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도라는 이가 몇 해 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웹 사이트에 올렸다. 이 글은 필자가 보기에 성경을 전혀 오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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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초 중에 기초 6. 부끄러운 구원이란 무엇인가?
(고전3:10~15)
(http://m.osanpeace.org/core/mobile/board/board.html?Mode=view&boardID=www51&num=671 오산평화 교회)
저는 오랫동안 구원에 대한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겨우 구원받는 부끄러운 구원이 있고, 상급을 받는 당당한 구원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설교자들의 설교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상급을 받는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고, 겨우 구원받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한 일이 없고 충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흥강사들은 천국에는 면류관을 쓰지 못하고 개털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 면류관 받으려면 열심히 충성하라고 강변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유명한 목사도 부끄러운 구원을, ‘호텔에서 잠옷 바람으로 나온 사람과 같다’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상급을 받는 당당한 구원이 있고, 호텔에서 잠옷 바람으로 나오는 것과 같이 겨우 천국에 들어가는 부끄러운 구원이 있는 것인가요? 만일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해당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편 강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두 강도가 같이 예수님을 비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데 다른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누가의 기록은 마태와 마가와는 다른 것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시점에서는 아마 두 강도가 다 같이 예수님을 비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한 편 강도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문으로 듣고 알고는 있었으나,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강도짓을 하여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몰랐기 때문에 같이 예수님을 비방하는데 동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후 옆에 달리신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 태도, 하시는 말씀이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소문으로만 듣고 알았던 그 예수가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그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들과 같은 죄인이 아니라 아무 죄가 없는 의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었던 것입니다.
강도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으며 회개하였다
그러면 그 강도는 구원을 받았는가? 받지 못했는가?
누가복음 23: 42절, 43절 말씀이다.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결국 강도는 옆에 달리신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구원을 예수님께
부탁하였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강도의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강도는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혀 십자가 형벌을 받아 죽기 직전에 갑자기 예수를 믿었습니다. 평생에 주를 위해 산 것도 없고, 섬기고 봉사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강도는 도대체 어떤 구원을 받았을까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인가요? 많은 설교자들이 그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에 달린 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었고, 세례 받은 일이나 전도한 일, 충성하고 섬긴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끄러운 구원에 대한 성경의 근거는 무엇인가?
설교자들은 오늘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3장의 말씀을 부끄러운 구원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 본문 고린도 전서 3장 12절 이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
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
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
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바로 이 성경 구절들이 마치 부끄러운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난제 구절입니다. 오해를 한 해석은 이렇습니다. 사도들이 터를 닦아 두었습니다.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터 위에 사람들이 건축물을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 보석으로 세우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나 풀, 짚 같은 것으로 세웁니다. 마지막 날에 사람들의 모든 공적은 심판대에서 불로 시험을 받습니다. 그때 금, 은, 보석 같은 것으로 섬기고 충성한 공적은 불에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서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 짚 같은 것으로 신앙생활 한 사람들의 공적은 불에 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심판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당당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겨우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심판대에서 주를 위해 산 것만 불타지 아니하고 남고, 주를 위해 살지 아니한 모든 것은 다 불에 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고 자기 자랑을 내세운 것들, 상패, 공로패, 무슨 패에만 매달리며 교회에 다닌 신자들의 공적, 업적은 심판 날에 불타버린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는 통하던 공적들이 최후 심판 날에는 다 소멸되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칭찬이나 상을 얻지 못하고 턱걸이로 겨우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판의 날에 불에 타 없어질 공적을 쌓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불타 없어지지 않는 공적을 쌓는 충성을 하라고 강조한다.
교회는 턱걸이 구원, 부끄러운 구원받지 말고 칭찬과 상급이 있
는 구원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만일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첫째, 천주교의 연옥 설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연옥 설은 중세에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만든 교리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데 헌금을 하면 지옥에 있는 사람도 연옥을 거쳐 천국에 들어간다는 설입니다. 이들은 상은 없지만 구원은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합니다.
연옥 설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갈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고 설교하는 것은 결코 구원
받지 못할 죄인에게 면죄부를 주어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으라
는 소리이다
둘째,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면 천국에도 세상에서처럼 계급과
서열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사람은 당당한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까? 하늘나라에서도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은 당당한 구원을 받은 사람보다 더 못한 저급한 삶을 산다는 것이 됩니다. 천국에도 여전히 가난하고 흙 수저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금 수저, 부자로, 높은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도 세상과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 나라에도 서열과 우열이 있는가?
우열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는 결코 서열과 우열이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곳이다
고린도전서 해석
고전1:10에서 4:21까지의 말씀은 고린도 교회에 당을 지어 당파 싸움을 하는 자들에게 바울이 경고를 주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부입니다. 먼저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
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
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교회의 터를 닦아두셨다
복음전도 사역자들이 전도를 하여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운다.
그러면 바울이 닦은 교회의 터는 무엇인가?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닦아두신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
리스도라고 한다.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다른 기초를 닦을 수 없다고 했다
교회의 기초, 우리 구원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예수가 우리 구원의 전부요, 모든 것이 되시고, 다이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학문, 철학, 교리, 신학도 교회와
우리 구원의 기초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 분파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가 있었고, 이런 당파들을 거부하는 자들은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파’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 역시 분파를 만든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바울은 바울도, 아볼로도, 베드로도 그 누구도 인간은 교회의 기초, 복음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파라고 주장하는 주의주장이나 교리도, 인간의 어떤 지혜나 지식도 구원의 기초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전파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아니한 어떤 것도 교회가 될 수 없고,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는 공적은 어떤 것이라고 규정하는가?
초대교회의 중요한 인물들 중심으로 분파를 만들어 분쟁하고 있는 고린도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교회의 기초가 중요한 것이지 그 터 위에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공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정해버립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터가, 기초가 그리스도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 누구의 공적이 더 훌륭하냐를 두고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복음 사역자들이 행한 일은 심고 물을 주는 일일뿐이고, 자라게 하는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공적의 허무함
바울은 사람들의 공적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2절,13절 말씀이다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
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각종 건축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전도, 선교, 구제, 충성, 봉사로 공적을 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합니다. 그게 주님 앞에서 인정받아 칭찬과 큰 상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적, 공로가 당당한 구원을 받을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불로 시험하십니다. 불로 시험한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4절, 15절 말씀이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
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
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만일 불 가운데서 사람들이 쌓은 공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상급이 있겠지만, 사람들이 쌓은 공적들은 다 불타 없어진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의 터 위에 예수님으로만 지어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여기에 인간적인 노력, 공로들을 더 보탭니다. ‘나는 이것을 했어요. 저것도 했어요.’ 하고 자기 공적을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주님 앞에 가져가면 주님께 칭찬받고, 큰 집에 살고, 높은 자리에 앉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누구도 이런 인간의 공로와 훌륭한 공적들은 천국에 못가지고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불로 확 태워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만 남는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터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
남고 우리의 공력은 다 불타버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끄러운 구원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주를 위해 뭔가를 하는 줄 알았는데 주님 앞에 가서
보니, ‘내가 행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 남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는
내가 받은 구원이 부끄러운 구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천국은 우리의 공로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어떤 헌금, 충성, 희생, 봉사의 업적으로도 천국에는 못 들어갑니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 공로를 힘입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우리가 훗날 천국에 가면 세상에서 훌륭하게 섬기고 충성했던 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나를 주님이 은혜로 구원해주셨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구원이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에서 알게 되는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 구원이 두 가지, 즉 당당하게 구원받는 사람이 있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부끄러운 구원이란 모든 사람이 받는 구원이 부끄러운 구원이라
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구원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성화(성숙)되지 못한 상태인데 구원받았으니 부끄
러운 구원인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해야 한다.
셋째, 천국에는 차별이 없다면, 부끄러운 구원이란 없다면
우리는 왜 열심히 교회 다니고, 충성하고 봉사하는가?
우리는 상 받는 당당한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끄
럽게도 아무 한 일도 없는 나 같은 자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여 부끄러운 마음으로 섬기고 충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공로로 당당하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부끄럽게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주일에 주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도 드리고, 목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두 눈에 흐르는 눈물과 감사로 전도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은혜가 되셨습니까? 구원이 무엇인지, 부끄러운 구원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셨습니까? 가짜 복음에 매여 있었는데 오늘 말씀으로 해방이 되셨습니까?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전도하고 충성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까?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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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장은 한 마디로 천국은 평등하고 공평한 곳이기에 인간의 공로와 무관하며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고전 3:10-15을 잘못 해석하고 많은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 한다면, 그 구원은 오로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들어간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후, 성도들이 행하는 여러 공적들 (전도, 선행, 구제, 하나님을 섬김 등등) 어느 것도 천국과 무관하니, 우리가 믿음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살건 우리의 행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성경을 왜곡하는 주장이 된다.
앞에서 제시한 그 글을 약간 인용해 보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각종 건축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전도, 선교, 구제, 충성, 봉사로 공적을 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합니다. 그게 주님 앞에서 인정받아 칭찬과 큰 상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적, 공로가 당당한 구원을 받을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불로 시험하십니다. 불로 시험한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4절, 15절 말씀이다.
앞에서 전체로 가져온 그 글이 비빔밥 짬뽕이다. 맞는 진술도 있고, 전혀 성경적이지 않는 자기 생각도 있고 해서 그렇다.
방금 다시 제시한 그 글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터 위에 우리는 각자가 건축을 세우고 있다." 여기까지는 옳다. "전도, 선교, 구제, 충성, 봉사로 공적을 쌓고 있다." 이 진술도 맞다. 그런데 "공적, 공로가 당당한 구원을 받을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자라면 (카톨릭이나 알미니안 신학을 따르는 성도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렇게 구원을 우리 행위 공적과 결부시키지 않을 것이다. 구원은 오로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는다.
그런데, 구원 받은 이후에 (거듭난 이후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충성 봉사 헌신 전도 선교 구제는 천국에서의 우리의 삶을 차별짓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런 성경적 사실을 허성도는 알지 못하고 있다. 천국은 공평한 곳이라 그곳에서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 고 허성도는 말한다 (마 20장 포도원 일꾼들 일당 1데나리온에게 공평하게 준다는 것은 천국이 인간 행위와 무관하게 공평한 대우를 받는 곳이라는 가르침이 아니다). 이 말은 얼마나 비 성경적이고 또 이성적으로만 생각해도, 아니, 순교자와 죽기 전에 회개하고 겨우 천국에 턱걸이 해 들어온 성도와 천국에서 대우가 동일하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이라고 할 것인가?
하나님은 사람을 행한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다 (시 62:12). 불신자는 믿지 않았기에 최후 심판에서 무조건 지옥행이다. 하지만, 성도는 믿고 죄 용서를 받고 이미 의롭다 함을 얻었기에, 지옥행이냐? 천국행이냐?의 심판은 면제받고, 오직 믿음 이후의 삶이 어떤 종류의 상급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짓는 불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말해, 상급 심판) 받게 된다. 즉 고전 3:10이하에서 지적하는대로, 불에 태워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살라질 지푸라기 풀 나무 같은 재료로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 섬김과 삶) 믿음 위에 집을 지으면 그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보석같은 불에 타지 않을 재료로 (주님이 인정하시는 섬김과 삶) 믿음 위에 집을 지으면 그 사람은 상급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어떤 상급을 받는가? 영원 처소에서 땅과 집, 면류관 상급 등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영원 처소는 신천신지이다. 곧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새롭게 창조되어 거기서 살게 되며, 그곳은 똑같은 대우가 주어지지 않고 우리가 오늘날 보는 세상처럼, 영적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차등 상급이 역사하는 곳이다.
일평생 전도 한 명 하지 못하고, 죄악도 제대로 회개치 않고 내가 주인된 삶을 믿음 이후에도 계속했다면, 그 사람은 먼저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하고, 다음에는 거듭난 자라는 확신이 있다면, 얼른 내 삶의 방식을 바꾸어 죄를 온전히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행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운 구원의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리라. 교회 성도들의 삶을 보면, 필자가 보기에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99퍼센트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삶이 아니고 내가 주인된 옛 사람의 모습으로 신앙생활한다. 이 말은 교회 다니는 성도들 태반이 가짜이거나, 거듭났다 해도 부끄러운 구원에 떨어질 자들이 태반수라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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