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이옥, 위대한 여정, 242이하,
평북 구성시 출생
신의주 지휘본부 경비대 하사로 7년 근무
2001년 10월 한국 입국
2005년 2월 복음성가 음반 1집
2006년 6월 19일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출연
군부대, 전국 교회들 찬양 간증 사역자
1998년 2월 중순 군 복무 7년 되던 해에 고향 동사무소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내용인즉 부모님과 금란 언니가 굶어 죽은지 지금 사흘째가 되어 묻어야 하기에 친인이 와서 시신을 확인해 주어야 자료에 등록하고 조직적으로 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대 허가를 받아 기차에 몸을 실었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 이후 국제 식량 배급도 끊어졌고 매미라는 태풍의 영향으로 그해 농사가 흉작이라 고난의 행군이라 칭하는 시기를 지나던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은 굶주려 죽은 이들이 모두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다. 먹지 못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시체들은 어른 아이를 구분조차 할 수 없게 했다. 그 당시 이옥의 나이 고작 22세. 시신을 묻으려는 사람들도 이 일을 빠르게 끝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슬픔도, 동정도 없어 보였다. 굶주림의 고통에 살이 마르고 두 뺨은 움푹 패이고 거뭇한 눈가의 표정 없는 시신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그 속에서 부모님을 찾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이옥 자매는 어제 밤까지 부대에서 강냉이 밥이라도 먹고 목에 강냉이가 끼인다며 투정을 했는데 부모와 언니는 먹지 못해 시신이 되어 묻혀져 버린 것이다. 부모는 군대 간 딸이 걱정할까 두려워 알리지도 않고 굶다가 죽음으로 변한 것이다. 전화에서는 부모와 금란 언니만 죽었다 했으니 옥주 언니와 수복이는 살아 있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이옥은 집으로 뛰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니 다신 한 번 참혹한 광경에 소스라쳐야 했다. 추운 겨울 땔감도 없이 지내던 가족들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나무 장롱을 뜯어 땔감으로 썼다. 방안에서 불을 피워 검은 그을음이 온 벽을 뒤덮고 있었고 그 어두컴컴한 방바닥 한쪽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야윈 동생이 홀로 누워 있다. 그해 16살이 되는 동생이 7세 때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이옥은 그간 자신이 속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대로 동생을 내 버려두고 부대로 귀대할 수가 없었다. 죽어도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복귀해야 할 시간이 지나 탈영병으로 낙인 찍히면 그 때는 군사재판을 받고 처형당할 것이니 마음이 다급해진다. 한 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중국 도문의 친척들에게로 가야 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이용하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는 발각되기 쉬우니 산을 타고 국경을 넘으리라 결심했다. 영양실조로 깡마른 동생을 들쳐 업고 포대기로 아기처럼 꽁꽁 동여맨 뒤 자신의 군대화도 단단히 헝겊으로 묶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동네 뒤편 보습산을 올라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산으로 산으로,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눈에 뛰지 않도록 했다. 군대에서 선전선동원으로 복무하면서 훈련기간에 15킬로 대형 아코디언을 지고 다녔던 훈련이 있었기에 동생은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동하계 훈련 때마다 절벽 타고 칡 줄기를 잡고 낙하하며 산에서 생존하는 법을 훈련받은 것도 요긴하였다.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하고 꼬박 사흘을 지냈다. . . .
꼬박 18일 정도를 걸어서 3월 초가 되어서 국경에 도착했다. 압록강 하구에 면한 평안북도의 한 중심에 자리한 구성시에서 두만강변까지 산을 타고 북동쪽으로 걷고 걸은지 18일 만에 이른 것이다. 이제 강을 건너기만 하면 된다. 산 속에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다가 새벽이 되어 두만강 건너 보이는 중국 땅을 향해 걸음을 내 딛었다. 두만강을 건너는 동안 몇 주간 제대로 먹지도 못한 탁에 저하된 체력 때문에 힘들게 고투해야 했다.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고 팔 다리에 쥐가 나 마비가 오면서 두만강 얼음물이 입과 코로 들어왔고 강을 건넜다는 기쁨도 잠시 등에 있어야 할 동생 수복이는 온데 간데가 없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리느라 동생이 어디로 떠내려 가 버렸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이옥은 날이 밝아 강가를 돌아다니며 동생을 찾으려고 했지만 헛 수고였고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다 정신을 잃었다. 나중 깨어보니 조선족 부락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출되었고 도문 출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도문 친척과 친분을 가진 사람을 만나 도문의 친척과 전화 연결이 되어 아버지 친동생 삼촌과 외숙모가 나타났다.
도문 친척집에서 아코디언을 가르치며 돈을 벌게 되었다. 이옥은 달걀 38개를 한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그렇게 6개월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있을 때 전화가 울린다. 삼촌이 말하길, 남조선 사람이 찾아 간다고 했다.
금새 딩동딩동 울리고 문을 열고 남자가 들어서며 인사를 한다. 자기는 패트릭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모두 뒤 엎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김일성이가, 김일성이가 하면서 헐뜯고 비방하는데 참을 수가 없어 온갖 혈기를 부리며 그 선교사란 남자를 대적했다. 그는 이전에는 두 손에 총을 쥐고 김일성 김정일을 위해 싸웠다면 이제는 두 손에 하나님의 성경책을 쥐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하며, 사명만 바꿨다고 학 지금 빨리 하나님을 영접하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성경책을 펼치고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 라고 읽었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더니 두 손을 꼭 쥐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여-!" 라고 부르짖기도 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강팍한 자매의 마음에 김일성, 김정일의 사단의 세력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 주시고 이 얼음장 같은 자매의 마음에 불같은 성령의 손으로 녹여줄 지어다! 녹여줄 지어다! 오! 까다레스까라 스깔라라 왈랄라라라 불로, 불로, 성령의 불로! 왈랄라라라라. . ."
그의 괴이한 행동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사람은 필시 깨끗이 미친 사람이 틀림없다 라고 이미 마음에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예수나 하나님에 대해서 북한에서도 종종 들어왔는데 약소국가의 침략의 도구이기에 반드시 모두 죽여야 한다고 배웠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자매를 살릴지어다! 살릴지어다!" 대남적개심 3대 고취 교육에 의하자면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수 미제국주의, 남조선 괴로도당, 기독교 예수쟁이는 모두 죽여야 할 대상이다.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방안에 있던 물건들을 그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나가! 당장 나가!" 그러나 그는 물건들을 피하지도 않고 반항도 없이 그저 막지만 했다. 온갖 휭포에도 아랑곳 않고 한참 그렇게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등에다 "야! 오늘 내 손에 맞아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우! 알간? 죽디 않갔으문 다신 오디 말라우! 들었네? 이 미친 사람아!" "예 자매님 너무 죄송합니다. 오늘 일로 자매님이 상처받지 않게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동도 트기 전 초인종이 울린다. 그리고 또 다음날도. 그렇게 매일 그 남자를 쫓아내는 일과를 갖게 되었다. 과일과 떡, 고기를 들고 나타나 거의 5개월간 끊임없이 찾아오는데 정말 독종이었다. 똑같은 문장, 단어 순서로 토시 하나 빠지거나 달라짐 없이 복창을 하고 돌아가는데 미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환란 날에 부르면 구원을 해 주고 부활은 어떤 것이라는 말을 늘어 놓은 뒤 마지막에 가서는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하고 돌아간다. "자매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자매님을 사랑하듯 저도 사랑합니다." "흥 저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늑대들의 행동인가 부디. . . 절대 안 속아!" 그리고 더 신경질 나게 만드는 것은 그 다음 말이다. "자매님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고 우리는 다 주님 앞에서 죄인들입니다." 이옥은 "닥치라우! 당신은 죄인일지 몰라도 난 아니여! . . . 나처럼 청렴하게 살아 본 사람 나와보라 그러시오!" 그러면 그는 "자매님, 자매님 때문에 우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자매님 때문입니다. 자매님 살리시려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시고 피를 토하시며 자매님 때문에 죽으셨단 말씀입니다."
"아니 누가 나 땜에 죽으랬어? 야! 이런 날조도 있나? 예수가 도대체 누구니? 나 너 죽으라 안 그랬어! 관심도 없거든! 아니 죽고 싶으면 혼자 조용히 죽을 것이지. 왜 나 때문이야? 죽겠음 죽고! 난 관심 없단 말야! 제발 좀 억지 부리지 말고 죽고 싶음 날래 혼자 죽으라 그래! 멀쩡한 사람 자꾸 괴롭히며 협박하지 말구! 내 이름은 빼시오! 당장!"
날마다 더욱 극성스럽게 찾아와서 집에 차고 넘치는 바라지도 않는 음식들과 책, 찬양이며, 간증 테이프들을 잔뜩 가져왔다. 거부를 하지만 못이기는 척 받은 것은 찬양 테이프들이었다. "얼마나 아프셨나"라는 찬송가는 북한 영화의 주제가와 흡사했기에 그것을 즐겨 들었다. 그 찬양 테이프 때문에 이옥은 그 선교사와 약간의 말을 주고 받았다. 테이프는 어디서 구한 것이며 가수는 누구이며 등등. 그는 대화 중간에 조금이라도 이옥이 성의를 보이는 듯 하면 어김없이 자기가 하는 기도를 딱 한 번만 따라 해달라고 졸라댔다. "자매님, 오늘은 영접기도 딱 한번만 부탁드립니다. 아니, 힘드시면 저 혼자서 다 하겠으니까 그저 자매님은 마지막 '아멘-' 두 글자만 따라 해 주시면 됩니다. 예? 제발 부탁드립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부인하며 김일성이를 하나님인양 섬기고 살았습니다. 이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제는 주님이 내 맘에 들어 오셔서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저를 주관하여 주십시오. .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매님 지금 하셔야 됩니다. 꼭 한 번 만요 아멘- 한번만 불러 주십시오. 지금이요!"
"아잇! 씷어요. 글쎄, 싫다니까요! 나더러 거 맞아죽을 예수쟁이가 되라는 겁메까?" 끝까지 이옥은 영접기도를 거절했다. 꼬박 5개월을 드나들던 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찾아와서 "자매님, 제가 미련해서 내 신분이 공안에 노출되어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됐습니다. 여기서 제가 잠시 피신을 해야 합니다. 이제 이옥 자매님을 볼 수가 없으니 서운해서 어찌한답니까? 자매님. 흑흑. . . 대신 제가 더 기도하겠습니다. 자매님은 누구보다 꼭 예수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흑흑. . ."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시원한 것 같은데 그는 이옥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자매님!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이 전화번호만은 바뀌지 않습니다. 꼭 외어 두셨다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여기다 전화만 주시면 제가 죽을 힘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언제라도 좋으니 꼭 전화 주십시오. 자매님. 명심하시고 이 번호 기억 하셔야 합니다. 043-275-5704. . ."
. . .
2000년 4월 13일 평온했던 시간은 끝이 나고 말았다. 중무장한 경찰 세 명이 백주 대낮에 학원으로 쳐 들어왔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수갑에 채인채 공안국에 강제 압송당했다. 한 동네에 사는 조선족이 탈북자로 불법 체류자임에도 학원에 학생이 많아 돈벌이가 잘 되는 것을 질투한 것이었다. 심문이 끝나고 감방에 가두면서 공안원은 내일 2시에 이 남양 교두를 통해 북송되게 된다. 각오해라! 고 했다. 그 말을 들었다 철렁 가슴이 내려 앉았지만, 그럼에도 자기를 아껴주는 친척들이 있으니 분명 자기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안도감이 있었다.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어도 친척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지만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이제 친척들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이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감방에서 온갖 난동을 부렸다. 공안들이 달려와 이옥을 묶어 독방에 가두어 버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낙망과 허탈감, 친척들에 대한 배신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증오심이 끓어올라 이를 갈았다.
이제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옥은 자신의 능력으로 그러니까 18일 내내 먹지도 못하고 동생을 업고 죽음과 사투를 벌였던 그 능력, 그런 능력으로 굳게 닫힌 철문도 부셔버리고 탈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북한군대에서 배웠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신에 마력을 골고루 밀집시켜 기합을 넣는 것이다! "야-앗!" 기합과 동시에 온 몸을 날려 머리로 철문을 힘껏 들이 받는다. "쾅!" 내리 받은 부분이 움푹 패였다. 이렇게 다섯 번만 하면 문이 부서질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연거푸 두 번을 내리쳤다. 이옥은 세 번째 머리를 박고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얼마큼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이 들었다. 양쪽 눈이 빠져나갈 듯 아프고 어지러움과 두통, 메스꺼움에 구역질이 나고 이마는 찢어져 피가 바닥에 흥건하다. 자신의 한계 앞에 절망감이 밀려온다.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탈진되었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그 순간에 이옥의 귓가에 조용히 맴도는 멜로디가 있었으니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 ." 이었다. 그 찬양소리와 함께 패트릭 목사의 음성이 들린다. ". . . 모두 자매님 때문입니다. 제발 아멘 한 번만 좀 따라해 주세요. 자매님을 살리시려고 우리 예수님이 옆구리에 창을 찔리시고 피를 토하시며 자매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자매님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고통과 수난의 상황들이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이 공간 안에서 막 벌어지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실로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렇게 무시했던 그 선교사의 눈물어린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가 되어 한 뜸, 한 뜸 찌르는 듯 했다. 친척들에 대한 복수심도 눈녹듯 사라졌고 이제는 오직 마지막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던 목사의 모습만 눈앞에 어른 거렸다.
"목사님! 보고 싶어요. 흑흑 . . . 내래 잘못했시오. 용서해 주시라요. 너무 보고 싶어요. 흑흑. . ." 염치없는 행동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야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100번이라도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동안 그에게 저질렀던 지난 날의 잘못을 고백해야 죽더라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옥의 눈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군인들의 희롱과 능욕을 당하여 이제는 더 이상 물도 피도 흘릴 것이 없는 한 사람의 형상이 감방 한 구석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비벼 뜨면 없어지고 눈을 감으면 손 끝에 만져질 듯 하여 눈을 뜨고 보는 것보다 더 생생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신음소리가 이옥의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그만 심정이 멎을 것 같았다. "예수니-임! 예수니-임! 나 살려주세요. 나 안 죽을래요. 예수님이 살려주시면 이제부터 예수님 믿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싫어요! 안 죽을래요! 살려 주세요-!"
짧은 시간동안 기력을 다해 얼마나 불렀는지 목에 불이 붙은 듯 따끔거리고 나오는 기침마다 피가래가 섞여 있다. 그 때 이옥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평생 배신하지 않고 이옥 편이 되어 줄 사람, 이옥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도 친척도 아닌 바로 그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의 시간에 이옥과 함께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그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선교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매님, 우리는 다 죄인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 음성 뒤로 또 다른 음성이 들려온다. "옥이야,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죄인이다. 그러나 너를 사랑한다. . ." 고통 받으며 피 흘리고 있는 예수님의 음성이었다.
"예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아프지 마시라요. 제가 다 고칠게요. 죽지 마시라요. 내래 다 잘못했습니다. 고칠게요. 죽지 마세요!"
단 1초라도 빨리 모든 잘못을 고백해야만 예수님의 고통이 멎을 것 같아 이옥은 미친듯이 발버둥 치며 잘못했던 모든 일을 뉘우치고 회개했다. 죄를 고백하면 할수록 자신의 추악한 모습에 그 자리에서 죽고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럴수록 어릴 적 저질렀던 소소한 잘못까지 새록새록 떠 올랐다. 기억에 조차 없었던 죄의 기억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자신의 추악함에 이옥은 온 몸에 전율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이옥의 입에서는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방언이 터진 것이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 깊은 가슴 속에서 위로와 평강, 기쁨의 감격이 솟구쳐 올랐다. 분명 혼자가 아니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이 순간에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면서 말할 수 없는 감동과 환희가 밀려왔다.
그 때 삐이익 하는 쇳소리와 철문이 열렸다. 오후 2시가 된 것이다. 두 명의 공안이 이옥의 모습을 보더니 코를 쥐며 짜증서럽다는 듯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옥이 토해 놓은 온갖 오물을 다시 온 몸으로 뭉개고 뒤집어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이옥의 머리통을 밟고 짓이겨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옥은 자신을 때리는 그들이 조금도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가슴을 심하게 발로 걷어차서 숨도 쉬기 어려웠지만 마음만은 평안하였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옥을 머리와 다리 양쪽에서 들어 변방으로 나가는 트럭에 획 하고 던져 버렸다. 거기에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울고불며 공안에 매달리며 애원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차가 움직이고 이옥은 누운 채로 가만히 하늘을 본다. 어쩌면 구름 한 조각 없이 파랗고 맑은지 저렇게 예쁜 하늘은 난생 처음이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이 꼭 이옥의 마음을 다 알아주는 듯 하여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는데 공안 하나가 차를 체운다. "잠깐! 잠깐! 멈춰 서! 멈춰 서!" "무슨 일이야?" "너네 먼저 가라! 저 애는 1시간 후에 다시 따라 갈거다!"
공안이 이옥을 끌어내려 공안국장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공안국장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한참을 뚫어져라 실피더니 질문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내가 너를 보니 어쩜 이렇게 내 딸과 똑같은지. . ." "몇살이냐?" "22살이요" "이런 나이도 똑같네!" 공안국장이 흥분하여 이옥을 덥석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어찌다 이 꼴이 되었냐며 아빠 가슴이 아파 죽겠다며 자신의 가슴을 쿵쿵 소리가 나도록 쳤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난생 첨 보는 사람이 자기 딸이라고 부둥켜 안고 우는데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잠잠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너도 살고 나도 살자!" 국장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밤이 되자 감방 안에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잠이 들었었는데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깼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죽이며 이옥을 향해 다가와 익숙한 동작으로 팔과 다리에 채워진 족쉐를 풀고 일으켜 손목을 잡고 거침없이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보초막을 통과하고 육교를 넘어 등불이 희미한 어느 다방에 앉았다. 그제서야 얼굴을 보니 그 공안국장이었다. "자 물 마셔라!" 물을 받아 마시는 이옥을 향해 그 자신과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도문 땅을 오늘 밤 안으로 떠냐야 한다고 갈 곳이 있는지 전화할 곳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 순간 뇌리에 스치는 번호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 선교사가 손에 쥐어 주고 갔던 그 번호였다.
이옥은 그 선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으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사님. . . 흑흑 저 옥이예요. 보고 싶어요. . . 흑흑. . ." "할렐루야! 할렐루야!" 목사는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한 걸음에 목사는 달려와서 이옥을 데리고 연길 동시장 쪽의 한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옥 자매. 여기에는 모두 자매처럼 북한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자매가 먼저 문 열고 들어가 봐요. 반가워들 할거예요. 내가 이런 자매 온다고 알렸거든요. 허허." 무덤덤하게 이옥은 시키는대로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누나!"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에 전율이 흐르고 숨이 멎는 듯 했다. "나 수복이야! 수복이!" "어마나! 수복아! 이게 꿈이가 생시가? 너 죽디 않구 살아 있었구나! 수복아!" 동생과 이옥은 꿈 같은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아 서로 부둥켜 안고 얼굴을 비비며 보고 또 다시 보고 서로를 만졌다. 주변에 함께 있던 이들도 저들처럼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누나와 나는 하나님이 살려주셨어! 엉엉. . ." 수복이는 두만강에서 의식을 잃고 둥둥 떠내려 가서 삼가자라는 하류 지역에 이르러 한 조선족 벌목공을 통해 뗏목과 함께 쇠고랑에 끌려 올려졌다. 조선족의 알선으로 목사님을 만나 이옥보다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누나를 만난 그 시간까지 아침 금식을 하면서 머리칼 하나 손톱 하나 다치지 않고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울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말하자면 선교센터로 탈북자 14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앙훈련을 받으며 북한에 들어갈 사명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곳에서 기도하는 법, 성경 말씀 등 신앙훈련을 받다가 이옥 자매는 한 탈북자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는 한국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도 마쳤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 선교사의 헌신적인 씨 뿌림을 통해서 이옥 자매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이제는 자기도 씨를 뿌리는 자로 선 것이다.
땅은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성령님은 전도자가 뿌린 말씀의 씨에 역사하시어 말씀의 씨가 뿌려진 그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믿음에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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