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다윗 왕국의 재건

중일사랑 2016. 10. 5. 18:54

쿤밍에서 어떤 분이 질문하길 "세대주의 신학은 왜 다윗 왕국의 재건을 미래사로 볼까요? 행 15:16-17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재건되었다고 하는데요."


행 15: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맛소라 본문이 아니라 70인역을 주로 근거한 암 9:11-12의 인용이다. 야고보 사도는 행 15:15-17에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재건되어 이제 이방인들이 주를 찾고 있다. 맛소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재건하여 이전에 다윗 왕국에 포함되었던 영토를 모두 (에돔의 남은 자들만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열방을") 다시 통치하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반면 70인역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번역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재건하여, 저들이 (다윗 왕국) 에돔의 남은 자들을 소유하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남은 자들이 "나를" (하나님) 찾도록 하시리라고 했다. 70인역의 번역은 종말 시대에 재건될 다윗 왕국의 의미를 정치 군사적 지배 대신에 그 선교사적 의의를 바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야고보는 70인역의 암 9:11-12을 인용하여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서 다윗 왕국은 재건되었고, 이제 교회의 선교를 통해서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고 그들이 왕국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베드로 역시 다윗 후손 메시아 예수님의 부활과 승귀하심으로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셨고 따라서 그의 왕국이 재건되었다고 이해했다 (행 2:25-36). 바울 사도 역시 유사하게 이해했다 (행 13:23, 32-37; 롬 1:2-4). 이것이 바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재건하는 것의 의미이다. 


그런데 재건된 다윗 왕국의 통치권은 이제 이전에 다윗이 통치하던 그런 정도의 영토가 아니라, 교회의 선교를 통해서 온 세상에 미치고 있다. 이제 복음 전파에 반응하여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이 다윗 후손 메시아 왕께 굴복하고 그 왕국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남은 자들"은 모든 이방인들을 지시한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종말시대 (=신약시대, 메시아 시대) 비전을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고 선언했다 (말 1:11). 구약 선지자들은 자기 시대의 관습과 지리적 배경을 근거로 미래사를 예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중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예언들의 성취는 그 예언의 겉옷과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수 백년 이후에 성취가 일어날 때 어찌 과거 오래 전의 그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일 수 있을까? 예언의 내용은 자고로 그 시대적 제약을 받고 그 시대적 수준을 능가할 수 없었다. 


70인역의 암 9:11-12이 아니라, 맛소라 본문이라 (히브리어 본문) 해도, 다윗 후손 메시아 예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여 소유하시는 일은 영적인 통치권 행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70인역의 이해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C. C. Torrey, Composition and Date of Acts (Cambridge, MA, 1916), pp. 38–39. So also C. Rabin: “MT would actually have supported the exegesis here offered” (The Zadokite Documents [Oxford, 21958], p. 29; F. F. Bruce, The Book of the Acts, 293). 문제는 세대주의 신학처럼 문자적으로 본문을 해석하고 유대인 중심으로 해석하는가 여부일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장차 재림 이후에 주님이 오셔서 다윗 왕국을 지상에 재건하시고 구약적으로 정치 군사적 통치를 시행하리라고 믿는 듯 보인다. 

야고보의 암 9:11-12의 인용 해석은 랍비들의 '옐람메데누 랍베누' (우리 스승이 우리에게 가르치소서) 관례에 비유된다. 그것은 이미 언급된 말이나 이미 행해진 바, 혹은 이제 결정되어질 바를 성경에 호소해서 확정하는 일이다 (J. W. Bowker, “Speeches in Acts: A Study in Proem and Yelammedenu Form,” NTS 14 (1967–68), pp. 96–111).


이제 왜 세대주의 신학이 이렇게 명백하게 다윗 왕국의 재건 예언이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과 높여지심으로 성취되었음에도 미래사로 이해하는지 살펴 볼 차례이다. 왈부르드는 그의 천년왕국이란 책에서 (John F. Walvoord, The Millennial Kingdom, 294) 행 15:15이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윗 왕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주님은 다시 오신다):

예루살렘 공회에서 야고보는 암 9:11-12와 다른 구약 예언들을 인용하여, 장차 이스라엘이 회복될 미래의 한 날이 온다고 말씀한다. 아모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암 9:11). 겔 37:24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고토로 모아지고, 죽은 다윗이 살아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평화의 언약을 맺으시리라 한다 (겔 37:26). 그 때에 역시 성취될 바는 눅 1:31-33의 예언이다: 

눅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 .


왈부르드의 행 15:15-17의 해석은 이렇게 오늘날 보편적인 성경이해와 동떨어진 세대주의 신학만의 외골수 해석이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가 왜 암 9:11-12을 인용했겠는가? 초대 교회 당시 일부 몰지각한 유대주의자들이 (유대교적 기도교를 주창한 자들) 안디옥 교회에 내려와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런 주장을 듣자 방금 1차 선교여행에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아니라고, 이방인들은 모세법을 지킬 이유가 없고 할례를 받을 이유가 없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고 그들을 논박했을 것이다.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행 15:2).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이리하여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한 사절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였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중에서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유대주의자들과 한 통속이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교회 역사상 첫번 공회를 열게 된 것이다. 이 회의에서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행 15:7-11)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1차 선교여행에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선교 역사가 있었던가? 그런 일들을 바울과 바나바는 보고했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조용히 보고를 잘 들었다. 그 선교사들의 보고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일어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고 한 후에,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베드로)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가 암 9:11-12을 인용한 이유는 베드로나 바울, 그리고 바나바가 각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모세법과 무관하게 성령님을 이방인들이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놀라운 사실을 증거하였다면, 그들의 증거는 바로 구약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랍비들이 어떤 결정할 바나, 말하거나 행동한 바를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확정하는 그런 방식으로 야고보는 그 회의 의장으로서 암 9:11-12을 근거로 이방인 선교와 모세법과 무관한 이방인 구원을 확정했던 것이다. 


야고보에 의하면, 암 9:11-12의 예언이 성취되어 다윗 왕국이 재건되어 이제 다윗 후손 메시아 예수께서 통치하시니 이방인들이 모두 주를 찾고 메시아 왕께 굴복하고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방인 선교는 바로 암 9:11-12의 성취의 역사이다. 다윗 후손 메시아의 통치는 이제 이방인들 가운데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보편적 해석을 무시하고, 야고보의 의도를 왜곡하여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할 한 날이 온다라고 했다고 하면 그것이 바른 해석이겠는가? 겔 37장에 언급된 다윗이 왕으로 이스라엘을 장차 통치한다는 예언은 죽은 다윗이 살아나서 통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윗 후손 메시아께서 통치하리라는 에언이다. 미국의 신학교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다윗"이 언급된 선지서의 구절을 해석하면서 (호 3:5, 겔 34:23, 24, 37:24 등) 장차 다윗이 죽음에서 살아나서 통치하리라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충격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왈부르드나 그 학생이나 구약 예언을 예수님의 성취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없고 미래 재림 이후에 무슨 지상에 구약식 다윗 왕국의 재건을 (저들은 이것을 천년왕국과 동일시한다)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체계들을 둘로 크게 나눈다면 

1) 역사 비평적 해석법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성과 완전성을 믿지 않고 인간의 산물로 생각한다)

2) 계시 의존 역사적-문법적 해석법

이 된다. 이 중에서 2)를 다시 2대분 하자면, 

ㄱ) 신구약의 통일성에 근거해서 구약 예언은 전부 예수님을 통해서 신약시대에 전부 성취된다고 보는 개혁주의 해석체계와 

ㄴ)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켜 구약은 모두 종족 유대인들에게 주어졌으므로 그들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이해하는 세대주의 해석 체계로 분리할 수 있다. 


이 후자 세대주의 해석법이 특히 종말론 체계가 한국교회에 알게 모르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런 종말론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전혀 가치가 없다. 소위 7년 대환란설, 핵무기나 미사일이 난무하는 아마겟돈 전쟁설, 짐승의 표 666이 베리칩 (Verification Chip)이라는 주장, 재림 이후 지상 천년왕국설, 재림 즈음에 이스라엘의 집단 개종설, 저 중동 이스라엘이 구약 예언 성취라는 이해 등등은 모두 가치가 없는 비성경적 사고들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지금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고 성취 도중에 있으며 재림을 통해 완전 성취되고 재림 이후에는 부활, 심판, 현 세상의 불 태움을 통한 신천신지로의 변화 등의 과정을 통해 영원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하고, 구원을 얻은 자는 지금 최선을 다해 영원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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