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제3성전 김종철 감독

중일사랑 2017. 7. 23. 19:36

 김종철 집사는 (영화 감독) 2010년 '회복' 그 다음에는 '용서' 그 다음에는 "제3 성전" 등의 영화를 통해 그리고 소위 이스라엘 선교 방송이란 브래드 방송이란 것을 통해 저 중동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 그의 중동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은 신약 기자들이 제시하는 이스라엘에 관한 사고와 어울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구약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의 구속사는 신약에서 새 언약 공동체인 교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 공동체이다. 구약에서 구언약 공동체는 이스라엘이란 민족이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부으심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새 언약 공동체는 교회이다. 구약에는 한 종족 중심이었지만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는 종족 중심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에 가입된다. 그런 이들이 모인 모임이 교회이다. 


신약에서 "교회"라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이다. 그런데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에클레시아'는 히브리어 '카할'이나 '에다'를 (회중, 하나님의 백성 모임) 번역했다. 즉 교회 = 회중 (하나님의 백성, 총회) 이다. 즉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 신약에서 '교회'라 불리고 있다. 교회 밖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인건 상관없이 곧 그 사람이 이스라엘인이라 할지라도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더 이상 아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종족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자기 백성으로 대해 주셨지만, 십자가 부활 이후에는 이스라엘 종족 중심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그런 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을 (교회) 구성한다. 이제 종족 중심의 구약 구원사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로 끝나고,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자들의 모임을 통해 구원사가 진행된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에 속하는 것이 (남자는 할례를 받음으로, 여자는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신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인이건 이방인이건 누구를 무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속함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었다면,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세주로 믿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다. 


그렇다면 구약 언약공동체였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신약시대에 어떻게 되는가? 저들은 더 이상 종족 단위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그들 중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 남은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메시아로 영접하고 믿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식이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식이 동일하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선민이었다면, 신약에서는 이스라엘과 무관하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곧 예수님을 자기 구세주로 믿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런 구원사의 변천의 기본적인 사실을 안다면 김종철 감독이 말하는 제3 성전이니, (이스라엘의) 회복이니 용서니 하면서 저 중동 이스라엘이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인 양 잘못 전파하는 그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고 예수님을 모독하는 일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김종철 집사는 한 마디로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영화나 방송국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잘못된 신학 사상을 영화나 인터넷 방송으로 마구잡이 전파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저 중동의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이 사람의 생각인데 그런 생각은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정면 도전이란 말이다. 더 이상 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시대가 아니다. 그들도 만민들 중의 한 민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개인이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의 백성에 가입될 뿐이다.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특권적 지위를 갖는 민족은 지구상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 온 세상이 그를 통해 복받는 아브라함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을 (참 하나님을 알고 믿는 일) 받는 것이다.


김종철 집사님! 요한복음 1장 12절 13절도 알지 못하시나요?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김종철 감독님! 갈 3:29도 몰라요?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제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아닌가? 김종철 집사는 이런 기본도 모르고 어떻게 교회 집사가 되셨는가?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은 알고 집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저 중동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래. 그 사람들을 축복하면 우리가 축복받는대."

창 12:3에서 "너를 (아브라함)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아브라함)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니 저 아브라함의 후손 유대인들을 우리가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해야 우리가 복받는 거지. 아, 그런 거로구나! -어리석은 사람들!  


시 122:6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 저 중동의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해 매일 기도 드리세. 그리고 예루살렘을 사랑하세. 예루살렘은 그곳 유대인들을 가리키지 않겠는가? 그러니 저들을 사랑하고 저들을 어떻게든 변호해주고 저들이 팔레스틴 아랍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건 교회를 핍박하건 십자가에 침을 뱉건 그런 일은 상관할 바 없고 유대인들을 돕고 변호하고 위해 기도하세! 그래야 우리가 형통하고 우리가 복받는다고 하지 않나? - 어리석은 사람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에는 "예루살렘"이 더 이상 새 언약공동체의 중심이 아니다. 새 언약공동체는 교회이고 교회는 이제 '새 예루살렘' (계 21:2 어린 양의 신부), '위의 예루살렘' (갈 4:26),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히 12:22). 이제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유대인들을) 축복함이 축복받는 길이 아니고, 이제는 아브라함의 참 후손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을 받는다데!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니 교회를 축복함이 축복받는 길일세. 교회를 대적하고 저주하는 자는 자신이 저주를 받을 것일세! 이것이 성경적 사고일세.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이제 아브라함의 아들 (후손)이라네. 김종철 집사님! 생각 좀 해 보고 브래드 방송을 하건 영화를 좀 찍으시게! 왜 그렇게 잘못된 생각을 전파함으로 범죄하고 있나?


제3 성전? 무엇이 제3성전인데?

솔로몬 성전이 제1 성전이라면,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한 후 주전 516년에 스룹바벨 총독에 의해 성전이 재건되었는데 그것이 제2 성전. 그 제2 성전이 헤롯 대왕에 의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되어 (거의 재건축) 헤롯 성전으로 존속하다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불타고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제3 성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장차 주님 재림 때에 예루살렘 이전 성전 터에 지어질 어떤 건축물일까? 그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 성령께서 믿는 성도의 몸 안에 거주하심으로 (내주) 신령한 성전이 건축되었고 건축 중이기 때문이다 (고전 3:16, 6:19, 고후 6:16, 엡 2:20-22).


구속사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 거하심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1)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20)

이제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주님 안에 거하는 신인합일의 구속사 목표가 성취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건축물 성전은 필요치 않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오셔서 거하시는데, 무슨 건물이 성전이 될 수 있을까?


Craig R. Koester, The Dwelling of God: The Tabernacle in the Old Testament, Intertestamental Jewish Literature, and the New Testament, 1989.

Kurt Paesler, Das Tempelwort Jesu: Die Traditionen von Tempelzerstörung und Tempelerneuerung im Neuen Testament, 1999.

Greg R. Beale,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A Biblical Theology of the Dwelling Place of God, 2004.

Mary L. Coloe, God Dwells with Us: Temple Symbolism in the Fourth Gospel, 2001. 

Alan R. Kerr, The Temple of Jesus’ Body: The Temple Theme in the Gospel of John, 2002.

P. M. Hoskins, Jesus as the Fulfillment of the Temple in the Gospel of John,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7.


그렇다면, 롬 11:26은 무엇인가?

롬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여기서 "온 이스라엘"을 유대인들로 보고 그들이 주님의 재림 직전에 집단적으로 개종하여 회개하고 주님을 보자마자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복음을 경멸하고 모독하려는 것인가? 십자가 복음이 없이도 그냥 구원을 받을 것이면 무엇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셔야 했고 (헬, 힐라스테리온; 헬, 하마르티아) 무엇 때문에 전도자들은 그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했던가? 그리고 왜 재림 직전에 사는 유대인들만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그들이 무슨 특별한 공로를 세우기라고 한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때이니 하나님이 예라, 선심을 쓰겠다 구원을 받으라 라고 구원사의 흐름에도 없었던 파격적 대우를 그들에게 하신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롬 9-11장에서 일관되게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바는 오직 남은 자, 유대인들 중의 남은 자들만 구원에 이른다는 사고이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의 혈통일지라도 남은 자 곧 선택받은 이삭만 (이스마엘은 제외) 구원에 이르렀고, 이삭의 혈통이라도 오직 야곱만 구원에 이르렀으며 (에서는 제외), 이런 식으로 엘리야 시대에는 다 배교했지만 남은 자 7천인을 하나님은 남겨 두셨다고 했다. 7은 만물을 창조하신 7일 기간과 연관되기에 완전을 상징한다면, 10이란 수자도 완전을 상징한다. 이는 손가락, 발가락이 10일 때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000명이란, 수자적으로 꼭 7000명이란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한 남은 자들의 전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택하신 남은 자들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 시대에는 어떠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학수고대하면 다윗 후손 메시아 예수님을 배척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갔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그것은 유대인들 중의 남은 자만 항상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고 구약에서 재림 때까지 항상 구원사는 그렇게 흘러 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남은 자의 원리를 거스려 재림 직전에는 유대인 99퍼센트 아니면 95퍼센트 정도로 대거 집단 개종을 한다, 아니면 100퍼센트 개종을 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 이런 시나리오는 하나님의 구원사 원리와 어울리지 않고 롬 9-11장의 전체 논리의 흐름에 완전 배치된다.

그렇다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의 택한 모든 이스라엘, 곧 남은 자 전부가 구원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는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는 (사 59:20) 말씀의 인용인데, 예수께서 초림 때에 혹은 신약시대 전체 기간에 걸쳐서 회개하는 유대인 남은 자들에게 성령님으로 임하여 저들을 경건치 아니함에서 건져내신다/ 구원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것이 재림 때에 일어날 일이 아니다. 신약시대 전체 기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렇다면 롬 11:11-15은 무엇인가?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 부분은 마치 유대인들이 여전히 장차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들릴지 모른다. 롬 9-11장 전체 논지가 유대인들일지라도 그 중에서 오직 남은 자, 하나님의 택한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라면, 그것에 비추어 보건대, 여기서 장차 유대인 모두가 구원에 이른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 두 구절은 장차 유대인들이 모두 구원에 이르리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자기 당대에 유대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유대인들로 시기나게 하였다고 했다. 이 두 말씀이 재림 즈음에 이스라엘이 전체로 구원에 이른다는 그런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어찌하든지 유대인을 시기나게 하여 얼마를 구원하고자 그 때에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씀은 장차 유대인들을 전부 구원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치 죽은 자들이 겔 37장에서처럼 모두 살아나듯 유대인들이 장차 전부 회개하고 하나님에 의해 자기 백성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말이 아니다. 그럴 것이면 앞서 언급한대로 십자가 복음은 필요치 아니한 것이다. 그리고 재림 즈음에 살 유대인들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질 이유가 하등 없다.

12, 15절의 말씀은 장차 유대인들이 재림 즈음에 전부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바울 당대부터 지속적으로 재림 때까지 일어나는 유대인 남은 자들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12절은 일종의 가정법으로 유대인의 넘어짐이 이방인들에게 축복이 된다면, 유대인이 많이 믿는다면 이방인은 얼마나 더 축복을 받을 것인가? 이런 가정적 진술이다.


신약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에 대하여 어떤 의심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갈 6:16). 그리고 건물로서의 성전은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제3성전이란 김종철 감독의 영화가 보이는 미래사 시나리오는 다 잘못된 성경해석에서 나온 거짓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유대인 중심의 7년 대환란이란 가설도 사실 성경적이 결코 아니다.


요컨대,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은 유대인 민족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개개인이 (그가 어떤 민족에 속했건) 모이는 모임인 교회이다. 그리고 성전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다. 성도 개인이 성전이고 성도들의 모임이 성전이다 (고전 3:16, 6:19, 고후 6:16, 엡 2:20-22).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 곧 회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결국 신약에서 성전 = 교회 공식이 성립한다. 이제 유대인 = 하나님의 백성 이란 공식은 더 이상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