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다윗 후손 메시아 왕의 등극식 = 입양식

중일사랑 2017. 6. 20. 11:33

시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의 의미를 물으니 어느 신학생이 예수님의 성육신 혹은 마리아에게서의 탄생을 지시한다고 했다. 이보다 잘못된 이해는 다시 없다. 전혀 그렇지 않다.

시 2편의 원래적 상황, 역사적 상황 곧 그 시가 생겨난 삶의 자리는 다윗 후손 왕이 주변 봉신국들의 반란에 직면한 상황이다. 다윗 시대에 암몬 족속이 다윗에게 위협을 느껴 아람 군대나 마아가 왕국 군대를 용병으로 세 내어 전쟁을 준비하여 전쟁을 치룬 적도 있지만 (삼하 10:6), 암몬이나 아람이 그 당시 다윗의 봉신은 아니었기에 시 2편의 역사적 상황과 부합되지 아니한다. 다윗 이후 어느 유다 왕의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 이 시의 배경일 것이다.

그런 역사적 상황에서 7절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라는 선언은 다윗 후손이 왕으로 등극할 때 대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왕이 될 사람에게 선포한 말씀이다. 그 선언은 바로 그 날 다윗 후손이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다는 입양 선언이다. 다윗 후손의 등극식은 입양식에 다름 아니었다. 이전에 중국의 황제를 천자라 불렀거니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면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합법적인 통치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제 주전 586년에 다윗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삼하 7:11이하의 다윗 언약, 시 2:8-9 (다윗 후손의 세계 통치), 시 72:8이하 (다윗 후손의 세계 통치), 렘 23:5, 33:15이하, 겔 34:23-25, 37:15이하, 호 3:5, 사 9:6, 11:1, 10 등에 근거해서 다윗 후손 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서 무너진 다윗 왕국을 재건하고 (암 9:11의 예언) 공의로 백성을 통치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 그리고 온 세상을 통치하리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다윗 왕국이 건재할 때는 현직 왕을 "메시아"로 칭했다면, 왕국이 무너진 이후로는 오실 다윗 후손 왕을 "메시아"라 지칭하고 학수고대 기대하게 된 것이다. 주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600여년을 이방인의 압제에 시달렸기에 어서 속히 다윗 후손 메시아께서 일어나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내고 세상을 지배하고 공의로 통치하여 주길 열렬히 기대하고 있었다. 저들은 정치 군사적 메시아를 기대하였다.

마침내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는 등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오실 메시아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로마에서 해방되고 예수께서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여 통치할 때 한 자리 얻고자 혹은 자기 민족의 독립을 얻고자 제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군사 훈련을 하기는 커녕 죄인, 창녀, 세리, 귀신들린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어부 등등 별 볼일 없는 사람들만 가까이 할 뿐 전혀 왕으로 다윗 왕국을 재건하고 로마를 물리칠 기미를 보이지 아니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떠났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다윗 후손이신 예수께서 부활 후에 (승천 후에) 하나님의 "권능있는 아들로" 세워졌다 (선포되었다) 고 한다 (롬 1:3-4). 이 말씀은 다윗 후손인 예수께서 부활 승천 후에 하늘에서 다윗 후손 메시아 왕으로 세워졌다는 의미이다. 행 2:33, 36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히 1:3, 8:1, 12:2도 그리 말씀한다. 계 17:14, 19:16은 그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 선포하고 있고, 계 1:5은 그를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고 칭한다.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왕같은 제사장이라 칭해진다 (벧전 2:9). 계 5장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 유다 지파의 사자로 불리고 7뿔과 7눈을 지닌 죽임 당했던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묘사된다. 이런 사실은 그가 다윗 후손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여 우주적 통치권을 부여받은 전능, 전지하신 분이심을 말씀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다윗 후손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셨다면, 그분의 세계 통치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그 통치는 오순절 성령님을 부으심으로 성령님을 통해 말씀에 근거해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다윗 왕국의 재건이기도 하다. 사도 야고보는 행 15:16-17에서 암 9:11-12을 인용해서 다윗 왕국이 재건되었고 이제 이방인 남은 자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 현상을 설명했다.

당대 유대인들은 정치 군사적 메시아 왕을 기대했는데 주님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오히려 영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우주의 왕, 다윗 후손 메시아로 등극하여 통치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세대주의 신학이 말하듯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그런 정치 군사적 메시아 왕국 혹은 다윗 왕국이 유대인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했기에 재림 이후로 연기되었던 것인가? 아니면 구약에서 분명하게 예언된 그 지상적, 정치 군사적 다윗 왕국의 재건 대신에 영적 하나님의 나라/ 통치 (=그리스도의 나라/ 통치)가 궁극적으로 구약 예언들의 의미였던가?


많은 이들은 구약에서 제시된 메시아 예언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졌으므로 그들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렘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렘 33:15이하 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33: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33:1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33: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겔 37:24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37: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37: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37:27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이런 구약 예언들은 다윗 왕이 다시 와서 공의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다윗 후손들이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통치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고토에 거주하며, 성소 곧 성전도 세워져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제사 드리며 섬길 것을 예언한다. 여기에 더하여 슥 2:4-5, 8:6-8에서는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사람이나 가축이 차고 넘치리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슥 2:4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2: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슥 8: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런 말씀들을 대하고 사람들은 아, 이런 말씀은 1948년 5월 8일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독립을 선포할 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판단이올시다. 예루살렘 재건이나 거민들의 충만은 유대인들의 고토 귀환이나 예루살렘에 사람들이나 가축이 가득 차고 넘쳐나는 현실에서 성취되지 않고 교회 부흥 역사에서 성취되었고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진술을 대하면 금방, "아, 이런 글은 전혀 신빙성이 없구나! 저렇게 분명한 구절을 교회에 적용시키다니! 어림도 없지! 아주 왜곡시키는 데는 명수로구먼!" 하고 실망해 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따져 보아야 한다. 슥 2:4-5의 말씀은 2장에 주어진 척량 줄 잡은 자의 환상 묘사의 일부인데, 5절에서 보듯 야웨께서 예루살렘에 임하여 거하시고 (슥 2:10) 영광이 그 가운데 있으리라고 (슥 2:5) 한다. 이런 묘사는 제2 성전이라 불리는 스룹바벨 성전 시대에 (주전 538-주후 70년) 성취된 적이 없다. 즉 제2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아니했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를 드러내신 적이 없다. 제2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을 제1 성전으로 본다) 언약궤,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 등이 없었다는 것이 유대인 랍비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렇다면, 슥 2:5의 말씀은 언제 성취되었던가? 그것은 주님이 육신으로 예루살렘에 임하셨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성취되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임하는 사고는 슥 9:9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는 말씀에서 보듯, 예수님의 초림 때에 성취된 예언이다.

그렇다면, 슥 2장의 문맥에서 예루살렘의 거민들과 가축들이 충만해 지는 시기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이 그곳에 임하신 예수님의 초림과 오순절 성령 강림 때였다는 것이 분명해 지고, 그 거민들의 충만은 교회 부흥에서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분명해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축의 충만은 교회 부흥의 일부였던가?


아니다. 그런 것은 아니고, 구약 메시아 예언 혹은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의 내용은 구약 당대인들이 예언을 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그 당대의 관례나 지리적 요소들로 색칠이 되고 묘사된다는 사실로 설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예언 해석의 원리를 "겉옷과 알맹이의 원리"라고 부르는데, 겉옷이란 예언을 듣는 당대인들의 수준에서 그 사람들의 관례나 지리적 요소로 묘사하는 것을 지시하고, 알맹이는 먼 훗날 실제로 예언이 성취되는 방식이나 모습을 지시한다. 보캄이 말한대로 예언이란 그 당대인의 지적 수준이나 이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고, 그 당대의 수준으로 제약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장래에 일어날 일은 교회 부흥이었지만 (유대인이나 열방의 남은 자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입되는 일) 하나님은 스가랴 당대 유대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그 사람들의 관례나 지리적 요소들로 장래 일을 묘사하고 예언하셨던 것이다.

혹자는 이를 역사적 의미와 영적인 의미로 구분하면 되겠느냐? 고 묻기도 하는데, 그런 구분은 틀린 것이다. 예언의 실제 의미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인 축복을 지시한다면, 그 예언이 주어진 겉옷은 그 당대 유대인들의 관례들이나 지리적 요소들로 묘사되었다고 말해야 정확한 것이다.


앞에서 인용된 예레미야나 에스겔서의 미래사 예언들도 이스라엘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될 바가 아니라, 다윗 후손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교회에서 성취될 바를 내용으로 한다. 예컨대, 성소는 오늘날 교회를 지시하고, 다윗 후손 왕들은 다윗 후손 메시아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들을 지시하며, 레위 제사장들은 오늘날 왕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메시아 예언은 겉으로는 유대인들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인양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신약시대에 교회에서 영적으로 성취될 바들을 내용으로 한다.


이런 우리의 겉옷과 알맹이의 원리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의 고토 귀환을 지시하는 사 40:3-5의 말씀이 영적 고토귀환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는 사실이다 (마 3, 막 1, 눅 3, 요 1장 등). 겉으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고토 귀환이지만, 실제 의미는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회개 사역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구약의 메시아 예언들이 신약 교회에서 영적으로 전부 성취되었고 성취 도중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약이나 구약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빗나가게 마련이다. 재림 이후에 있으리라 가정된 천년왕국론은 전혀 성경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오해이다. 이미 주님은 다윗 후손으로 오셨고, 부활 후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의 입양식이 곧 다윗 후손이 왕위에 오르는 등극식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 후손이 메시아 왕으로 등극해서 성령님을 보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통치하심으로 다윗 왕국이 세워지고 그 안으로 이방인들의 남은 자들이 지금도 물밀듯 밀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행 15:16-17).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한 종족 단위로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이었지만, 오늘날 신약시대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 개인주의 구원론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이다 (갈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