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국 목사, 속아 넘어간 남조선 정치인들
일본이 10년 넘게 횡포를 부리던 1922년, 나는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남문 안에서 태어났다. . . 1941년 교사가 된 나는 두메산골송평 국민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앙상한 뼈대에 누더기를 걸친 산골 어린이들의 모습은 나라를 잃은 우리 백성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가?” 결국 나는 한 학기만 더 가르친 후 훈도직을 사임하고, 평양 신학교에 입학했다. 결국 나는 한 학기만 더 가르친 후 훈도직을 사임하고, 평양 신학교에 입학했다. . .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고 소련군이 입성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조선 민족을 해방시킨 붉은 군대 만세!” 이런 구호와 선전문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소련과 공산주의를 지지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생의 목표가 성공에 있고 성공은 권력을 따르는 데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생의 목표가 성공에 있고 성공은 권력을 따르는 데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일제 시대에는 친일파가 되었고, 소련군정 시대에는 공산당이 되었다. 그럴 때일수록 사람답게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구하는 것이었다. 나라도 청년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어야 했다. 나는 옷가지를 꾸려 평양신학교에 편입하고 기림리 교회를 찾아갔다.
한병혁 목사는 나를 교인들 앞에 전도사로 소개했다. 나는 전도사 일과 신학교 공부, 가정에 충실하려고 힘썼다. 어느 날 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문을 여시오.” 그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 . . 심문이 끝나고 독방에서 사흘을 보낸 뒤 나는 인민교도소로 이송되었다. . . . 1947년 7월 나는 석방되었다. . . 1948년 봄, 북조선은 청산포 마을을 모범부락으로 지정했다. 김구 선생을 포함한 남한의 정치이들이 청산포를 방문한다고 했다.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관찰하고 김일성 장군을 만나 통일 조선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스스로의 돈과 노력을 들여 인민회관을 짓고, 도로를 고치고 손님들이 지나가는 길가의 벽에 흰 페인트를 칠해야 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훈련받았다. “달걀 한 꾸러미에 얼마 합니까” 물으면 실제 50원일 경우 10원이라고 대답하고, 임금도 5배로 늘려 말하라는 것이다. “북조선에서 살기가 어떻습니까?” 물으면 “김일성 장군의 영도하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대답하도록 훈련시켰다.
1948년 4월 19일 김구 선생, 김규식 선생과 수행원이 북조선으로 들어왔다. 깨끗이 수리된 신작로를 거닐면서 북조선 인민들의 윤택한 생활을 감명깊게 보았다. 그들은 질문을 던졌고 주민들은 한 사람도 실수하지 않고 대답을 해 해냈다.
어리석은 남조선 정치인들은 북조선의 훌륭한 선전술에 넘어갔다. 노동신문은 평양 방문을 마친 김구 선생이 서울에서 기자들과 회견한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선생은 친히 북조선 인민들의 생활을 보고, 대답도 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국민이 인민 위원회 정치 아래 행복하게 산다고 느꼈고, 그런 정치체제로 통일이 되기를 바라더라고 증언했다.
우리는 그 신문 보도를 보면 김구 선생 같은 분이 공산정권의 기만에 넘어가는 것이 답답했다.
시간이 갈수록 친북 기독교도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교역자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나도 북한에서 목회하려면 정권과 타협하는 도리밖에 없어 보였다. 교역자의 사명을 하려면 38선을 넘어가는 길 밖에 없었다. 나는 김일성 대학 교수인 최의사를 찾아갔다. “해주로 여행할 증명서가 있으면 해서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중얼걸렸다. “해주 국립 요양소에 폐결핵 진단받으러 가는 것으로 하지요.” 기차가 사리원에 이르자 보안관이 여객들을 조사했다. 나는 최의사의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그는 “폐결핵”이라는 글자를 보자 얼굴을 돌리고 가 버렸다. 사리원에서 해주행 열차로 갈아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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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김윤국 목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목회와 교수 사역을 감당하였고, 나중에는 영락교회 담임 목사로 3년여 섬기다 건강상 이유로 사임하다. 위의 글은 '월간 독자 Reader' (발행인 카톨릭 윤학 변호사 ) 2021년 특별판, R4에 실린 글을 가져 옴.
민주노총이 11월 3일을 기해 대한민국 체제 변혁, 곧 인민 민주주의 연방제 통일에로 혁명을 시도하리라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저들은 끝장을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공산당 무리들이 그리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1) 선거 개표조작을 통해 절대 다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180석 완료 (2020년 4월 15일)
2) 절대 다수 국회의원을 통해 인민 민주주의 연방제 통일의 초석이 될 법률들을 무더기로 발의 통과시킨다. (국회가 지금까지 한 일)
3) 사법부를 장악한다. 김명수 거짓의 명수를 세워 장악 완료! (일부는 완성 중)
4) 검찰을 장악한다. 친정부 검사들로 조직 전부 장악 완료!
5) 노조, 언론 방송사 등은 이미 장악 완료
6) 군대 장악 중
7) 주민 자치회를 통해 인민 위원해 전국 마을단위까지 조직
8) 개헌이나 초법적 촛불 시위 집회를 통해 일거에 체제 전복시키고 연방제 통일 준비 완료
설사 내년 3월 9일 우파 황교안, 최재형, 윤석열 중 누가 대통령이 된 들, 3개월 안에 촛불 시위로 마비되고, 전복될 위험이 농후. 우파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반신불수에 불과할 것이 명약관화!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 시위, 박근혜 정권은 최서원 국정농단 빌미로 뒤집어 엎었지 않았나?
나라를 위한 헌신과 작정 기도가 요청되고 있음.
선진국이네, G7 연속 2번 초청이네, 달콤한 외적인 것에 속아 내부에서 진행되는 이 공산 무리들의 체제 전복 시도를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여! 깨어 나시라! 김윤국이 공산 북한을 탈출해야 했던 것처럼 목사들은 조만간 남한을 탈출해야 할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나?
북 이스라엘의 영토적 확장과 경제적 부흥을 이룬 왕이 여로보암 2세였다 (주전 790년경-750년경). 그런데 아모스 호세아 등은 여로보암 2세 때 설교하면서 곧 나라가 멸망하리라 외쳤다. 누구도 그 설교를 귀담이 듣지 않고 "흥! 지금이 우리 영토가 최대치로 확장되고 국민소득이 3만불이 넘어 이탈리아를 제쳤다는 데 무슨 미친 소리야?!" 코 웃음을 쳤지만, 불과 30여년 만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침공으로 멸망 당하고 말았다 (주전 721년).
지금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시점. 그 근본 원인은 교회의 영적 순결과 권세의 상실이다. 소금이 맛을 잃고 빛이 세상을 비추지 못할 정도로 희미해져 이 나라의 모든 것이 부패해서 선거는 매번 부정 개표로 전락했고 혼란과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산화 연방제 통일의 추진력의 핵심은 민주 노총 100만 조직원이고, 기타 지원 부대는 30만 자생 공산주의자, 전교조, 주사파 운동가들, 청와대 포진 주사파들, 7만 남파 간첩들, 중공 7만 공산당 당원 유학생들, 기타 등 대한민국 전체 분야에 침투한 상태.
우파는 지리멸렬, 각자 도생 (各自圖生), 곧 각자 자기 살길 찾아 뿔뿔히 흩어진 모래알들.
국민의 힘은 국민의 부담 중의 부담이다. 이 자들은 인천 연수구 을의 재검표에서 어떤 부정선거 증거들이 나왔는지에 대해 일체 관심도 없다. 자기들이 금 뱃지 달았으니 나라야 어찌되건 지키거나 나라위해 희생할 마음도 없다.
정신을 좀 차리고 그래도 대한민국을 살려 보고자 하는 이들이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국민 혁명당이다.
주여, 교회들이 깨어나게 하시고
이 나라에 경건한 지도자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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