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863년 11월 19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링컨은 소위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위대한 연설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링컨은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그러니까 내전이 이제 끝나갈 즈음 포드 극장에서 연극 관람 중 남부 동맹을 지지하는 존 윌키스 부쓰의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링컨이 게티즈버그로 가는 열차 안에서 급히 그곳에서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연설문을 작성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링컨은 중요한 연설문은 오래 전부터 꼼꼼하게 준비 작성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후 유명하게 된 링컨 연설문은 다음과 같다 (위키 백과 참조):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 혹은 그같이 잉태되고 그같이 헌신된 나라들이 오래도록 버틸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이 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 봉헌 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싸운 죽은,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보탤 수도,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의 가호 아래, 이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인민/사람들을 위한, 인민/사람들에 의한, 인민의/사람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 we can not consecrate -- we can not hallow --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2분여 남짓의 이 짧은 연설문에서 링컨은 이후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 간주되는 중요한 진술을 했는데 그것은 여기 마지막 문장에서 나타난다. 여기 전투에서 죽은 장병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존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 "하나님의 보호아래" 이 나라 미국이 자유의 새 탄생을 가지도록 하고,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
그런데 이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라는 사상은 성경적으로 본다면 아주 허구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이것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말하고 그렇게 교과서에 나타나지만, 여기 본문에서 보듯,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의미가 정말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믿으면서 성경 진리에 기초하여,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를 세우는 일이라면 그것은 성경진리에 기초해서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백성의 정부이니 목표나 가치관이 분명해서 이리 저리 어리석은 민중들의 여론에 휩쓸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는 지상에서 가장 복된 제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 아래"라는 표현을 싹 빼고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가 마치 민주주의의 근본 진리인 양 말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민주주의의 허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란 그분의 진리에 근거해서 그분을 의존하는 믿음을 가지고 백성이 정치를 하고, 백성을 위해 백성의 정부를 조직해서 일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곧 그분의 진리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싹 제거해 버리고 우매무지한 민중의 중우(衆愚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 정치, 바보 정치로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말았다.
민중이란 성경 진리의 가르침이 없으면 우매무지한 소나 노새보다 더 못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 1:3). 예레미야도 유사하게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라 (렘 8:7) 탄식했다.
미국은 이미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시켰다. 그 머리 좋은 대법관들이 그렇게 결정했는데, 그 마음이 부패해서 소나 나귀, 학이나 반구, 제비, 두라미보다 더 어리석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독재한다는 러시아의 푸틴은 동성애를 반대하고, 공산주의 무신론 공산당이 지배하며 칼 맑스 거짓 위에 기초한 중국도 동성애는 금지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본거지라 자부하는 유럽권이나 미국에서 남녀 결혼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창조질서도 알지 못하고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시키고,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수상이 동성애자이까지 한 것이다. 이런 서구권 나라들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나 독재한다는 푸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 더 썩고 부패하게만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는 민주주의, 곧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란 민주주의 공식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매무지한 군중의 어리석은 여론에 따라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기 마련이다. 영원불변의 진리에 기초해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더욱 더욱 멸망에로 밀어넣는 중우(衆愚) 정치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오바마나 민주당 클린턴 후보나 모두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지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동성애 지지하고 인권 운운하지만, 성경진리 대로가 아니라 자기들 맘대로의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 링컨도 사람들이 믿음이 좋고 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역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교회 출석하는 정도의 이신론자 (Deism) 신앙이었다고 판단하게 해 주는 요소들이 많다. 이런 가짜 기독인들이 민주주의 정부를 운운해도 그런 민주주의는 하나님의 원수로 작동하는 사단의 도구일 뿐이다.
남의 나라 걱정은 고사하고, 한국에서 다음 대통령을 꿈 꾸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어리석은 자들이 많아서 걱정이다. 반기문 총장이나 문재인 후보나 성경 진리에서 거리가 멀기는 오십보백보로 (五十步百步) 마찬가지로 보인다. 절대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북한의 인권이나 동성애 문제 하나 제대로 분간할 줄 모르는 자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얼마나 불행일까? 왜 이렇게 세상은 성경적 진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인가?
--------------------------------------------------
이하 허핑톤포스트에서 가져 옴; 이 기사 후에는 필자의 소견을 *로 표시"유엔은 대한민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수차례 권고했다. 2011년, 2012년, 2013년, 2015년. (중략) 이 기간 유엔 사무총장이 누군지 잘 알 것이다. 사무총장이 제일 이 일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황교안 총리의 경우는 법무장관 시절, “(그에게) 기독 의원들이 법무장관에게 법안 철회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차별금지법 추진) 정보를 알고, 법무장관에게 많은 압력을 행사했지만, 이분은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줬다. 결국 기독 의원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이 법이 국회로 넘어오는 것을 막았다."
아래는 '뉴스 앤 조이'가 공개한 강연 동영상이다.
지난 1월, 이혜훈 의원은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신년하례회에서 자신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법안이 나오며, 동성애는 물론 종교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입법이 시도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위기며 이러한 법안이 정부입법으로 올라오고 있다" (재경일보, 1월19일)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유권자 단체인 ‘레인보우 보트’는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공천 확정’ 정치인 9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한 바 있었다. 당시 이 명단에 포함된 사람으로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황우여 전 새누리당 의원,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김상민 전 새누리당 의원,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철래 전 새누리당 의원, 이노근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있었다.
*차별 금지법이란, 한 마디로 기독교 설교자들이나 전도자들이 성경 진리를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 법안이다.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면 체포당하고 처벌받는 식이다. 불교는 우상종교라고 말해도, 이슬람은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은 4명의 여인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폭력을 이슬람을 위해서라면 합법적이라고 옹호하는 종교라고 말하여도 불법이고 체포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악법을 반기문 사무총장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이다. 유엔이란 종교통합, 종교 차별화 금지를 목표로 삼는다.
황교안 총리의 처신에 대한 보도는 그가 왜 그렇게 단호하게 자신의 확신을 지키지 못했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실망이 든다. 동국대학교 승려들 앞에서 기독교의 유일 진리성을 선포할 절호의 기회를 관중의 박수 하나 받고자 팔아넘겼던 조용기 목사가 생각난다. 하나님은 신앙의 확신을 져 버리는 성도들을 가증하게 보신다. 주님은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눅 12:8-9). 주님을 부인한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2012년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종교를 물었다. 안 후보는 "외가는 독실한 불교신자이고 처가는 독실한 가톨릭인데 나는 딱히 종교가 없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 후보는 "나는 집안도 처가도 모두 다 가톨릭"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자신도 카톨릭이라고 한다.
문재인 후보는 불교계가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을 항의하고 의견을 물으니 종교 차별 금지법이라도 제정하겠다고 했다. '종교평화법'이나 '종교차별금지법' 등은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 간의 평화의 가치를 담은 좋은 법 같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개인의 자유나 기존 전통 종교를 지킨다는 미명아래 기독교의 선교와 전도활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는 '종교평화법'이나 '종교차별금지법'의 제정이 개신교의 전도나 선교에 있어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데 우려를 전했다. 박 교수는 "만약 사회적으로 이러한 법이 시행된다면 전도와 포교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제재당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미션스쿨이나 기독교 정체성을 가진 기관들이 개인의사에 반하는 종교활동을 일체할 수 없게 돼 선교와 전도의 위협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종교간 갈등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현 종교의 갈등은 실정법에 어긋나는 정도만 다스리면 된다"며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하는 지나친 포교활동의 경우는 충분히 실정법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면서 "정치와 종교를 같이하는 불교국가나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선교를 막기 위한 장치로 제정한 법을 다종교인 우리나라에서 시행한다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근대사회의 근본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종교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종교선택의 자유가 선교의 자유와도 함께 가야하므로 선교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종교 선택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