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낮은 산의 좁은 오솔길을 올라 돌고 돌아서 아파트로 내려온다. 그곳에는 이전처럼 여호와의 증인 전도자들이 3인이 서서 미소를 띠고 소책자를 전달하고자 손을 내 밀었다. 이 사람들은 이단들인데 웃음으로 말해 주었다: "아, 여호와의 증인 (Jehovah's Witnesses), 와치 타워 (파수대 Watch Tower), 이단!" 그러자 부드럽게 한 여인이 "이단은 아니고요, . . ." 나는 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하고 내려왔다.
스스로는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이들은 이단인가?
우선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 보자 (위키 참조)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는 정규 파이오니아(전 시간 복음 전파자)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길거리나 집에서 자신들이 자체발행한 출판물을 나누어준다. 특히 거리포교나 호별전도를 통해 "깨어라!"나 "파수대", 혹은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라고 인쇄된 잡지 혹은 서적을 준다면, 여호와의 증인이 틀림없다. 대체로 전단지의 디자인이 80~90년대 교회 홍보물의 퀼리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라는것이 특징이다.
정식 신도가 되면 '전도인'이 되는데 전도활동은 자신의 여건에 따라 자원하여서 한다. 전도 활동을 '(자원)봉사'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 외에 한 달에 50시간 이상을 전도해야 하는 '보조 파이오니아'와 1년에 840시간 이상을 전도해야 하는 '정규 파이오니아'가 있으며 '특별 파이오니아'라는 살인적인 스케줄의 봉사를 하는 이들도 간혹 존재한다.
전도인(시간 자유)
보조 파이오니아(1달 단위/1달 50시간)
정규 파이오니아(년 단위/1달 70시간 꼴(1년에 840시간)
특별 파이오니아(케바케/1달 120시간 이상)
의 형태다.
전도를 '봉사'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사람들에게 무료 성서 연구를 해주기 위해 다닌다는 의미에서 '봉사'로 여기며 '봉사 활동'의 의미를 여호와의 증인 외의 사람들과 다르게 여기고 있다.
성(性)과 관련해 보수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 성생활은 부부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허용한다. 즉, 혼전 성관계를 원천 금지하며, 개인적으로 성적 쾌감을 느끼는 행위인 자위행위와 음란물 시청조차도 금지된다.
여호와의 증인 집단의 교리
여호와의 증인 교리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리를 수정하고 보완한다는 점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교리를 바꾼 것에 대해서 숨기고 쉬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공공연하게 밝히는 사실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나 다른 종교와 같이 명확하고 확고한 신학적 교리는 가지고 있지 않고 “의로운 자들의 길은 밝은 빛과도 같으니, 점점 밝아져 마침내 날이 굳게 선다.”—잠언 4:18의 말씀에 따라 진리는 '점점 밝아지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1) 삼위일체를 부정함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삼위일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야웨 하나님의 첫 창조물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더불어 천사장 미카엘로 상정한다. 정통 기독교에선 야웨 하나님과 예수님의 본질이 같으며, 미카엘은 그냥 피조물인 천사장일 뿐이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사람들이 뿌리는 문고본 성경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기둥에 '일자로' 못 박혀 죽었다. "3, 4세기에 나온 십자가 무덤이나 유물들은 뭐라고 반박할 거냐"고 묻는다면 증인 측에서는 '거짓된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에 스며들어가서 십자가를 숭배(..)하게 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나요, 기둥에서 죽었나요?'라는 질문만으로도 기독교인과 여호와의 증인을 구분할 수 있다.
2) 세계 종말론(아마겟돈)
이들은 러셀의 1914년 세계멸망설에서도 엿보이듯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하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고 있다. 정통 기독교에서는 재림의 시기를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는 데 반해 이들은 그 시점과 인원수, 조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재림 시점이 틀렸다고 판명되면 자체적으로 변경한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땅을 통치할 사람의 수는 정확히 14만 4000명. 이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비롯된 숫자이다. 육적인 유대인이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외부 사람들이 있지만, 민족이 유대인이냐 아니냐는 전혀 관련이 없다. 14만 4000명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며, 나머지 '큰 무리'는 지상에서 산다고 여긴다. 물론 14만 4000에는 충실한 삶을 산 증인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후 1세기 이후에 존재해 왔던, '인간적 철학에 의한 배교'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믿음을 유지한 충실한 그리스도인 역시 포함된다고 한다. 지상에도 천년왕국 시기가 도래해 인간 세상계에도 유토피아가 구현된다고도 설파하지만 이 쪽은 천년 뒤에 마귀가 도로 풀려나서 무한 루프…라기보다 잠시만 마귀의 공격에서 버티면 천국만은 못해도 영원한 지상낙원이 약속된다고도 설파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여호와의 증인측이 1975년 종말론을 믿었던 것은 사실이며 일부가 아닌 전세계 여호와의 증인의 문제였으며 그들만의 교리인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감으로 행동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유사하게 1988년(서울올림픽), 1992년(걸프전)전후에도 한국회 중에서는 일부의 증인들이 비공식적으로 종말이 올것이라며 기대감을 가졌으나(...) 보기 좋게 빗나가고 겹세대론을 믿고 있다. 겹세대론이란, 1914년 태어난 세대와 종말(아마겟돈)을 볼 세대가 겹친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종말론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1975년의 빗나간 예언 이후로 여호와의 증인의 종말론은 '시기를 정하지 않았으나 곧 때가 온다는 종말론'으로 변경되었다. 기근과 범죄, 전쟁, 지진을 종말의 징후로 보고 전도지(파수대, 깨어라, 혹은 작은 종이)를 열심히 배포한다.
3) 지옥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인용하여 현대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지옥, 소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이교에서 비롯된 잘못된 교리라고 주장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줄 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죽은 사람은 딱히 지옥 같은 곳에 가는 것도 아니라 그냥 무(無)로 돌아가며, 세계종말 때 죽은 자들의 부활이 예언돼 있고 이 때 죽임을 당할 악한 자들 역시 지옥이 아닌 무로 돌아간다고 한다.
4) 집총과 투표 거부
이들은 자신들이-특히 그 중에서도 선택된 14만 4천명ㅡ진짜 하나님 왕국의 백성이고, 나머지 세상의 모든 국가와 종교, 공동체, 협의체를 사탄의 동맹체, 마귀의 피조물로 상정하며 배격한다. 물론, 그 중에서도 선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바른 길로(여호와의 증인)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국가, 정부에 복종하는 것을 금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 군대 복무 등 국가에 헌신을 표하는 어떤 행위도 거부한다. 그에 대한 근거로 이사야 2장 4절의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농기구)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하리라"란 성경 구절, 혹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 어찌 죽이겠는가란 논리를 내세워 국가 간의 전쟁을 경멸한다. 사실 집총 거부의 경우 많은 선진국들의 역사에서 보듯이 모병제로 전환된 경우가 적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종교적 교리에 의거하여 병역을 거부하기 때문에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계대전 시절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치하에서 전쟁에 협력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결과 상당수의 신자들이 수용소나 교도소에 끌려가 고문, 집단 학살당했고, 2차 대전 종전 후 서구, 특히 독일에서 병역거부가 정당화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의도치 않게 한국 독립 운동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등대사 사건)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독재국가나 중국등의 후진국에서도 탄압받는다. 집총거부와 같은 맥락으로 집단학살, 인종차별, 인권유린 등의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점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소한 세속 국가에서 살면서 비폭력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성경시대에서 여호와를 위한, 혹은 여호와에 의해 일어난 폭력의 경우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수긍한다. 예를 들면 여리고의 전투라든가.
투표 등 시민의 정치 참여 행위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교리에 근거한 집총 거부를 인정받기 위해 인터넷 웹사이트나 헌법재판소에 대변인을 불러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변론하기 때문이다. 종교에 바탕한 무정부 집단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다만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적으로 어느 특정 집단 편에 서지 않고,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들 입장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정부에 실질적인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가 아랍같은 종교국가가 아닌 이상 반국가적인 면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 물론 계율적으로 사회에 위반하는 것(ex:집총거부)은 당연히 처벌하지만.
심지어 전쟁을 다루는 파괴적인 것들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나 메탈슬러그 같은 게임들도 하지 못하게 하고 스타워즈 같은 영화도 보지 못하게 한다.
5) 수혈 거부
Q. 성서가 금하는 것에는 인간의 피도 포함되는가?
그렇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이해하였다. 사도행전 15:29에서는 “피[를] ··· 계속 멀리”하라고 교훈한다. 그것은 동물의 피만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비교 레위 17:10. 그 구절에서는 “어떤 피든지” 먹는 것을 금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초기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변호하는 글을 쓴 사람)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피’에 대한 금지령을 인간의 피에 대해 더욱 적용되는 (금지령)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니케아 이전의 교부들」 4권, 86면.
Q. 수혈은 과연 피를 먹는 것과 동일한가?
병원에서는, 환자가 음식을 입으로 먹을 수 없을 때, 그에게 정맥 주사로 양분을 공급한다. 그러면 입 안으로는 피를 전혀 넣지 않지만 수혈로 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연 “피[를] ··· 계속 멀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인가? (사도 15:29) 비유를 든다면, 의사로부터 알코올을 삼가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을 생각해 보자. 만일 그가 알코올을 마시지는 않지만 정맥으로 직접 주입한다면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인가?
반론1
'의사'의 알코올 삼가 지시와 성경에서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이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의사의 알코올 삼가 지시는 명백한 '의료적 목적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하는 알코올 섭취와 정맥으로의 알코올 주입이 신체에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알코올 삼가 지시가 정맥으로의 투여 금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성경에서의 '피를 멀리하라'라는 레위기의 내용은 종교적 정결성을 그 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용도의 수혈 역시 동일하게 정결성을 해한다고 볼 만한 명백한 논리적 구성이 없는 한 피를 멀리하라는 율법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수혈이라는 치료행위의 금지를 포괄한다고 볼 수 없다.
반론2. 치료목적과 율법상의 목적은 다르지 않은가?
성경에서 술도 멀리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알콜솜으로 사람을 소독하는 것이나 알콜이 들어간 구강소독제로 구강을 청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독교 종파는 없다. 성경에 포도주를 멀리하라는 구절(민수기6:3, 신명기 32:33 등)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야기에서 '포도주로 상처를 소독하는 내용'(누가복음 10)도 등장한다.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도 율법상 안식일에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손마른자를 치료했다. 이에 율법주의자들의 비난을 하자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과 멸하는 것 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반론3. 다른 정결규정
성경의 레위기에는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 말고도 여러가지 정결예식과 규정이 등장한다. 예컨대 전염병에 걸린 자와 접촉하게 될 경우 마을에서 7일간 벗어날 것, 생리하는 여성과 접촉할 시 정결예식 및 마을로부터 떨어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은 오로지 수혈의 금지에만 집중하여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다른 율법의 정결예식과 규정에 대해서는 이토록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1980년에 어느 아이의 엄마가 전격성간염에 걸려 장내출혈로 수혈이 필요한 자신의 11세 딸에 대해 수혈이 최선의 치료방법이라는 의사의 권유를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후유증 발생의 염려만을 이유로 완강하게 거부하고 병실에서 환자에게 수혈을 하려고 하는 의사 앞을 가로막고 고함을 지르면서 소란을 피우고 항의하여 수혈을 방해함으로써, 딸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다.
일부 신자들이 무수혈 치료가 수혈 치료보다 부작용이 적은 점을 들어 수혈치료가 안 좋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무수혈 치료가 이루어지는 수술은 주로 심장질환 계통의 수술로, 많은 준비와 철저한 계획 후 이루어진다. 하지만 많은 수혈 치료가 교통사고 등의 응급 상황에서 이루어지며,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작용 운운하는 일부 발언이 얼마나 위험하고 억지스러운 주장인지 알 수 있다. 수혈 치료보다 무수혈 치료가 효율적이라면 이미 현장에서 의사들이 먼저 주 치료법으로 채택했을 것이란 걸 잊지 말자.
본인의 수혈만 거부하면 혼자 죽고 말 일이라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수혈 거부 의사를 인정한 의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 2009도14407 판결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환자에게, 이 종교의 신도인 의사가 자신이 믿는 교리에 따른 비상식적 처치를 하는 위험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29]. 일반 의료계와 해당 종교계 사람을 완전히 분리하면 되겠지만 이것도 잘 되지 않는다. 여증은 실제론 매우 집요하게 의료계에 발을 들인다. 여증 신도가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료계를 들어온다고. 하지만 여증 신도인 의사가 딱히 여증 신도들만 대상으로 진료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결과적으로 수혈이 필요한 비신도들이 신도의 막무가내식 수혈 방해 때문에 큰 문제에 노출될 위험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목숨을 버릴 수 있는데도 수혈을 거부하는 것은마태복음 6장 25절, 누가복음 12장 22-23절에 명백히 어긋난다. 목숨에 위험해지기 전까지는 수혈을 가능한 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나 목숨을 버려서가면서 까지 무수혈을 고집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위배된다.
6) 동교결혼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어 잠들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만 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7:39
그리스도인 회중에서는, 자동적으로 결혼의 띠가 끊어지게 되는 죽음을 제외하고, 결혼의 띠가 끊어지게 되는 유일한 근거는 “음행”이다. 죄를 범한 사람은 음행을 통해 불륜의 상대와 한 몸이 된 것이다. 따라서 무죄한 쪽에서는 원한다면 이것을 근거로 결혼 관계를 끊을 수 있으며, 그런 다음 재혼할 수 있다. (마 5:32; 롬 7:2, 3)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음행”(그리스어, 포르네이아)의 경우에 이처럼 이혼을 허용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우자가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별거도 하지 말라고 교훈하며, 만일 별거하게 된다면 다른 누구와도 성관계를 갖지 말라고 명령한다.—고전 7:10, 11; 마 19:9.
- 수혈 거부로 인한 신생아 사망 사건
2010년 10월 21일 종교적 이유로 어린 딸이 수혈 받는 것을 거부한 부모에게 법원이 종교보다 자녀의 생명권이 더 중요하다며 수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이 떨어졌음에도 부모는 수혈 거부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딸은 2010년 12월 10일에 무수혈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던 도중 결국 세상을 떠났다. 수혈 여부만이 쟁점사항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법원의 판결까지 씹어가며 종교 교리를 우선해 비주류 소견을 따라 행동한 것은 분명 문제의 여지가 있다.
판례상 유기치사죄 적용이 유력하다고 하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견해도 있으며 9월 출산 후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수술을 거부하고 10월 21일 패소 후에 국내 유일의 무수혈 영아수술 성공 사례가 있는 서울대 병원으로 옮긴 것을 보면 결국 수혈 여부가 쟁점사항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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