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하다/ 기업을 물려받다 Inherit
히브리어 연관 단어들
nāḥal 나할 (출 32:13, 34:9, 민 26:55, 대상 28:8, 잠 13:22, 렘 12:14 기업으로 상속하다, 소유하다)
yāraš 야라쉬 (레 20:24, 신 16:20, 사 65:9, 라 9:12 땅을 상속하다, 소유하다, 소유케 하다)
˒aḥuzzâ 아훗자 (레 27:16, 22, 24, 28 부동산, 땅 재산, 재산 )
히, naḥalâ 나할라 (창 31:14, 민 16:14, 수 11:23, 잠 19:14 기업)
gôrāl 고랄 (민 26:56 몫, 제비뽑기로 얻은 땅)
yeruššâ 예룻샤 (삿 21:17 상속자),
yāraš 야라쉬 (사 65:9 상속자)
헬라어 연관 단어들
klēronoméō 클레로노메오 (마 5:5, 막 10:17, 고전 6:9 상속하다);
klēronómos 클레로노모스 (롬 4:13 상속자 heir);
patroparádotos 파트로파라도토스 (벧전 1:18 물려받은 / 유전된);
klēronomía 클레로노미아 (마 21:38, 행 20:32, 골 3:24; 기업)
kataklēronoméō 카타클레로노메오 (행 13:19 기업으로 [땅을] 주다);
klé̄ros 클레로스 (골 1:12 기업, 몫).
sugklēronomos 숭클레로노모스 (엡 3:6; 공동 상속자 joint heir;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
구약
"기업"의 개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용된 주요 용어는 동사 nāḥal과 명사 naḥalâ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 용어는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토지/ 재산 (estate) 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야웨로부터 선물로 받은 땅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야웨께로부터 받은 “기업”의 신학적 용법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서 시작된다. 창 12:7에서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전해져 모세에게 재확인되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출 6:8; cf. 3:7f, 32:13; TDNT, III, 770)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소유물로 주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출 6:8; cf. 3:7f, 32:13; TDNT, III, 770). 신명기에서 모세는 땅이 야웨의 것이며 그 땅을 그의 백성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을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상기시킨다(신 4:21, 38, 12:9, 15:4, 19:10 등; TDNT, III, 769–776 참조).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에 따라 새로운 초점이 나타난다. 그 나라가 온 땅을 기업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이제 기업을 위해 백성들에게 분배된다 (민 32:18f, 34:14~18, 36:2~12 등). 여기에서도 구약 전체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과 개인 재산 사이에 명확한 구별이 있다. 전자에 관한 기본 개념은 땅이 야웨의 것이며 백성은 그것을 권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호의를 통해서만 “기업”으로 보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그 땅에서 “나그네와 객”이라 불리며, 그들에게 할당된 몫은 영원히 팔 수 없다 (레 25:23-28). nāḥal 및 naḥalâ라는 용어는 부족이나 가족이 토지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의미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다.
여호수아는 백성을 그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이었고(수 1:1f),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땅을 성공적으로 차지했을 때,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3:7). 이것은 각 가문의 가장이 소유할 토지의 특정 부분을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8:6; 민 26:53-56, 33:54).
이스라엘의 사회법은 가족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밭이 팔렸을 때 그 소유권은 일시적으로만 남에게 넘어 갈 수 있었으나, 희년이 되면 모든 밭은 원래 소유주나 상속자에게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레 25:25~34). 제사장은 기업을 받을 수 없었고 (겔 44:28) 제사장에게 부여된 부동산은 감정 평가를 받아야 했고, 그 땅을 기부한 사람은 그 감정 평가액을 제사장에게 납부함으로써 그 땅을 다시 되물릴/ 대속할 수 있어 이 경우에도 부동산 양도를 방지할 수 있었다 (레 27:14-25). 아버지의 소유물은 모두 그의 아들들에게 상속되어야 했으며 (잠 13:22, 레 25:46), 아들은 딸에 비해 월등한 상속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욥의 세 딸이 그 기업/ 상속 재산을 형제들과 나누긴 했지만 [42:15]).
상속권은 어머니의 지위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슬기롭게 행하는 종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아들을 다스릴 것이요”(잠언 17:2). 아버지의 맏아들은 다른 아들들의 두 배인 “모든 소유의 두 몫”을 받았다 (신 21:15~17).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면 기업이 그들에게 돌아가고, 아들이나 딸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재산은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그에게 형제가 없으면 그 기업은 그의 친족에게 돌아 것이다 (민 27:1-11). 기업/ 상속 재산이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딸들은 아버지 지파 밖에서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민 36:6~9).
나봇의 포도원은 (왕상 21:1, 3) 그의 가족 기업의 일부였으므로 그가 자산을 팔기를 거부한 것이 옳았다. 아합의 포도원을 아합 왕이 불법으로 압류한 일은 선지자 엘리야에 의해 가혹한 정죄를 받았고 아합의 가족에게 가혹한 형벌을 주었다 (20~24절). 선지자 미가는 후에 주님께서 “밭을 탐내고 빼앗으며 집을 빼앗으며 … 사람과 그의 기업을 압제”(2:2) 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기업에 대한 그의 언약적 약속을 기억하신다는 생각에서 위로를 얻었다 (105:11) 그 땅은 시 79:1 에서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불리지만, 69:36 (MT 37) 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을 목자로 세우신 이스라엘의 기업이라고 불린다 (78:71).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그[여호와의] 기업의 지파”라고 말하였다 (10:16). 그는 백성이 우상으로 땅을 더럽혔고 “나의 [여호와의] 기업이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가득 찼[다]”고 외쳤다 (16: 18). 여호와께서 그의 집을 버리시고 그의 기업을 그 대적에게 넘기셨느니라 (12:7-10). 그러나 에스겔에는 바벨론 추방/ 유배 후에 그 땅이 재정착되어 영원히 “기업”으로 거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나타난다 (36:12). 여호수아의 시대와 같이 땅이 다시 나뉘고 각각 제비를 뽑아 기업을 받을 것이며 (겔 47:13하; 48:29 등), 군주가 백성에게서 기업을 빼앗거나 그의 소유를 나누어 주지 못하게 하였다 (46:16-18).
[저 중동의 이스라엘이 에스겔의 이런 약속을 근거로 1948년 독립을 이루었고, 그 땅을 합법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식의 해석에 사용될 수 없다. 신약 기자들은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고, 성취 도중에 있으며, 그 성취 방식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축복과 연관되며, 성도들이 받을 기업은 저 가나안 조그만 땅이 아니라, 쇠하지 않고 썩지 않는 영원한 신천지의 기업이라 말씀하기 때문이다. 에스겔의 종말론적 기업 사고는 선지자 당대인들에게 친숙한 유대적 용어와 관례로 먼 장래사를 예언하는 데서 발생한 것으로, 그 예언의 껍데기는 유대적이지만, 그 내용은 신약 기자들이 지적하듯, 교회에서 일어나는 영적 축복이다].
신약 성경
신약에서 기업이란 용어의 내용은 개인 재산에 대한 단순한 개인적 관심에서 (눅 12:13) 역사를 너머 저 하늘의 썩지 아니할 기업으로 (벧전 1:4) 이동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신약 저자들이 기업/ 상속 언어의 다양한 사용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과 관련시키는 방식이다.
구약에서 기업/ 상속 언어의 사용은 이스라엘 역사의 맥락 내에서 매우 다양하였고, 이러한 맥락은 개인 재산에 대한 관심에서 이스라엘의 기업으로서의 가나안, 여호와의 기업으로서의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기업으로서의 여호와에 대한 신학적 확언으로 이동한다. 일부 후기 유대 문헌에서는 율법을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간주할 수 있었고 (시락서 24:23; 1에녹서 99:14) 일부는 상속 생명 또는 영생에 대해 언급한다 (솔로몬의 시 14:7; 1에녹서 40:9; cf. 2에녹서 50:2; 2바룩 44:13). 필로는 (Philo) 기업을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일치로 보았다 (Quis rerum divinarum heres sit 누가 하나님의 기업 [것들] 상속자인가?). 이 다양성은 어떻게 다른 역사적 맥락들이 신약에 대한 역사적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기업에 대한 이해에서 풍부한 다양성을 산출하는지 보여줍니다.
공관복음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의 통상적인 재산 이전으로서의 신약의 기업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발견된다 (마 21:38; 막 12:1-8; 눅 15:11-13; 참조 눅 12: 13; 20:14). 이러한 경우에 아들의 지위는 기업/상속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아들의 지위는 고대 그리스와 동양의 공통된 견해를 반영한다. 그러나 신약은 또한 신학적 의미에서 동사 klēronoméō와 (상속하다) 명사 klēronomía를 (기업) 종말론적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그러한 경우에 이 용어들은 상속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 마 19:29, 25:34, 막 10:17, 고린도전서 6:9 이하) 이제 주장할 기업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눅 10:25; 18:18) 가리킨다. 이 아들의 신분은 “…육체적 혈통이 아니라 … 하나님의 부르심과 임명에 기초”한다 (TDNT, III, 782; 고전 15:50참조). 온유한 자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약속은 (마 5:5) 또한 분명히 이 세상적인 요소를 드러낸다 [즉 지금도 온유한 자는 이 땅에서 땅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이 기업의 은유는 (시 37:11; cf. 1 2에녹서 5:7; 솔로몬의 시 14:5) "온유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생에서의 궁극적인 번영과 악인에 대한 승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McNeile, p. 51). 1QM 11:7-18도 유사하다: kittîyîm은 메시아에게 패배하고 그분의 기업이 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한다. 이 사고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 대한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행 13:19).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이야기에서 마태, 마가, 누가는 모두 어느 시점에서 영생을 상속받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마 19:29, 막 10:17, 눅 18:18). 그러나 마태는 “기업”을 미래 지향적으로 강조한다. 마가와 누가와 달리 그는 이 용어를 "신세계"와 인자의 오심과 관련하여 언급하면서, 부자 이야기 다음에서만 사용한다 (마 19:28; 단 7:13; 1에녹서 71:14-17). 마태는 이 미래의 강조점을 더욱 지지하는데,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 5:5, 참조, 시 37:11, 1에녹서 5:7b) 및 "왕국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마 25:34; 2에녹서 9: 1; 약 2:5도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리한다.
세 기자들 모두 악한 소작인의 풍유적 비유에서 “상속자”와 “기업/ 상속”을 특별한 기독론적 의미로 사용한다 (마 21:38; 막 12:7; 눅 20:14). 초대 교회 교부들은 예수를 아들과 상속자로 이해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기업/ 상속 재산이 (즉, 포도원, 참조, 이사야 5장) 이방인들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보았다. 마태는 포도원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보고 (마 21:43),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과 상속자의 죽음으로 이제 이 기업/ 상속 재산은 “그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차지가 된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기업”을 부인한다 - 비록 그것이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되어 있고 (행 7:5) 가나안과의 역사적 연관성이 확증되었지만 (13:19). 누가는 마침내 “성별된 모든 자”(20:32), 즉 '교회'에 기업이 주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바울 서신들
아브라함의 자손이 율법을 지킨 육신적 후손이라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비추어, 바울은 그 당대에 과연 누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인지에 (Gk spérma 씨) 대한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바울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기업의 약속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의 의로” 왔다고 (롬 4:13, 갈 3:18; cf. 4:30) 선언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오심으로 성취되었으며, 이제 그의 아들들에게 약속된 축복들이 돌아간다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제비" 또는 "분할"을 의미하는 kleros는 70인역에서 Heb gorāl, yāraš, 가나안 땅의 분배에 있어서의 '나할라,'; TDNT, III, 759; 행 20:32).
바울이 기업/상속 언어를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의 약속과 관련시키고 (갈 3:18, 4:30, 롬 4:13-14)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한다. 구약과 달리, 그는 결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기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자가 아브라함의 참된 상속자라 (갈 3:29). 하나님의 선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관계의 선물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상속자 (갈 4:7),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롬 8:17) 입양되었다 (갈 4:5, 롬 8:15 참조).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상속자이시며, 아들의 신분으로 세워진 그분의 백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들'이다 (synklēronómoi 롬 8:17). 왕국의 “기업”은 (갈 5:21; 엡 5:5) 종말론적이다 (엡 1:14, 18, 골 3:24).
바울은 법적으로 미성년 자녀를 상속자로 보는 상속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갈 4:1), 그들이 그들의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이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갈 3:16) 상속자이시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의 성취된 약속으로서 (갈 3:14) 그도 기업이시다. 따라서 상속인이자 기업으로서 그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관계의 수단이자 내용이 된다.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합하는 세례를 통하여 갖게 된다 (갈 3:26-29).
바울은 또한 미래에 왕국을 상속하지 않을 사람들에 관해, 뿐만 아니라 “혈과 육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고전 15:50) 부활에 관해서도 “상속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었다 (고전 6:9-10, 갈 5:21; 또한 골 3:24, 엡 5:5, 디도서 3:7).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 또는 왕국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초림과 함께 이미 시작된 그 유업의 최종 실현이다.
에베소서에서, 미래 지향적인 기업 (엡 1:14, 18; cf. 5:5),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물의 우주적 통일성을 강조한다 (참조, 엡 1:9-10). 그러나 이미 성령은 미래를 예견하는 “계약금”이다 (arrabōn, 고후 1:22, 5:5). 그리스도는 참으로 그 상속의 수단이시지만, 다른 바울 서신들과 달리 여기서는 강조가 이미 약속된 성취로서의 그리스도에 두어 지지 않았다. 교회 일치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감안할 때, 에베소서는 이방인을 “동료 상속자”로 (엡 3:6) 언급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일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통한 우주적 일치의 궁극적인 기업을 이미 보여주고 (3:4-6) 가리키는 실체로(3:10) 이해한다.
히브리서
이 저자는 그리스도를 만물의 아들이요 상속자로 묘사하고 있다 (히 1:2; 1:4 keklēronomēken은 “상속된”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대제사장이자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는 믿음과 인내를 통하여 “약속들을 기업으로” (6:12) 얻는 자들에게, "약속된 영원한 기업"을 받기위한 수단이시다 (9:15; 시리아어 에녹서 10:6, 55:2; 히 1:14에서 klēronomein은 "상속하다"으로 번역되어야 함). 이 약속된 기업의 내용은 하늘의 도성이다 (11:8-10).
히브리서는 기업/ 상속 언어를 아브라함에게 연관시키지만 (6:12, 17, 11:9; 11:7, 12:17에서 노아와 에서에 대한 언급도 있음) 그러나 그의 기업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건축자이고 지으신 자”인 (11:10) 성읍이다. 히브리서에는 사법적 관점도 포함되는데 오직 종말론적 아들과 상속자의 죽음을 통해서만 (1:2) 언약이 (diathēkē) 효력을 발휘한다 (9:15-17 [‘디아데케’는 여기서 ‘유언’이 아니라 ‘언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성도들이 약속된 하늘 도성의 영원한 기업을 받는 언약적 수단이 된다.
히 12:17 에서는 에서와 관련하여 보통의 아버지-아들 유형의 기업/ 상속이 언급되어 있다. 그는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했지만 일반적으로 히브리서에서 “기업”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간” 아브라함에게 하신 구약의 약속의 내용과 (9:15)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믿음과 인내로 말미암아 약속을 유업으로 받는”(6:12) 사람들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도록 권고받는 바로 그 “믿음과 인내”이다.
베드로전서
이 작가는 또한 인류의 역사를 초월한 내용을 기업에 부여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이 “산 소망”의 결정적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이다 (1:3).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미래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현재의 현실로 만들고 미래의 불멸의 기업의 기초가 된다 (3:7, 9에서 기업/ 상속 언어의 다른 용례들 참조; 후자에서 klēronomēsēte는 "상속할 수 있다"로 번역되어야 함).
결론
신약에서 기업/ 상속 언어의 신학적 사용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을 나타낸다.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유업을 이루신다. 또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상속자로,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로 만드신다 - 비록 장래에 상속할 나라가 남아 있을지라도 [현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이다].
에베소서에서 미래의 기업을 지적한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물의 우주적 통일성이며 동시에 이미 교회에 (구약 하나님의 백성) 속한 유대인과 이방인은 공동 상속자들이며 그들의 일치는 이미 그 궁극적인 일치에 대한 증거이다.
공관복음은 영생을 미래에 상속받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특히 마태는 기업/ 상속 언어를 강력하게 종말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모든 공관 기자들에게 예수님은 포도원의 (지금은 하나님의 통치 또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해된다) 상속자이시다. 하나님의 통치는 현재와 미래 모두이다. 그것은 현재의 신실함을 요구하지만 그것의 완전한 실현은 미래에 있다. 다른 공관기자들과 달리 누가는 이 깨달음이 이미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히브리서에서 유업의 내용은 하나님의 미래 하늘 도성이며, 이 기업은 만물의 상속자이신 예수의 언약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베드로전서에서 기업의 내용은 또한 미래,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기업",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효력이 생긴 "산 소망"이다 (계 21:7 추가 미래 기업/ 상속 참조).
신약의 '기업' 혹은 "땅" 사고를 묵상할 때, 우리는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1) 성도들이 (교회를 구성하는 유대인 성도나 이방인 성도나 무론하고) 받을 기업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과 그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것이다. 장차 저 중동의 유대인들이 중동에 천년왕국이 건설될 때 그곳을 기업으로 분배받는다는 사고는 신약에 없다. 그런 재림 이후 지상 천년왕국설은 (전천년설/ 재림 이후 천년왕국설) 성경적이지 않다.
2) 성도들은 오늘날 이 지상에서의 땅에 대해서, 재산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나, 정작 신약이 강조하는 바는 (현재적 삶에서 물질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성도들이 영원히 거주할 신천신지에서의 기업이다. 그 썩지 않고 쇠하지 않을 기업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이 지구가 불로타서 새롭게 재창조될 때 (벧후 3:10이하, 롬 8:19이하) 나타날 신천지에서 구체적으로 각자의 행한 대로 분배되어질 것이다.
참고 문헌:
G. Dalman, Words of Jesus (1902), pp. 125–27;
W. D. Davies, The Gospel and the Land (1974);
D. R. Denton, "Inheritance in Paul and Ephesians," EvQ 54 (1982) 157–62.
P. L. Hammer, “Inheritance,” Anchor Bible Dictionary, III,415이하.
P. L. Hammer, "The Understanding of Inheritance (klēronomia) in the New Testament," Diss. Heidelberg. 1958.
P. L. Hammer, "A Comparison of Klēronomia in Paul and Ephesians," JBL 79 (1960) 267–72.
J. D. Hester, The “Heir and Heilsgeschichte: A Study of Galatians 4:1ff.," Pp. 118–25 in OIKONOMIA, Heilsgeschichte als Thema der Theologie, ed. F. Christ (Hamburg-Bergstadt, 1967).
J. D. Hester, "Paul’s Concept of Inheritance," SJT, Occasional Paper No. 14. Edinburgh, 1968.
F. Lyall, "Legal Metaphors in the Epistles," TynBul 32 (1981), 90–95.
A. H. McNeil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1915);
A. Richardso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the NT (1959);
B. F. Westcott, Epistle to the Hebrews (1889), p. 167;
Cranfield, “Inherit”, A. Richardson, ed., A Theological Word Book of the Bible (1950);
TDNT, III, sv χληρος (Herrmann);
F. E. Hirsch & D. K. McKim, “Inheritance,” ISBE, ed. Geoffrey W Bromiley, Revised. Wm. B. Eerdmans, 1988; 2002), II,823-825.
'성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적 정지? (0) | 2022.08.04 |
---|---|
돌 항아리 여섯 개 (0) | 2022.05.29 |
험한 십자가 (0) | 2022.03.25 |
과부 안나, 여선지자로 올라서다 (0) | 2021.12.24 |
하나님은 신비한 방식으로 움직이신다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