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트럼프의 예루살렘

중일사랑 2017. 12. 18. 10:15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사위 큐슈너와 남편의 믿음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한 딸 이방카의 권고하에 아마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현실이기에 그렇게 선언하는 것은 현실을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랍권의 반발 때문에 미국조차도 그런 선언을 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트럼프의 극히 정치적인 그러니까 유대인이나 그들을 절대 지지하는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기독인들의 염원하는 바를 고려한 정치적인 선언을 무슨 성경적, 예언적 의의가 있는 줄 야단법석을 떨고 나팔을 불어대는 사람들의 그릇된 행태이다. 하나님의 예언 시간표가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다느니,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는 (눅 21:24) 예언이 성취되었다느니 하면서 난리를 피운다. 만약 눅 21:24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려면, 이스라엘이 6일 전쟁으로 예루살렘 전부를 차지하게 되었던 지난 1967년에 그런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 때에도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이들은 그렇게 환호하고 야단을 쳤을 것이 불문가지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예언 성취의 중심에 두고 난리를 피는 기독인들은 도대체 신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인가? 구약에서 예루살렘은 성전이 위치한 시온산을 품은 곳이었기에 세상에서 영적인 중심지였다. 유일하게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를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여 승천하셨다. 그 이후에 그분은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여 오순절에 성령님을 부어주셨다. 그때로부터 제자들은 권능받아 예루살렘, 온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여 오늘날 온 세상 도처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렇게 예수님의 오심으로 구원역사가 획기적인 전환을 한 지 2천년이 지났다. 2천년 교회사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 남은 자들이 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여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기능해 왔던 역사였다. 교회는 구약 이스라엘의 계승자이고, 구원사의 마지막 주역이다. 이스라엘이 구약에 구원사의 주역이었다면 이제 신약 시대에는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라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구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에서 "회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할' 혹 '에다'의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두 히브리어는 '에클레시아' 아니면 '수나고게'란 헬라어로 번역되었는데, 헬라어 '에클레시아'나 '수나고게'는 "하나님의 회중/ 총회"란 말이다. 그런데 유대교는 자신들의 모임을 '수나고게'란 헬라어로 지칭하고 있었기에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부득불 '에클레시아'라 칭할 수밖에 없었다. 즉 교회란 말은 "하나님의 회중"이란 말이다. 유대교가 자기들을 '하나님의 회중'이라 지칭하나, 실상 그들은 사단의 회당일 뿐이다 (계 2:9, 3:9). 신약시대에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회중"은 교회이다. 교회가 구약 믿음 공동체 이스라엘을 계승하여 구약의 모든 예언들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회중인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갈 3:29).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어떤가? 갈 4:22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저 중동 예루살렘과 교회를 대조시키고 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5, 26절에서 저 중동 유대교의 본산 예루살렘과 교회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각기 종과 자유자로 대조되고 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저 중동의 예루살렘은 율법에 종노릇하는 자들의 모임에 불과하고 교회만이 위의 예루살렘으로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누가 저 중동의 예루살렘이 세상의 영적인 중심지라고 하는가? 그곳은 여종 하갈처럼 종들을 품은 도시에 불과하다. 세상의 영적 중심지는 온 세상의 교회이다. 교회는 산위의 동네이며 저 하나님의 성전이 섰던 시온산이기 때문이다 (마 5:14, 히 12:22).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가 하늘의 예루살렘이며 시온산이라 했다 (히 12:22). 온 세상 만민이 시온산 교회로 모여들고 있지 아니한가? (사 2:2-4) 요한 사도 역시 저 중동의 지상 예루살렘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소돔이며 애굽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계 11:8). 사도 요한은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어린 양의 아내, 신부로 묘사했다 (계 21장). 저 중동 예루살렘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계 17:1-19:10에서 묘사되는 음녀가 아니고 무엇인가? 음녀란 신랑되신 하나님을 배교하고 사단의 자식들이 (요 8:44, 마 23:33) 되어 버린 유대교인들에게 적합한 명칭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불렀다 (마 23:33). 저 중동 예루살렘의 유대교의 사상적 지반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집대성한 탈뭇이기에 오늘날의 유대교는 바로 독사의 새끼들에 해당되고 사단의 회당인 것이다.


이런 엄연한 신약적 가르침을 외면하고 어떻게 누가 무지하게도 지상의 한 도시에 불과한 예루살렘을 세계의 영적 중심지라고 하는가? 세상 돌아가는 방향, 예언의 중심을 찾으라면 교회의 성쇠와 복음의 흥왕성쇠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구원사의 진전에서 중동 이스라엘은 온 세상 열방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백성, 언약 공동체, 믿음 공동체인 교회에 그들 중 남은 자들이 속할 때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제 한 종족으로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구원을 베푸시던 구약 시대는 먼 옛날로 사라졌고 신약시대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개개인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백성에 속하는 시대이다. 이 엄연한 구원사의 변천을 알지 못하고 혹은 외면하고 중동의 이스라엘 혹 예루살렘 운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