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성경신학 개괄 후반

중일사랑 2020. 4. 14. 16:32

우리가 사는 현 시대는 구약 예언들이 성취되는 성취의 시대이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구원되고) 열방이 구원에 참여하는 회복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사 11:1-10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시대이다. 이 시대의 마지막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죄와 저주로 이그러진 현 세상이 새롭게 회복되고 자연계의 완전 조화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하 부분은 우리 성경 신학의 "개괄" 글을 (본 사이트에 있음) 보충해서 뒷 부분만 여기로 가져 온 것이다.



제 5부 회복과 성취의 시대


새 시대의 여명과 천국의 도래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출생하신 주전 4년 경의 유대 나라의 형편은 로마 식민지로 유대인들이 압제와 신음 가운데 구약 선지자들이 예고했던 그 다윗 후손 왕 메시아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당하고 성전도 파괴당했다. 그리고 상층 계층은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하층민들만 농사를 지어 세금을 바치도록 남겨졌다. 

주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중동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유대인 해방령을 내려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렘 25장) 70년 바벨론 포로생활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주전 332년에는 마케도냐의 대왕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중동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흘러 주전 63년에는 로마가 마케도냐를 대신해서 중동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주님이 태어나신 그 시점에는 로마의 권세가 최 정점에 이르른 때였다. 아우구스투스라는 (Augustus; Latin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 63BC–AD14) 총명한 지도자가 출현하여 그야말로 로마의 평화 (Pax Romana) 시대 초석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Roman Republic and Pax Romana - Chapter 10 Rome


바로 로마의 평화 시대에 주님이 태어나셨다. 하지만 그 대국적 견지에서 인류의 평화를 위해 로마가 이룩한 위업과 달리, 유대인들에게 로마인들은 여전히 이방인 세력이었고 압제자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주전 168년 당시 자신들을 통치하던 마케도냐 세력인 셀루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게릴라 전쟁으로 당대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대적했고, 마침내 주전 143년에는 독립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게릴라 전쟁을 주도한 마카비 가문이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워 약 80년간 반짝 독립을 향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 장군의 침공에 유대 왕국은 무너졌고,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볼 때, 주님 태어난 당시 유대인들은 반짝 독립의 기간을 제하면 거의 500년 가까이 이방인의 지배하에 살아온 것이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그냥 강한 나라의 일부로 흡수되고 동화될 법도 하지만, 그들이 가졌던 그 천적 신앙 덕분에 여전히 자신들을 이방인들의 손에서 해방시켜 줄 다윗 왕 메시아를 학수고대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그러한 기대는 렘 23:5과 같은 예언에 근거한 것이었다:

렘 23:5-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구약 왕정시대에 '메시아'란 말은 오직 현직 왕을 지칭하는 칭호였으나 유대 나라가 주전 586년 바벨론 군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에는 더 이상 메시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추방 시기 어느 때부터 앞서 언급한 그런 구절 예언에 근거해서 "메시아"란 말을 장차 다윗 후손 중에서 나타나 다윗 왕국을 재건하고 (암 9:11이하) 자신들을 이방인들의 압제에서 건져 낼 왕을 지칭하게 되었다. 신약에서 사용되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역이고 바로 이 장차 나타날 다윗 후손 왕을 지칭하는 의미이다. 

 

메시야의 즉위와 통치

다윗 후손 요셉의 후손으로 (법적인 후손에 불과하였지만) 태어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 '메시아'로 오신 것이다. 30년간 목수의 가정에서 섬기다가, 이제 3년간 정도를 공적인 사역, 곧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의 메시아 사역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시작되었다. 


그 세례식은 사실 그분의 메시아 왕 즉위식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비공식적인 것이긴 했어도 엄연히 메시아 왕으로의 즉위식이었다. 그 때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하나님의 선포가 있었다 (막 1:11이하 참조). 이는 구약 시대 다윗 후손이 왕으로 즉위할 때, 대 제사장이 기름을 다윗 후손 머리에 붓고 선지자가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선언하는 즉위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 다윗 후손은 기혼 샘으로 가서 목욕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상 1:32이하 참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일이 그와 유사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여하간 구약 시대 다윗 후손의 왕 즉위식은 하나님의 아들로의 (천자) 입양식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아 왕으로 즉위한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게 된다 (마 4장과 병행절 참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라는 마귀의 말은 곧 네가 다윗 후손 메시아 왕이라면 이라는 의미이다. 메시아는 세 가지 면에서 시험을 받는다. 먹는 문제, 그리고 백성에게 환호를 받는 능력의 문제, 그리고 세상 천하 왕국의 영광을 얻는 문제 등. 

주님의 광야에서의 40일간의 금식 고난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간 방랑하며 당했던 고난을 상기시킨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시대는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주어 먹였던 모세 시대의 특징들을 재현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예수님은 다윗 후손 왕 메시아일 뿐 아니라, 모세같은 선지자 메시아였다. 그러므로 사탄의 시험은 이전에 광야에서 만나를 내렸던 그 모세의 기적을 재현하라는 요청이었다. 

예수님은 마귀의 첫 시험에 대하여 신 8:3을 인용하여 응수하셨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간을 방랑하면서 살아야 했다. 광야 생활은 저들을 낮추고 저들을 연단시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법을 훈련받는 기간이기도 했다.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의 창설자로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복할 수 없었다. 


둘째 시험에서 마귀는 시 91:11-12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다른 방면에서 공격했다. 

시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그런데 사단의 성경 인용과 적용에서 결정적으로 왜곡하는 그 무엇이 하나 들어 있다. 그것은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는 시 91:11에서 사단은 “네 모든 길에”를 생략하고 나머지만 인용했다. 이것이 왜 결정적인 왜곡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자를 천사들을 보내어 보호하신다는 약속은 그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그 모든 길에서” 걸어갈 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지금 마귀가 시험하듯, 아무 이유도 의미도 없이 단지 과시할 목적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군중들이 운집한 마당으로 훌쩍 뛰어 내린다면, 그것은 메시아가 걸어야 할 마땅한 길은 결코 아닌 것이다. 마귀의 요청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 6:16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응수하셨다: “너희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셋째 시험에서 마귀는 세상 왕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면 모든 세상 권세를 주겠다는 것이다. 마귀는 아담의 타락 이래로 세상 임금으로 군림해 왔다. 메시아는 구약의 예언대로 하면, 다윗 후손으로 오셔서 세상을 모두 지배할 것이었다 (시 2:6-8, 72:8이하 참조). 주님 당대 유대인들은 다윗 후손 왕 메시아가 오면 원수들에게서 유대인들을 건져내고 열방을 다 제압하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리라 기대하고 있었고,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무엇보다 따라서 정치적 군사적 영웅이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리는 고난당하는 '야웨의 종'의 모습과 같은 제사장 메시아 사고는 없었다. 마귀가 제안하는 바가 바로 당대 유대인들이 가졌던 그 정치 군사 메시아, 즉 십자가 없는 세상 열방을 통치하는 대왕의 모습이었다. 세상의 죄를 제거하지 아니하고 보이는 세상 열국을 통치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바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바이고 여기 마귀가 제안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신 6:13을 인용하여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선언하신다. 사단을 경배하고 세상 열방과 그 영광을 차지하는 일은 우상숭배이고, 이것이 바로 광야의 이스라엘이 빠졌던 시험이었다.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여기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하셨다.


이렇게 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고 1차적으로 승리하신 메시아는 이제 3년 여 기간 동안 지상 메시아 사역에 돌입하셨다. 

그분의 공식적 메시아 왕으로 즉위식은 계 5장이 환상으로 보여주듯, 마 28:18이하가 예기적으로 말씀하듯, 부활 승천 이후에 하늘 궁중에서 일어났다. 롬 1:3-4에서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역)

라 할 때, 하늘 궁중에서 일어난 입양식, 곧 다윗 후손 메시아 왕의 공적 즉위식을 언급한 것이다. 육신적으로 다윗 후손 (메시아 왕의 조건), 성령님으로는 부활 후에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실제 메시아 왕으로 선포). 


메시아의 지상 사역

1) 천국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복음 전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이스라엘의 회복 시작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마귀가 지배하던 세상에 우주적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받아 여타 열방과 달리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 오긴 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직접 강림하셔서 통치하신다. 시 93편 이하 소위 '야웨 왕권 시들'이나 이사야 40:10-11 등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시 96:13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통치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통치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통치하시리라)


사 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 나라/ 통치의 성격은 천국에 관한 비유들이 (마 13장) 드러내어 준다. 그분의 통치는 오늘날 성령님과 복음 전파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일어나서 구원받고 (남은 자만), 열방이 구원에 참여하는 메시아 통치 시대이다. 이 메시아 통치가 곧 하나님의 통치이기도 하다. 하나님 아들의 나라 = 하나님의 나라. 

 

각종 '하나님 나라' 해석자들 - 리츨, 슈바이처, 불트만, 쿨만, 다드, 예레미아스

유대인들 중에서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세상 종말이라는 묵시 사고가 성숙한 때에 주님은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다. 그분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사를 통해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소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랑 공동체에 다름 아니라고 이해했다. 그러니까 윤리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이스나 알버트 슈바이쳐 같은 신학자들이 나와서 하나님 나라는 바로 유대인들의 묵시 문헌에서 말하는 초자연적인 세상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해석은 바른 방향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예수께서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 오셨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묵시 사상에 심취한 예수께서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들여오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던졌지만 기대한 그 하나님 나라나 세상 종말은 오지 않고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몸이 갈기 갈기 찢겨졌고, 그의 시도는 실패로 마감되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슈바이쳐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그릇된 신신학을 따름으로 예수님을 묵시 사상에 심취하여 환청과 환상을 경험하는 정신병자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대한 바른 해석

그렇다면 예수께서 선포하신 그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무엇인가?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근본적으로 말해서, 죄와 사단의 세력을 멸하고 성령님과 말씀으로 인류를 통치하는 영적인 성격의 것이다. 복음 전파를 통해서 죄와 사단의 속박에서 인류를 건져내어 말씀과 성령님으로 통치하신다. 오늘날 그런 하나님의 통치가 복음 전파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여 언약을 맺으시고 직접 통치하셨다면, 이제 신약 시대에는 온 열방에 복음을 전파하여 열방을 직접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투 테우'인데, 하늘 나라나 같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나라"라 (영어로 kingdom) 번역한 헬라어 바실레이아는 영토 개념이 아니라, 왕권, 통치권의 의미를 기본으로 갖는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어떤 영토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나님의 통치권, 왕권을 초점으로 한다. 성령님과 말씀으로 통해서 그의 나라/ 통치권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죄를 근거로 인류를 사로잡고 통치하던 세상 임금 사단은 축출당하고, 사단이 야기한 저주와 질병이 제거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가 가져오는 현실 상황이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 나라/ 통치의 시대이다. 요한은 계 20:4-6에서 그 하나님 나라/ 통치를 천년간이라고 상징적으로 기술하였다. 그 기간은 신약시대 전체 기간에 해당되는데, 그 기간 동안에 죽임당한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천년왕국 사고의 핵심을, 어떤 이들은 핍박과 박해를 당하여 순교한 성도들의 중간기 상태에 누리는 축복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우리로서는 베드로 사도가 선포했듯,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현재 영적으로 사단과 죄악을 제압하고 통치하는 은혜의 통치를 천년왕국 사고의 핵심이라 본다.


2) 가르침

구약 말씀을 제자들에게 풀어주고 설명하심, 여러 비유들로 가르치심, 생활로 가르치심, 사역으로 가르치심.


3) 치유 및 축사

메시아 왕은 구약 선지자들이 행했던 그 치유, 초자연적인 치유 사역을 감당하셨다. 엄밀하게 왕의 사역이라기 보다 선지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축사 곧 귀신을 축출하는 사역도 치유 사역과 함께 일어났다. 많은 경우 질병은 귀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사단의 졸개들로 그 위에 정사와 권세 같은 장관들의 지배를 받는다. 예수님은 메시아 왕의 권세로 사단의 세력을 축출하시고 죄와 저주로 파괴된 사람의 몸과 영을 회복시키셨다. 오늘날 불치병으로 고통당하는 영혼들이여, 이수 저수 안 되면 오직 예수(님)! 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먼저 약국에 갔다가, 병원에 갔다가, 다음에 무당에게 갔다가, 다음에 절간에 갔다가, 다음에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좋은 수가 있다. 최고의 수는 예수! 그분은 못 고칠 병이 없으시다. 지금도 그렇다. 김동일 장로의 간증을 직접 들어 보시면 최고의 수가 예수님이라는 말을 수긍할 것이다. 예수님은 단지 저 먼 나라 천국에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당신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해 주실 수 있고 주시는 분이시다.  


앞서 언급한대로, 예수님의 지상 강림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십자가와 부활 승천 사건을 통해 세상에 우주적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십자가에서 사단의 머리가 박살났고 사단의 세력은 무장 해제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골 2:14-15, 계 1:5-6, 12:7이하, 20:1-3). 


이는 아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말한다. 어떤 추상적인 철학적 사고가 아니다. 지금 불치병으로 고통당하고 있고 귀신에 잡혀 고통당한다면 그 사람을 예수께서 메시아 왕으로 치유하시고 해방시키신다. 무당들도 예수님의 최고 권세를 인정한다. 영적 진리가 최고 진리이고 유일하게 완전 진리이다. 철학적 진리는 진리의 알갱이를 담고 있을 뿐이고, 여타 종교들도 그러하고 과학 지식들도 시대가 흐르면 구식으로 전락해 버린다. 오직 성경 진리만이 영원하고 유일무이하게 절대적 진리이다. 


그래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치유의 길이고 능력이며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나 목회자가 그 능력을 얼마나 현세상에 나타내실 수 있는지는 각자의 헌신과 충성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자 하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이네 하면서 자기들의 부패한 본성에 놓인 '들보'를 빼어내고 회개할 마음은 없고 오직 타 기독인들의 '티'만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 손봉호 장로 같은 이가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애국 집회나 문재인 하야를 선포할 때 기독교의 수준을 저급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지만, 전광훈 목사의 삶을 좀 고찰해 보고, 그의 간증도 들어본다면, 손장로 같은 사람은 수 만 분의 일도 전광훈을 따라갈 수 없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권세를 가진 자,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사모하여 가진 자, 지금도 무릎을 꿇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복음 전도에 자신을 드리는 자들을 통해서 참 기독교는 나타난다. 


 

메시아의 고난

레위기 제사들의 실물 예언과 선지자들의 말씀 예언 (사 53장)

예수님은 왕 메시아만 아니라, 선지자 메시아로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치유와 축사 사역을 하셨다. 그러다가 그의 공적 생애 말기에 마침내 유대인들에게 체포당해 십자가 처형을 받는다. 이는 사 53장에 예언된 제사장 메시아 사역을 감당하신 고난과 대속적 (타인의 죄를 담당하는) 죽음이었다. 시 22편에 예고된 왕 메시아의 고난 묘사는 제사장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고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사단의 세력 괴멸 (골 2:14-15, 계 12:7-12, 20:1-3)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사단의 세력이 치명타를 입고 괴멸됨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죄를 근거로 사단의 세력이 인간에 대해 권세를 행사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죄를 제거하는 십자가 대속 죽음은 사단의 권세를 박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지금도 귀신들을 축출한다. 우주적 정권 교체가 일어났기에 이제는 귀신들도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듣고 떨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예수님의 피! 피! 피! 하고 피를 먹고 마시고 뿌립니다! 등의 기도를 하거나 축사를 하는데 성경적이지 않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는 시각: 이스라엘의 회복 (복음 전파를 통한 예언의 성취)

부활하신 주

오순절 성령강림

세계사적 의의

복음의 세계적 전파


유대인의 배척과 남은 자만 구원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의 구원은 오순절 복음 전파할 때부터 일어나서 재림까지 이른다. 재림 직전에 이스라엘이 대거 집단 개종하는 그런 시나리오는 성경적이 아니다. 항상 남은 자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구원사의 원리이다. 


메시아 통치 (천년왕국 =신약시대)

교회사/ 구원사

복음의 세계 전파 

 

세속사

대국 굴기

세계사의 흐름

세계사는 1600년대 이래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네델란드 (화란), 영국, 미국 등의 순서로 세상을 지배해 온 역사를 보인다. 혹자는 중국 시대가 이제 왔다고 한다. 미국은 이제 힘이 꺽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2020년 4월 중순 현재 우한 폐렴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미국이 확진자가 59만에 이르고, 사망자도 2만 4천에 이르는 등 세계 최악의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발생율을 (인구수 대비 발생 환자 수) 본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세계 최악국가는 미국이 (1774명) 아니라, 룩셈부르크 (5259), 아이슬란드 (5014), 스페인 (3638), 스위스 (2968), 벨기에 (2639), 이탈리아 (2638), 아일랜드 (2156), 프랑스 (2095) . . . 한국 (206) 등이다. 이런 통계 수치에서 어떤 영적 진리를 찾아 내고자 한다면, 이 발생률과 사망률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런 최악의 국가들은 영적으로 최악의 국가들이라고 보면 확실하다. 왜냐하면 우리 성경 진리에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만사는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그분의 주권 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사 14:2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내가 또 그것으로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세계 최악의 국가란 영적으로 최악으로 범죄하는 나라들이란 말이다. 무엇보다 수상이나 지도자가 동성애자들인 나라들이 어디인지 살펴 보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네! 라고 한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영적 범죄율은 어디까지나 육신적 우한 폐렴 한 가지로만 판단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칫 공산화될 위험이 눈 앞에 다가왔지 않나? 4.15 총선 결과에 따라 자유 민주제가 폐지되고 전체주의, 감시체제의 나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면 지날 우한 폐렴이 무섭나?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를 전체주의, 감시제의 공산 사회주의가 더 무섭나? 


미국에서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을 살았던 경험에 의하면, 미국도 내부적으로 완전 부패하여 가나안화 되었고 동성애 합법화로 그 부패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언제 폭삭 주저 않을지 모른다고 본다. 중국은 어떤가? 공산 독재 감시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우한을 종교 시범지구로 정하고 48개 교회당을 강제 허물거나 폐쇄시키고 교회 십자가 종탑을 만인이 보는 중에 불질러 하나님을 능멸하였다. 그 결과가 우한 폐렴 아니겠나? 


서울에서도 유사하게 교회예배를 강제 폐쇄하는 신성 모독적인 공권력 행사를 마다 아니했다. 사회주의 세력은 교회 타도를 근본 목표로 정하고 때만 기다리고 있다는 정황이 여기 저기서 나타난다. 한국의 교회는 이제 내부적으로 타락하여 사회를 주도하고 소망을 주기에 힘들어 한다. 


미국을 대신해서 중국이 조만간 세계를 주도하리라는 전망에 동의할 수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공산사회가 민주화되고 안정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탈바꿈한다면 중국이 세계 지도국으로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지만.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세상은 암울하기만 하다. 소망이 없다. 오직 기도에 몰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능력을 힘 잆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일, 그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다. 




세계사의 미래




제 6부 인류 역사의 종말과 영원시대


재림과 심판

재림과 종말과 연관하여 비성경적인 온갖 소설같은 허구적인 해석들이 난무한다. 그런 해석들의 중심에는 세대주의 신학이란 그릇된 해석체계가 자라집고 있다. 예컨대, 7년 대환란이라든가, 지금의 유럽 공동체가 계 13장의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를 산출한다거나, 그 환란의 시대에 666이란 짐승의 표는 전자 확인증 곧 베리칩이라 불리는 컴퓨터 칩을 몸에 이식시키는 일이라고 하거나, 소련이나 그 동맹이 이스라엘로 진격하고, 중공의 2억의 군대가 유브라데 강을 건너 이스라엘로 향하는, 무서운 첨단 무기들의 총 집합 경연장 같은 냄새를 풍기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소설적 묘사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사실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허구적 가설들에 불과하다. 

아마겟돈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말해 교회와 사단의 세력 간에 일어나는 영적인 전쟁이다. 하늘로부터 임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 소리를 발하시면 원수들은 끝장이 난다. 그것이다. 거기에 무슨 핵무기가 미사일에 실려 날아가는 시나리오는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 (=곡과 마곡 전쟁)

미사일과 핵 전쟁이 아니다. 아마겟돈 전쟁, 곧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선과 악의 최종 대결, 곧 그리스도의 교회와 사단의 세력의 대결은 인간이 발명한 최첨단 무기들의 경연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번쩍" 하는 순간에 악인의 궤멸로 끝장날 초자연적 전쟁이다. 아마겟돈 전쟁의 좋은 선례는 주전 701년에 있었던 앗시리아 산헤립 왕의 예루살렘 침공에서 볼 수 있다. 그 때에 앗시리아 대군이 유대 왕국의 46개 성을 함락시키고 예루살렘만 새장 안의 새처럼 유대의 히스기야 왕을 포위했다고 자랑하는 산헤립의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전쟁의 결과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산헤립의 대군을 일순간에 쳐서 궤멸시켜 송장으로 만들어 버린 앗시리아 대군의 순간적인 궤멸 패배였다!

주님이 백마 타시고 하늘 군대와 더불어 공중에 나타나시는 순간 (이런 묘사가 계시록의 환상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에 실제인지는 의문시 되지만) 악인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무엇을 싸울 것도 없고 자실 것도 없다.

 

재림

재림의 징조를 말할 때, 흔히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언급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2-34)

통속 신학에 의하면,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의 상징이기에 무화과 나무 잎사귀가 무성해 지면 종말이 임했다는 징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 세대 안에 이루어지리라고 하셨기에 이스라엘이 왕성해진 때부터 곧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면서부터 한 세대 안에 종말이 임한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1978년도인가 조용기 목사가 한 세대를 50년으로 계산하여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한 해) + 50년 = 1998년이 종말의 때, 주님의 재림의 때라고 설교하기 시작한 이래로 각종 강연이나 설교나 책들을 통해 강조하더니 1998년이 지나고 거짓 선지자로 아니면 그릇된 해석자로 판명이 났다.


이제 사람들은 날짜를 늦추기 위해서 한 세대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에서 보듯 (창 15장) 100년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홍도 목사). 1948년 +100년 = 2048년. 그렇다면 재림은 지금부터 35년이 남은 셈이다. 그 전에 재림하신다면? 아니면 그 후에 재림하신다면 김홍도 목사도 역시 가짜로 판명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다. 틀린 해석이다. 왜냐하면 아예 원천부터 해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다시 보아야 한다. 특히 마 24장과 병행기사인 다른 복음서의 말씀을 비교하면 무화과를 이스라엘로 이해할 수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눅 21:29이하를 보라:


눅 21: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여기에 보면, 무화과 나무만 아니라 모든 나무를 보라! 고 하신다. 싹이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 무화과만 아니라 모든 나무들에게서 우리는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상식을 말씀하고 있다. 결코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하면 이루어 질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그 당대를 기준하여 한 세대 안에 그분의 예언이 모두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이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파멸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도 역시 주후 70년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의미인가? 라고.


마 24: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렇다. 그분의 예루살렘 심판을 위한 임하심이 종말론적 그림으로 묘사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바벨론을 치는 설교의 한 구절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사 13:9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12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1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이것이 주의 날에 대한 예고인데, 우주의 와해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예언했다. 그렇다고 이사야가 판단 착오를 했다, 예언에 실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당대에 바벨론이 지녔던 세상적 의미,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이웃 나라들에게 대하여 가졌던 절대적 지위의 몰락이 우주적인 의의를 가진 양 과장했고, 우주적 파멸의 규모로 그려내었을 뿐이다.


부활

씨를 심으면 썩지만 새 싹을 낸다. 생명의 씨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죽어 흙으로 분해된 인간의 몸일지라도 하나님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부활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 때 입을 부활의 몸은 썩을 몸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몸, 욕된 몸이 아니라 영광스런 몸, 약한 몸이 아니라 강한 몸이고, 육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과 뼈를 가지셨고 구운 생선도 드셨다. 그렇기에 부활한 몸은 시집 장가는 아니가고 지상의 육적 관계도 사라지지만, 현재의 육체를 가진 몸과 질적으로 다르지만 뼈도 살도 없는 그런 유령체가 아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천사들이 지닌 그런 몸인지 모른다. 각자 나이들면 늙어 추한 모습이 되지만, 부활한 내 몸은 이팔 청춘 곧 16세나 18세 청춘의 모습으로 변화되리라. 

 

심판

심판은 불신자를 영원 지옥행으로 선고하는 심판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믿는 성도들의 믿은 이후의 행위 심판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성도들은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상급과 기업을 받을지 아니면 책망과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지 결정될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해서 철저한 구원과 주님이 내게 요청하시는 바에 대한 온전한 헌신이 필요하다. 그 마지막 심판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 지금 성도들의 지혜이다. 



영원 세계 (신천신지)

신천신지

두 모델이 성경에 제시되었지만, 둘은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보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저주가 제거된 회복된 세상 (롬 8:19-22, 사 11:6-9) 

롬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2) 옛 세상의 불 태움과 새 창조된 세상 (벧후 3:10이하)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지금 현 지구가 불로 심판을 받아 (벧후 3:10이하) 새로운 모습으로 (롬 8:19이하) 리모델링할 것이라 본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현 세상, 곧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모두 파괴시켜 버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 홍수를 통해 세상이 파괴되어 버렸다고 언급했다 (벧후 3:6 ἀπώλετο, apollumi 동사). 여기서 사용된 "아폴루미" 동사는 "파괴되다"를 의미하는데, 구약의 헬라어역인 70인역본에서 창 18:24에서 소돔과 고모라 성의 파멸을 묘사할 때도 나타난다. 여러 경우들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은 완전 소멸되었다. 하지만, 노아 홍수로 파괴된 현 세상은 대 격변을 통해 새롭게 되어 현재까지 인간을 위한 삶의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바로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 현 지구를 하나님은 이전에는 홍수로, 이제 곧 불로 새롭게 리모델링 하시고 거기에 우리 구원받은 자들이 영원히 거주할 신천신지를 제공하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천국에 거하는 앞서 간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 부활, 최후 심판 등의 사건들과 함께 이 지상 신천지에로 부활의 몸으로 이주하여 거주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이 지상에 얼마나 많은 인구가 거주할지 아무도 모른다. 간증들에 의하면, 구원 받는 자의 비율은 1천대 1이라 한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비율로 한 번 계산해 보는 것이다. 믿는다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1천 명 당 1인이 진정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인데, 오늘날 인구가 70억이라면, 이 중에서 기독인은 20억명 정도로 간주하고, 그 1000분의 1은 200만명이 된다. 1세대를 50년이라 치고, 현재 기준해서 50년간 2백만이 구원받고 나머지는 죄 가운데 지옥행으로 떨어진다. 


1500년대에 한국의 인구는 500만 정도였다라고 하는데, 그 당시 한국 조선에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다. 그래서 1명도 구원자는 없었다. 오직 유럽에만 믿는 구원자가 있었고, 1300년 유럽인은 대략 9천만 정도였다 추정된다. 그러다가 흑사병의 유행으로 1400년에는 5천 5백만으로 줄었다. 1500년도에는 5천만, 1600년도에는 8천만으로 약간 상승했고, 1700년에는 8천 5백만, 1800년도에는 1억 2천만으로 증가했다 (한 연구에 근거한 것이므로 정확한지 여부는 불문하고). 그렇다면, 1500년도에 유럽 5천만 (50,000,000) 인구 중 기독인이 대다수라고 하고, 그 중 1천 분의 1인 5만명이 구원 받았다. 1600년도에는 8만, 1700년도에는 8만 5천, 1800년에는 12만 명 등이 구원 받았다 (점점 유럽이 세속화되어 불신자가 더 불어났을 것이다). 사람이 죽고 나고 하기 때문에, 1세대를 기준해서 이런 식으로 구원 받은 자를 계산한다면, 기독교 복음이 신대륙에 전해지고 다시 아시아권으로, 아프리카로 전해진 기간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므로, 구약 시대 이스라엘 인들 중의 구원받은 자들과 신약 시대 구원 받은 자들을 다 합산한다 해도, 지구가 너무 좁을 정도로 복작거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현 지구가 신천지로 변화되어 내가 그곳에 거주한다고 한다면, 나는 기업을 얻어야 한다. 그 기업은 각자 행한대로 주어질 것이다. 즉 지금 내가 전도하고 충성 봉사한 그 일들에 근거해서 기업의 양이 결정된다. 그 기업은 토지와 집, 면류관 영광 등이 될 것인데, 이 신천지 영원 시기에 사람들의 모습은 죄와 저주가 사라지고 눈물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며 신령한 몸, 영화로운 몸을 입고 시집 장가 가는 일도 없다. 하지만, 엄연히 기업에서 빈부 격차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불 가운데서 끄집어 내어진 타다 만 장작 막대기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런 자들은 영원히 신천지에서 아무 기업도 상급도 없이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리고 영적 거인들이 지날 때마다 허리를 굽히게 된다고 한다. 


지금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를 하여 금 싸라기 땅을 많이 장만해서 유산으로 자식들에게 전하지만, 재림 이후 신천지에서 토지 소유 상황은 완전 변할 것이다. 눅 19:12이하 므나 비유에 의하면, 열 고을 권세, 다섯 고을 권세, 그리고 죽임 당할 자 등으로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현재 지구처럼 5대양 6대주가 있을지 아니면, 달리 변화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전체 지구는 신천지 상태에서 모두 새 예루살렘으로 화한다. 온 지구의 낙원화라 할 수 있다 (계 21장, 사 65장). 거기에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수 나무가 실제로 존재해서 우리가 마시고 먹을까? 정말로 황금 보석의 세상일까? 정말로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딩굴고 아이들이 독사굴에서 장난치는 세상일까?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상징적 표현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문자적으로 그렇게 될지. 다만 현 저주와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은 사라지고 영광이 충만한 세상,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황홀경의 세상일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차등 상급제가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