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언약
1 언약
성경에서 "언약"이란 (히, 베리트)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약속을 "언약"이란 말로 표현한 것은 그 약속이 쌍방간의 법적 관계 설정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은 아브라함 언약이라 하는데, 이 경우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우리는 "언약"보다는 "계약"이란 말을 더 흔히 사용한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모세 언약 혹은 시내산 언약,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다윗 언약 (삼하 7장), 종말의 때에 맺으실 언약은 새 언약 등 이렇게 구약에는 여러 언약이 언급된다. 모세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의 보충이다. 즉 가족이 아닌 민족으로 성장한 이스라엘의 사회 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법규들을 주신 것이 모세 언약이다. 그 기본은 아브라함 언약이다. 다윗 언약 역시 아브라함 언약의 보충이고, 모세 언약의 보충이다. 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느냐? 하는 것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최종적으로 맺으실 종말론적 언약으로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기 전 날 밤에 다락방에서 최후 만찬을 통해 예기적으로 체결하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비준하신 마지막 언약이다.
2 언약 체결 비준 의식
언약은 효력을 발생하려면, 언약 비준 의식을 거쳐야 한다. 창 15장에서 그 언약 비준 제사 의식이 묘사되고 있다 (출 24장, 렘 34장에서도 참조):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 .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여기서 묘사된 바는 언약의 당사자가 제물의 고기를 쪼개어 양 쪽에 벌여 놓고 그 사이를 지나면서, 자기 저주를 맹세하는 의식이다.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로 상징되었고,그 횃불이 쪼개서 양 편에 벌여 놓인 고기들 사이로 지나간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무수한 자손과 그들이 거할땅) 만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이 쪼개진 짐승들처럼 쪼개지는 저주를 감수하겠다는 자기 저주 맹세의식이다.
아브라함은 여기 의식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는 지금 환상 중에 이런 장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나중 창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증표를 몸에 표시하도록 (즉 생식기 끝을 잘라내는 할례) 요청하시는데, 그것은 창 16장에서 보듯, 언약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인본주의로, 육의 생각으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얻어 아들을 낳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언약) 하나님의 자기 저주 맹세의식을 통해서 1차적으로 체결되었고 (창 15:18), 2차적으로 아브라함과 그 남자 후손들이 모두 몸에 할례를 받으므로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아브라함 언약의 내용
그렇다면 아브라함 언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1)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증대되리라;
(2) 그 자손들이 발 딛고 살아갈 땅을 주리라 (가나안 땅);
(3) 아브라함 후손을 통해 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 등이다.
이 세 가지 내용들은 모두 성취되었다! 어떻게?
(1) 아브라함 후손은 별과 같이 번성하게 되었다.
누가 아브라함의 후손인가?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오늘날 60억이 넘는 인류 중에 영적 아브라함 자손은 약 20억명으로 추산된다 (카톨릭 + 개신교도).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자는 20억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3) 아브라함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민이 지금 복을 받고 있다!
사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주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저주 하에 처한 인생들을 구원하여 축복하기 위함이었다. 즉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의 선택은 저들에 대한 편애가 아니라, 만민을 위한 선택이었다. 다시 말하여, "전체를 위하여 일부를 택한 것"이었다. 이를 라틴어로 표현하자면 pars pro toto이다.즉 "전체를 위한 일부"이다.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던가? 그것은 온 인류를 복 주시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구약을 잘못 읽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는 구약에는 선교사상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전혀 구약의 사상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의 말로 들린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선교를 위한 목적에서였다. 선택은 특권을 준다. 바울 사도는 그 특권을 이렇게 말씀하였다:
롬 9: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런데 특권에는 항상 의무가 동반된다. 그 의무가 바로 만민에게 복의 원천이 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복의 전달자가 되어야 했다. 참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 그것이 진전한 의미에서 참 축복이다.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 후손인 이스라엘이 복의 근원이 되어야 했지만, 실패했었다. 저들은 참 하나님을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전파하였던가? 자기들만이 선민이라고 그릇된 국수주의 사고에 빠져서 이방인들은 개취급하고 멸시만 하였지, 저들에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참 하나님의 진리를 이방인들에게 전파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였다. 이것이 구약에서 가장 큰 스캔들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전도는 커녕, 오히려 이방인들의 우상에 자신들이 미혹당하였고 마침내 배교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제 참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고 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바울 사도가 롬 11장에서 접붙임의 비유를 사용하는데,
롬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여기서 참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 감람나무는 불신 이방인들을 지칭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이므로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접붙임의 원리를 따라서), 그 의미는 분명하다. 이방인들은 원래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게 접붙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농촌 현장에서라면, 돌감람 나무에다가 참 감람나무 묘목을 가져다가 접을 붙여서, 원 줄기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 나무를 받아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영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므로 실제 현실과 좀 괴리가 있어 보인다.
밀양시 공동브랜드(미르피아) 웹에서 펌
↑
지난해 봄에 감씨를 파종하여 60~70cm 자란 가지를 4~5cm만 남기고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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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2일 접목할 좋은 단감 나무 가지를 잘라 만들어 둔다. 파라핀에 송진을 넣어 끓여서 조금 식힌 다음 가지를 담갔다 꺼내서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밀봉하고 봉지에 싸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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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자란 돌 감나무를 쪼개고,
그 사이에 준비한 좋은 단감 나무 가지를 (접목시키는 나무 가지)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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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끼워 넣는다
위의 것이 좋은 나무 가지 (바울 사도는 반대로 말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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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닐로 감아서 두 가지들이 서로 밀착하도록 하고, 수분이 증발되지 않도록 해 준다
접붙임 완성 ↑
이제 둘째 (2) 항목 곧 가나안 땅의 영원한 소유인데, 이것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발 딛고 살아갈 가나안 땅은 여호수아 당대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고, 저들은 그 땅에서 정착하여 하나님을 섬겼다.
수 21: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여 주전 586년까지 그 땅을 누렸다. 그러나 저들은 범죄하여 언약을 깨었으므로 그 땅을 몰수당하고 바벨론 땅으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그 땅은 창 17:8에서 아브라함 후손에게 "영원한 소유물"로 (아훗자 올람) 주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레 25:23에서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gërîm wütôšäbîm) 나와 함께 있느니라
라고 하심으로 실제 소유주는 하나님, 이스라엘은 잠시 그 땅에 체류하는 객에 불과한 신분임을 말씀한다. 즉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소유물로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님께 충성할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일시적 선물에 불과하였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긴다면, 저들은 가나안 땅을 누릴 권리가 없어진다. 그것은 당연하지 아니한가? 영원한 소유물로 주셨다는 것은 저들이 어떤 짓을 하건 그 땅이 대대로 영원히 저들의 것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닌 것이다.
4 오늘날 저 중동의 이스라엘 땅이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인가?
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은 저 중동의 이스라엘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의 수혜자들로서 팔레스틴 땅을 한 치도 아랍계 팔레스틴 사람과 양보없이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그릇되이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영원한 소유물"이란 말에서 "영원한"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올람"인데 이는 숨겨진 미래, 곧 장구한 세월을 지시할 수 있지만, 반드시 절대적 의미에서 영원 무궁한 기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먼 미래까지의 오랜 기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한에서 그 땅은 이스라엘의 소유물이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주님 당대까지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섬긴 언약 공동체였다. 따라서 적어도 그 때까지는 가나안 땅을 소유할 권리를 지닌 민족이었다.
그런데 주후 70년에 성전은 파괴당했고, 그 이전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아브라함의 언약의 핵심인 아브라함 후손을 통해 만민이 복을 얻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자기 몸을 속죄제 제물로 바침으로 아브라함 언약의 핵심인 만민의 축복 원천이 되셨다.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축복을 받는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나아간다.
이제 구원사의 변천에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들일 수 없다. 저 중동의 이스라엘은 성전도 없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도 없다. 저들은 세속 정치 혈통 공동체일 뿐,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핵심이었던 믿음 공동체, 영적 공동체는 아닌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공동체, 언약 공동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새 이스라엘인 교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 언약의 진정한 수혜자는 교회인 것이다.
가나안 땅을 영원한 소유물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더 이상 저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해당 사항이 아니게 되었다. 새 언약 공동체가 12지파를 상징하는 12사도를 통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구약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교회에게 주어진 것이다.
5 그릇된 해석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이 아브라함 언약의 땅 조항을 저 중동의 이스라엘에게 해당된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신약없이, 구속사의 변천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해석한 그릇된 해석에 불과하다. 세대주의자들의 특징은 교회와 이스라엘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부인하고, 배격하는 일이다. 저들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저들은 신약을 거의 무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신약도 없는 양 구약 중심으로 해석할 때 아주 그릇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와 신약을 구약에 맞추려기보다, 구약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맞출 때 진정한 기독교적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아브라함 언약의 땅의 약속이 천년 왕국 시대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림 이후에 지상에 이루어지리라 가정된 그 지상적, 물질적 천년왕국 사고 자체가 비 성경적이다. 그런 다윗 왕국의 재건, 지상적, 물질적 유토피아는 예수께서 이미 배척하셨던 (요 6:15) 주님 당대 유대인들의 사고의 부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주님은 겨우 천년 지속될 지상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오셨다가 유대인이 배척하자 부랴부랴 구원을 이방인에게 주시고 유대인 왕국 건설을 재림 이후로 늦추신 것이 결코 아니다. 그분은 인류의 근본 문제인 죄를 제거하고 사탄을 멸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 오셨던 것이다.
유대인의 그리스도 배척은 오히려 사 53장의 예언의 성취였다. 유대인들의 손에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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