血食)’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국가 사전(祀典)이 희생을 도살하여 바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희생을 준비하는 제사를 정제(正祭)라 부른다. 조선시대 사전 중에서 혈식의 모습을 가장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종묘의 제향(祭享)이다. 희생(犧牲)을 맞이하여 살피는 것이 의례의 과정에 포함되어 있고, 도살한 희생을 모혈(毛血)과 간료 (肝膋, 간과 발기름), 날고기, 익힌 고기 등으로 나누어 제상에 올렸다.

한편, 소외(疏外)란 국가의 공무(公務)로부터 점차 제사가 점차로 배제되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 후기(後期) 왕실의 제사 대상과 의례의 가지 수는 전기(前期)에 비해 늘어났고 이에 따라 국가 제사의 전반적인 숫자가 늘어났다. 그 증대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욱은 이 문제를 종묘 제향에 소용되는 시간, 국가 제사와 공무의 갈등, 제관의 차정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공무(公務)로부터 소외되는 제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이는 관품의 위계를 통해 제사의 공덕을 표현하고자 했던 국가 제사의 기본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교 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공의 시스템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고 이욱은 생각한다.


조선시대 국가의 주요 의례는 (儀禮) 길례 (吉禮; 나라 제사 예식 의전), 흉례 (凶禮 왕실의 상喪과 연관된 의전), 가례 (嘉禮; 경사스런 의식으로, 왕의 즉위, 성혼 成婚, 왕세자나 왕세손의 탄생, 책봉, 성혼 등의 예식 의전), 빈례 (賓禮 손님이나 사신 등을 맞는 의전), 군례 (軍禮 열병식이나 왕의 사냥, 활쏘기 등) 등 다섯 범주로 나누어 이를 오례라 (五禮) 했다.


조선시대 국가 제사들 (길례)

길례는 국가의 각종 제사를 (祭祀) 말하는데 크게 큰제사 (大祀), 중간제사 (中祀), 작은 제사로 (小祀) 구분되었다. 큰 제사는 종묘와 (宗廟) 사직 (社稷), 그리고 영령전 (永寧殿; 태조의 4대 조상 및 대가 代 끊어진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봉안한 곳으로, 현재 종묘 옆) 제사를 말한다. 큰 제사 중에서도 최고 제사였던 종묘 제례는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지내는 대향(大享, 四時大享), 섣달 그믐에 지내는 납일제(臘日祭), 영녕전에서 거행하는 춘추(春秋) 제사, 속절(俗節), 삭망에 치르는 향사(享祀) 외에 종묘에 와서 빌거나 고하는 기고(祈告) 의식, 햇과일이나 햇곡식 등 새로운 물건이 나왔을 때 신물을 바치는 천신제(薦新祭), 그리고 왕세자, 왕비, 왕세자빈이 종묘 영녕전에 와서 비는 알묘(謁廟) 의식 등이 있었다.

중간 제사는 (中祀) 바람, 구름, 천둥, 비 (風雲雷雨), 큰 산, 바다, 도랑 (嶽海瀆 악해독), 선농 (先農, 신농씨 神農氏), 선잠 (先蠶, 서릉씨 徐陵氏), 우사 (雩祀 기우제), 文宣王 (성균관과 향교에 모신 공자), 역대 시조묘의 (歷代 始祖廟) 제사를 말한다 (역대 시조 묘는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단군, 고구려 시조, 그리고 기자 조선의 시조 기자 箕子의 묘는 평양에, 신라 박혁거세의 묘는 경주에, 백제 시조 온조의 묘는 충청도 직산에, 고려의 태조 묘는 경기도 마전에 있었다).

작은 제사는 풍사 (風師), 우사 (雨師), 뇌신(雷神), 영성(靈星), 영제(禜祭 오랜 장마 때 비가 그치길 비는 제사), 사한(司寒), 마조(馬祖), 선목(先牧), 마사(馬社), 마보(馬步), 주현문선왕묘(州縣文宣王廟), 칠사(七祀, 사명司命 [인간 수명 관장], 사호司戶 [출입 관장], 사조司竈 [음식 관장], 중류中霤 [거처하는 건물 주관], 공려公厲 [후사가 없는 천자의 귀신으로서 사형과 형벌을 관장하는 태려 대신 제후국 조선은 제후諸侯 곧 왕 가운데 자식이 없이 죽은 사람으로, 죽은 뒤에 살벌殺罰을 맡아 다스리는 궁중의 작은 신神 공려에게 제사], 국문國門 [출입 관장], 국행國行 [도로 통행 관장] 등 일곱 신을 대상으로 예조에서 4월 [사명과 사호], 6월 [중류], 7월 [사조], 10월 [국행과 공려], 겨울에 [국문] 7사당에서 거행한 제사), 노인성(老人星 추분일 아침에 병방丙方에서 나타나고 춘분일 저녁에 정방丁方으로 사라진다는 별), 명산대천(名山大川), 마제(禡祭 천자나 제후가 출정하거나 전수田狩 혹은 강무講武 때에 병사를 위하여 지내는 제사), 포제(酺祭 포신에게 드리는 제사로서, 포신은 사람과 사물에 재앙을 내린다는 신; 포제의 설행은 대체적으로 황충의 재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데서 이루어진 기양의례의 성격을 지녔다), 둑제(纛祭 군중軍中에서 대장 앞에 세우던 군기軍旗인 둑纛에 지낸 제사; 그 군기에는 정벌 대상의 머리를 창에 꿴 그림을 그려놓았다), 여제(厲祭 제사를 받지 못하거나, 억울하게 죽어 사람들에게 화를 입히는 원혼인 여귀厲鬼를 달래기 위하여 지낸 제사), 계성사(啓聖祠 공자孔子 및 그 제자 안자顔子, 자사子思, 증자曾子, 맹자孟子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 관왕묘(關王廟 관우), 선무사(宣武祠 임진왜란 때 참여한 명나라의 장수 형개荊芥, 양호楊鎬 및 전몰 군사들을 모신 곳) 등이 있었는데, 시기에 따라 변동이 있었다. 이 제사의 구분은 고제(古制)를 참용하여 정해진 것으로서, 대체로 인간의 생활과 국가의 안녕에 관여하는 신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밖에 문소전 (文昭殿, 태조와 신의왕후의 혼전 魂殿), 의묘 (懿廟, 의경왕懿敬王의 신주를 모신 곳), 여러 왕릉 (王陵), 진전 (眞殿, 영정과 왕실 족보를 모신 곳), 그리고 대부 (大夫), 사서인의 (士庶人) 시향 (時享) 등이 길례에 (吉禮) 속한다 (진전眞殿은 여러 곳에 있었는데, 목청전은 穆淸殿 개성, 선원전은 璿源殿 영흥, 영숭전은 永崇殿 평양, 경기전은 慶基殿 전주, 집경전은 集慶殿은 경주에 있었다; 이런 곳들은 모두 태조 이성계의 수용을 晬容 봉안한 곳이고, 이밖에 세조의 수용을 봉안한 봉선전은 奉先殿 양주에 [광릉] 있었다). 수용(晬容)이란 임금의 화상을 (畵像 초상화) 지시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번잡한 각종 제사들은 한 마디로 유교를 숭상한 조선 왕실의 허무함과 무지함을 폭로한다. 유교의 근본이 인(仁)과 예(禮) 사상이라고 한다면, 예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옭아매고 특별히 죽은 자나 알지도 못하는 잡신들 혹은 피조물들을 (자연 제 세력들이나 죽은 자들) 신으로 섬기는 일에 정성과 물질, 시간을 쏟도록 만들어 조선인들을 무기력하고 비생산적인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孔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고 해야 옳다. 지금 사정도 유교 제사라는 것이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면 여전하여 나라를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잡신들

고대 근동세계에서도 여러 자연 세력들을 포함하여 잡신들을 섬겼지만, 유교 제사 의식처럼 번잡하고 요란했던 것 같지 않다. 지금 터키 지역을 점유했고, 애굽과 자웅을 겨루며 주전 14세기 이후 존속한 히타이트 제국이 주변 봉신국들과 맺은 종주권 조약에서, 조약을 깨는 경우의 처벌 조항들이 나오고 또한 조약의 증인들로서 각종 신들이 열거되는데, 예컨대, 히타이트 제국의 무르실리스 왕과 아무루 국의 둡피-텟숩 사이에 체결된 조약에서 다음과 같은 잡신들이 조약 증인들로 호출된다:


하늘의 태양신, 아리나의 태양여신, 하늘의 폭풍신, 핫티 땅의 폭풍신, 세리스와 후리스, 나니산과 핫지산. . .의 폭풍신, 할랍의 폭풍신, 집팔란다의 폭풍신, 네릭의 폭풍신, 리흐지나의 폭풍신, 힛사샤파의 폭풍신, 사비나의 폭풍신, 타하야의 폭풍신, 벳티야릭의 폭풍신, 사무하의 폭풍신, 후르마의 폭풍신, 사렛사의 폭풍신, . . . 우다의 폭풍신, 킷주와트나의 폭풍신, 이슈핏타의 폭풍신, 누핫세의 폭풍신, 수호신, 핫티 땅의 수호신, 지타리야스, 하판탈리야스, 카라흐나의 수호신, 방패의 수호신, 에아, 알라툼, 두르밋타의 텔레피누스, 타위니야의 텔레피누스, 아느하나의 텔레피누스, 전능자 이쉬탈, 아스카세파스, 맹세의 주(主) 신 (Sin), 맹세의 여왕 이샤라, 하늘의 여왕 헤밧, 이쉬탈, 전장터의 이쉬탈, 니느웨의 이쉬탈, 핫타리나의 이쉬탈, 니낫타, 쿨릿타, 핫티인의 용사 신, 엘라야의 용사 신, 아르지야의 용사 신, 야리스, 잠파나스, 후르마의 한티닷수스, 사무하스의 아바라스, 안쿠와의 카타하스, 카타파의 여왕, 타후르파의 암맘마스, 둔나의 할라라스, 후피스나의 후왓사나스, 이슈핏타의 타피수와, 란다의 여인 (Lady), 란다의 쿤니야완니스, 킨자의 nin.pisan.pisan, 라블라나 (레바논) 산, 사리야나 산 (헤르몬), 피사이사 산, 룰라히 신들과 하피리 신들, 에레스키갈, 핫티 땅의 신들과 여신들, 아무루 땅의 신들과 여신들, 나라스, 나프사라스, 민키, 투후시, 암문키, 암미자두, 알랄루, 아누, 안투, 아판투, 엘릴, 닌릴, 산들, 강들, 샘들, 대해(大海), 하늘과 땅, 바람들과 구름들-이들이 이 조약과 맹세에 증인들이 될지라 (Ancient Near Eastern Texts, 203-204).


참 구원의 길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동서양 어디를 무론하고 모두 피조물을 신적 존재로 섬기는 우준함과 나약함에 떨어지고 말았다. 성경에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리라고 규정하고 그분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흠 없는 소나 양, 염소, 비둘기 같은 생축 제물이나 고운 밀가루 혹은 그 부침개, 포도주 등을 제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짐승이나 곡식 혹은 음료 제물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기 전까지 (구약시대 기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실 메시아의 대속 희생을 눈앞에서 가르치기 위한 실물 교육용이었다. 히브리서는 그래서 구약 제사들을 오실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혹은 모형이라 (type) 지칭하고 있다 (히브리서 10:1, 골 2:17).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속 제물로 죽임 당하신 후에는 모든 짐승이나 곡식 제사는 완성 성취되었으므로 폐지되었고 (단 9:27 “그가 [메시아]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란 말씀의 성취)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간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할 때 구약에서는 짐승 제물로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단번에” (헬, 에파팍스; 히 7:27, 9:28, 10:10) 자기의 흠(欠) 없으신 몸을 제물로 십자가에서 드리셨으므로, 그분을 믿는 자는 항상 그분을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은혜를 입었다.


구정이나 추석같은 명절을 하나님께 경배하는 축제로 바꾸자

구정을(舊正) 당하여 조상 숭배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귀신들을 초청하여 귀신들의 잔치가 벌어질 것인가? 이 나라가 사는 길은 공자를 죽이는 길이다. 공자는 이전의 관례들을 모아서 예기라는(禮記) 책을 통해서 수 많은 잡신들이나 조상들에게 제사지내는 번잡한 예식들을 규정한 장본인이라고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그 정체가 타락한 천사들로 간주되지만, 한국 전통적인 사고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들이라 한다. 그 정체에 대하여는 성경이 언급하지 않으므로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귀신들의 속성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고,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 것이며, 그 속성이 살인과 거짓이다. 사단의 하수인들로서 귀신들은 하나같이 거짓, 음란, 분쟁, 살인, 우상숭배, 불신앙, 정욕, 술취함, 방탕, 동성애, 거짓 종교, 파괴를 부추기고 야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들이다. 이런 귀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여주는 제사들은 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몰아넣는 지름길이다. 귀신의 굿판이나 모든 무당, 점술, 마술, 우상숭배 역시 귀신과 연관되므로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이렇게 명절마다 불신자들이 드리는 조상제사라는 것은 귀신들에게 굿판 잔치 벌이도록 초대장을 보내는 일이니, 그런 제사들로 인하여 귀신들이 이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 멍석을 깔아주는 일이다. 이런 영적 사실을 감지한다면, 우리는 이 나라의 명절들에서 믿지 않던 시절의 귀신 숭배, 죽은 자 숭배라는 인성파괴, 가정과 국가 파괴의 무대를 철폐하고, 대신 이 나라를 평안케 하고 번영케 해 줄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온 국민이 지도자로부터 시작해서 하나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특별 잔치를 벌이는 일이다. 이에 대하여 진지한 논의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전통적 명절을 어떻게 기독교화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