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οὐχί, λέγω ὑμῖν,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ἀλλ᾽ ἐὰν μὴ μετανοῆτε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πάντες ὁμοίως ἀπολεῖσθε.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말씀이 놀랍다! 왜냐하면 빌라도 총독이나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 출동시켜 선동자들을 몰살시킨 로마군의 잔학성을 비난하는 대신, 제사를 드리다가, 다시 말해 예배를 드리다가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 행위에 연루되어 학살을 당한 유대인 성도들의 죄악성을 듣는 청중의 회개로 연결시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말씀이 무섭다! 왜냐하면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도 '지속적으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ἐὰν μὴ μετανοῆτε 현재 가정법, 반복적 회개 요청), 곧 온전한 회개를 이루지 못하면, 불확실한 인생의 여정에서 어느 순간에나 재앙을 당하고 죽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시기 때문이다.
시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빌라도 총독의 로마군에게 학살당한 유대인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 예배 드리다가 학살을 당했는데, 오늘날로 하면, 예배처에서 예배 드리다가 난입한 원수들에게 학살당한 것과 같다. 예배를 드리다가 칼로 침을 당해 그 피가 자기가 드리던 제물의 피와 섞이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런 말씀을 듣고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예배하는 사람인데, 나야 당연히 재앙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당연히 성도로서 하나님의 보호 하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하겠는가? 온전한 회개, 철저한 회개만이 우리의 삶의 안정을 보장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걸어야 할 그 길'로 걸을 때만, 자기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지키신다:
시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마귀는 성경을 왜곡하여 인용하고 성도들을 미혹한다.
여기 시편 말씀에서 마귀가 인용해서 주님을 공격할 때,
"네 모든 길에"라는 표현은 빼고,
성도들이 어떤 길을 걷던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켜 주신다고 약속한 양
왜곡 인용하였다 (마 4:6).
우리는 지금 회개해야 한다.
매일 회개해야 한다.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완전하게 죄에서 떠나야 한다.
김춘근 박사
“당신의 간은 두 배로 부어있습니다. 간이 완전히 굳어 그 기능을 잃어버려 회생이 불가능합니다. 악성 간경화이고 수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 년 안에 죽게 될 겁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늘 피곤하고 배가 점점 단단해져 담석증으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믿었는데 정밀검사는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의사들은 내 간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수술할 수도 없고 의학적으로 치료불가능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집에서 쉬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서른 일곱 나이에 병원서 사형선고
1976년 10월 1일이었다. 나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죽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1967년, 스물일곱에 미국으로 유학으로 떠나 고생 끝에 사립대학인 패퍼다인대학교에서 (Pepperdine University) 조교수로 자리를 잡아 4년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던 그 해 가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기분으로 병원을 나서야 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푸른 꿈을 안고 단돈 2백불을 가지고 시작한 유학 생활, 독선적인 내 성격과 힘든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잘 참아주었던 아내에게 혹독한 고통을 또 다시 안겨 주었던 것이다.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병세는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한 달만에 체중이 19kg이 줄었다. 배는 만삭된 여자처럼 부풀어 올랐다. 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피는 탁해져서인지 피부까지 가려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가 건넌방에서 흐느끼며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곤한 잠에 빠져든 아이의 모습,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하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어야합니까?”
이제 시작한 성공인생길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내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반항으로 가득찼다. 나는 친구 에드워드의 권유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암도 치유된다는 자연식이요법을 7개월을 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식물인간처럼 지내지는 않았다. 그 자체가 의사의 경고대로라면 기적이었다.
반항과 원망으로 기도가 안돼
나는 이왕 죽을 바에는 죽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라면 젊은 나이에 죽게 하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응답받지 않고는 절대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L.A.동쪽에 있는 빅 베어 마운틴으로 올라갔다.
그 날이 1977년 6월 18일이었다. 그 곳에서 작은 오두막을 빌렸다. 기도를 하려했지만 반항과 원망으로 인해 기도가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죽으면 아내와 자식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학교의 보험과 퇴직금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힘을 내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서 살 수 없어 돈 2백불과 가방 셋을 가지고 유학 와서 고생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심한 경쟁 가운데 교수로 임명받아 이제 살만한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교회 집사로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잘 살려고 했는데, 하나님 왜 제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
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로서는 겨우 숨을 몰아쉬면서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렸다. 가려운 몸을 굵으면 핏자국과 함께 피가 났다. 풍선처럼 부어오른 배 때문에 하늘보고 눕지도 도 못하고 그렇다고 옆으로 누우면 처진 배로 인해 고통이 증가되었다.
시편을 읽기 시작했다. 시편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하셨다. 그러기를 육 일 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 1시쯤에 나는 고통스러운 육신의 통증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초여름이었지만 빅 베어 마운틴의 밤은 제법 쌀쌀했다. 오한이 나서 온 몸에 담요를 감싸고 오두막을 나와 앉을만한 장소를 찾았다. 큰 나무가 쓰러진 곳에 터를 잡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국에 보내주시고, 우수한 성적으로 교수까지 되고 많은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귀한 자녀도 주시고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게 하시고, 또 교회의 집사로 하나님을 섬기게 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인줄 아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제 모든 지식과 재능이 헛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네 영혼의 독기 때문에 죽는다"
정말 이기적이고 궁지에 몰린 치사한 기도였다. 나는 기도를 영어로 했다. 그 때 하나님의 강한 말씀이 내 입술을 통해 영어로 터져 나왔다.
“Don't you know that you are dying because of the toxins in your soul rather than the toxins in your blood which is physically killing you?" (네가 죽어가는 이유가 피에서 나오는 독소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독소 때문인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이 내 입술에서 떨어지자마자 영화의 스크린처럼 모든 죄가 내 눈앞에 환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게 보인 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으로 너무나 분명했다. 내게 그렇게 죄가 많은 줄 몰랐다.
나는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했다. 또 주일성수도 잘하는 신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대학시절 기독학생회 회장도 지냈다. 24세에 총각집사까지 지낸 열성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했다. 미국에 와서도 학교, 도서관, 교회 ,가정 밖에 몰랐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 많은 부흥회 때에는 많은 회개를 했었다. 35세의 나이에 장로 피택까지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준 내 삶은 죄의 덩어리로 똘똘 뭉쳐있었다. 바리새인의 회칠한 무덤이 바로 나였다.
어느새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정욕의 모든 생각의 죄, 나쁜 생각의 죄, 그리고 가장 큰 교만의 죄, 한국에 대한 증오심, 형제나 교회 성도에 대한 우월의식, 이기심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느 누구보다 더러웠다. 바울의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내 고백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늘 만졌던 시체들보다도 더 추잡한 죄인의 모습이었다. 수술실에서 일할 때 그렇게도 냄새나고 더럽게 보였던 환자들의 피보다 더 더러운 것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6년 동안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하루 평균 3시간 반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지독한 공부와 가정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오직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꿈일 뿐 하나님의 비전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내 인생의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살았던 것이다. 아내는 딸 샤론을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 낳았다.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병원 회계실에서 회계사무원으로 일을 해야 했다. 아내는 내 박사 학위를 도와 많은 밤을 내 리포트를 타이핑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내가 타이핑을 제대로 치지 못했기 때문에 영문학을 전공한 아내가 수많은 리뷰와 페이퍼와 논문들을 타이핑했다. 당시 타이프는 구형 코로나로 ‘딱딱딱’ 소리를 내는 구형이었다.
밤샘해서 타이핑을 내게 건네준 페이퍼를 보고 나는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을 했다.
“여보 이렇게 오자가 많으면 어떻게 이 논문을 교수에게 제출해? A학점을 받아야 하는데!”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내는 “내용만 좋으면 됐지. 그냥 제출해요.”라고 대꾸했다.
아내의 말대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나는 화가 나서 30페이지쯤 되는 논문을 다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아내는 나를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입술을 깨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타이프라이터가 있는 쪽으로 가서 다시 내가 쓴 원본을 놓고 다시 타이프를 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통곡을 하며 회개했는지 모른다. 나는 모든 일에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최고이기를 바랐다. 이 교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 교만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했다.
열등의식과 가난한 삶 속에 천대 받았던 한(限)은 미움으로 변해 내 속에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성공을 위해서 내가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 하나님은 물론 내 아내와 자녀들도 내 마음에 없을 때가 많았다. 오직 내 영광을 위해 나는 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욕도 큰 상처와 파괴를 가져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게 하셨다. 교만과 열등감과 미움과 고집과 이기심과 욕심 그리고 정욕 같은 것들이 그렇게 강하고 파괴적인 요소로 내 몸과 마음과 성품에까지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것들이 내 인생을 조종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으셔서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 가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이중인격자요 위선자가 분명히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님 날 용서해주십시오, 내가 지은 모든 죄를 하나하나 다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나는 넘어진 나무의 그루터기를 붙잡고 생명을 내놓고 전심으로 기도했다. 나는 내 안에 남아있는 죄의 찌꺼기까지 토해내듯 회개했다. 나중에 내 죄의 목록을 적어보았더니 52페이지나 되었다. 물론 회개와 함께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해결하지 못한 모든 죄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찾아가 하나하나 용서를 빌었다.
"살려주시면 저를 바치겠습니다!" “예수님, 이제 주님이 내 참 구주이신 것을 내가 분명히 믿습니다. 주님의 피로 내 모든 더러운 죄가 다 씻어진 줄 믿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오늘까지 내게 생명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는 참으로 회개하오니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회개기도와 함께 나는 다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하나님! 한 번만 더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든지 원하시는 대로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사오니 한 번만 더 살려 주시옵소서!” 나는 몇 시간 동안 울면서 회개하며 기도를 하는 중에 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됐다. 사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과 삶도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또한 내가 아무리 위대한 계획과 큰 꿈을 가졌다 할지라도 몸이 아프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전이었다.
“네 생명이 가치가 있고 소중하기에 너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기 위해 나의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했다. 그런데 너는 지금까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네 생명이 아무리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고 할지라도 누가 너를 위해 죽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를 나의 아들로 삼기 위하여 내 독생자, 죄도 없고, 흠도 없는 나의 가장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 죽게 했다. ···네 과거를 돌아보아라,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 너는 1955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오늘까지 무려 22년 동안 네 마음대로 살아왔지 나의 기대와 뜻대로 살지 않았다. 너는 나를 위해 22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그 좋은 시절을 낭비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이제는 내 병을 회복시키셔서 한번 생명을 주십시오, 나는 이제 죽어도 나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남용한 내 생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살려주십시오. 이제부터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참으로 최고로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를 받아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살려 주신다는 특별한 표적을 제게 보여주실 때까지 저는 죽어도 이 산에서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환상 중에 하신 말씀 "너를 용서한다"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5, 6시간의 회개와 용서를 빌며 사생 결단으로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나는 환상을 보았다. 하얀 옷을 입으신 큰 분의 가슴에 내 얼굴이 깊이 파묻혀 있었고, 그분은 나를 꼭 껴안으며 아주 부드럽게 내 등을 세 번 두드리시면서 세 번 말씀하셨다.
“I forgive you, I forgive you, and I forgive you."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영어로 기도한 내게 하나님은 영어로 응답하셨다.
그분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렇게 평안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기쁨과 평안 속에서 이렇게 외쳤다.
“This is it!"(이것이다!)
나는 비로소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몸이 낫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살려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6일 동안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소식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가 내 전화를 받고 “여보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젠 내가 살 거야, 하나님께 응답받았어요”라고 하면서 시편 118편 17절을 인용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세 시간이 지난 후 아내는 산으로 올라왔다. 산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역사적인 사건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차를 길가에 멈추게 한 후에 아내의 손을 잡고 그 동안 너무나도 마음 아프게 했던 일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도 내게 용서를 구했다. 둘이서 많이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 애타게 기다렸던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얼싸안고 얼굴을 맞대고 한참 울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들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아빠를 용서해라.”
“이제부터는 가장 좋은 아빠가 될 거야.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
내 용서의 고백은 가족을 넘어 교회와 직장 동료와 나의 가까운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식이요법을 통해 기적적으로 내 몸을 다시 회복시키셨다.
'성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부 안나, 여선지자로 올라서다 (0) | 2021.12.24 |
---|---|
하나님은 신비한 방식으로 움직이신다 (0) | 2021.11.08 |
영어 성경 듣기 mp3 다운로드 (0) | 2021.08.07 |
나는 야 친구되신 하나님과 푸른 초장 한없이 거니네 (0) | 2021.02.11 |
용서하는 방법 (0) | 2021.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