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시사

공산당 해방구가 된 광주시

중일사랑 2023. 8. 22. 23:48

해방구란 말은 해방된 구역, 곧 공산당이 원쑤들에게서 해방시켜 공산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이겠다.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보훈장관 "48억 들여 정율성 공원? 6·25 남침 나팔 불던 사람"

중앙일보

입력 2023.08.22 11:50

업데이트 2023.08.22 14:12

 

박 장관은 정율성이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정율성이 독립유공자인가.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정율성은)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으며,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해 단장이 됐다.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며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만들어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사람, 조국의 산천과 부모·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군 응원 대장이었던 사람이기에 그는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이 고향인 정율성은 19살이었던 1933년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피아노·바이올린·성악 등을 공부했다. 이후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에 가입해 일본군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이다 옌안으로 이주해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공산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광복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활동했으며 다시 중국에서 지내다 사망했다.

광주시는 어디 중공 어디에 있는 도시 이름입니까?

Geum Hyok Kim

 
세금 12억을 들여 복원한 정율성 생가에 전시된 사진 중 하나. 
사진 설명란을 보고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린다. 저기서 말하는 ''항미원조"란 6.25당시 우리나라를 불법 침략했던 중공군이 자신들의 참전을 정당화 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선전문구다. 침략국이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항미원조"라니..이게 지금 말이 되나? 정율성의 헌신과 혁명적 낭만주의?
무슨 헌신을 말하는건가. 중공군 군복을 입고 중공군을 독려하던 그 헌신? 그것이 우리에게도 헌신인가?

광주광역시는 2020년 5월 동구 불로동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으며 총 48억원을 들여 올해 연말까지 공원 조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김일성이 정율성에게 내린 포상창

 
 

 

 

박민식 보훈부 장관

48억원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 

 

광주광역시가 올해 말까지 '정율성 기념 공원'을 짓는다고 합니다. 이미 광주에는 ‘정율성로’도 있고 ‘정율성 생가’도 보존돼 있습니다. 음악제나, 고향집 복원 등에도 많은 세금을 썼는데, 안중근, 윤봉길도 못누리는 호사를 누려야 할 만큼 그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습니까.

 

‘오월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가, 시민들의 혈세를 들여 기념해야만 할 인물이 과연 누구여야 하는지, 하늘에서 정율성 찬양미화작업을 지켜 보고계실 독립지사와 호국, 민주화 영령들이 얼마나 통탄할지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정율성이 독립유공자인가요?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닙니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입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으며,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하여 단장이 됐습니다.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6.25 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민족을 저버리고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만들어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사람, 조국의 산천과 부모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군 응원 대장이었던 사람이기에 그는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었습니다. ‘중국 영웅’ 또는 '북한영웅'인 그 사람을 위한 기념 공원이라니,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입니까?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러터졌는지 답답합니다. 그렇게도 기념할 인물이 없는가요?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그를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것은 518 묘역에 잠들어 계신 민주주의 투사들을 욕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518정신은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48억이라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일입니다. 비록 광주광역시 차원의 시 재정이 쓰인다고는 하지만 시 재정은 국민의 혈세가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부정하는 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국민들의 혈세를 마음대로 쓴다면,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도 엄격히 대응해야 합니다!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우리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합니다. 전면 철회되어야 마땅합니다.

 

----------------

광주의 정율성만 문제까? 통영의 윤이상은 ? 범 김일성족들이 대한민국을 삼켜 버렸다. 

 

5.18 광주 사태에 어떤 인물들이 주동적이었던가? 5.18 사태 당시 18세 고등학생이었던 윤기권은 자신이 어떻게 공산주의 의식화의 세계로 진입했는지를 회상한 글이 있다. 자신은 대학생 형님들이 왜 저렇게 데모만 하는지 몰라 이상하게 였겼더니, 영어 선생님인가? 누가 그 점을 자세히 알려주고 이 나라가 미제 식민주의로 예속되어 이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고자 저렇게 데모를 한다는 식의 가르침을 받고, 공산 적화 사상의 세계로 자기도 모르게 빠져 들게 되었다는 요지의 회상이다.

 

송영길의 동창 윤기권은 아래와 같은 공적으로 5.18유공자가 되었고 보상금을 2억이나 받아내었다.
"산수동으로 가는 도로에 경찰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파출소를 깨부순 기세로 우리는 쫓아가 돌멩이와 각목으로 마구 두들겼다. 그안에 타고 있던 15명의 경찰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들은 두꺼운 진압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기를 들고 있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곳에서 우리는 투사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 봉선화 등을 불렀다. 또 훌라송에 맞추어 '전두환이 물러가라, 좋다 좋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좋다 좋다' 등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위의 증언을 하고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아 보상금 2억원을 받아챙긴 윤기권은 1년동안 월북을 계획하고 고정 간첩의 안내로 91년 공산 괴뢰공화국에 의거 월북하였다.

 

북괴의 5.18관련자 자료수집 혈안
이에 충격을 받은 광주는 5.18과 북괴와의 상관관계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기 위해 월북한 윤기권에 대한 인신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윤기권에게 정신병자 프레임을 씌운것이다. 

 

"그 친구는 평소에 약간 정신이 이상했습니다. 물론 그와 썩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알기로는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좀 엉뚱한 면이 있었지요"

 

그러나 윤기권의 정신은 말짱했고 그의 머리는 이미 의식화되어 있었다. 광주폭동에 열렬했던 공로로 2억원이 넘는 보상을 받은 후 1991년 위대한 수령님과 참 조국을 찾아 의거 월북했다는 북괴 로동신문의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남조선의 광주현대극장 미술원이였던 윤기권동포가 공화국 북반부로 의거

[평양 2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  남조선인민들속에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동경심이 날을 따라 높아가고있는 가운데 남조선동포들이 공화국북반부로 련이어 의거해오고 있다.
올해에 들어와 강대승, 지영준, 리선필, 김권희 동포들이 의거해온데 이어 남조선 광주현대극장 미술원이었던 윤기권(29살) 동포가 얼마전에 삶의 길을 찾아 공화국북반부로 또 의거
하여왔다. 관계부문 일군들이 그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였다.

 

윤기권 동포는 전라북도 정읍군 립암면 신면리에서 태여났으며 의거하기 전까지 광주시 북구에서 살았다. 그는 광주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돈벌이를 위해 남조선의 여러곳을 돌아다니다가 군에 징집되여 2년간 괴뢰군살이를 하였다. 그는 의거 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오래전에 이북방송을 들으면서부터 이북의 현실을바로 알게 되였다.
나는 이북방송을 통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이북에 로동자, 농민의 진정한 인민정권을 세워주시였을 뿐아니라 민중중시의 참다운 정치를 펴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특히 이북에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령도밑에 근로민중이 모두가 다 나라의 주인이 되여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수 있었다.
이 과정에 나는 이남 통치자들이야말로 나라와 민족도 안중에 없는 매국역적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럴수록 나는 이남사회에서는 더이상 나의 희망을 꽃피울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였으며 이북을 희망의 등대로 더욱더 동경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오래전부터 월북의 길을 모색해오다가 얼마전 해외에 나간 기회를 리용하여 참된 삶의 길을 찾아 공화국북반부로 의거하여 왔다.

 

윤기권, 지금이라도 탈북하여 와서 자신의 무지했음과 민족을 반역한 죄를 고백하라. 북한에서 내가 체험한 그 처참한 공산 지옥 세계의 실상을 알려서 다시는 당신 같은 어리석은 자가 이 땅에 살지 못하게 하라! 그것이 윤기권이가 민족을 배반하고 대한민국을 팔아 먹은 자기 죄악을 씻는 길이다.

 

 

연합뉴스여, 북한 교과서가 실상 왜곡이 아니고, 실상을 제대로 말한 것이다.

 

 

 

5.18 광주 사태에 주동적으로 참여했던 전남대생들이나 청년들은 윤기권 같은 반 자유 대한민국 사상으로 의식화된 자들이 태반이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광주의 성도들이여, 어찌하여 당신들은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공원 조성 사업에 반대를 표명하지 않습니까? 이런 악한 일들이 왜 광주에서 일어나야 하는지, 사악한 무리들과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