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정치군사 지상 천년왕국

중일사랑 2015. 3. 8. 16:08

정치군사 지상 천년왕국 (그릇된 사고)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


이 본문은 상징성을 생명으로 하는 묵시 문학 장르의 일부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이 본문은 문자적이 아니라 상징적 메시지를 파악하고자 해야 한다. 묵시 문학은 환상을 매개체로 현상 세계 이면의 영적 세계를 보여준다. 계시록은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 때까지의 사건을 보여주는데 현상 세계 이면의 영적 세계의 모습이다. 왜 신약 시대 전체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시발점과 종점이 분명하게 계시록에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림 이후 영원세계도 암시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계시록이 제시하는 주요 내용은 초림에서 재림 때까지 교회와 세상 혹 사단의 세력간의 영적 전쟁인데, 그 영적 전쟁은 현상 세계 배후에 놓인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단 1,000년이란 수자가 상징적 의미를 전달한다. 10이란 손가락이나 발가락 숫자의 수치에 해당되어, 완전을 의미한다. 9라면 10에서 1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1,000은 10의 3승이니 아주 최고의 완전함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는 어떤 기간을 지시한다. 그 기간은 물론 신약시대 전체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첫째 부활"이 있다. 이 첫째 부활은 "둘째 사망"과 연결되었다 (6절). 둘째 사망은 영적 사망, 곧 불못에서의 영원한 고통을 지시한다.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란 점은 첫째 부활이 영적 부활 곧 성령님으로 거듭남을 지시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런데 둘째 부활이란 표현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첫째 부활에 대조되는 육체적 부활을 지시할 것이고, 역시 성경에 나타나지 않으나 첫째 사망은 육체적 사망, 생물학적 사망을 지시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째 부활 (영적 부활/ 중생) ---------- 둘째 사망에 (불못) 떨어지지 않는다

둘째 부활 (육체 부활) --------------- 첫째 사망 (육체적 죽음)

도식이 성립될 것이다.

여기서 보좌에 앉은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고, 이들이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 그리고 저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그런데 계시록 자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지금 세상 임금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ho arcwn twn basilewn tes ges 계 1:5).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으로 (KJV, kings and priests; EIN, er hat uns zu Königen gemacht und zu Priestern vor Gott; Delitzsch의 신약 히브리어 번역에서 melakim ve kohanim)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예수님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고 있다 (계 1:5-6). 여기서 우리는 이미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왕들과 제사장들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현재 죄에서 해방된 성도들이 왕이며 제사장이다. 이런 사고는 베드로 사도나 (벧전 2:9), 사도 바울의 사고에서도 (엡 2:5-6) 나타나는 바이다. 우리 성도는 이미 왕이며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통치하고 있다! 그분의 메시아 왕적 통치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죄와 사단의 세력에 대한 통치이며 복음을 선포와 치유 기적, 축사 등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영혼들을 죄와 사단의 세력에서 건져내고 말씀으로 양육하여 세우는 일이 우리의 왕적 제사장적 사역의 일부이다. 


이 상징성을 특징으로 하는 묵시 문학의 본문은 분명 영적으로 중생한 (부활한) 성도들이 지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로마 제국의 핍박 하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 없었다.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듯 해도 실제적인 통치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성도들도 그의 통치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의 통치는 영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기 천년왕국 통치가 순교한 자들이 주님 재림 때까지 천국에서 주님의 메시아 통치에 참여하는 것을 지시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 이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별로 와 닿을 수 없는 해석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세상을 정복하고 통치해야 할 왕이며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제사장이라 함이 훨씬 현실적이고 목회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해에 근거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어떤 지위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왕이요 제사장의 신분에 걸맞는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 즉 성령충만을 얻고 그분의 권능과 지혜로 충만함을 얻어서 이 세상의 질병과 사단의 세력을 제거하고 악의 세력을 대적하고 복음으로 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내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넘친다면, 나를 통해서 사도들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신유의 역사 축사의 역사가 나타나며 말씀의 권능이 나타난다면 나는 과연 영적인 왕적 권세를 행사한다는 사실에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본문을 미래에 재림 이후에 지상에 재건되리라 가정된 그 지상 천년왕국 다윗 왕국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는 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성도들을 너무나 잘못된 길로 오도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함으로 왕적 권세를 행사해야 하고 제사장으로서 그분을 경배드려야 마땅한데, 우리의 현재적 책무를 망각하게 하고 태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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