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불을 받는 일

중일사랑 2015. 4. 8. 09:54

어떤 수강생님의 질문:

교수님은 불을 받았다, 기도하시면서 불을 받는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답변:

불은 말 그대로 성령님의 불인데, 성령체험이라고 할까요? 불덩이가 날아와서 내 가슴팍을 치거나 뜨거움이 온 몸을 감싸거나 아무튼 그 경험은 해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지요
불을 받는다는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딱히 뭐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군요. 그런데 그런 체험을 매일 기도하면서 하게 되면 어떤 영향이 나타나느냐? 이것이 중요하겠지요 한 마디로 머리가 확 맑아져 버립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 상쾌함과 자신감 그리고 하늘의 기쁨이 온 맘과 몸을 채워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된 상태에서 말이나 글을 쓰게 되면 그렇게 멋지게 될 수가 없어요. 설교도 마찬가지겠지요. 
지적으로 하늘의 지혜로 채워지고 영적으로 하늘 기쁨으로 채워지고 육적으로 세상적인 욕망에서 자유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자유와 자신 확신과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니 힌이란 부흥사를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하던데 그런 사람의 집회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래 쓰러져서 어떻다는 거야? 라고 하는 말도 들어 봤습니다. 쓰러진다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바람과 같은 역사 앞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그렇게 쓰러진 상태에서 말하자면 불을 받은 것이지요. 그런 상태는 정말 황홀하고 충만하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터질것 같은 기쁨으로 넘쳐나지요
나는 그래요 신학을 하되 정통신학을 하고 (칼빈이나 어거스틴을 기준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그런 노선에 서서 지속적으로 새롭게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기도나 전도 목회 실제 현장에서는 순복음의 요소가 많이 필요하다고 봐요. 많이 알려진 벌콥의 조직신학책은 정통 칼빈주의 혹 개혁주의 신학서적으로 너무나 좋습니다. 그 책은 화란의 헬만 바빙크의 4권 조직신학 책을 번역하다시피해서 집필된 책이지요. 그런데 제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벌콥 조직신학 (영어 원문에서) 602페이지라 기억되는데, 방언이나 각종 은사를 초대 교회에 국한된 현상이라 못 박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초창기라 그런 초자연적 은사가 필요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런 것이 필요없다고 합니다. 잘못된 생각이고 아주 근본적으로 잘못된 성경 이해입니다. 성경에 어디 그런 근거가 있나요? 그런 사고를 가지면 목회를 못합니다. 목회는 완전 실패에요. 말씀 중심으로 하면 된다고 하는데 말씀은 기준이고 재료이지만 그 재료를 맛있고 영양가 있고 살리는 음식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성령님의 충만과 기름 부으심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학은 어거스틴 칼빈 헬만 바빙크 벌콥 노선으로 정통신학을 하고 실천은 기도 많이하고 은사들도 받아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단들을 따지지 말고 신학을 바로 세웠으면 여러 교단의 좋은 점들을 섭취하고자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