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는 필자가 20대 청년 시절에 목포에 몇 년 살았을 때, 몇 번 친구랑 놀러 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고졸 검정고시를 치렀었다. 그런데 오늘날 광주는 어떤 곳인가? 그곳 거주하는 성도들이, 깨어나야 한다. 잘못된 역사인식을 깨뜨리고, 성경적 안목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2
성도라고 하면서도, 어떤 대상에 대한 한 맺힌 원한 감정을 제거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성도가 아니다. 성도는 자신이나 사회적 상처를 주님의 이름으로 씻어내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여야 한다. 가령, 일본을 지금도 과거의 적대감과 원한 감정으로만 죽일 놈! 살릴 놈! 왜놈! 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도의 모습일 수 없다. 과거의 일본은 이제 용서하고 잊어야 한다. 지금 당당하게 일본과 자유 대한민국은 서로 격려하고 경쟁하고 사랑해야 할 나라들이지 서로 원한을 품고 대적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3
성도는 특히 세계 역사를 보는 눈이 하나님의 관점이어야 한다. 다니엘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바벨론 왕실에서 충성하는 관료로 살았고, 마침내는 나보니더스 왕과 그의 아들 벨드사살 섭정왕 다음의 셋째 고위 관리로 승진하기까지 하였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망한 후에는 페르시아 궁중에서도 고위 관리로 섬겼다. 이런 행적을 보고, 다니엘을 유대인들이 매국노라고 몰아 부치는가?
원한에 사로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일이다. 일본이 조선을 삼켰던 것은 조선이 문약에 흘러 자기 나라를 지킬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먹지 않았다면, 러시아에게 삼켜졌을 것이고, 일본이나 러시아가 먹지 않았다면, 청나라 만년 속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비 나라로 존속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 온누리교회 장로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중앙일보 전 주필을 지낸 기자 출신 첫 총리 후보자이였다. 청와대는 “비판의식과 합리적 대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후보 지명 이튿날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발단은 그가 2011년 온누리 교회에서 했던 특별 강연 동영상이었다.
문 후보자는 강연에서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라며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자신의 기독교 역사관을 피력했다. 동영상 발언 내용은 역사관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의 역사관을 친일·식민사관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었다. 결국 그는 후보로 지명된 지 14일 만인 6월 24일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불신앙인들은 문창극을 친일사관 식민사관이라 비판할지 몰라도, 우리 성도들은 성경적인 견지에서 보건대, 문창극의 역사관이 옳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세상 역사는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의 한일합병이 정당했다거나 일본이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과거의 역사를 조망할 때, 하나님의 주권의 견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셉이 어떻게 자기 배다른 형님들의 손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는지 잘 알고 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대상들에게 은 20개에 팔아 넘겼다. 대상들은 요셉을 끌고 애굽으로 내려가 노예 시장에서 팔았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에서, 하루 아침에 바로 왕의 경호실장 보디발 장군의 노예가 되었다.
요셉은 나중 국무총리 자리에 오르고, 7년 풍년 때 창고들을 짓고 곡식을 잘 관리하여 7년 흉년을 잘 대비하였다. 흉년이 천하를 덥칠 때 그의 형님들도 곡식을 사러 애굽 땅으로 가나안에서 내려왔다. 요셉 총리 앞에 형님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요셉은 그 형님들을 알아 보았으나, 그 형들은 요셉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이 때 요셉은 마음에 이전에 자신이 꾸었던 2번의 꿈 내용이 생각났을 것이다. 자기 형제 11곡식단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곡식단에 절하였고, 하늘의 해와 달과 11별이 자기에게 절하였던 그 두 개의 꿈 말이다.
우여 곡절 끝에 요셉은 자기의 정체를 형제들에게 알렸다. 형님들은 자신들이 죽이고자 하였고 노예로 팔아버렸던 요셉을 대하자 대경질색 유구무언이었다. 이제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은 동생 요셉의 손에 잡혀 종신 징역형이나 사형을 받을 지 누가 알까? 두려움이 저들을 덮쳤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4-5)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선언하였다. 나를 애굽에 팔았다고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기근 때에) 나를 당신들 앞서 애굽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른 역사관이다.
시편 기자도 요셉이 애굽에 팔린 사건을 유사하게 해석했다:
시 105: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22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다.
4
현재 한반도의 비극과 지구 최악의 독재 공산당 통치권인 북한이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저렇게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무슨 목적에서 그리하실까? 라고 묻게 된다. 혹자는 일제 시대에 그러니까 1938년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27회 총회가 “신사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를 “솔선 여행하고, 비상시국하에서의 총후 황국 신민으로서의 적성을 다하기로” 결의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배교하였던 죄악의 결과로 민족이 분단되고 지금까지 처벌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일제시대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장로교에서는 1938년 2월 9일 평북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이후 8월에는 평양노회, 9월에는 경안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고, 전국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일제의 강요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 이 시기에 각 종교단체나 다른 교파들 가운데 천주교는 교황청의 정책에 따라 일찍이 1936년 5월에 국가의식으로 받아들였고, 안식교는 1935년에, 감리교는 1938년 9월 3일 총리사 양주삼의 명의로 신사참배 여행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지막으로는 장로교 총회가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 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하고 추히 국민 정신 총동원 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期)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제27회 총회에서는 이 결의 후 평양기독교친목회 심익현 목사가 신사참배 즉시 실행을 특청하자, 총회가 이를 받아들여 김길창 부총회장의 인솔로 전국노회장 23명이 총회를 대표하여 평양 신사에 참배하였다. 이어 총회에서 김길창이 제출한 건의안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당국과 조선교회와 선교사단과의 삼각적 관계의 원만을 도모할 일
2) 총후보국(銃後報國)에 물자 헌납운동은 물론 우선 정신 동원의 일부로서 내지 교회와의 연락을 위한 친선 사절을 보낼 일
3) 국방헌금은 교회가 일정한 시일에 애국 예배를 보는 동시에 국방 헌금대로서 조직할 일
4) 신사참배는 사대절(四大節)에 일반시민과 같이 참배하도록 당국과 교섭할 일.
12월 12일에는 장로교 홍택기, 김길창, 감리교의 양주삼, 김종우, 성결교의 이명직 등 5인이 한국교회 대표단으로 일본의 이세신궁과 가시하라 신궁 참배를 떠났다.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겠지만, 총회에서의 부속 결의와 그 이후 지도자들의 행적으로 볼 때 신사참배는 일제의 강요와 억압에 의한 것과, 또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신앙 정조를 상실한 거짓 목자들의 타락한 마음에서 나타난 아부 성격이 있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비록 소수의 장로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성도들의 무리가 신사참배를 생명 바쳐 반대하고 투옥되거나 순교하였지만, 조선의 성도들은 그 타락한 지도자들 때문에 온통 신사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하나님을 배교하고 말았었다. 이런 죄과는 너무나도 커서 용서받기 어려울 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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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시절에 거짓 목자들이 앞장 서서 공산당 사회주의 연방주의 통일에로 나라를 몰아가던 문재인 악당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던 사실을 우리는 직접 목격한 바가 있다. 이런 악인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있는 것은 시대마다 '오직 남은 자만 구원받는다'는 원리에 비추어 이상할 것도 없다. 항상 하나님의 남은 자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말하자면 '가라지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기도를 많이하고 성령님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목사나 성도들이 공산당 국가 건설에 적극 동참하고 신앙의 자유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교회를 뿌리 뽑으려는 속셈도 모르고 그렇게 불나방처럼 권력의 불에 환호하며 달려들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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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 영적으로 깨어나서 잘못된 역사관을 깨뜨리고 성경적인 안목에서 자기 역사를 살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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