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제자도

중일사랑 2016. 10. 13. 16:40

신약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아콜루테오') 할 때, 군중이 그분을 따라간다거나 (기적이나 말씀을 기대하고) 아니면 주님의 제자로서 그를 따라가다란 의미로 나타난다. 그런데 구약에서의 그 표현은 사뭇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하는 주로 G. Kittel, “아콜루테오,” TDNT, 1,210-215를 참조하였다. 


1. 고대 헬라 사회에서 아콜루테오란 말은 남의 뒤를 따라가다란 의미였는데, 지적으로, 도덕적 혹은 종교적 의미에서 추종하다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신을 따르다란 말은 신이 행동하듯 행함을 신처럼 된다는 의미였다.


2. 구약에서 히브리어 할락 아하레란 표현은 의 뒤를 따르다 인데, ‘다른 신들('엘로힘 아헤림') 목적어로 하면, 우상숭배하다, 곧 배교하다란 의미였다 (2:12, 4:3, 6:14, 왕상 21:26, 11:10). 2:7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라” (할락 아하레 므아하바이; 70인역 아콜루테소 오피소 톤 에라스톤 무’)는 바람이 나서 남편을 져버리고 애인을 따라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스라엘이 잡신을 따라감이 그런 음행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 1:36, 13:5, 왕상 14:8, 왕하 23:3, 대하 34:31에서는 "야웨"를 목적어로 하여 "야웨를 따라가다"란 의미로도 그 표현이 사용된다. 그 말은 "야웨를 섬기다"란 의미이다. 하지만, “야웨를 따라가다란 표현보다는 주로 야웨의 길에 행하다/ 걷다란 표현이 더욱 부각된다. 오직 왕상 18:21에서 바알을 따라갈지, 야웨를 따라갈지를 결정하라고 엘리야 선지자가 인민을 촉구할 때는 야웨를 따라가다란 표현이 부각된다.


3. 신약에서 이 동사는 90번 나타나는데 11번은 복음서 밖에서 (4, 6, 고전 10:4 ) 나타난다. 복음서에서 아콜루테오는 주로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묘사에 사용된다. 14:4, 19:14에서 그리스도와 (어린 양, 왕 중의 왕) 연관하여 사용되었다. 동사 90번의 용례 중 73번은 예수님의 제자됨을 지시한다.

이 동사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a) 문자적으로 누구 뒤를 따라 간다 (follow).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갔다 (11:9, 마태 병행구, 14:13와 누가 병행구, 9:19, 11:31, 20:6 ).

b) 제자로서 누구를 따라간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자로서 따라간다. 2:14에서 레위를 부르실 때 레위가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그것은 제자로서 따라가는 동작이다. 15절에서는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이들이 언급된다. 이들은 그저 예수님의 설교나 기적을 원하고 따랐을 뿐이다. 구약에서 제자로서 스승을 따르다 란 의미는 아마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갔다는 왕상 19:20-21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자로서 따르는 일은 자기 부인과 순교를 기꺼이 각오할 필요성이 있다 (8:34).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운명에 참여함으로 자원하여 자기 생명을 내려놓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 오직 베드로만이 그런 각오로 (멀리 뒤 따랐지만) 주님을 따랐다. 물론 베드로는 나중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였다.

예수님은 부자에게 제자로서의 조건은 그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0:21). 이 부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나 제자들은 그렇게 했었다. 저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저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버린 보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하였다 28). 그런 약속된 보상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이 다가오고 고난이 닥쳐오자 먼저 자신이 두려워하였다 (32). 소경 바디매오는 시력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52). 바디매오만이 예수님을 따른 유일한 갈릴리 이외 지역민이었다.

누가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섰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5:27-28; 18:22, 28). 9:23에서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의 말씀은 제자 됨의 사고를 제자의 부활 이후 경험에로 이전시킨다.


4. ‘아콜루테오동사의 목적어는 항상 사람이거나 사람들이다. 목적어는 여격으로 표현되지만, 히브리어 영향으로 아콜루테오다음에 뒤에” (‘오피소’) + 속격명사를 동반하기도 한다 (, ‘할락 아하레왕상 19:20, 45:14, 29:16). 혹은 아콜루테오와 함께’ (메타 +속격 명사; 6:8; 14:13).

복음서에서 아콜루테오는 항상 예수님을 제자로서 따라가는 동작을 묘사할 뿐 (예외: 9:38; 14:13 병행구 눅 22:10; 9:19; 11:31; 20:6) 제자로서 "하나님"을 목적어로 "그를 따라간다"는 표현은 언급된 적이 없다 (이 점에서 구약과 다르다).

복음서 밖에서 일반적 의미에서 따르다란 의미로 사용된다 (12:8-9 베드로가 천사를 따른다); 복음에 수용적인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른다 (13:43); 바울이 체포될 때 군중이 그 뒤를 따른다 (21:36); 반석 곧 그리스도를 광야 여정 기간에 무리가 따랐다 (고전 10:4).


5. ‘아콜루테오5개 복합형들은 제자로서 따르다란 의미를 갖지 않는다.

a) ‘엑사콜루테오’ (마땅한 처벌을 지시한다; 벧후 1:16; 2:2, 15).

b) ‘에파콜루테오뒤에 온다.”

c) ‘카타콜루테오는 눅 23:55에서 여자 제자를 소개한다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d) ‘파라콜루테오는 동행하다 (16:17), 탐구하다를 (1:3 의미한다.

e) ‘순아콜루테오는 동행하다.


6. 가입하다, 순종하다, -에 의해 인도되다란 의미는 오직 사도적 교부들의 저작들에서만 나타난다. 목적어는 습관들 (저스틴 마터의 Diognetus 5:4), 주의 요구들 (1 Clement 40:4), 진리의 길 (1 Clement 35:5; 참조 아셀의 유언서 6:1) 등이다.


7.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단어들을 연구하게 되는데, 원래 성경 원문은 구약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단 2:4-7장까지, 라 4:8-6:18, 7:12-26), 그리고 신약에서 헬라어로 기록되었기에 적어도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는 기본적으로 성경 학도가 알아야 한다. 단어들의 연구에는 좋은 사전을 수시로 참조하고 찾아보는 일이 요청된다. 평생에 그러므로 사전과 씨름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사전

1) 구약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사전은 그 전에는 게세니우스의 사전을 기본으로 개정된 BDB라 (F. Brown- S. R. Driver - Charles A. Briggs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불리는 사전을 애용했다면, 2) 요사이는 KB3라 불리는 쾰러-붐가르트너 편저 히브리어-아람어 사전을 많이 사용한다 ((Ludwig Koehler & Walter Baumgartner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HALOT) (5 vols). 이런 사전들은 원래 독어로 저작된 것이 영역되었다. 


2) 헬라어 사전으로는 BDAG라 (W. Bauer–F. Danker–W. F. Arndt–F. W. Gingrich) 약칭되는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가 애용된다. 

70인역 헬라어 본문을 위해서는 Liddell and Scott Greek–English Lexicon (LSJ)을 사용한다 (릿델, 스콧 헬라어-영어 사전은 1940년에 9판이 나왔는데 주전 11세기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산출된 헬라어 문헌들을 근거로 집필되었다). 


3) 앞에 언급된 사전들은 단권 내지 몇 권으로 구성된 사전들이라면, 단어들을 통시적으로 (시간, 세월을 관통해서) 연구한 헬라어 사전인 TDNT와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T) 구약 히브리어 사전인 TDOT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T) 등이 유명하다. 이런 사전들은 전부가 독어로 원래 저술되었는데, 독일인들의 꼼꼼함과 정확한 작업은 이런 신학적 연구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유사한 구약 히브리어 사전으로는 윌렘 판게메런이 편집한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and Exegesis (5 vols) 도 있다. 


4) 단어 연구에서 통시적 (通時的 diachronic연구는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 연구와 병행해서 사용해야 한다. 어떤 언어건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단어의 의미가 변화되기 때문에 어떤 단어의 어원을 가지고 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글에서 어여삐 여기다 란 말이 고대에는 불쌍히 여기다란 의미였다면, 오늘날에는 예쁘게 보다란 의미라고 할지. 혹은 잣나비를 오늘날에는 원숭이라고 부른다든지, 여하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시적 연구란 한 시대에 산출된 문헌들에서 특정 단어의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고, 통시적 연구란 한 단어를 시대를 관통해서 연구하는 것이다. 


5) 오늘날은 컴퓨터의 발달로 이전에 상상할 수도 없이 편리한 성경 연구 도구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영어권에서 널리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는 Bible Works인데 아주 편리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런 편리한 도구도 영어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헬라어나 히브리어 기본 단어는 1000개 정도 알고 있어야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을 것이다. 


8. 제자도 - 부자는 12제자들이 버리고 떠났던 것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돈 때문에 결국 그는 영생의 기회와 사람으로 오셨던 하나님을 곁에서 섬기고 배우고교제할 그 절호의 기회를 다 놓쳐 버렸다. 지옥의 뜨거운 불 구덩이에서 지금 누구를 한 하겠는가?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눅 9:23) 제자 됨의 길을 말씀해 주셨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 자기를 버리는 삶 -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이다. 성령님의 음성에 절대 순종하여 자기를 버리는 삶, 이것이 참 기독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