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기해년 겨울 타국의 역병이 이 땅에 창궐했는바, 가솔(家率)들의 삶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그 이전과 이후를 언감생심 기억할 수 없고 감히 두려워 기약할 수도 없사온데 그것은 응당 소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백성들은 각기 분(分)하여 입마개로 숨을 틀어막았고 병마(病魔)가 점령한 저잣거리는 숨을 급히 죽였으며 도성 내 의원과 관원들은 숨을 바삐 쉬었지만 지병이 있는 자, 노약한 자는 숨을 거두었사옵니다. 병마의 사신(邪神)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가려 찾지 않았사오며 절명한 지아비와 지어미 앞에 가난한 자의 울음과 부유한 자의 울음은 공히 처연(悽然)했사옵고 그해 새벽 도성에 내린 눈은 정승댁의 기왓장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