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구약에서 삼위일체

중일사랑 2012. 4. 27. 07:33

 

구약에서 삼위일체

The Triunity (Trinity) of God in The Old Testament

 

서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는 모두 구약 성경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오직 기독교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나머지는 유일신을 믿는다. 구약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유대교도들은 쉐마, 곧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에하드) 여호와시니! 라는 (신 6:4) 유대인들의 신앙 고백문이 기독교인의 삼위일체 교리를 논박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믿는 기독교는 우상숭배교라고 정죄한다. 저들은 신 13장에서 다른 신을 전파하는 선지자를 죽이라고 했다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선포하는 기독교는 이단 중의 이단이라 정죄한다.

그러나 구약은 하나님의 유일성만 (Oneness) 아니라, 하나님의 복수성도 (plurality) 가르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 히브리어에서 '하나'는 복수성을 함축한다 oneness implies plurality

쉐마에서 "하나"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하드'는 "복수의 단일성"을 (compound unity of oneness) 표현한다. 

  •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wehäyû lebäSär ´eHäd -그들은 한 몸이 될지라 they shall become one flesh)

결혼을 통해서 한 여인과 한 남자가 한 몸을 이루게 된다. 두 육체가 한 육체가 되는 일, 이것이 결혼이다. 이것이 결혼의 비밀인 듯 하다. 사도 바울은 결혼의 신비로움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씀했다: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결혼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신비는 완전한 사랑으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조화, 완전한 사랑, 완전한 사귐, 완전한 이해가 요청되는 것이다. 인생들은 결혼 생활 내내 이것을 목표로 숙제를 풀어야 할 것 같다. 그 일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인내와 기도와 희생과 자기 부인이 필요할 것인가? 그것이 결혼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영적인 비밀을 알고 결혼하는 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어쨌거나 신 6:4에서 하나님은 "하나"이시라고 할 때 사용된 그 히브리어 "에하드"가 창 2:24에서 결혼의 신비로움을 말씀하는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선언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은, 우리 삼위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과 조화의 관계로 계신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2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은 (엘로힘 Elohim) 문법상 명사 복수형이다 (plural)

하나님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엘"이나 "엘로힘"인데, "엘"은 문법 형태상 단수이지만, "엘로힘"은 복수형이다. 그래서 이방 신들을 가리킬 때 이 "엘로힘"은 "신들"을 (gods) 의미한다. 그러나 참 하나님, 야웨 하나님이란 의미에서는 "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그러니까 "엘로힘"이 참 하나님을 지시할 때는, 사용되는 동사가 단수형이다:

창 1:1 Berë´šît Bärä´ ´élöhîm ´ët haššämaºyim we´ët hä´äºrec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히브리어 "엘로힘"이란 단어는 보통 추상적 개념인 '장엄'을 (majesty) 강조하여 표시하기 위한 복수형이라고들 설명하기도 한다 (E. König, Syntax §163; GKC §124g). 그렇지만, 이 말은 "신들"이란 복수적 (plurality)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설명은 개연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E. Jenni & C. Westermann, Theological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116참조).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을 지칭하실 때 때로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히브리어 "엘로힘"은 (하나님) 신약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시하는 복수형 단수 명사로 이해함이 좋을듯 보인다. 

  •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 창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 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런 복수형의 "우리" 표현은 결코 천사들을 포함한다고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창 18장에서 두 천사와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야웨께서는 두 천사가 곁에 서 있었지만, 말씀하실 때는 항상 "내가" 혹은 "내게" 등으로 피조물된 천사들과 자신을 구분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창 18:10,14, 21 등).

 

 

3 구약에서 "성부 하나님" (God the Father)

(이 부분의 근거들은 좀 약하긴 하지만)

  • 신 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 시 89:26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 사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 렘 3: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의 애호자시오니
  • 렘 3:19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4 구약에서 "성자" 하나님 (God the Son)

  • 시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시 2: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 단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옛적부터 계신이) 다른 신적 존재인 "인자 같은이"를 본다. "인자"란 사람의 아들인데, 사람// 인자, 곧 인자란 "사람"이란 말의 병행어이다. 따라서 인자 같은 이란, 결국 "사람 같은이"인데, 단 7장 환상에서 나타난 네 짐승과 달리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신 이는 "사람" 같은 자였다는 것이다. 사람 같은 자란, 사람 같기는 하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으로 보아, 신적 존재라는 말이다. 사람 같아 보이는 형상인데, 쉐키나 영광의 구름을 동반하고 오는 것으로 보아, 신적 존재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구름"은 대기권의 비구름이란 의미도 있지만, 여기 문맥에서처럼 신적 임재에 동반되는 영광의 구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와 다른 신적 존재가 여기 본문에 나란히 언급되었는데, 이 인자 같은 이는 누구인가? 단 7:14에서는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 왕권을 주었다 한다. 이는 신약에서 (마 28:18)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는 사고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유대교도들이 어떻게 부인하건 간에, 단 7:13-14에는 두 신적 존재가 나란히 언급되었다. 유일신 개념을 주장하더라도 이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야웨의 사자

다 음으로 우리는 이른 바 “야웨의 사자”가 야웨 자신과 동일시되는 경우들을 지적할 수 있다 (창 16:7이하, 22:11이하, 출 3:2이하, 삿 6:12이하, 13:3이하 등). 이 야웨의 사자는 전통적으로 성육신 이전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예수 그리스도라 이해되어 왔다. 왜냐하면, 야웨의 사자는 말씀 도중에 1인칭으로 자신을 야웨와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말씀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10). 특히 모세에게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서 타는 불꽃 모양으로 나타나신 야웨의 사자에 대한 다음 서술을 보라: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이 묘사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단지 야웨의 보내심을 받은 전권대사(全權大使)이기에 자신을 1인칭으로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하는 어법을 구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출애굽기의 저자 모세 자신이 직접 코멘트를 통해 야웨의 사자를 “야웨” 자신으로 혹은 “하나님”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는 (4, 5절) 점이 주목을 끌지 아니한가? 이는 명백하게 창 18장에서 언급된 아브라함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 세 사람 중의 1인이 야웨로 확인되었듯,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 사도께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요 1:18) 한 말씀은 모든 구약의 신현(神顯) 사건들에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는 (신약의 삼위일체 사고에 따라 말하자면) 결코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지 않으신다. 오직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자라 (로고스) 부르는 것이다 (요 1:1-5).

그 런데 “야웨의 사자”라고 할 때 “사자”란 (使者) 말은 영어 번역에서 “야웨의 천사(天使)”로 (Angel of Yahweh) 나타난다. 그래서 야웨의 천사(天使) 즉 피조물이란 잘못된 인식을 주기 쉽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야웨의 사자는 “말락 야웨”인데, 여기서 ‘말락’이란 “보냄을 받은 자” 곧 사신이란 (messenger) 의미이다. 영어의 angel이란 (천사) 말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의 ‘앙겔로스’의 음역일 뿐이다. 따라서 “말락 야웨”란 피조물이란 본질적 존재 성격을 드러내는 의미가 전혀 없고, 그가 행하는 기능 혹은 보냄을 받은 자란 그의 직분만을 지시할 뿐이다. 히브리어 “말락”이란 말은 하늘의 사신(使臣)만 아니라, 인간들이 보내는 사신(使臣)도 지시한다. 예컨대 야곱이 에서에게 보내는 사신 (창 32:3), 왕이나 군사 지도자들이 보내는 사신 (삼상 19:11-21) 등. 때로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말락”이라 불린다 (대하 36:15-16; 렘 25:3-7, 26:20-23, 학 1:13, 말 3:1 등). 선지자는 하나님이 파송한 사명자이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보냄을 받은 자란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 (avpo,stoloj) 곧 사도(使徒 apostle)라 불린다.

여 하간 여기서 중요한 사항은 “야웨의 사자”란 명칭은 그의 본질적 존재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단지 그가 보냄을 받은 자, 사명자란 의미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야웨의 사자의 신적 성격이 분명하게 지적되었는데, 구약에서 신적인 존재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어떤 특정한 일을 행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신적인 존재가 어떻게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가? 그 보냄을 받는 신(神)은 하나님에 비해 열등한 존재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의 진전된 계시에 비추어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질상 동일하고 권세와 지혜와 능력에서 동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컨대, 빌 2:5이하). 구약에서 야웨의 사자가 신적 존재이지만, 사명을 위해 보냄을 받는다는 사실은, 신약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곧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사명을 위해 오신 존재라는 점과 병행된다. 이런 병행은 구약의 야웨의 사자의 모습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도록 해 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신약에 제시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야웨의 사자에게서 이미 희미하게나마 드러나고 있었고, 야웨의 사자는 다름 아닌 성육신 이전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셨다.

 

5 구약에서 "성령" 하나님 (God the Holy Spirit)

구약에서 "성령님"은 "루아흐"란 히브리어로 표현된다. 물론 "루아흐"는 "바람"이나 "호흡"이란 의미도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의 "신"은 여기 저기서 많이 언급되는데, 유대교도들은 이 하나님의 영을 인격체가 아닌 하나님의 영향력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 구분되는 한 인격체라는 것이 구약의 몇 구절들로 확인된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we`iccübû ´et-rûªH qodšô)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사 63:10)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에서 거듭 거듭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였다. 그런 저들의 소위를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님을 근심케 한 일이었다고 지적한다. 여기 언급된 "루아흐 코데쇼"가 (그의 거룩한 영) 하나님의 한 영향력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그 영을 근심케 하였다고 기술할 수 있겠는가?

  • 여호와의 신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사 63:14)

여기서도 "야웨의 신"은 이스라엘을 인도한 한 인격체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은 구약에서 창조의 영으로 (창 1:2),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초자연적 지혜와 권능을 부여하신 이로 (출 31:3, 35:31, 민 11:17, 25-26, 29 [모세에게 임한 신을 70인 장로들에게 전이시킴], 24:2 [발람의 예언을 가능케], 27:18 [여호수아], 삿 3:10, 6:34, 11:29, 13:25, 14:6, 19, 15:14 [이상 사사들에게 임하여 초자연적 권능 부여], 삼상 10:6, 10, 11:6, 16:13, 14, 19:20, 23, 23:2, 왕상 18:12, 22:24, 왕하 2:16, 대상 12:18 등등), 선지자들에게 역사하여 예언을 가능케 하신 분으로 나타난다. 특히 종말의 때에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질 것으로, 하나님의 영이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 예언되었다 (사 11:2, 32:15, 34:16, 61:1, 겔 37:1, 14 등).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이 언급된 구절들

 

6 구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Triunity of God in the Old Testament)

  • 잠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 사 48:1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 사 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7 신약에서 드러난 분명한 삼위일체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창 1:2에서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다라 (werûªH ´élöhîm meraHeºpet `al-Penê hammäºyim) 할 때, 하나님의 신 곧 성령께서 수면 위에서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빙빙 돌며 배회하듯 그렇게 배회하셨다. 즉 이미 성령님을 새에 비유하여 묘사하였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 성부 하나님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성령님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성령님을 "일곱 영들"이라 묘사한 것은 그분의 완전하심, 충만하심을 (7 =완전) 상징적으로 강조하여 제시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그리고 예수님을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 지칭함으로 사도 요한은 이미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그분의 왕권 행사가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메시아 왕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 (실현된 종말론).

 

결론

구약에서는 신약에서와 같이 분명하게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이 드러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약의 삼위일체 사고를 가지고 구약을 본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점진적 계시라는 (progressive revelation) 개념을 아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실 때 처음부터 모두 드러내시지 않고 점진적으로, 처음에는 희미하게 나중에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희미하게, 신약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셨다. 따라서 신약이 없이 구약만 읽으면 구약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동시에 구약이 없이 신약만을 읽어도 신약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은 서로 보충 관계이며, 함께 하나를 이룰 때 완전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된다.

요컨대, 구약에도 희미하게나마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삼위 하나님을 희미하게 드러내 보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