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시사

목사의 딸; 박윤선과 그의 전처 딸 박혜란

중일사랑 2022. 2. 23. 16:47

목사의 딸: 하나님의 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

; 박혜란 지음 | 아가페북스

; 2015. 4. 30

 [북카페방에서 가져 옴]

프롤로그목사의 , 수레바퀴 속에서

* 저자 박혜란 목사의 신앙관을 확립시켜준 마디.

1. Beholding is (a way of) Becoming. 바라보는 , 그것이 닮아가는 것이다.

- 하나님을 계속 주시하면 그분을 닮아간다는 의미

- 고린도후서 3 18절을 요약

2. Not for God but with God.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라.

3. Separation not by Isolation but by Distinction.

세상으로부터 외톨이 고립이 아니라 특징으로 세상과 분리하라.

 

 

CHAP1. 아버지, 착잡한 이름

1-1. 아버지의 23p

- 평안북도 철산에서 출생하심.

- 어머니는 워낙 부지런한데다 무엇보다 손재주가 좋았다. 집안의 자잘한 일에서부터 남정네들의 손을 타야 굵직한 노동까지 손수하면서도 불평하거나 공치사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우리 남매들의 기억은 따뜻하고 인자했다.

- 아버지의 급한 성격은 말다툼 끝에 어머니에게 손찌검한 적도 많았다.

 

1-2. 고달팠던 가정 33p - 아버지도 차례 신사참배를 했다.

- 할아버지는 정직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분이었고 큰아버지는 아이가 죽을 때마다 영혼 같은 것이 몸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경험을 통해 큰아버지는 예수를 믿게 되었다.

- 1941 6월에 내가 태어났다.

- 하필 학예회(學藝會) 날이 주일이었다. 주일(主日)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고 거룩하게 보내야 했기에 참석하지 못하여 공들여 준비한 무용(舞踊) 망쳐 놓았다.

 

1-3.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 44p

- 어머니는 아버지를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고 대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마땅히 줘야 온정을 주지 못했고, 아내의 고생을 이해하거나 위로하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같은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했다는 기억은 없다. 그저 걱정하는 어머니를 향해당신은 기도만 하시오!”하고 말할 뿐이었다.

아버지는하나님의 으로 공무(公務) 바쁜 분이라 여겼으므로 집안의 대소사(大小事) 어머니 몫이었다.

 

1-4.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 51p

-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하시는 것이 가족을 만나보는 것보다 좋습니다. 당신도 나를 만날 날을 기다리지 마시오. 하나님만 모시고 사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시고 길이요 생명입니다. - 생전에 어머니가 받은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 춘자 언니의 유학은 미국에서 아버지를 후원해 부부가 재정 보증과 보호자로 나서 주어 성사되었다.

 

1-5. 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62p

- 목사님! 우리는 그냥 슬퍼만 하고 한숨만 짓고 울기만 하지 않았나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를 통해서 그의 뜻을 찾으려고 하였나이다! 그러다가 결론적으로 얻은 성구가 로마서 8 28절이었나이다. 사모님의 일생은 예수를 사랑하시는 생이었고, 그의 일상 생활은 주님의 뜻대로만 살려는 생활이었으니, 반드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니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믿자는 것이었나이다! - 유학하고 계신 아버지에게 어머니 장례에 대해 보고하는 편지

- 김알렌(金愛蘭) 사모님의 약력: 1954 3 18 하오 3 천국으로 돌아가시다. 소식을 받고 4 1 오후에 부산에 도착하신 아버지가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일은, 음주 운전을 하여 어머니를 비롯해 수많은 사상자를 미군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이었다.

- 아버지는 당신이 선행이라 여긴 일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신학교에 출근하여하나님의 으로서 공무(公務) 전념했다. 남겨진 가족을 위한 어떠한 것도 하지 않으셨다.

 

1-6. 가족 69p

- 고아원에 있는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도 데려와 가정의 따뜻한 분위기에서 자라게 하는데, 아버지는 당신이 어엿이 살아있음에도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려고 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 이화주 선생은 6.25전쟁 당시 북한에서 단신으로 넘어온 독신 여성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안쓰럽게 여겨 챙겨 주신 사람이었다.

- 분은 내가 알기에도 매우 과격한 성격이었는데, 아버지는 앞에서 무조건 묵묵부답이었다. 돌변하신 아버지의 태도를 보며 어머니에게 화내며 싸우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오래 전에 이별한 사람, 남편에게 철저히 잊혀진 사람이었다.

- 견디기 힘든 것은 어머니의 태도였다. 끊임없는 정죄 언사를 견뎌내야 했다. “만고에 없는….” “배은망덕한 전처의 자식들….” “육신의 자식들….”  어머니는처녀로 시집와 희생 제물이 되었다 말을 자주 했다.

- 편지를 쓰면서 꼬박꼬박어머니라고 표현하며 예의를 다했는데, 새어머니에게 답장 겉면에는 보내는 이가이화주 쓰여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런 저항감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 마흔이 넘어 편지를 다시 훑어보니 그분이 우리 남매들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있었다.

 

1-7. 사랑을 몰랐던 목회자 77p

- 내게 하나님은 언제나 불꽃같은 눈동자를 치켜 뜨고 범죄하는지를 지켜보는 분이었다. 그분 앞에서 나는 죽을 죄인이었고, 그분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정죄하는 분이었다.

- 아버지는 재혼 사랑조차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아니, 괜한 분란을 만들기 싫어 피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기도할 있었는지,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못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때는 큰오빠도 나도 모두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못한 살았던 같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비정상적인 사고가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 방에 동생 은난의 시신을 뉘었다. 그날 나는 동생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새 죽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죽는 것이 이렇게 허무한 것인지 생각했던 같다.

- 부모가 어떻게 대해 주느냐? 따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 부모에게 존중 받은 아이는 커서도 사회에서 존중받고, 부모에게 무시당한 아이는 사회에서도 무시당하는 존재가 된다. 이렇듯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얼마나 무서운 책임인가.

 

1-8. 갑작스러운 결혼 89p

-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딸을 셈이었다. 아버지의 명예는 하나님의 명예였고, 나는 그렇게 확신했으니 따르지 않을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속에 축적되고 말았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하나님은 내가 분의 권위를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도록 도우셨다.

- 김홍전 박사가 목회하는 성약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 술과 담배는 중독되는 것이어서 중독되면 스스로 끊을 없고, 개인의 신앙 성숙에 따라 하나님의 때에 정돈되는 것이니, 이것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혼은 간음과 동일하다 결론을 내렸다.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결혼식을 치르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부부로 평생 것을 맹세했고, 맹세를 깨뜨린다면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시리라 믿었다.

 

1-9. 고아들 96p

- 아버지는 재혼 주석을 완성하는 일에 몰두했다. 수년에 거쳐 주석을 쓰면서 열정적으로 국내외 집회를 다녔다. 우리 남매들은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었다.

 <내가 주님의 일에 지나친 충성을 하였는지는 모르나, 너희를 위해서는 시간을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내가 요한이를 데리고 있은 때가 많지 못함은 후회한다. 그런데 모든 일에 하나님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 . . 내가 위에 요한이가 나를 바로 이해하도록 부탁한 것은, 내가 대접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남을 (특별히 아버지를) 오해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복받을 일이 못되기 때문이다. . . 나는 그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이유는 내가 그를 원망하는 심리로는 그를 위하여 참된 기도를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이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겠다!> —1971 12 27일에 아버지께 받은 편지

- 편지를 보면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사실에 대해서는 직시하지 않고 회피했다. 자식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부모의 도리가 무엇인지도 함께 언급해야 했으며, 본의 아니게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면 먼저 사과부터 해야 했다. 그러니 요한 오빠가 아버지의 편지에 답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파란만장했던 삶에 대해서도 연민의 정을 갖지 않았다. 평생 당신의 일에만 몰두했고, 당신의 자녀들이 얼마나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을 필요로 했는지 알지 못했다.

- 아버지가 남편으로서 남성 우위의 환경에서 연약한 여자, 그러니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야 했던 배우자에 대한 연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내에 대한 연민은 이웃 사랑의 첫걸음인데, 첫걸음부터 빗나간 삶을 사신 것이다.

- 임신을 피하고자 했던 같다. 그래서 잠자리를 피하고자 같은데, 이것이 아버지의 의심을 샀고, 급기야 손찌검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오빠들과 언니는, 아버지가 마치 경건의 모범이라도 되는 존경받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멀리 떠나고 싶어했다문제는 아버지에게서 천리만리 떠나 벌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도 멀리 떠났다는 것이다.

- 여하튼 요한 오빠를 만나고 충격 받은 아버지는 마음을 바꾼 같았다. “ 자식이 나를 이렇게 오해하다니!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도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 아버지는 정말 가정적인 아버지로 바뀌었다.

- 단열이 또래 사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단열이가 작은 문제라도 일으키면, 새어머니는 단열이가 마치 대단한 사고라도 것처럼 아버지에게 확대해서 보고했다.

- 은성, 혜성, 진성은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금지옥엽(金枝玉葉)이었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랐다. 우리 남매들은 그들 세계에서 마치 괴물(怪物) 고립되었고 아웃 사이더가 되었다. 우리 남매들에게 가정은 이상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1-10. 날아가 버린 마지막 기회 107p

- 1985 여름, 새어머니로부터 가족끼리 며칠 동안 함께하면서 관광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무렵 아버지가 주석을 완간(完刊)하셨고, 주석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면서 경제적인 여유도 어느 정도 생긴 듯했다.

- 용기 내어 가족 간의 대화를 제안한 것인데 괜히 분란만 만든 셈이 되었다. 그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 “상처를 주었다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다시 용기 내어 제안했다. “아버지, 간단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우니 아버지는 저희와 여기서 며칠 머물려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해요. 어머니와 동생들은 예정대로 LA 보내시구요.”

- 새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신 1954년부터 1985년까지 31 동안 번도 맞선 없던 상황에서 드리는 편지라 두렵기도 했다. 더구나 아버지와 새어머니 앞에서 정직하게 충고하는 사람이 사람도 없던 터라, 혹시 편지를 읽고는 충격 받아 심장마비라도 일으키시면 어쩌나 싶어 더욱 두려웠다.

- <아버지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욕심에, 자식들의 잘못을 발견하면 정죄의 도끼로 내리치셨고, ‘목사 얼굴에 똥칠한다 분노하여 죄인 취급하셨습니다. . .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부모의 정성과 사랑, 물질과 희생을 받을 권한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전혀 표현하지 않으셨고, 게다가 어머니가 별세하신 후에는 새어머니의 농간에 넘어가 지금은 완전히 장님이 되어 계십니다. . . 자식인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아버지가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어렸을 깊은 상처를 받은 형제들이 ( 오빠, 작은 오빠), 아버지의 믿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일보다 우선해서 주신 자식을 양육(養育)하는 있어 오히려 하나님과 격리시킨 역할을 오신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십니까? . . . 이제라도 아버지께서 오빠를 찾아 그를 껴안고 울며 용서를 비는 것이 아버지께서 진정 하셔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한국 교계에서 천사(天使) 대우를 받으시는 것이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회개하시기를 감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985 9 12 아버지께 보낸 편지

- <새어머니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하다는 정죄(定罪) 도끼로 나를 내리찍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결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 . 새어머니는 세상 물정(物情) 분별하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일을 빙자(憑藉)하여 속이고 자신의 욕심을 채워 왔습니다. 전처 자식을자식 구실 못하는 쓸데없는 육의 자식이라 정죄하여 아버지를 우리에게서 분리시키고 동시에 자기 재산을 확보해 놓은 미국에 자기 자식을 살게 하고, 여든 노인을 오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1985 9 12 새어머니께 보낸 편지

- 말씀을 들으면서 안타까웠다.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께 바랬던 말은 마디였다. ‘그간 본의 아니게 상처 것에 대해 미안하다 사과요, 사랑의 표현이었으나 돌아온 것은내가 목사로서 권고한다. 말씀을 들어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 21:17)

 

1-11. 용서받지 못한 122p

- 그들에게 정직하게 마음을 전하려 했던 의도가 깊은 상처를 입게 것이 되어버렸으니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여 고통 속에 기도하신 내용주여, 나는 당신께 충성을 다했는데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나이까?” 모습과 기도를 지켜보면서, 아버지는 영과 육이 모두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있었다.

  

CHAP2 목사의

2-1. 정직과 윤리 135p

- 현실적으로는 새어머니에 대한 부당함과 이중적인 모습에 옳지 않다고 항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종인 아버지를 사랑하는 분이기에 사랑해야 한다는 절대적 믿음, 절대적 순종이 대립했다.

 

2-2. 정죄 정죄 138p

- 박혜란 목사 자신의 성격은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었으며 그래서 좋은 점은 돌려 말할 모른다는 것이고 정죄하는 일에도 익숙했다.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면 자신을 정죄하고 모두 탓으로 돌리며 움츠러들었다.

- 나중에서야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먼저 체휼(體恤)하시며, () 하기도 더디하시는 분임을 깨달을 있었다.

 

2-3. 아버지의 신앙, 아버지의 교훈, 그러나 사랑이 필요했던 가족 145p

염불 외듯 되풀이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의 기도는 아니다.

- 대외적으로 교계에 헌신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한 목자였다. 그래서 우리 남매들은 사랑에 목말랐다. 우리가 바랐던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마디, 위로의 한마디, 이제 아버지가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마디였다. 그런데 마디는 싹둑 잘라버린 당신의 공무(公務)에만 열중하셨다. 죽고 사는 것이 그리 일이 아니라는 허무주의(虛無主義) 사로잡혀 있을 때도, 아버지는 헤아려주지 못했다.

오빠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어했다 오빠는 말년에 병들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평안한 생애를 누리게 됨을 감사한다.

- 재능이 많던 춘자 언니는 이상 학업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편지로 훌륭한 여성 리더가 되라고 했지만, 제대로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 요한 오빠는 2010 4월에 췌장암으로 갑자기 삶을 마감했다.

- 막내 단열은 마흔 다섯이 되던 가을, 간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내가 동생을 두둔하기라도 하면 둘이 당장 집에서 나가라며 분을 내셨다집에서 쫓겨나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동생을 모른 척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물론 새어머니도 아이의 자취하는 곳을 찾아가지 않았다. 단열은 내게 편지를 보내누나, 외로워 죽겠어!” 하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도 말이 귓가에 울리는 같아 가슴이 아프다.

-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만 대학 등록금을 대주었을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는 푼도 교육비로 지출하지 않았다.

- 용서는 사랑의 힘으로 없고 성령님이 사람과 사람 마음에 동시에 역사하심으로만 일어날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용서한다는 것이 용서받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단열은 세상을 떠나면서 내게 크나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새어머니와 화해할 있었으니…. 하나님의 섭리였다. 또한 단열은 젊은 아내와 3 아들, 1 딸을 남겼다. 마흔다섯 살까지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지만, 간암 진단을 받은 여섯 동안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죄를 씻은 깨끗한 영혼으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 덴버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을 동시에 풍성하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겸손했으며, 아내와 자녀와 제자들을 함께 사랑할 줄 알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 사랑의 근본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 아버지는 자녀 사랑을 육신의 일이라 여겨 가벼이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자녀 교육관은 참으로 안타깝다. 아버지가 육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죄에 속한 일을 의미한다. 당신이 낳은 자녀들, 특히 어미 잃은 자녀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시던 그분, 참으로 안타까웠다.

 

2-4. 미국에서 찾은 신앙의 자유 165p

- 1970 겨울,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것은 일종의 탈출이었다. 소위 서울 대학교 출신의 건축가로서 잘나가던 길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면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 남편이 벌려 놓은 모든 일의 뒤치다꺼리도 몫이었다. 그는 여전히 나와 의논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내렸으며, 자신의 권위를 휘둘렀다. 자신과 의견이 다를 때는 살인적인 분노로 나를 억눌렀다.

- 크레스트 교회는 크리스천 리폼드 처치라는 교단에 속한 교회로 (Hillcrest CRC; 3617 Hillcrest Rd. ​Hudsonville, MI 49426; Grand Rapids 인근 서남부) 이곳은 목사님을 부를 때도 이름을 불렀다. 호칭에서부터 권위주의는 보이지 않았다. 집사나 장로는 모두 임기제였으며, 아무개 장로님, 아무개 집사님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이름을 (first name) 불렀다. 우리말로 바꾸면아무개야하는 식이었다.

- 교우들끼리도 평등했고, 서로 높여주며 배려해 주는 모습이 역력했다.

- “ 아버지는 이중 구조 속에서 살고 계신다. , 영적 생활과 육적 생활을 완전히 분리하여 육에 속한 모든 것은 육적인 것이고, 이는 사탄에 속한 것이므로 정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도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육체도 하나님이 지어 주신 것으로 아름답고 귀하기 그지없을 아니라 영적인 것도 육체를 통해 구체화된다.” 169p

- 나는 그저 죄를 짓지 않는다는 자세로만 살았고, 그러다 보니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적용했다. 그래서 사람의 장점을 보기보다 단점을 재빨리 포착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익숙했다.

미국에 와서 만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하나는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것이었다. 내게 거울이 되어 자신의 일그러진 신앙을 비쳐주었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깨닫게 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매우 구체적이며, 그분은 나를 정죄하는 분이 아니라 이미 정죄된 부분을 예수의 피로 씻으시고, 이제는 지극히 귀하게 여겨주시는 분임도 알게 되었다.

 

2-5. 안의 숨은 재능을 깨우신 하나님 171p

- 임신(妊娠) 하나님의 뜻이며, 유산(流産) 하나님 앞에 범죄라는 . 수태되면 40 후에 생명이 태어나지만, 수태(受胎)되지 않으면 100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수태된 하루 아니 한순간이 지났어도 그것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태 전과 수태 후는 순간의 간격이라고 있으나 실제로는 영원의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니 인공(人工) 유산(流産) 살인 행위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코 살인을 택할 없었다.

- 오늘날 교회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기 발산적인, 마치 밤무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속에서 유행하는 리듬과 굉음으로 찬양하는 것은 소리의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제사는 아니지 싶다.

 

2-6. 하나님의 부르심 181p

- 자녀들에게 조언(助言) 구했을 , 여러 말을 했으나 가장 닿은 말이, 내가 가장 기뻐하는 일을 찾아 일에 도전해 보라는 충고였다.

- 내가 기뻐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다.

- 조직신학은 내가 무엇을 믿는지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 기독교 윤리학은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을 평가할 있도록 도와주었다.

 

2-7. 미처 알지 못했던 복음 187p

- 신앙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데서 시작되고, 말씀을 먹음으로써 말씀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깨달으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닮아간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없게 하신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 성경을 자세히 읽고 음미하며 꾸준히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말씀에서 발견한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 교제하며 내가 인식했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 경험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으로 옮겨가게 하신다.

- 아버지는 한국 최고의 칼빈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유교적 칼빈주의자였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의 뿌리였고, 충효 (忠孝) 사상은 하나님과 자녀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었다.

-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생명을 다해 군주(君主)만 생각하고 군주만 섬김으로 이웃 사랑을 소홀히 했다. 유교의 효도 개념을 성경에 그대로 옮겨,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했고, 아버지 눈에 벗어나는 행동은 가차 없는 분노와 심한 매질로 다스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저 없이 범하며 살아가셨다.

- 아버지에게 있어 영적인 일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설교하는 일, 주석을 쓰는 일이었다.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육신의 일이었다.

- ‘내가 무엇을 것인가하는 질문에서내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하는 질문으로 초점을 바꾸게 되었다.

하나님은 악과 반역과 죄를 용서하시는데, 용서하신다는 말씀을 먼저 하신 지은 자에게는 벌을 주셔서 죄를 깨닫게 하신다.

창세기의 기록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섭리를 보게 한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창세기 1 1절부터 오류가 전혀 없는 말씀이라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다.

 

2-8. 나의 발견 194p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반석 교회라는 장로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처음 하는 사역을 하였다.

-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어가는 일은 즐겁고 행복했다.

- 대학생 반과 주부 성경 반을 인도하고 나니 목사님이 설교도 있겠느냐? 제안했다. 제안이 감사하여 바로 승낙했다.

- 정은이를 만났다. 흙을 잔뜩 실은 트럭에 치여 하반신 불구(不具) 엎드려서 살아가는 아이였다. 골반(骨盤) 없어 앉아 있기가 힘든 아이를 주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보조 기구를 맞쳐 주어 컴퓨터로 장신구 만드는 전문가가 되도록 도와 .

포천에 있는 뜨는 마을이라는 범죄(犯罪) 소년들을 위한 교화소(敎化所)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 월요일 저녁예배부터 금요일 새벽예배까지 일주일에 여덟 말씀을 전했다.

- 성난 망아지 같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태민, 태연를 만났는데 그들은 어떤 배움에도 관심이 없고 사랑에 있어서는 무감각한 아이들이었다. 상식적인 판단력도 없었다.

- 나는 아이들을 상담할 때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느냐? 물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느냐? 물었다. 답을 바꾸는 일은 몫이기도 했다.

- 뜨는 마을에서 보낸 4년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상처받은 영혼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마음껏 사랑을 나누었고 복음을 전했다. 과정은 내가 뭔가 나누었다기보다 오히려 내가 채워지는 귀한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섭리였음이 분명하다.

 

2-9. 하나님의 재발견 205p

-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던 나는 장차 일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아마 독서가 같은데,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

- 독서에 대한 열정은 당시 절망스러운 감정 상태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이었으나, 여전히 감사할 일이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없다.

- 덴버 신학교의 총장이었던 버논 그라운즈 박사와 해돈 로빈슨 박사 외에도 크레이 블롬버그 박사, 고든 루이스 박사, 브루스 디마레스트 박사 등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고, 신앙체계의 맹점과 모순 등을 발견할 있었다.

- 정직과 투명성이야 말로 영성 개발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 성경이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면서 교회 안에서 여자의 위치, 그리고 사회 및 가족 관계에서 여자의 위치와 역할 등에 관한 모든 성경 본문을 원문과 대조했다. 어떤 것이 사랑의 행위인지 분별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했다.

- 여자를 그저 남자의 조수(助手) 혹은 종속물(從屬物) 보았고, 당신 또한 그렇게 인식하고 사셨다. 물론 아버지가 유교적인 한국 문화 속에서 자라고 사셨으므로 이해할 수는 있다.

- 다른 피조물은 한꺼번에 많이 지으셨으나, 유독(唯獨) 사람은 사람 남자를 지으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 스스로 자신의 결핍을 깨닫고, 아담 자신과 동등한 배우자(配偶子)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의미다.

- 실제로 우리말 번역인 ‘돕는 배필’은 히브리어로 ‘쌍벽을 이루는 배필’이라는 뜻이다.

창 2:18  וַ֙יֹּאמֶר֙ יְהוָ֣ה אֱלֹהִ֔ים לֹא־ט֛וֹב הֱי֥וֹת הָֽאָדָ֖ם לְבַדּ֑וֹ /אֶֽעֱשֶׂהּ־לּ֥וֹ עֵ֖זֶר כְּנֶגְדּֽוֹ׃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에게 적합한 조력자 a helper suited to him (NAB, NASB, NIV; TNK). 배필  부부로서의 .

- 그라운즈 박사님이 권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막힌 것이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여성으로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내 입장은 덴버 신학교가 취하는 노선과 일치했다.

[* 사항과 ** 사고는 서로 조화되지 않는다]

- 블롬버그 교수님은 헬라어 성경을 읽으면서 문자 그대로 본문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요한복음 21장 강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를 정직하게 파악하도록 이끌어주었다.

- 성경이 말하는 것과 한국 개신교, 소위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가르치고 행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끊임없이 발견했다.

- 덴버 신학교의 가장 장점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서, 3천년 혹은 이전에 쓰인 말씀이 오늘이라는 시간에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학생들이 정직하고도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 2009 나이 예순 아홉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2-10. 이별이 깨달음 217p

- 가족의 죽음은 한동안 아니 수십 년간 허무와 절망을 느끼게 했다.

- 1988 아버지는 담도암으로 천국에 가셨다. 사랑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가족에게 나눠주지 못했던 분이었기에 안타까움이 컸다.

- 아버지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이 붙들고 계심을, 주님 안에 안기어 있음을 찬양하는 기도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지금 괴로우니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조르는 어린 아이의 이기적인 기도였다.

- 단열은 죽을 병을 얻고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다가 떠났다. 고단한 인생이었지만 오히려 새어머니께 용서를 빌고 관계를 회복한 , 누나인 내게도 새어머니와 피차 마찬가지로 용서할 것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 올케 경숙 언니도 자신을 위해 살아 달라고 부탁했고, 선혜도 아버지의 침상에 와서 돌아가시지 말라며 눈물로 울부짖었다.

- 뒤로 큰오빠의 삶이 바뀌었다. 언니가 혼자 일하러 나갈 오빠를 위해 미리 마련해 음식들, 토마토와 마른 가오리와 감자를 남김없이 먹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녀들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용서를 빌었다.

- <사랑하는 큰오빠께 드립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무조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마음이 아프신 것이고, 그럴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근심하시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이것임을 이해하시지요? . . .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좋아하고 사랑할 하나님은 가장 행복해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혀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생각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혜란 드림

동생과 오빠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시키시고, 천사처럼 변한 평온한 모습으로 데려가신 은혜를 생각하면 과연 하나님의 섭리라고 밖엔 설명할 없다.

  

CHAP3 못내 아쉬움으로 남다

 3-1. 20세기 한국 교회의 거목, 박윤선 목사 237p

- 방송국 측은 아버지를 신학적 토대가 든든한 신학자이자 주석학자로 소개했다. “박윤선 목사는 누구보다 정통 신학주의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유학하신  1940 봉천 만주 신학교 교수를 시작으로, 1946 부산 고려신학교 교수와 2 교장으로 12년간 역임하며 열정적인 강의로 학생들을 감동시키기도 하셨습니다. 1979 서울 총신대 대학원장에 취임하셨는데, 9 3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초대를 받아 창립 50 기념행사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성경 전권에 대한 주석 20권을 집필 출판하셨고, 40 년간 신학 교육에 전력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성경 전권에 대한 주석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한국 교회로서는 놀라운 성과가 아닐 없습니다.”

- 자식들에게 성경을 가까이하게 하신

- 한국 교회, 교계에 아버지가 끼친 영향력은 컸다고 보지만 좀더 폭넓은 연구를 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2. 태생적 약점 240p

- 극단적인 보수 성향을 보이곤 하셨다. 그래서 주일에는 어떤 일도 없었고, 목회자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의 성장을 추구하거나 심지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과 자신의 권위를 공고화하는 것을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 아버지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이를 갚아야 마땅하므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라고 부르짖었다. 이는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 하나님을 아는 , 그분을 알아가는 , 그것이 영생의 본질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인 예수 그리스도다.

) 진정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직접 창조한 사람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가장 좋은 것을 주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 아닌가. 은혜는 갚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리는 것이다.

) 누림으로써 갚는 것이다.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사랑하는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를 위해 고난 받으신 것이다.

- “나는 성경과 직접 관계가 없는 권도 읽지 않았다 말씀하셨다.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자랑이었다. 그것은 다른 신앙의 선배들이 책도 별로 읽지 않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주석(註釋) 학자로서 편협한 시야를 갖게 했다.

- 칼빈은 구원받은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 사회나 공동체에서 압제(壓制)당하는 자의 해방과 가난하고 병든 자를 구제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의 성결과 경건에만 집착했을 뿐 아버지가 속한 한국 사회의 불의(不義)와 가난과 압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때로는 그것이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된다고도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된다는 염려보다 실제로 참여를 통해 입게 될 핍박이 두려웠던 것 같다.

 

3-3. 성경책 속에 갇힌 하나님의 244p

- 아버지가 만난 하나님은 죄를 시시콜콜 밝혀내 벌주시는 하나님이었다. 충성의 대상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장점을 보기보다는 단점과 죄를 먼저 보는 예리한 눈을 갖게 되었다.

- 자신은 청렴(淸廉)결백(潔白)하다는 자의식 때문에 그렇게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이 오해를 받더라도 궁지에 처한 사람의 마음을 배려한은 사랑의 행위가 귀중한 것이 아닐까?

- 하나님의 종이라고 섬김 받는 아버지에게 부당하게 구타당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탈출구는 (脫出口),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아버지가 섬기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도망치는 밖에 없었다.

- 어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연민도 받지 못했지만 우리 남매들은 힘들다는 말조차 몰랐다. 중심에는 당신 홀로 하나님나라의 일에 죽기까지 충성하고자 했던 이기적인 칼빈주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 그런 아버지의 일그러진 충성을 부추긴 데는 새어머니와 주변의 동료, 그리고 나아가 아버지 숭배하기를 일삼았던 교회가 한몫 했다. 그들이 모두 공범(共犯) 자리에서 비켜날 수는 없을 것이다.

- 목사님의 특히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존중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경도 문자적으로 이해하시되 현실감 있게, 현실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있도록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이며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목회자의 모습을 보며, 그간 보아왔던 권위적인 모습의 목사와 대비되었다.

- 하나님은 사랑의 시작을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하게 하셨다. 사람이 육체로써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이웃의 영혼까지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 예수님은 십계명을 계명으로 분명하게 요약하셨다. 첫째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관계의 중심으로 모든 행위의 에너지가 된다. 노예처럼 죽기까지 봉사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사랑의 행위가 수고로 나타날 때가 많으나, 수고가 사랑인 것은 아니다.

 

3-4. 주석학자를 보는 시선 250p

- NIV 영어번역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기 시작했다.

- 아버지의 주석에는 한글판 성경이 중역을 거듭한 번역판이라는 사실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 처음에는 man이라는 단수를 썼는데, 설명에서 male and female, 남자와 여자라는 말로 받으며 복수를 썼다.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인간이라는, 하나님을 방불케 하는 존재로 역할(役割)하게 하신 것이다. 인격이 연합해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물의 세계를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 2 18절에 아담을 위해돕는 배필 지으셨다고 했는데, 영어 성경에는 “a helper suitable" 번역되어 있다. 글을 히브리어로 찾아보면 '쌍벽을 이루는’ ‘대등한이라는 표현이 된다. 결코 종속되었다는 의미는 없다.

- 창세기 5장의 족보와 11 10 이하의 셈의 족보에 특이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버지는 한글 번역 성경을 읽었고, 거기서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히브리어 성경이나 헬라어 성경을 참조하셨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 깊숙한 곳에는 유교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한글 성경은 여전히 유교적인 세계관을 벗어버리지 못한 번역이었으므로, 아버지가 한글 성경을 읽을 아버지의 사상 체계와 맞는 부분에서는 중요한 단어를 원어(原語) 대조해 보는 없이 그냥 지나쳐버린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

- 성역 50주년 행사를 마친 아버지가 쓰신 주석을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 아버지는 주석을 영어권 교회에 출판 판매하는 일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가 일은 거기까지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여생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이 자란 당신의 자녀들을 포용하는 용서와 화해의 여생이 되기를 바랐다.

- 한국 교회는 우선 한글판 성경이 과연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글자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이른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믿는 복음주의 교단들 안에는 훌륭한 히브리어 헬라어 학자들이 많다. 이들이 교파를 초월해 힘을 모아 서둘러 작업을 해야 한다.

 

3-5. 죽도록 충성하기의 255p

- 당신이 정한 기준이 있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에 죄책감을 가지셨다. 아버지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죄를 짓는지 감시하는 분이었으므로, 아버지의 죄책감은 단순히 겸손함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죄를 구속하기 위해 기꺼이 고난 받고 죽으신 그분을 믿고 인생을 그분 손에 올려놓을 , 비로소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전적이고도 지속적인 은혜를 누리는 삶이란 바로 이것이며, 칼빈이 가르친 구원의 복음이기도 하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드릴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희생을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저 당신이 원하시는 ,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당신의 뜻대로 하실 뿐이다( 135:6; 1:5-9).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길에 널린 돌로도 당신을 찬양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랑이다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사랑받기 원하신다. 그래서 사람에게 마음(생각) (의지)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무엇을 받아내려고 졸라 대는 것이 기도라 가르치고,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의사 소통할 때는 신실한 말로 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덤비듯 하는 말은 예수님도 금하신 것이다.

기도란, 나를 극진히 사랑하시되 십자가의 희생을 치른 아들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슴지 않고 가까이 나아가, 마음을 정직하게 보여드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 또한 성령님이 인도하실 때만 가능한 것이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야 제대로 기도할 있다.

- 피곤하여 낮에 잠을 잘 수밖에 없더라도 매일 새벽 기도에 출석한다. 이는 우상을 섬기던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을 추락시켜 우상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망령된 짓이 아닐 수 없다.

- ‘죽기 내기로 기도하고’ 자기 모습을 은혜 받을 만한 자격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아버지의 설교는,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 10 말씀에서 가져온 것이다. 요한계시록 2장의 상황은 교회가 핍박당하고 있을 때로, 변절(變節)하느니 죽음을 택하라! 말씀이다.

- 믿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한정 공급받는 자다. 그러므로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과 깊이 사귀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복된 관계여야 한다. 서로 깊이 사랑하므로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알기에 갈수록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된다.

 

3-6. 진정한 구별됨 263p

- 아버지는 인간이 갖는 욕망을 이겨내어 청빈(淸貧) 이른 것이 아니라, 돈의 가치를 알지 못했으므로 아예 갈등조차 없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돈뭉치를 아버지께 갖다 준다 해도 개인적인 용도로 푼도 생각을 못하시는 분이다. 이런 점을 한국 교계에서는 청렴(淸廉)결백(潔白)하다고 높이 평가하지만, 가족에게는 청렴결백이 아니라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가장(家長) 모습일 뿐이었다.

- 아버지는 생전에 내게 70 통의 편지를 보내셨는데, 당신의 일에만 집중할 딸인 형편이나 힘든 살림살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있다.

- 그렇다고 당신의 영과 육의 엄격한 경계를 끝내 고수하지도 못하셨다. 아버지의 신학교 교수 월급과 함께 출판 인세(印稅) 출판 수입(收入) 새어머니에게 전달되는 것에 대해서는 방관하셨으니 말이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로부터 완전한 분리이다. 죄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 생전의 아버지는 돈과 권력이 사람을 썩게 한다고 무수히 강조했다.

-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완전무결하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굳이 사람의 노력이나 희생이 더해질 필요는 없다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 사역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그럴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느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열매를 맺게 된다.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품으신 가치관을 세상에 드러내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된다.

 

3-7. 진정한 믿음(believe in) 기대하며 268p

-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같은 것임을 전제해야 한다.

- ‘믿는다 말은 단어에 ‘in' 함께 사용하는데, 때는믿기 때문에 신뢰한다 의미로 사용된다.

- ‘beliebe in’ 믿는 자와 믿는 대상의 관계를 중요시한 구절이다. 믿기 때문에 자신을 그분에게 전적으로 맡겨 그분을 기뻐하며 삶의 왕으로 모시고 자신의 인생을 펼쳐 나간다는 의미다.

- 믿기에 신뢰한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오직 믿는 것으로만 구원을 얻을 있다는 교리만 강조하고 있었다.

- ‘believe in’ ‘believe’ 차이점은 야고보서 2 19절에 날카롭게 대조되어 있다.

-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통탄했다“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σὺ πιστεύεις ὅτι εἷς ἐστιν ὁ θεός, καλῶς ποιεῖς· καὶ τὰ δαιμόνια πιστεύουσιν καὶ φρίσσουσιν. (약 2:19). 여기서하나님은 분이신 줄을 믿느냐?” 때는 ‘in’이라는 전치사 없이 believe만을 쓴다. 신뢰하는 관계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복받기 위해 믿는다는 의미로만 것이다.

- 'believe in'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상태다. 그런 사람은 여전히 진노의 자녀에 머물러 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남아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교회와 목회자를 헌금, 시간, 봉사, 죽기내기의 기도로 섬기지만, 그것은 자신을 소진시키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이것이 믿기만 하면 중생하여 구원받아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천국만이 목적이다. ---[이것은 은혜로 구원받는 일과 구원 받은 이후에 우리가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 사이의 구분을 망각하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자들은 인간의 의지적 결단과 순종하고자 몸부림치는 신앙생활을 율법주의자라 정죄한다. 가령 김경환의 '마귀의 종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 (사 6:5-8)' 동영상 참조].  

 

- 믿는 자는 마지막 완성되어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하다자기 노력을 의지하는 것은 죄다 (8:9-11; 고후 1:22, 5:5; 1:14). 그것은 행위를 의지하는 죄인 것이다

-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고자 이미 이루어 놓으시고 계속 이루어 가시는 일에 사람을 초청해 참여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힘쓸 것은 없다. 그저 잠잠히 그분이 하시는 일을 믿고 기다리면 된다. 이것이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자들의 자세다.

-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려면 바쁘게 지내서는 된다 ( 4:11-12). 오히려 말씀을 깨닫기 위해 쉬지 않고 해야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다. 이것이 기도다.

  

에필로그 - 순례기를 마치며

- 사랑의 걸음은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투영하는 노력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인도한다.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성격과 생각을 이해할 비로소 사랑이 서로 간에 흐르기 시작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가 신앙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상대방을 상하게 하고 사랑의 흐름을 막아버린다.

- 하나님은 오랜 시간 공부하게 하시면서 목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하셨다. 우선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셨고, 그동안 가려졌던 아니 알리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정직하게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생각해보고 알릴 있는 용기를 주셨다.

- 목사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재능과 성향이 일에 적합한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부탁하신 사명은 그리스도의 양떼를 먹이는 일이다.

- 목사는 사람을 좋아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먹어야 하며, 자신만 먹을 아니라 다른 양떼를 먹일 줄도 알아야 한다. 연민을 가지고 사람을 설득하고 확신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1954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고 유학하던 네덜란드에서 귀국하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일은, 미군 운전병이 관대한 처분을 받도록 청원하는 일이었다. 남겨진 어린 자녀들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도 없으셨다.

- 하나님은 살인한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 명하셨다. 무조건 용서하고 방면하면 없는 시민은 어떻게 보호하며, 사회의 질서는 어떻게 유지할 있겠는가? 하나님은 질서를 위해 단호한 행동을 명하신 것이다.

-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누구에게는 평생 잊을 없는 끔찍한 일인데, 아버지는 그렇게 했던 것일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 하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지금 한국 교회는 거대한 교회당을 짓고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바치며 이른바배가 운동 하느라 몹시 바쁘다. 목회자는 그들 위에 군림하여 위세를 부리고 마치 황제라도 착각하며 거룩한 강단을 모독하고 있다. 이런 교회의 구조 속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추대된 이들은 출세라도 것처럼 착각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오염시킨다.

-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자녀의 엄마로서 나도 말씀의 무게를 절감하며 살았다. 하나님이 맡기신 어린 영혼들이 내게 가장 귀중한 존재라 여겼고, 가능하면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삶에 생각과 뜻만이 옳은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선택권을 주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불평하면 나는 사과했다.

- 최근에서야 나는 자유함을 만끽하고 있다. 정죄의 틀에서, 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랑받지 못한 상처에서, 그리고 사랑하지 못해 죄책감에 눌려 살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지금은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을 체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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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란 목사는 박윤선 목사와 첫째 부인 김애련 씨의 3 3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1970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 늦은 나이에 덴버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할렐루야 교회에서 성경 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08 목사 안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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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3 25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박혜란 목사를 만날 있었다. 목사는 사이버 강의 녹화를 위해 3 19 한국을 찾았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70 넘은 나이 탓인지 귀에 보청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할 때면 막힘이 없었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에도 하나하나 답을 달아 놓았다.
인터뷰는 3시간 가량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집필 동기부터 박윤선 목사의 상습적 폭행, 김애련 (박윤선 목사의 첫째 부인) 소천 당시의 상황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목사는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 '컴맹'이라 자처하는 그이지만, 주변에서 하도 말이 많아 인터넷에 어떤 글들이 올라왔는지 직접 찾아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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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모두 사실"
목사는 책에 진실이 아닌 내용이나 과장된 내용은 없다고 했다. 편집인이 내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장 순서를 바꾸거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려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제목이나 과장된 표현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내용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료를 (편지, 일기) 토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책에 담지 못한 심한 사건도 있지만, 글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라 넣지 않았다고 했다.
집필 동기는 분명했다. 진실을 남기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신학적으로나 인성적으로 분명한 결함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목사를 우상 섬기듯 추앙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잘못된 유산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폐해가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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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합신 대학교에서 정암 기념 사업회를 열었다. 강단에서 아버지 설교를 복창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짜리 책도 냈다. <부르심,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기도, 죽기 내기로 기도하라> 등이었다. 내용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제목부터 문제가 심각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죽기 살기로 하는 어떻게 교제라고 있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잘못된 가르침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아무런 성찰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받아 내려고 한다. 우상숭배다. 마치 신령 나무에 매달려 놔주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기를 쓰고 교회에서 살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봉사하게 한다. 교세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지, 교회의 본래 가치가 아니다. 아직까지 이런 내용의 책을 팔고, 설교하는 문제다."
아버지는 '개인' 아닌 한국교회 '지도자'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 내기 위해 책을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아버지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집필을 다짐했다고 했다. 역시 논란이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렇게까지 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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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 목사가 (박윤선 목사의 조카 사위) <목사의 > 비판하며 창세기의 노아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노아) 술에 취해 벗었을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행동을 떠벌렸으나, 셈과 야벳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함과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노아와 아버지는 완전히 다르다. 노아는 개인이지만,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다. 하나님은 지도자였던 모세의 잘못은 엄중히 꾸짖으셨다. 아버지 역시 지도자로 숭배를 받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개인에 불과했다면 이런 책을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0년이 넘었지만,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아직도 아버지를 성인 모시듯 한다. 책을 집필하게 계기는 주변 목회자들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한국교회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박윤선 목사에 대한 비판이 필요했다. 마침 나에게 자료가 많았고, 한국교회를 위해 책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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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 삼류 소설?…"아버지는 욱하는 스타일"
박윤선 목사 가정과 가까이 지낸 목사의 제자들은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말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윤선 목사의 조카 사위였던 김수흥 목사는 책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글을 <뉴스앤조이> 기고했고, LA 사는 박혜란 목사의 이복 동생인 박성은 전도사도 참고 자료라며 장문의 메일을 <뉴스앤조이> 보냈다. 이들은 책의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고 주장했고, 목사의 저의를 의심했다. 박혜란 목사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먼저 박윤선 목사가 김애련 씨와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일부터 물었다. 박혜란 목사는 사실이라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분노가 많고 성미가 급한 성격이어서 폭행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집에 잠깐 머물고 돌아갔던 외부인들이 폭행 사실을 모르는 당연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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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하교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김애련 ) 다녀왔다고 인사했다. 평소 같았으면 왔느냐? 반갑게 맞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안에 가만히 숨어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는 직감적으로 느낄 있었다. 그런 상황을 여러 목격했다. 춘호 오빠나 (박윤선 목사의 첫째 아들) 요한 오빠는 (박윤선 목사의 둘째 아들) 자주 목격했다. 언니 오빠들은 어머니가 맞는 모습도 봤다. 밖에서는 성인처럼 추앙받는 아버지였지만, 가정에서는 자녀들과 어머니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이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재혼하고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화주 어머니가 (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 오신 후로는 자녀들에게나 어머니에게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 아예 말대꾸 자체를 하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오면 가만히 계셨다. 어머니가 (김애련 ) 갑작스럽게 떠난 후로 충격을 받으셨던 같다. 조강지처(糟糠之妻) 빨리 죽은 사람들은 후처(後妻)에게 굉장히 잘한다. 잃어버릴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서다. 이복동생(異腹同生)들은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와 성은이는 14 차이가 난다. 우리 형제들은 이복동생들에게 예전 일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와 김애련 씨가 다툰 이유를 자식들 때문이라고 한다. 교단이나 신학교 내에서 목사가 바른 소리를 하면 " 목사는 자기 아들이나 다스리라" 소리를 들었고, 이런 문제가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목사는 첫째 오빠의 (박춘호 ) 비행으로 아버지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버지의 잘못에서 비롯된 싸움도 잦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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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호 오빠는 아버지의 의처증(疑妻症)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임신을 피하기 위해 잠자릴 거부하시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의심했다. 낮에 남자가 집안에 고치러 와도 싸움이 났다. 춘자 언니(박윤선 목사의 첫째 ) 아버지의 급한 성미를 싸움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문제도 있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께서 가난한 신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일을 회자(膾炙)한다. 헌데, 어느 누구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는 6명이고, 신학생들과 손님들은 거의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을 어머니와 상의(相議) 없이 혼자 결정했다. 어머니는 홀로 가정 살림을 떠안고 있었다."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 운운"
<목사의 >에는 김애련 씨의 사망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던 박윤선 목사는 김애련 사망 10 만에 귀국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박혜란 목사가 아버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당시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글을 썼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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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이 늦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럴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귀국 행동이 문제였다. 충격에 빠진 자녀들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뒤로도 어머니의 추도 예배를 한번도 드리지 않았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재혼(再婚) 문제도 그렇다. 아버지가 공부와 목회만 아는 분이었고, 젊었기 때문에 여자가 필요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 요한 오빠는 17살이었고, 나는 13살이었다. 자녀들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알려는 줬어야 했다. 따로 나가서 같으면 그렇게 수도 있지만, 집으로 데리고 사람이라면 결혼 전에 결혼한다는 말이라도 해야 했다. 지금도 이해할 없다."


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인 이화주 씨가 전처(前妻) 자녀들을 차별했다는 내용은 사실일까. 책에 따르면 이화주 씨는 전차와 후처(後妻) 자식들을 차별하고, 전처의 자녀들에게는 폭언(暴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박윤선 목사의 제자들은 이화주 씨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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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잠깐 들러서 아버지와 얘기나 하고 돌아갔던 사람들이다. 부엌에서 살림을 도와줬던 아주머니들이 그들보다 집안 사정을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수도 없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이화주 어머니가 저주하는 말을 뱉을 수도 없다. 허순길 박사는 단열의 (박윤선 목사의 셋째 아들) 공부를 봐주기 위해 집에 들락거렸다. 박사와 인사는 했지만, 한번도 대화를 보지 않았다. 글을 보니까 나를 혜란이라고 부르더라 상당히 불쾌했다.
이복 동생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또한 당연하다. 우리 형제들은 이화주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외부에 전혀 말하지 않았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인 외숙모에게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께 누를 끼쳐서는 된다는 집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이들은 이화주 어머니가 남에게 돈을 꾸어 나의 대학 등록금을 대줬는데 어떻게 차별 운운할 있냐? 얘기한다.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꾸는 일은 자주 있었다. 등록금 말고도 생활비가 항상 부족해 큰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다. 당시 서울대학교 등록금은 다른 대학의 반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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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등록금을 것도 아니다. 1년간은 가정 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고, 학기는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등록금을 때면 항상 불평했다. 혜란이 등록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자주했다. 집에 가면 그런 불평을 계속 늘어놓으셨다. 집에 가는 끔찍이 싫었다."


의문의 꼬리는 책의 출판 시기로까지 이어진다. 박윤선 목사와 이화주 씨가 살아 있을 때는 책을 내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책을 출판한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론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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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말들이다. 도대체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없다. 5 전부터 집필을 준비했고, 4 전에 탈고했다. 아가페 출판사에 찾아가기 전에 ㅅ출판사와 ㅎ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다. 모두 처음에는 반겼다. 하지만 내부 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출판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직접 아가페에 원고를 보내진 않았다.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줬고, 친구가 아가페에 원고를 보냈다. 아가페도 출판 여부를 놓고 직원들의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정형철 대표가 출판을 적극 지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판할 있었다. 그래서 늦어진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다 이런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진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책을 썼다."


아버지에 의한 강제 결혼이었나가치관 차이로 남편과 불화
결혼 문제는 어떨까? 박혜란 목사는 <목사의 >에서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혜란 목사가 결혼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박윤선 목사가 신앙이 약했던 사람을 사위로 받아들일 없고, 둘은 죽고 사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박혜란 목사는 황당해 했다. 도대체 자신의 연애사를 어디에서 듣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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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다. 나는 남자를 무서워했다.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현재의 남편이 졸업 후에도 계속 따라다녔다. 집에 가면 문밖에 있었고, 어딜 가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당시에는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일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부터 왕래하기 시작했다.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가시기 전에 남자와 결혼할 거냐? 물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그냥 친구다!"라고 했고, 아버지는 결혼할 사람도 아닌데 만나느냐? 화를 내셨다. 만나는 남자가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겠다! 하니,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
아버지는 많이 불안해했다. 혼자 서울에서 지내는 것도 그렇고, 당시에는 일이 늦게 끝나 통행 금지 시간이 돼서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말이다. 당시에 나는 자존감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사람과 결혼한 같다.
도대체 남의 연애사를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의 결혼 문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연애 얘기를 적이 없다. 남의 결혼 문제까지 추측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반항했다는 얘기도 나오더라. 부모님께 꾸지람 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결혼 문제로 아버지께 처음으로 맞았다. 그때 아버지가 자유 방종(放縱) 이런 말을 했고, 말을 어머니가 이복동생이나 김수흥 목사에게 얘기한 같다."
책에 쓰인 대로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가치관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단념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지낸다고 했다. 경제적인 상황도 좋아져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있는 수준은 된다고 했다.
남편과의 불화로 불면증(不眠症) 앓기도 했다. 젊었을 때부터 민감한 성격 탓에 종종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6 전에는 증상이 심해져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 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누적되고, 나이가 들자 증상이 심해졌다. 하지만 지속적인 상담 치료와 목회 활동을 통해 현재는 거의 완치됐다고 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화주 씨의 자녀들은 이복형제들을 친누나와 친형처럼 따랐는데, 박혜란 목사는 항상 자신들을 이복동생이라고 부르는지, 동생들은 궁금해한다."
목사는 이복동생들을 차별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한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계모나 이복동생이라는 표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복동생(Half-Brother)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한인 교계에는 박윤선 목사의 전처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서 이복동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한국교회 갱신 위해 집필
박혜란 목사는 인터뷰 내내 아버지를 힐난할 목적으로 책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한국교회가 말씀과 기도의 전통을 유산으로 받았고, 동시에 아버지의 한계를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한다고 했다. 한국교회를 위해 아버지에 대한 바른 평가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낼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했다.
[출처: 뉴스앤조이] [인터뷰] <목사의 딸> 저자 박혜란 목사, 직접 입을 열다

 

 

박윤선 목사의 조카 사위가 <목사의 > (아가페북스)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뉴스앤조이> 기고한 글을 전문 그대로 싣습니다. <뉴스앤조이> 3 20 <목사의 > 저자, 박윤선 목사의 박혜란 씨를 인터뷰하고 내용을 보도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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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아가페북스)이라는 책도 책이라고 있는가? 책의 추천자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일독(一讀)해야 책이라고 추천했다. 출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출간했다.

딸은 자기 아버지를 세상에 바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12). 그러나 사촌 형부인 필자로서는 처제의 글이 이상 교계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소리를 수밖에 없다. 처제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외국에 계시는 상황에서 친모의 별안간의 죽음으로 상처를 입고 평생 가슴 아프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대한 어떤 고착된 시각으로 그려낸 서술이, 그들의 진면목은 아니다.
목사님 가정을 12년간 드나들다
필자는 일정 기간 동안 박윤선 목사님이 섬기던 동산교회의 성도였고(1962~1969),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조카사위가 되어(1964) 필자가 미국으로 유학 가기 (1975) 12년간 그의 집을 드나들며 주석 집필을 도왔고, 신학교에 들어가 그의 강의를 3년간 들었으며(1969~1971), 그분이 시무하시는 관악구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목사님과 그분 가정을 있게 되었다.
딸은 사춘기의 어린 나이에 친모를 잃고 (자동차 사고에 의한 별세) 새어머니를 맞으면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다만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새어머니를 악녀로 (惡女) 보게 되었으며 아버지를 자기의 불행을 만든 장본인으로 몰아붙였다.
딸은 자기 아버지가 "태생적인 신앙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주장한다(12). 그러나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결사적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아야 한다" 가르친 것이 틀린 말인가? 한국교회가 이렇게 것이, 실은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결사적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지 못해서 생긴 문제들이지,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 때문인가? 딸은 한국교회의 잘못된 점을 거의 모두 박윤선 목사님에게 뒤집어씌워 놓았다.
딸은 목사님이 "죽기 내기로 기도하고 죽기 내기로 믿으라" 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딸의 말은 아버지의 주장이 아버지를 힘들게 만들었고, 남들도 힘들게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그가 신앙생활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사건건 아버지를 꼬집어 뜯느라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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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팠던 가정'(33~44)이라는 부분에서 딸은, 자기의 친모(親母)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반해 아버지에 대해서는 친모에게 계속해서 임신만 시키는 분이라고 부각시킨다.
딸은 ' 가족'이라는 제목 아래(69~77)에서, 친모가 별세하고 목사님께서 화란에서 돌아와 맞은 부인에 대해서는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참으로 이상하게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대접할 때는 친모를 대하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없었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아버지가 전처의 별세(別世) 대해 전혀 슬픔을 보이지 않았고 자녀들에게까지 위로의 말씀이 없어서 아주 무심한 아버지로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새어머니는 전처 자녀들에게 전혀 사랑도 없는 차디찬 인간이라 묘사해 놓았다. 독자들이 글을 읽고는 누구든지 딸에 대해 동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어머니는 박혜란 처제가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북한에서 넘어온 실향민(失鄕民)이었고 간호사였으며 고신에서 공부한 신학도였고 교회 전도사였으며 부흥회를 인도하던 이로 참으로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새어머니의 믿음이 박윤선 목사님의 가정을 넉넉히 이끌고 있다고 판단했기에, 사모님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강력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한 것이다. 딸은 새어머니의 결단에 감사를 했어야 했는데 정반대의 입장에 섰다.


책에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많다
딸은 '사랑을 몰랐던 목회자'라는 단락(77~89)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40세까지는 죽어지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이다. 40 이전, 자신의 결혼 이전에(25 이전) 얼마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했는지 모른다. 결혼을 반대하시는 아버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반항(反抗)했다.
목사님이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하나였다. 사위 사람이 목사님이 원하는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전처 자녀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사랑을 품고 분이었다. 우리 증인들은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사랑을 딸이 원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으신 것뿐이었다.
처제는 '갑작스러운 결혼'이라는 단락(89~96)에서 자신의 결혼은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 어쩔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다. 사람은 아주 대단한 열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말대로 목사님이 부산으로 가면서 마지막에 결혼을 혹시 허락하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떨어질 없는 열애를 것은 사실이다.

박혜란 처제는 새어머니의 아들 박은성(가명, 지금 미국에서 신경내과 의사로 수고하고 있다) 중학교 입시를 위해 서울 큰아버지 (필자의 장인, 당시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집에 있을 새어머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부산과 서울을 왕래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는 박은성을 큰아버지 집에 데려올 때에 번쯤 오셨을 거의 오실 수가 없으셨다. 처제가 이렇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뻔히 알고 있다. 전처 자녀와 후처 자녀를 달리 대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딸은 '날아가 버린 마지막 기회'(107~122)라는 제목하에서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회개를 촉구했다. 딸은 "아버지가 자식인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회개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들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님 댁의 분위기를 모르시는 분은 박혜란 처제의 말이 사실일 거라 느끼겠지만 우리는 주장이야말로 쓴웃음을 자아내는 주장이라는 것을 얼른 알아차린다.
딸의 성경에는 가지 진리가 빠진 같다. 아버지(노아) 술에 취해 벗었음을 알고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노아가 벗었음을 떠벌렸으나, 다른 아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가릴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장막으로 들어가 그의 아버지를 가려드렸다는 이야기가 딸의 창세기 성경에는 빠져 있는 같다( 9:20-27). 성경을 다시 보아야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행위를 '가증한 '(117)으로 매도했고, 아버지는 '장님이 되신 '으로 말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는가?


딸은 '용서받지 못한 '(122~130)이라는 제목하에서 자기 아버지가 가족 간의 틈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했으나 실은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리셨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딸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 덴버로 찾아가 회개하라고 권유했으나 딸이 완강히 거부하여 목사님은 끝내 눈물로 발길을 돌리시고 말았다.


딸은 '아버지의 신앙, 아버지의 교훈, 그러나 사랑이 필요했던 가족'(145~164)이라는 제목하에서 아버지가 매일 아침 "아버지께 나아왔사오니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의 기도는 아니라고 했다. 필자도 목사님의 기도를 많이 들었다.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기도야말로 가장 바람직스러운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겸손한 자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복된 기도이다. 필자도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리는 중에 특별히 기도를 드린 날은 더욱 복됨을 느끼곤 한다. 목사님의 기도는 단순한 반복 기도( 6:7) 아니라 형언할 없는 애절한 기도였다.
딸은 "아버지는 아주 현실감각이 없고 게다가 용기도 부족하다 보니 본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 박힌 유교사상을 냉철하게 도려내지 못한 인생을 마감하셨다" 진단했다. 그래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가지고 자기의 아내(딸의 친모(親母) 학대했고, 유교의 효도 개념을 성경에 그대로 옮겨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해서 자녀에 대한 사랑을 모른 살아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기도해도 유교사상 같은 것은 쉽게 없앨 있는 사상이 아닌가? 우리는 목사님께서 남존여비 사상도 유교의 충효 사상도 전혀 가지고 계시지 않는 것을, 강의 시간에서나 교회 설교 시간에서나 그의 책에서도 발견할 있었다. 공연히 유교에서 무엇을 끌어내서 아버지를 공격한 것임을 있다.


목사님은 목사님 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글솜씨가 좋은 필치로 딸은 글을 내려갔기에 가정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동정하게 되고 목사님이 그런 분인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는 식의 말을 하게 것이다. 딸은 "아버지는 곁에 있던 수많은 이웃과 당신의 연약한 아내(저자의 친모) 자녀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셨다고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라고 의문했지만 목사님은 오늘 몇몇 증인들이 보기에도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셨다. 아버지를 곡해해도 너무 지나친 것임을 있다.
처제는 미국 덴버에서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와 조상숭배, 그리고 미신으로 혼합된 종교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193). 이런 말은 한국교회를 너무 지나치게 폄하하는 말이 아닌가?


처제는 '하나님의 재발견'(205~216)이라는 제목 아래서 목사님이나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남성 우월주의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마치 콜로라도 덴버신학교 신학자들만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이 말한 것은 기막힌 말임을 있다. 목사님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참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결코 남성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것이다 ( 3:28). 목사님은 갈라디아서 3 28절을 가지고 결코 남성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단지 역할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항상 강조하시곤 했다.


딸은 '이별이 아픔'(217~233)이라는 제목하에서 아버지가 별세하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그래도 제가 정직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불편한 형편에 두시나이까? 속히 나를 불러 가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을 가지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이 붙들고 계심을, 주님 안에 안기어 있음을 찬양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괴로우니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조르는 어린아이의 이기적인 기도였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삶은 항상 이러했다고 아버지를 꼬집는다. 딸은 어찌 아버지의 그런 점만 보았는가?
목사님은 사실 병원에 18일간 누워 계시면서 수많은 놀라운 기도를 드리고 가셨다. 신학교를 위해, 교계를 위해, 자녀들을 위해 눈물겹도록 기도하셨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나와 병원에 머물면서 목사님을 지켜보았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해 드리려고 왔다가 오히려 기도를 받고 돌아가지 않았는가? 필자는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을 임종에 동참하게 만들면서 참으로 목사님의 훌륭한 점을 발견하고 눈물겨웠었다.


딸은 아버지를 너무 폄하했고 우리 교계도 그랬다
딸은 '태생적 약점'(240~244)이라는 제목하에서 "생전의 아버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기도를 드렸고 죄로 뭉쳐진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셨다" 말하고, 이런 자세가 한국교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이를 갚아야 마땅하므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라고 부르짖었다. 이는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한다. 딸은 한국교회의 기도를, 우상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악평하고 있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있고 기도가 있단 말인가? 딸은 아버지를 너무 폄하했고 우리 교계에도 그랬다.


모세도 모압 평지에서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은 과거에 지은 죄를 철저히 기억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며( 9:7-21),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와 사건을 기억하라( 9:22-24) 호소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죄인의 괴수"라고 말하며 우리가 죄인임을 기억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다(딤전 1:12-17).
딸이 그의 글에서 제일 많이 드러낸 말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러나 목사님은 목사님 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딸이 그처럼 아버지를 불순종하는데 어느 부모가 어떤 방법으로 자식을 살뜰하게 사랑할 있겠는가?


딸은 '죽도록 충성하기의 '(255~263)이라는 제목하에서 '지사 충성'이라는 휘호까지 문제 삼았다. 이는 유교의 군신 관계에서 신하는 목숨을 다해 군주를 섬겨야 한다는 사상과 맞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딸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붙인 휘호도 떼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니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충성하는( 2:10, 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딸은 바울 사도가 서신 첫머리에 자주 ''( 1:1; 1:1)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목사님은 강의실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83 묵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두고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한다. 아버지의 의식은 겸손을 가져왔고 온유를 가져다 주었으며 권위주의를 배척하게 만들었다. 바울 사도께서 구원을 받지 못해서 자신이 "죄인의 괴수"(딤전 1:15)라고 말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딸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께서 생존하신 동안 책을 내지 않고 있다가 분이 별세하신 (1988, 2014 각각 별세) 맞이하여 아버지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책을 펴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생존한 증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용감하게 책을 펴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잠잠히 입을 다물고 있다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를 알았어야 것이다( 19:40). 우리는 아직 살아서 딸의 책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책이 출판된 것은 시대의 슬픔이 아닐 없다
책은 사실에 입각한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많으며,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거의 줄곧 비난하고 폄하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책의 이야기가 모두 옳다면 그의 아버지는 비난 받아 마땅하겠으나 아직도 교계의 많은 분들이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아버지는 성숙한 신자가 아닌 위선자(僞善者) 뿐이요 그들의 존경도 위선이고 거짓이라고 말할 작정인가?
따라서 형식은 책이지만 내용은 도무지 균형 잡힌 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독자들을 혼란케 하고 교계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무튼 글을 저자나 추천한 사람들이나 출판해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시대의 슬픔이 아닐 없다.


이런 책을 선전하느라 출판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무슨 슬픈 가족사가 있다는 말인가? 책에는 딸이 자기의 느낌을 이외에 별다른 것은 없다. 출판사는 '() 박윤선 목사의 딸이 이제야 말하는, 아버지의 신앙적 오류와 순전한 복음'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으나 박윤선 목사님에게 무슨 신앙적 오류가 있다는 말인가?
또한 딸의 글에 무슨 순전한 복음이 있다는 말인가? 글에 무슨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있다고 그런 설명을 붙여 놓았는가? 약간의 지면을 사용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말을 것뿐이다. 물론 그가 깨달은 "Beholding is a way of Becoming"(하나님을 계속해서 주시하면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 Seperation not by Isolation but by Distinction"(믿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되 질적 차이로 거리를 두면 된다는 )이란 같은 것은 바른 말이다(17~19).


출판사는 '권위주의, 기복주의, 왜곡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순전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고 한국교회가 길입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달아 놓았다. 필자는 선전문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목사님에게 무슨 권위주의가 있고 기복(祈福)주의가 있으며 율법주의가 있다고 이런 문구를 내놓았는가? 몰라도 너무 모르니 이런 문구를 놓은 것이다.
비록 열네 살의 사춘기 시절에 친모가 별세함으로써 입은 상처와 친모의 부재로 인한 가정의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화해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것이 과연 성숙한 신자의 모습이라고 있을까? 처제(妻弟) 주장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모습이 그분들의 진면목이겠는가? 아버지의 별세 26년이 지난 시점에 이런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니 불효(不孝) 중에 이런 막심한 불효가 어디 있으랴! 다만 필자는 지금이라도 박혜란 처제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을 깊이 깨닫고 여생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언어학과와 총신대 신대원(65)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신학 석사과정 수료),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성문학 석사) 졸업한 Pensacola Christian College & Pensacol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동부 개혁장로회 신학교에서 주경 신학을 강의하였고 현재 필라델피아 삼일장로 교회 원로 목사이다. 필자는 성경 주해에 관심을 가지고 <마태복음 주해>(도서출판 목양) 비롯한 신약 전권 주해서(13) <창세기 주해>(도서출판 언약) 비롯한 구약 4 주해서를 출판한 있다.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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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앤조이]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 책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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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혜란의 “목사의 딸”에 대한 유감 

 허순길 박사 전 고려신학대학원장

나는 최근에야 박혜란이 쓴 “목사의 딸”이란 책을 접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은 분들은 딸이 그의 아버지 박윤선 목사에 관해 쓴 글이기에 놀랐을 줄 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책에서 보여준 그의 자만한 품격과 내용 대부분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혜란은 파격적인 자기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예순 아홉 살’이 되던 2009년 4월에 “김상복 목사님의 권유로 한국 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에서 (KALCAM) 목사 안수를 받았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는 미국 시민권 소유자이다.  거기에선 65세가 되면 일반적으로 은퇴한다. 하지만 ‘예순아홉 살’에 목사 안수를 받고 “비로소 내가 서야할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일로 보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런 문제를 거론하려는데 있지 않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허구요, 이것이 주님의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50년대 박윤선과 그 가정을 조금 아는 사람이다. 1954년 고려신학교 예과에 입학하여 7년을 고려신학교 경내에서 지냈다. 대학부 (칼빈 학원) 4학년 때 박윤선의 셋째 딸 은란의 과외 교사로 한 학기 동안 그 집에서 밥을 먹고 지냈고, 이어 신학교 본과에 들어서면서 그의 조교로서 졸업 때(1959)까지 3년 동안 풀타임으로 그의 주석 원고를 정리하고 도왔다. 이때 박혜란은 경남여고를 다녔고 이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박혜란은 한국 교회가 자기 아버지의 신학과 생활을 바로 판단하도록 글을 쓴다고 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은 그의 아버지 박윤선의 신학이 바르지 못하고 그의 생활도 잘못되었다고 아버지를 비하(卑下)하며, 이제 그가 남긴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그 이름을 잊어버리자는 요구이다. 그의 아버지 박윤선은 50대 전후 생의 황금기 13년 동안 고신의 개혁주의 신학을 주조했고, 만년에 합신에서 개혁신학교육에 봉사함으로 평생을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건설에 헌신한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종이었다.

 

혜란의 글 가운데 혹 어떤 것은 사실일 수 있다. 목사요, 신학자 박윤선이라고 무흠(無欠)할 수 없다. “이 생애에서 우리의 최상의 선행조차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2) 하지만 주님은 이런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교회건설을 위해 써 주심에 감사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의 아버지 박윤선을 단순히 변호하려는 데 있지 않다. 혜란이 아버지가 전처 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새어머니가 그들을 홀대(忽待)했다는 데 대한 증오로 허구한 화상(畵像)을 그려 주님의 교회에 무서운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잠잠할 수 없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1. 사랑을 말하지만 용서 없는 그의 위선

어머니를 잃고 계모를 갖는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계모가 아무리 전처의 자녀들에게 잘해도 칭찬을 듣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이화주 사모는 체격이 크고 외모가 여성보다 남성스럽게 보이는 분이다. 그래서 어린 전처 자녀들에게 섬세함이나 온화함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결핍할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혜란이 말한 대로 그가 항상 전처 자녀들에게 ‘배은망덕한 전처 자식’이라고 하며 박해를 가할 분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 분이었다면 전처 딸 은란이를 위해 어떻게 과외 교사를 둘 수 있으며, 서울대학에 입학한 혜란의 등록금을 댈 수 있었겠는가? 박윤선 교장은 정말 돈도, 살림도 모르는 분이었다. 혜란은 이화주 어머니의 배려를 고마워했어야 한다. 이화주 사모는 등록금을 보내고 나서 월급날을 기다릴 수 없어 돈을 빌리러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외국 잡지 노점상을 하는 혜란의 큰아버지에게 나를 보낸 적이 두 번 있었다.

혜란이와 남매들이 새어머니로부터 좀 홀대를 받고 심적으로 박해를 받았다고 인정하자. 그도 분명 새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간혹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오랜 세월 후에 모두 미국에 살면서 서로 만나 “어머니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했고, 이화주 어머니도 “피차 마찬가지이다!” 라고 말함으로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 L.A.에 있는 새어머니를 방문하여 한 방에 같이 자게 된 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처음 한 방에 같이 자면서 지나온 삶을 자유롭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새어머니는 당신의 침대를 내게 주시고 당신은 방바닥에서 주무셨는데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라고 했다.(p.161) 모녀가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으므로 어두운 지난날을 다 청산했다.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혜란은 새어머니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다. 지난 날의 일들을 잊거나 버리지 않았다. 지난날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여 글로 옮기고 그의 새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곧 기다린 듯이 세상에 책으로 펴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시103:12, 사38:17)라고 하며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라고도 했다 (미7:19) 주님의 자녀인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는 용서를 말하면서 용서하지 않았다. 무서운 위선자(僞善者)이다. 글로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에는 미움의 독을 그대로 간직해 왔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2. 박윤선의 자녀로 누린 특권을 외면

혜란은 그의 아버지가 전처 자녀들에게 무관심하여 큰아들 춘호, 미국에 간 춘자와 요한을 돕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6.25 전쟁 직후 우리 모두가 끼니를 채우지 못하던 어려운 1950년대에 그는 훌륭한 아버지 덕에 남들이 꿈도 꾸지 못한 특권을 누린 사실을 전혀 잊고 있다. 춘호는 1953년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다. 혜란이 말한 대로 그는 영어도 잘하고 똑똑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가정을 외면하고 술을 마시고 방탕한 길에 들어섰다. 성년이 되어 가정을 가졌으면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가정을 돌봐야 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죽기 살기로 일해야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늘 술에 취하고 방탕한 생활을 계속했다. 혜란도 그의 방탕한 생활을 언급은 했다. 그러나 춘호가 부모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숨겼다. 단지 부모가 그를 도와주지 않은 것만을 원망했다. 그는 종종 밤에 만취(滿醉)되어 아버지 집에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문을 부수고 행패를 부렸다. 그러니 부모로서도 그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혜란은 자기 오빠가 아침에 밖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부모로서 만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기에 학생들을 시켜 그렇게까지 하였겠으며, “모든 것을 다 접고 시골에 가서 글이나 써야겠다!” 라고 말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그 어려운 현장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혜란은 사실을 사실대로 쓰지 않고, 독자를 오도하고 그의 아버지를 잔인한 분으로만 부각시키고 있다. 정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 간 춘자와 요한이 아버지에게서 어떤 경제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1950년대에 외국에 유학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우리 같은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미국에 특별한 인연을 가진 분이 없는 한, 혹은 선교사들의 도움이 없는 한 미국에 갈 수 없었다. 춘자는 그의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 한 미국 가정의 호의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바로 1953년에 미국 유학을 할 수 있었다. 누구든 미국에 가면 장학금을 받아도 일하여 고학(苦學)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시간을 내어 남의 집 정원에 풀을 깎거나, 집이나 사무실 청소를 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 공부했다. 한국은 당시 보내줄 외화도 없었고 돈이 있어도 보내 줄 길이 없었다. 그런데 혜란은 그의 언니 춘자가 돈이 없어 석사 논문을 쓰지 못했다면서 아버지를 원망한다. 요한을 양자로 보낸 것도 미국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아버지의 목적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길이라도 미국에 가는 것이 모든 젊은이의 소원이었다. 혜란은 자기들이 아버지, 박윤선의 자녀이기 때문에 남다른 특권을 누려온 사실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그의 아버지와 계모 이화주가 전처 자식에게 무관심해 도와주지 않았다고만 원망한다. 칠순이 지난 딸, 혜란의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3. 아버지의 딸, 한 남편의 아내로서의 행태

혜란은 거의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박윤선에 대해 가능한 극단적인 모든 표현을 동원하여 매장하려 한다. 그의 아버지를 의처증(疑妻症)을 가진 분이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손찌검까지 한 적이 많다고 하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 마침내는 “상습적으로 구타했다”라고 한다. 물론 부부가 다투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잉꼬부부라 해도 서로 자란 배경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므로 가끔 서로 다툴 수 있고, 밀고 당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목사 박윤선도 인간이니 그럴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부부 사이는 칼이 물을 베어 가르지 못하듯 그 사이는 순간적으로 멀어졌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온다. 가끔 다툰 일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를 상습(常習) 구타(毆打)자로 몰고 가는 것은 악의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혜란이 그의 남편에 대해 그린 화상(畵像)은 참으로 가관이다. 그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여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이혼을 생각했다고 하며, 남편이 가진 결점을 하나하나 들춰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만하게 보이기까지 한 그의 자존심이 아버지가 강요한다고 자기가 싫어한 남자와 결혼할 분은 전혀 아니다. 자기가 좋아 결혼하고 뒤에 마음에 차지 않으니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아무튼,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고 일곱 손자녀까지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칠순을 넘어 할머니가 된 그가 결혼생활이 불행하였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현재 살아있는 남편의 결점을 낱낱이 들추어 활자화(活字化)하여 온 세상에 공포하였다. 이런 아내, 이런 여자가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이를 볼 때에도 그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 그려 놓은 회화(繪畵)가 조작이요, 악의에 찬 소설임이 분명하다. 혜란은 현재 그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지, 그 남편은 아내가 쓴 책을 읽고 어떤 독후감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목사의 안수를 받은 여목사 혜란의 행태는 정말 주의 이름에 큰 욕을 돌리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생활 윤리에 대한 기본도 갖추지 못한 그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설교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4. 박윤선의 빠른 재혼에 대한 불만

1954년 3월 김알렌(金愛蘭) 사모가 불의의 차 사고로 돌아가셨다. 당시 집에는 요한, 혜란, 은란, 단열 사 남매 중 요한은 곧 도미하고 어린 삼 남매가 남았다. 박윤선은 그의 아내에 대한 비보(悲報)를 받고 유학 중에 있던 네덜란드에서 바로 귀국했다. 그는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신념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분이지 가정을 다스리고 돌볼 수 있는 자상한 아버지는 못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황한 나머지 집안이 정리되는 동안 얼마 동안 아이들을 혹 합당한 고아원에 맡길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한 것이다. 혜란이 뒤에 이를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을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장성한 그로서는 당시의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를 하고 동정심을 가졌어야 한다.

당시 학생들인 우리들도 어린 아이들만 남은 그 가정의 형편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그 형편을 잘 아는 신학교 이사들과 교계 지도자들은 박윤선 교장의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하게 되었다. 문제 해결의 길은 좀 무리가 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재혼(再婚)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처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10월) 재혼을 성사시켰다. 재혼 상대는 625 전쟁 시 북한에서 혼자 피난 왔다가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1952년에 졸업하고 교회를 봉사하고 있던 이화주 전도사였다. 상처 후 상당히 빠른 재혼이었다. 그러나 당시 어려운 그 가정 문제의 해결은 이 길밖에 없었다. 물론 박윤선 목사도 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자녀들인 혜란, 은란, 단열을 위한 일이었다. 혜란은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과 의논 없이 일찍 재혼한 것만을 탓하고 있다. 어릴 때는 이해를 못 했어도 장성해서는 이를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5. 박혜란의 편향된 신학

박헤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자들을 만나 사랑이 지배하는 가장 좋은 신학을 했다고 하며, 사랑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행복해한다. 이 좋은 신학이 “목사의 딸”을 쓰게 한 것으로 보인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 모든 가능한 힘을 동원하여 아버지 박윤선의 신학을 폄하하도록 만든 신학이 결코 좋은 신학일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사랑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신학이 하나님의 사랑에 편중될 때 하나님의 공의, 죄와 회개는 무시하게 된다. 오늘 죄를 경시하는 교회 생활이 여기에서 왔다. 칼빈주의 신학은 언약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인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순종의 의무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약속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따른 순종의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듭 회개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기 때문이다. 헤란은 그의 아버지를 유교적 칼빈주의자라고 하며, 그의 신학이 남존여비, 충효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학이라고 하며 배척한다. 그는 가능한 한 모든 방편을 동원하여 그의 아버지의 신학을 폄하하고 있다. 거기에는 극한 자만과 여자로서 목사 안수받은 여권에 대한 자기 변호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신학이 영육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신학이라고도 비난한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라고 부르짖었다. 바울이 그의 몸을 사망의 몸이라고 할 때 그는 이원론자였는가? 물론 아니다.

혜란은 그의 아버지가 늘 죄인임을 고백하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복음이 ‘다른 복음’이라고 하며 정죄한다. 우리는 의인이면서 죄인이기에 항상 죄를 회개하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고, 죽기 살기로 봉사하기 원한다. 특별히 1950년대에 살던 우리는 더욱 그러했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공덕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고, 주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칼빈주의이다.

 

혜란은 그의 아버지의 주석이 “참고할만한 것이 없고 빈곤하다!”라고 하며 폄하한다. 모든 주석은 제각기 특징이 있다. 박윤선의 주석은 특별히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쓴 칼빈주의 신학에 입각한 실용적인 귀한 주석이다. 지난날 수만 명의 설교자가 도움을 받아왔고 지금도 도움을 얻고 있다. 혜란은 이 책들을 폄하하고 송두리째 땅속에 묻어 버리기를 원한다. 고약한 심술이다.

나아가, 딸 혜란은 “한국교회가 이렇게 큰 결함이 있는 분을 칼빈주의 대학자로 숭상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는 세상에서 박윤선의 이름이 지워지기를 원한다. 사랑을 말하는 그가 이미 하늘나라에 간 그의 아버지를 향해 살인적인 독을 뿜어내고 있다.

빗나간 딸이 폄하하고 정죄한다고 해서 박윤선의 신학이 세상에서 결코 무시를 당하거나 정죄되거나 묻히지는 않을 것이다. 혜란은 하나님이 반세기 동안 그의 아버지 박윤선을 들어 쓰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항의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실 일이 아니고 복 받들 일이 아니다.

 

할 말이 더 많으나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 박혜란은 이 책을 성령의 인도로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영’의 지배를 받아 쓴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주의 교회에 해독을 끼치고 무너뜨리려는 영 말이다. 주의 교회에 백해무익한 이 책을 목회자들, 신학생들, 교회지도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라고 책머리에서 추천한 분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를 어기고 여기에 재배포한 것은 허순길 박사의 지적이 박혜란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라 사려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