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에스겔이 본 생명수의 강 (겔 47장)

중일사랑 2022. 1. 8. 20:10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읍 같은 것을 보았다. 

겔 40: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이 성읍이 바로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보았던 새 예루살렘 성읍에 다름 아니다. 

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그런데 에스겔 환상 묘사에서 그 성읍 예루살렘은 성전 중심으로 묘사된다. 사도 요한이 본 그 새 예루살렘 성읍은 12 진주문을 가진, 길이 넓이 높이가 모두 동일한 정방형 모습인데, 그 길이가 1만 2천 스타디온이라 했다 (계 21:16). 12,000스다디온은 킬로로 환산하면 2414 킬로미터 정도이다 (스다디온은 길이의 단위로서만 아니라, 육상경기가 열리는 스타디움이란 의미도 갖는다; 고전 9:24). 문자적으로, 현실적으로 이 새 예루살렘 성의 규모를 비교하자면 (그 넓이만 고려할 때, 2414 x 2414 = 5,827,396km2이다), 세계 5위의 브라질의 전체 면적은 8,514,877km2 (3,287,612 sq mile), 6위의 호주는 7,692,024 (2,969,907sq mile), 7위의 인도는 3,166,414 (1,222,559sq mile) 등이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성의 넓이는 6위의 호주보다는 좁고, 7위의 인도보다는 약간 넓다.

 

세계 최고 에베레스트 봉(峰)이 8848미터에 불과한데, 높이가 2414킬로에 달하는 성벽이 둘러싼 이런 규모의 성읍 안에 구원 받은 성도가 산다면 답답하지 않을까? 12문들을 닫지는 않지만, 열린 문들을 제외하면 사방이 막힌, 그 위압적인 하늘을 찌른 성벽에 압도되고 갑갑함이 그지없으리라. 이를 실체에 대한 묘사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이 수치는 상징법이 생명인 묵시 문헌 요한 계시록의 성격상, 이 12,000스다디온이란 수치는 아마도 12 x 10 x 10 x 10으로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땅의 사방을 상징하는 4의 삼승(三乘), 거기에 완전수 10의 3승을 곱한 것으로, 동서남북 사방 지상의 완전함에 우주 공간의 완전함이 더해진 최고의 완전함, 곧 모든 저주가 제거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사도 요한은 이미 앞에서 12,000의 상징적 의미를 사용한 바 있다 (계 7:4-8). 계 20:4-6에 제시된 1,000년이란 수치도 10 x 10 x 10으로서, 완전수 10의 (손가락, 발가락은 10이 완전한 수치이다) 3승, 즉 하나님의 모든 구원 계획이 완전 성취되는 기간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 5:6에서 어린 양은 7뿔과 7눈을 지닌 모습이다. 완전수 7과 권세의 상징인 뿔, 지식과 지혜의 상징인 눈이 어린 양의 우주 전체의 전권과 (마 28:18), 그분의 전지하심을 만화처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읍 내에 아무리 찾아도 성전은 (聖殿) 없다 (계 21:22). 그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자체로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은 하늘을 보좌로, 땅을 발을 두는 발등상으로 여기시는 분이시다 (사 66:1). 새 예루살렘 자체가 하나님으로 충만하다. 거기서 그분의 충만한 임재를 체험하고 교제한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자체가 성전이다. 그분의 보좌가 거기 있으므로, 거기가 우주 경영의 정치 1번지인 동시에, 그분을 경배하는 지성소인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완성된 교회의 (성도들; 어린 양의 신부) 모습이자,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이다. 새 예루살렘은 그러므로 성전, 그것도 그 정방형 모습에 비추어 본다면, 지성소에 가깝다 (왕상 6:20 그 내소의 속이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단에도 입혔더라; 정방형). 이는 새 예루살렘이 지성소이며, 최고의 안전과 최고의 신적 임재가 충만한 곳임을 상징한다. 

 

 

*새 예루살렘 = 하늘 예루살렘 = 위의 예루살렘 = 어린 양의 신부/ 아내 = 이상화된 성도들 (교회)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적 기원)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적 기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신약 성도들)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갈 4:2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유대교 본산)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 새 예루살렘의 단장한 모습은 

계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이렇게 보석들로 단장한 새 예루살렘은 성령님의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로 (갈 5:22-23) 새롭게 창조된 인격을 상징하며 7가지 덕목들로 속 사람을 단장한 어린 양의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다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렇게 보석들로 단장한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은 다름 아니라, 사 54:11-12를 반영한다. 

사 54:11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12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이제 중요한 것은 에스겔이 본 환상 성전 문지방에서 혹은 사도 요한이 본 환상 성전의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이다. 

겔 47: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나온 그 생수의 강물은, 사도 요한이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하여 반영했는데, 그 생명수 강은 성전의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왔다:

계 22: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성읍과 생명수의 강물

 

이 생명 수 강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사의 흐름에 따라, 건물 성전이 사라지고, 심령 성전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충만을 상징한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성령님) 모시고 그분에게 절대 순종하고 섬긴다면, 그 심령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보좌가 세워진 셈이다. 그 보좌로부터 성령님의 생수의 강물이 흘러 넘쳐나게 된다. 그 성도는 성령 충만한 자이고, 성령님으로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이고, 그를 통해 생명 역사, 치유 역사, 구원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 사람이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이고, 그 사람이 고기를 잡는 바다는 사해 바다이다. 곧 죄와 저주로 죽음이 주장하는 세상이 바로 사람 잡는 어부가 낚시질 그물 던져 고기잡는 바다이다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7:37 명절 (초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겔 47:1, 슥 14:8, 요엘 3:18)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욜 3: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슥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이런 구약 말씀들은 신약 기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죽음과 부활 승천과 보좌에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심, 성령 부으심 등의 일련의 구속 사건들로 성취되어 현재 교회 가운데서 일어나는 영적 축복들로 해석 제시하고 있다. 구약 예언들은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이처럼 '겉옷과 알맹이의 원리'를 따라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최종태, '예언자에게 물어라!'). '겉옷'은 예언이 나온 그 당대인들이 이해할 예언 묘사를, '알맹이'는 실제 그 예언이 성취될 때 나타날 영적 실체를 지시한다. 그 당대인들이 예언을 들을 때 먼 미래사의 일이지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선지자들은 당대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기 당대의 관례들과 지리적 요소들로 먼 미래사를 묘사했다. 다시 말해, 구약에 제시된 예언들은 당대 유대인들이 이해할 정도의 수준에서 유대적 색깔로 칠을 했다. 예언이란 그 당대의 지적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 (Richard Bauckham). 

 

 

전광훈 목사의 장점은 쉽게 성경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7대 명절이니, 복음의 7요소 등은 마지막이 모두 지상 천년왕국으로 귀결된다. 이는 그가 제시하는 복음의 핵심에서 최절정이 성경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오류로 귀결됨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전목사를 따라가는 서울대 수석졸업 김동환 목사는 좀 더 분발). 전천년설을 (주님 재림 이후 천년 왕국이 있다고 보는 사상) 주님이 재림하시고, 저 중동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을 재건하실 때, 이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에서 흘러 나온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리라 본다. 이들은 그 때 문자적으로 성전이 세워지고 생명수 강물이 흘러나고 사해는 실제로 고기떼가 사는 바다로 변모하리라 본다. 그러나 방금 우리가 제시한 대로, 에스겔의 생명수 강은 요 7:38, 계 22:1에서 해석된 대로, 지금 신약 시대 성도들이 향유할 영적 축복의 상징적 묘사이다. 그리고 행 15:16-17에서 암 9:11-12를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다윗 왕국이 재건되었다고 선포하듯, 다윗 왕국은 주님 초림 때 그분의 승천과 하늘 보좌 우편에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심으로 성취되었다! 

 

전광훈은 1980년대까지는 모두가 지상 전천년설이었고, 박윤선, 박형룡, 김치선, 조용기 목사 등이 모두 전천년설이었다고 말하고, 총신 교수 60퍼센트가 무천년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광훈 목사는 한국만 보지 말고, 세계 교회를 보아야 하고, 이 시대만 아니고, 교회사 전체를 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교회들을 본다면, 지상 천년왕국설을 따르는 교회가 지금 신약 시대를 천년왕국 시대로 (영적으로 이해) 보는 무천년설을 따르는 교회보다 훨씬 적다.

 

교회사적으로도 어거스틴 이래로, 종교개혁자들 마틴 루터나 존 칼빈 등은 모두 무천년설을 가졌다. 로마 카톨릭도 무천년설이다. 교회사적으로 정통 교회는 지상 천년왕국 설이 아니라, 무천년설, 곧 지금 신약 시대가 천년왕국 통치 (영적) 시대라고 보았다: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하늘 보좌에) 앉히시니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세대주의 신학을 가져와서 결국 우리 한국의 1세대 신학자들인 박형룡, 박윤선, 김치선 목사 등이 모두 전천년설을 따르게 되었는데, 이상한 일은 박윤선 같은 이는 자신이 화란 개혁주의 사상, 칼빈의 개혁주의 사상을 따른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인 종말론에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저 중동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을 재건하시고 거기 보좌를 세우시고 성전도 재건하여 제사도 재개하고 만국을 통치하시면, 슥 14장이나 사 2장의 만민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와서 거기서 야웨께 경배하리라는 지상 전천년설 사상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로 나온 사상이다. 전천년설을 따르는 이들은 그 천년왕국이 마치 우리 신앙의 목표인 양 말을 하지만,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늘 예루살렘에 도착한 자들이다 (히 12:22). 주님의 재림은 우리를 영원한 신천신지의 세계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의 신앙 목표는 바로 신천신지의 영원 세상이지만, 유대인들이 1등 국민되고, 거기서 유대인들의 발의 티끌이나 핥고 (문자적으로 사 49:23같은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구약 예언을 해석하는 경우에 그 귀결이 그렇다) 종노릇 하는 그런 종족 차별적 세상일 수 없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유대인 중심의 구약 해석이 세대주의 신학의 근본 오류이다.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래로, 더 이상 한 민족 단위 중심으로 구원하시지 않는다. 초림 이래로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른다! 영접하는 그가 구원을 받는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차별이 없다! (갈 3:28) 이 근본 사실을 무시하고 구약 예언을 여전히 유대인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김명현 박사도 더욱 분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 그와 그의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백성에게 복이 미칠 것임을 말씀하셨다 (창 12:3, 18:18, 22:18 등등). 이러한 예언의 말씀은 예언의 목적이며 중심이신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다. 예언의 목적이며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곧 역사의 중심이요 목적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접붙힘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이후의 구원 역사는 그리스도를 중심하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여러 민족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이다.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이후의 이스라엘의 민족사, 오신 메시아를 배척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흐름에서 이탈하고만, 아니 선민임에서 끊어짐을 당한 이스라엘의 민족사는 마침내 예언이면서 동시에 역사로서의 특성은 상실하고만 것이었다 (롬 10-11장).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 ." (롬 11:1) 말씀은 그렇다고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대열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고, 이제는 이방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뜻의 말씀이다. 즉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들과 함께 새 이스라엘이 되는 것임을 말씀한다. 예언의 성취이시며 역사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하의 만백성이 다 구원에, 즉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말은 이제는 특정한 한 민족의 역사가 곧 구원의 역사임을 벗어났다는 말이다 (김영재,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 한국 역사," 「기독교와 역사 해석」 [서울: 아세아 연합 신학 연구원, 1994]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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