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창 23:4에서 헷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자신이 이방인이요 (게르) 나그네라 (토샤브) 고백한다.
야곱은 창 47:9에서 애굽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의 나그네 생이 130년이라 (šünê mügûray šülöšîm ûmü´at šänâ mü`a†) 고백했다.
이런 족장들의 고백은 자신들이 원래 고향에서 떠나 이방 땅에 객으로 와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만약 그런 지상적인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왜 저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돌아가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히 11:14-15).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 족장들이 염두에 두었던 고향은 자신들이 태어났던 어떤 장소나 친척이 사는 어떤 곳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처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였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히 11:16). 이는 비단 추론만 아니라,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같은 신앙 인물들이 실제로 생애의 특정 시점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원한 본향을 깨닫게 되었음을 증거하는 성령님의 증언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에는 200만이 넘는 외국인이 거주한다고 한다.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체류외국인 1,576,034 1,797,618 1,899,519 2,049,441 2,180,498명
- 장기체류 1,219,192 1,377,945 1,467,873 1,530,539 1,583,099
- 단기체류 356,842 419,673 431,646 518,902 597,399
불법체류자 183,106 208,778 214,168 208,971 251,041
2017년 기준해서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한다면, 이미 우리나라에는 2백43만1천명 이상이 거주하는 셈이다. 곧 300만명을 돌파하리라 한다. 전체 인구가 5천만이라면, 300만 외국인이라면, 5천만 한국 인구의 16퍼센트에 달한다. 출애굽 당시 애굽인구와 이스라엘 인구 비율이 얼마였는지 모르나, 외국인의 폭증은 나라 안보에 큰 위협이 될지 아니면 안보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외국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태어나지 아니했기에 우리의 문화와 전통, 언어 등에 이질적인 사람들이 외국인라 하자. 그런데 오늘날 통상적으로 열차에서 만나는 외국인은 미군과 연관된 미국인들이거나 아니면 돈을 벌고자 찾아 온 중국이나 동남아 사람들이다 대부분이다. 물론 관광 목적으로 찾아 온 사람들도 다수이나 저들은 며칠 머물고 돌아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얼굴이 가무잡잡한 이방인들을 대하면 선입견이 아, 저 사람은 못 사는 나라에서 돈 벌려 왔구나 하면서 속으로 경멸하는 마음을 누구나 가진다 (내 편견인지 모르나). 아니면 이목이 준수한 금발 머리 여자나 남자들을 보면 그런 경멸감 대신에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서구 선진구 사람들이로구나 하면서 선망의 생각을 갖는다 (이것 역시 내 편견일 수 있지만). 경멸이나 선망의 마음은 갖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단 서구인의 모습이냐? 아니면 동남아 사람 유형이냐? 에 따라서 우리는 편향적인 시각을 그들에 대해 가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 타락한 인간들의 간사한 성향이다. 나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이라면 깔보고 나보다 강하고 잘 사는 나라 사람이라면 우러러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 이런 현상은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레 25:2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 모두가 나그네이고 내 땅에 세들어 사는 전세입자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gerim) 우거하는 자로서 (toshabim)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이 땅의 소유권이 없고 하나님의 땅에 임지 체류자이거나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 한국인 성도들도 이방인들을 대할 때 너도 외국인 나도 외국인,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외국인 나그네에 불과한 존재임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어떤 편견이 없이 대함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사람의 국적이나 피부 색깔 혹은 그들의 재산의 유무나 얼굴의 모양이나 아름다움에 따라서 판단하실까? 그분은 마음과 행위를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시 33:15);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그분이 보시는 우리의 마음과 행위에, 이방인이란 특징이 새겨져 있겠는가? 우리 마음을 분해했을 때, 거기에 서구인이라거나 동양인 혹은 가난한 나라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을까? 오히려 그 마음이 은혜로 변화된 것인지 죄악된 것인지가 구분되지 않겠는가? 그분이 보시는 바는 우리의 마음이 과연 그분 앞에서 온전한가? 하는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주여, 나로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하옵시고 성령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에 완전 순종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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