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난 비밀
엡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세대주의 신학의 뼈대와 출발점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와 이스라엘의 예리한 구분, 과도한 문자적 해석 등을 그 특징이라 지적하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은 무엇보다 엡 3:5-6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난 두 다른 방식의 예언 성취라고 보인다. 세대주의가 말하는 두 다른 방식의 예언 성취란, 구약 예언들은 현재 신약 시대에 일부 성취되거나 전혀 성취되지 않고 오직 저들이 가정하는 주님 재림 이후에 지상에 재건될 정치 군사적 성격의 다윗 왕국 곧 천년 왕국 시대에 온전히 실현되리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신약시대의 예언 성취 방식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엡 3:6),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셨다는 (엡 2:18)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구약식 예언 성취 방식은 이스라엘에 관한 구약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세대주의자들이 가정하는 재림 이후에 재건될 다윗 왕국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신약의 성취는 이방인과 유대인 성도가 한 새 사람이 되어 함께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라면, 구약식 성취 방식은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이 재건되고 성전이 재건되어 이방인들이 거기로 직접 순례 여행을 하여 성전에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유대인들을 섬김으로 구원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후자의 방식은 구약 예언대로, 유대인이 1등 국민이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굴복하여 저들이 양치는 목자가 되거나 농부, 포도원지기 정도가 되어 섬기는 3등 국민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치 군사 메시아 왕으로서 유대인을 다윗 보좌에 앉아 통치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모두 굴복시켜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를 것이고 (온 세상) 그는 철장 권세로 온 세상을 깨뜨리고 굴복시켜 통치하시리라 한다.
반면 신약적 예언 성취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한 새 사람을 이루어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기독인이라는 제3 종족), 저들이 함께 상속자, 함께 지체,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함께 아버지께로 한 성령님 안에서 나아가는 것이다. 구약적 예언대로라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한 교회를 구성하고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중심의 다윗 왕국 체제에 이방인들이 멀리서 예물을 가지고 찾아와서 경배하고 유대인들에게 굴복하고 섬기는 유대인 중심 세상이다.
세대주의 신학이 핵심은 바로 이런 이중적 예언 성취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주님이 다윗 왕국을 예루살렘에 재건하고 유대인들을 왕으로서 통치하고자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영접하지 아니하고 그를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기에, 예수님은 "할 수 없지!" 하시고, 원래 구약 예언들의 문자적 성취는 "내가 다시 올 그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 시대로 미루고, 이제 급하니 구약 예언에 없던 방식으로, 곧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도록 하여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구성하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한다!" 라고 급히 계획을 변경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다 한다. 이리하여 구약 예언에 전혀 없던 "교회" 체제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구약 예언에도 없는 신약 시대의 교회 시대는 그러므로 세대주의 신학에서 "괄호시대"로 처리되고, 이 세대에 일어나는 일들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배척한 결과로 부랴부랴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대주의 신학이 이렇게 보는 근거가 바로 엡 3:5-6이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지금 신약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은 오직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님으로 주어진 계시이고 이것이 이전 시대들에는 감추어졌다 이제 나타난 "비밀"이라 한다. 이전 세대 사람들에게 숨겨졌던 그 계시의 핵심 내용이 엡 3:6이라 한다. 곧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는 현재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구원 방식이다. 구약 예언대로라면, 예루살렘에 재건된 다윗 왕국 중심의 유대인 중심 세상에, 이방인들이 찾아가서 경배하고 굴복하며 유대인들을 섬기는 구원방식이, 신약시대에는 이방인이 유대인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엡 3:5에서 사용된 "(나타내신 것) 같이"라는 (hos) 접속사를 절대적 단절의 의미로 취하는 것이다. 곧 지금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들에는 (곧 구약 시대)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등하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런 진리를 드러낸 바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세대주의를 제한 나머지 신학체계에서는 그 "같이"라는 접속사를 상대적 비교의 의미로 취한다. 곧 지금 나타내신 것과 같은 그 정도로는 이전 세대들에는 나타내시지 않았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도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 경배하는 방식의 구원을 말씀했지만, 지금 나타난 바처럼 그렇게 분명하고 명백하게 계시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엡 3:5-6을 근거로 구약적 예언 성취방식과 신약적 성취 방식을 구분하고, 신약교회에 관한 계시는 사도 바울이나 사도들에게 오로지 주어진 것으로, 구약 예언과 무관하다고 한다. 이스라엘에 관한 구약 예언들은 문자적으로 재림 이후 지상에 재건된 다윗 왕국을 통해 성취되리라 한다. 이런 식의 성경 해석은 세대주의 학자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아니하는 아주 기이하고 이상한 해석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신약 교회를 임시방편으로 부랴부랴 원래 구약에 주어졌던 계획을 변경시켜 급조하시는 분이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관하여, 엡 1:3-5에서 사도는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엡 1:1에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불려진 편지 수신자들과 편지를 보내는 사도 바울을 모두 지칭한다. 따라서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신약 교회 성도들과 사실상 동일한 실체들이며, 이 교회 성도들은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이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는 구약 예언에도 없는 사항이며, 신약 사도들에게 처음 계시된 바라고 하는 세대주의 해석은 아예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구약 예언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교회를 통해서 성취되었고, 성취 도중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가 함께 한 새 인류를 이루어 성령님으로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 공동체이다. 비록 구약에서는 예언의 성격상, 그 시대적 관례와 지리적 배경을 가지고 그 당대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예언이 주어졌지만, 그 예언이 포함한 미래적 사항들은 구원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구약 예언의 모습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즉 예언은 그 시대적 조건들로 제약되어지는 까닭에 그것이 성취될 때는 이미 그 원래 모습에서 훨씬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구약 시대에는 유대적 관례대로 혹은 고대 근동 세계인들에게 익숙한 사고 방식대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이 굴복하고 유대인들이 종이 되는 방식으로 이방인들이 묘사된다.
사 60:14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사 49: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슥 8: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사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이것은 그 당대 상황에 의해 제약된 예언 방식일 뿐 그 성취에서 곧 신약시대 교회 현장에서 그렇게 유대인에게 이방인들이 굴복하는 방식으로 혹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먼 길을 여행하여 거기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방식으로 혹은 야웨의 산 곧 시온 산으로 이방인들이 물밀 듯 모여드는 방식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경배하며 그렇게 (마치 구약 시대 유대교 개종자들이 성전에로 올라가 경배하듯 -행 8장의 구스 내시 참조) 이방인들의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방금 우리가 제시한 여러 구약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저 중동 예루살렘에 재건된 다윗 왕국과 새롭게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성취되리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구약 예언에 대한 문자적 해석은 구약 예언의 구약적 제약으로 조건지워진 성격을 오해한데서 기인된 것이다. 구약 예언들은 제시된 겉옷과 그것이 품고 있는 알맹이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겉옷과 알맹이의 원리"라 한다. 겉옷이 아무리 유대적이고 구약적 방식으로 표현되었어도 그 알맹이는 어디까지나 신약 교회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금 제시된 그런 구약 구절들은 현재 교회에서 성취되었고 성취 도중에 있는 사건들에 대한 예언들을 담고 있다.
예컨대, 사 2:2-4은 현재 열방이 교회로 (곧 신약의 시온산, 히 12:22이하) 모여드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고, 전쟁을 연습치 않는다는 것은 재림 이후에 나타날 최종 완성된 메시아 왕국의 모습이다. 그리고 슥 8장에 묘사된 바, 곧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이 옷을 붙잡고 우리도 너희와 같이 가겠다고 사정하는 방식으로 혹은 슥 14장에 묘사된 대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초막절을 지키는 방식으로 구원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미 초막절이란 절기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 성취되었고 이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며 경배하기 때문이다. ]
세대주의 성경 해석의 고전이 된 듯한 (달라스 신학교 교수들 중심으로 집필), Bible Knowledge 성경 주석의 슥 8:20-23 부분에서 주석가는 말하길, 앞으로 재림 이후에 나타날 그 천년왕국 시대에 온 세상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합세할 터인데 그것은 유대인이 야웨 하나님과 가진 관계 때문이라 하고,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했다 (8절). 그래서 많은 열방이 천년왕국 때에는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라 했다 (슥 14:16-19, 사 2:3).
그리고 방금 언급한 그 성경 지식 주석 이사야 49:22-26 부분에서는 장차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귀환하면 이방인들이 야웨 앞에서 경배하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호적이 되리라고 했다. 심지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팔레스틴으로 운송하는 것을 돕기까지 할 것이고, 이방인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게 아첨할 것이라 한다. 이스라엘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 야웨께서 실제로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구나! 라고 깨달을 것이라 한다 (23절).
또한 사 60장에서도 Bible Knowledge 주석은 말하길, 이 부분은 천년왕국 시대를 묘사한다고 하고, 천년왕국 초기에 이스라엘이 고토로 다시 모아질 것이고, 그 자녀들도 먼 원방에서 온다고 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구속받은 백성이 (5절; 마 25:31-46에 묘사된 "양"이라 한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과 함께 경배하고자 하기 때문에 기뻐하리라 한다. 그 이방인들은 금, 향, 가축 떼, 수양, 은과 같은 (사 60:6-7, 9) 세상 재물을 이스라엘로 가져 오리라 한다 (사 60;11, 61:6, 학 2:7-8, 슥 14:14). 그 이방인들은 미디안 (사해 남단), 에바 (미디안 족속 일파), 스바 (아라비아 남서부 Sabeans), 게바 (아라비아 북부), 느바이옷 (아라비아 부족), 다시스 (스페인 남서부) 등이 대표적이며, 다시스의 배는 재물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도 싣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런 재물들 중 일부는 예물들로 드리고 (60:7), 일부는 천년왕국 성전을 (겔 40-43장) 꾸미는 데 사용하는데 (60:13), 급히 이스라엘로 운송된 이런 세상 재물은 야웨를 영예롭게 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세상의 정치, 경제, 종교, 사회 구조상 세계의 최고 지위를 점하리라 한다 (60:10-14). 이방인들과 왕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조력하며, 세상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재물은 끊임없이 강물처럼 지속될 것이며 (60:11), 이스라엘을 대항하려는 어떤 나라건 하나님이 패배시키리라 한다 (12절). 심지어 레바논의 재목도 성전 건축을 위해 운송되며 이전에 이스라엘을 멸시했던 나라 백성들도 예루살렘/ 시온을 하나님이 선택한 도성, 그분이 거하시는 곳이라 인정하리라 한다. 그 때가 되면 세상의 금은만 아니라 구리와 철도 예루살렘으로 운송되는데 (사 60:17-22), 예루살렘은 평화롭고 기쁨이 가득하리라 한다. 야웨께서 그 성을 지키시고 그 백성은 무수하고 (22절) 의롭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 한다 (21절). 그 천년왕국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지상 낙원이 되리라 한다.
이런 식의 세대주의 구약 예언 해석이 우리를 아주 슬프게 만든다. 왜 이들은 구약 예언이 현재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에서 모두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주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주석들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현혹시키고 잘못된 길로 오도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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