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재림 이후 지상 천년왕국?

중일사랑 2020. 7. 1. 09:33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건설한 신학체계를 (따라서 역사 비평법에 휩쓸리는 신학은 제외하고) 언약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으로 대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 체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쓴 조직신학 책들이겠지만, 성경 신학 분야에서는 성경 전권을 주석한 두 주석서가 세대주의 신학이 어떠함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 달라스 신학 교수들이 집필한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와 보다 최근인 2014년에 출간된 무디 신학교수들이 집필한 The Moody Bible Commentary이다. 

 

이 두 주석서는 구약 예언들을 해석할 때, 우리 신약 교회에서 성취되고 우리 성도들을 위해 구약 예언 약속들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구약 예언들에는 '교회' '교'자도 언급이 없고 모두 유대인들에게 주어졌고 그래서 모든 구약 예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한다. 이것이 그들이 구약을 해석하는 기본 전제이다. 신약 기자들이 구약을 해석하는 방식도 기준일 수 없고, 오직 구약 원 저자들의 의도가 구약 본문의 의미 확정에서 근본이라 한다. 신약 기자들은 구약 예언들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고 교회에서 성취 도중에 있다고 해석했다면 (우리가 보기에), 세대주의자들은 그 점을 부인하고 구약 예언들은 주님이 재림 하신 이후 지상에 건설될 지상 천년왕국 때에 전부 이루어 지리라 확신한다.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다윗 왕국이 지상 천년왕국이라고 간주하는데, 신약은 다윗 왕국이 이미 예수님의 초림으로 세워졌다고 말씀한다. 행 15:16-17에서 야고보 사도가 암 9:11-12을 인용해서 그렇게 해석했다. 예수님은 지금 다윗 후손 메시아 왕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지만 (롬 1:3-4, 히 1:3, 8:1, 계 1:5, 3:21, 20:4-6), 세대주의 신학은 지상 천년왕국을 기다린다. 

 

산상수훈도 지상 천년왕국 때를 위한 법이라고 하고, 마 25장의 염소와 양의 비유도 그 때에 해당된다고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도 유대인들에게 주어졌기에 유대인들에게 해당된다고 하고,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도 지상 천년왕국 때 성취되리라 기대한다. 

 

앞에 언급한 그 두 세대주의 성경 전권 주석서들은 구약 예언을 다룰 때 심심하면 지상 천년왕국 (the millennial kingdom) 때 성취될 것이라 언급한다. 

그러나 신약 교회가 구약 이스라엘의 계승자로서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이며 구약 모든 예언들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구약 이스라엘이 12지파로 구성되었듯, 주님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갈 6:16) 교회를 12사도들을 세워 대표하게 하셨다. 

 

구약 12지파가 이스라엘의 토대였듯 (계 21:12), 신약 교회는 12사도들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계 21:14). 이 둘이 합쳐서 하나님의 전체 구원 역사를 이루며, 그분의 택한 구원자 전체를 구성한다. 계 7장에서 14만 4천은 바로 구약 12지파 x 신약 12사도 = 144 x 완전 수 10의 3승 (최고 완전) = 144,000명 곧 구약과 신약 전체 구원 받은 자의 상징수이다.

구약과 신약 외에 재림 이후 천년왕국이 들어갈 틈이 없다. 재림 이후는 최후 심판과 영원 나라이다. 

 

천년왕국이란 사고는 상징법을 생명으로 하는 계시록 20:4-6에서만 나타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가 보기에 이 천년 통치는 지금 신약 시대를 지시한다. 이런 입장을 무천년설이라 하지만, 천년 통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문자적 1,000년의 통치, 지상에서 정치 군사적 통치, 세대주의가 말하는 그런 천년 왕국을 부정할 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온 세상의 만왕의 왕 (계 17:14), 만주의 주로 (계 19:16), 세상 임금들의 머리로서 (계 1:5) 통치하시며, 그 통치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 성도들이 참여하고 있으니 (계 1:6, 2:27-28, 3:21, 5:11, 20:4-6, 엡 2:5-6, 벧전 2:9), 이것을 우리는 계 20:4-6이 말씀하는 '천년왕국'이라 믿는다. '천년'이란 묵시 문학 장르에 속하는 계시록에서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모두 온전히 성취되는 기간을 상징한다. 그 천년은 신약 시대 전체 기간에 해당된다. 

 

세대주의 신학 체계는 교회란 유대인들이 자기네 왕으로 오신 메시아 왕 예수님을 배척하니, 복음을 믿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임시 방편'으로 급조된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구약 예언과 무관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란 구약에서 (신명기) "회중"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카할/ 에다'를 번역한 말로, 하나님의 회중이란 의미이다. 바울 사도는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되던 여러 단어들을 이제 신약 성도들에게 적용시켰다. 예컨대, 롬 1:7에서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라고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 (γαπητοῖς θεοῦ), 혹은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란 (κλητοῖς ἁγίοις) 칭호는 구약 언약 백성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그리고 신약은 우리 성도를 "성전"이라 칭하는 데, 성도 개인이나 성도들의 모임이 '성전'이다 (고전 3:16, 6:19, 고후 6:16, 엡 2:21-22). 성령님이 성도들의 몸 안에 거주하시고,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성도나 혹은 성도들의 모임은 성령님이 거하는 집이다.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은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목표가 바로 신인합일이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교회가 하나님의 회중이요, 성전이 성도 개인이나 성도들의 모임이다. 결국 교회나 성전이나 모두 성도들의 모임이다. 성령님께서 성도의 몸 안에 내주하시는 신령한 성전이 구속사의 목표이고, 이제 성취되었고 성취 도중에 있다. 그런데 무슨 제3 성전 운운 할까? 김종철 감독의 Brad TV가 전하는 바는 대개 세대주의 신학을 반영하고 따라서 우리가 보기에 비 성경적 사상이다. 

 

재림 이후 지상 천년왕국은 없다! 지금 메시아 예수께서는 성령님과 말씀으로 통치하신다. 

 

사도 베드로는 지금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했다 (벧전 2:9). 더 나아가 재림 이후에는 '천년왕국'이 아니라 '영원 왕국'이 닥쳐 온다고도 말씀한다. 즉, 지금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설 때, 실족하지 않고 또 메시아 예수님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시리라 하셨다. 세대주의 신학을 가졌다면 베드로는 아마 메시아 예수님의 "천년왕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시리라라고 하시지 않았겠는가? 왜냐하면 재림 이후에 천년왕국이 (영원 왕국이 아니라) 온다고 세대주의 신학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여기서 "왕국" 혹은 "나라"란 헬라어 '바실레이아'의 번역인데, 영토 개념보다는 '통치권'의 (dominion, kingship) 개념이 근본 의미이고 영토 개념은 부차적이다. 지금 성령께서 성도 안에 내주하셔서 통치하시면 그곳이 하나님의 왕권이 행사되는 곳이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주기도에서 "나라가 임하게 하옵시고"라는 (Thy Kingdom come!) 구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토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왕권, 통치권이 임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당신의 왕권/ 통치권이 이 땅에 충만하게 임하게 하옵소서! 

 

그리해서 거짓과 기만으로 국민 주권을 강탈하고

민의가 그렇다고 말하는 자들의 가증한 가면을 벗겨 주시고

이 나라에 신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성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신부야! 너는  (0) 2020.12.01
새 언약 체제하의 성도들과 정치  (0) 2020.07.15
성경 관련 질문들과 답변  (0) 2020.05.30
성경신학 개괄 후반  (0) 2020.04.14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0) 2019.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