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소위 바울적 서신들

중일사랑 2016. 6. 25. 01:15

소위 바울적 서신들


김세윤 교수는 기회 있는대로 목회서신들이나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에베소서 등을 바울 서신들이라 믿는 것을 근본주의네 문자주의네 하면서 비평한다. 한국교회는 역사 비평을 무시하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가리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운운한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앞에 언급한 그런 서신들을 1911년에 홀츠만이란 비평신학자가 자신의 신약신학 책에서 "바울적 서신들"이라 (Deutero-Pauline Letters) 부르면서부터, 그런 책들은 비평 신학계에서 바울 저작이 아니라 바울 학파나 바울 제자들이 기록한 책들이라 간주된다. Deutero-란 말이 앞에 붙으면 바울 저작권이 부인되고 '바울적' 서신들 정도가 된다. 바울적 서신들이란 바울이 쓴 것은 아니지만, 바울의 사상과 흡사해서 바울을 잘 아는 제자나 그의 학파에서 저술했으리라 추정한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체의 차이, 신학에서의 차이 (교회론, 종말론), 역사적 정황, 교회 제도 조직의 변화 등을 꼽는다. 무엇보다 그런 서신들이 묘사하는 역사적 정황이 (교회 제도 등) 바울 당대보다 훨씬 후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 후대의 상황을 학자들은 초기 보편주의 사고 early Catholicism라 부른다. 바울 당대의 교회 초기 상황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교회들이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역사적 정황을 그런 서신들이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역사비평법은 오경의 모세 저작권을 부인하고 문서설을 주장하고, 다니엘서 같은 책은 주전 6세기가 아니라 주전 2세기 마카비 시대 저작으로 본다. 신명기 같은 책은 주전 7세기 요시아 시대 신학자들이 모세의 이름으로 기록한 경건한 사기 작품이라 한다. 오경의 문서설이나 다니엘서의 후대설, 신명기의 요시아 시대 저작설 등은 성격상 앞에 언급한 그 바울적 서신들 문제나 같다고 할 수 있다. 신명기의 모세 저작권은 부인되고 훨씬 후대 요시아 시대 신학자들이 꾸며낸 저작이라는 주장이나, 목회서신이나 에베소서가 바울 저작이 아니라 바울 이름을 도용한 가짜 바울 작품들이라는 주장이나 오십보 백보라는 것이다. 

김세윤이 말하는 "근본주의"니 "문자주의"라는 말이나 "역사 비평을 아니한다"거나 "역사 비평을 모른다" 하는 식의 말은 "완전 성경에 무식하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인데, 김세윤은 혼자 잘 나서 한국 보수 교회를 모조리 깔보는 것인가? 성경 66권은 정경으로서 역사적으로 교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이후에 역사비평이 그 책들을 비평하면서 그 저작권을 부인하고 비평했지만, 비평신학의 결과는 언제나 성경을 난도질하고 공중분해시켜 결국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콩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목회서신들이나 에베소서를 바울이 쓰지 않았고 가짜 저작들이라면 그 책들은 이미 영감된 것도 아니며 (가짜 이름을 도용해서 사용한 책에서 무슨 영감을 기대하는가?) 따라서 교회에서 규범적 지위도 지닐 수 없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경을 역사비평적으로 접근하는 신학교들이 거의 대세가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신학교 교수들이 성령님과의 교제나 인격적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이 메마른 두뇌 운동에만 열중한 결과이다.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저술하고 강의하기에 바쁜 나머지, 바쁘기만 할 뿐 아니라, 영성 배양은 사실 학교 분위기상 관심사가 아니며, 오로지 교수 승진을 위한 연구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래서 기도할 시간도 기도나 주님과의 교제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껍데기만 남은 속빈 강정이 되고 만다. 그저 정보 전달자로 일생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수님 당대에 성경 박사들이었던 서기관들이 호되게 주님의 책망을 받았다. 오늘날 신학교 교수도 그럴 것 같다. 김세윤의 사상은 타협적 복음주의이고, 그의 강의를 들어보면 영적인 진리나 은혜와는 전혀 무관하고 그저 무미건조하게 학설만 난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성도들은 그런 건조하고 교묘하게 정통신학을 비평하고 까내리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통령 후보 중 선두에 위치하는 것은 그가 전 세계 지도자들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 세계적인 지도자로 부각되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반기문은 동성애 지지자이고 종교 차별 금지법 열렬 주창자라 한다. 영적으로는 소경인 것이다. 영적인 것을 왜 따지나? 정치 외교 잘하면 되지. 아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하는 지도자는 나라를 망국으로 이끈다. 세계적인 신학자라도 그 사상이 불순하면 교회를 망하게 만듦과 같은 이치 아니겠는가? 

황교안 총리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정직하고, 또 영적으로 사리분별 잘 하여 이 나라를 바로 이끌 인물이라 보기 때문이다. 황교안, 황교안, 황교안! 연호는 받지 못해도, 주님이여 이 나라를 기억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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