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장관 리언 파네타가 (Leon Edward Panetta 1938- United States Secretary of Defense) 이스라엘이 앞으로 (2012년 3월의 시점에서) 4월이나 그 이후에 이란을 폭격하리라고 했는데, 연세 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아마겟돈 전쟁이 될 것이라고 설교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대주의 신학의 대변자로 자처한 왈부르드는 지난 중동의 이라크와 미국이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의 서곡이라 말한바 있다. 이런 시각들은 중동의 이스라엘과 그들을 치려는 이스라엘의 적대자들과의 전쟁을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라고 본다.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시각이다.
1 "아마겟돈" 전쟁이란 말은 계 16:16에서 나온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2 이 "아마겟돈"은 대개 "인류의 마지막 전쟁으로 선과 악의 세력의 결정적 전쟁"이라고 정의된다. "아마겟돈" 이란 말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가장 통상적인 설명에 의하면, Har-magedōn으로 보는 것이다.이 헬라어는 히브리어 음역으로 보고, 히브리어로 풀이하면, "므깃도 산"이란 의미이다. 므깃도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하면 전쟁터가 되었던 전략 요충지로, 북의 시리아와 남의 이집트를 연결시키는 통로의 목줄과 같은 곳이다. 여러 전쟁들 중에서제1차 세계 대전때 (1918년 9월 19-21일) 영국의 알렌비 장군이 이끄는 이집트 원정군이 당시 팔레스틴과 시리아를 지배하던 오토만 터키군을 패퇴시킨 곳으로 유명하다.승리한 알렌비는 므깃도의 알렌비 경이라 지칭된다.
3 이야기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땅으로 주어진 것이라 이해하는 팔레스틴 땅은 주후 8세기에 아랍인들이 점유하고, 12세기에 기독교의 십자군이 잠시 점령했다가 1187년 살라딘이 다시 차지했고, 1517년부터 1917년 오토만 터키 제국이 지배했으며, 1917년 영국의 알렌비 장군에 의해 팔레스틴이 터키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1871년부터 유대인들이 팔레스틴 땅으로 돌아가 정착하기 시작하여, 1897년 시온 민족운동 대회에서 옛 땅을 찾자는 결의를 한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상 아더 밸포어가 1차 전쟁에서 유대인들의 지원을 얻고자 유대인의 이스라엘 국가 설립을 승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여러 우여 곡절 끝에 1948년 이스라엘은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세대주의 신학은 이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과 독립을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보며, 이방인 시대가 끝나고 종말의 때가 닥쳐온 확실한 증거라고 간주한다.
4 세대주의 신학은 앞으로 재림 직전의 때에 지금 아랍의 무슬림 모스크 사원이 선 그 시온산 옛 성전 터에 성전이 세워질 것을 기대하며 (제3 성전), 그후 7년 대환란기가 되면, 다시 팔레스틴과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넘겨져서 42개월, 곧 3년 6개월간 짓밟힘을 당하고, 성전은 파괴되리라 가정한다 (계 11:2을 근거로). 이 7년 대환란 기간이 지나고 아마겟돈 전쟁이 발발하면서 주님이 공중 재림하여, 전쟁을 끝내시고, 예루살렘에 천년 왕국 수도를 세워 천년간 통치하신다고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 지리라 본다:
렘 23:3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13 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사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천년왕국 시대는 이런 구약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라고 한다. 이런 사고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자면, 우리가 "예언 해석 원리들"에서 제시한대로, 구약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경험 팔레트로부터 물감 색을 끄내어 미래에 닥칠 메시아 왕국을 묘사하였다는 사실을 세대주의 신학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겉옷과 알맹이 원리를 저들은 알지 못하는듯 하다. 선지자들이 자기 시대의 관습과 지리적 요소들로 미래의 메시아 시대를 색칠 했다고 문자적으로 유대적으로 미래 메시아 시대를 이해하고자 해서는안 된다. 신약은 예수께서 십자가,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심, 성령 부으심 등 일련의 구원 사건을 통해서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셨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복음 전파를 통해서 시작되었으며, 야수세계에서의 평화와 조화, 전쟁의 그침과 평화 이런 모습은 재림 이후에 펼쳐질 저주가 완전히 제거된 신천신지 영원 시대의 모습으로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5 아마겟돈 전쟁을 온갖 첨단 무기와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집결하여 마지막 접전을 벌일 전쟁으로 묘사하는데 열심인 사람들이 세대주의 신학자들이다. 예컨대, 세대주의 신학자 왈부르드의 (John F. Walvoord) "아마겟돈 전쟁"이란 (Armageddon, Oil, and Terror ) 책이 그 전쟁에 대한 저들의 통속적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예증해 주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현재 저 "유럽 공동체"가 단 2장에 묘사된 신상의 넷째 나라 로마제국이 재생한 재생 로마제국이다. 단 2장의 넷째 나라와 상응하는 단 7장에서 언급된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넷째 짐승은 10뿔을 가졌는데, 그 10뿔이 바로 재생 로마제국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 7: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밞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단 7장의 넷째 짐승은 10뿔을 가졌고 그 10뿔 가운데서 작은 뿔이 나와 3뿔을 제거하고 기고만장하며 올라간다고 할 때, 10뿔이 재생 로마제국, 곧 지금의 유럽 공동체이고 (10국이 정확하게 동맹해야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많은 나라가 가입되어 있다) 나중에 나온 작은 뿔이 유럽 공동체에서 나올 한 지도자로서, 이 작은 뿔이 10개국 3개국을 전복해버리고 유럽 공동체의 통합 대통령으로서 정권을 장악하리라 한다:
단 7: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왈부르드나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이런 해석은 지지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10뿔이나 작은 뿔은 모두 넷째 짐승의 일부였다. 따라서 넷째 짐승이 죽을 때 당연히 그 뿔도 사라지는 것이다. 단 7:7-8에서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7: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라고 했다. 그리고 단 7:20에는 그것의(넷째 짐승)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라고 했다. 10뿔은 짐승의 것이지 짐승이 죽은 다음에 홀로 존속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작은 뿔 역시 그러하다. 짐승이 살아있는 한 그 작은 뿔도 뿔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 짐승은 무명이지만, 힘센 뿔소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10뿔을 가진 그 힘센 뿔소가 죽어 버렸다. 그 뿔소의 10뿔이 무슨 힘을 쓸 것인가? 뿔은 자체로 아무런 힘이 없다. 뿔은 성경에서 권세 혹은 권세자 혹은 왕을 상징하는데, 왕국이 망한 후에 그 왕에게 무슨 권세가 남겠는가?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저들은 말하길, 넷째 짐승이 로마제국을 상징하고, 10뿔은 로마제국이 망한 후에 생길 재생 로마제국을 (지금의 유럽 공동체), 작은 뿔은 그 재생 로마제국에서 나올 적그리스도 (유럽 공동체 대통령)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10뿔이나 작은 뿔은 로마제국이 존속할 때에 있었던 어떤 왕들로 보아야 정당하다.
우리의 주장을 예증해 보자. 단 8:8-9에서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라 했다. 이 수염소는 알렉산더 대제가 세운 헬라(마케도냐) 제국을 상징한다. 그 수염소의 두 눈 사이에 현저한 큰 뿔이 (알렉산더 대제) 꺽이고 (죽고), 대신 현저한 네 뿔이 났다. 이는 알렉산더 대제 사후에 그의 휘하 장군들이 각처 총독으로 부임했다가 각기 헬라제국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던 네 나라/ 왕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애굽의 톨레미 왕국, 시리아의 셀루커스 왕국 등을 포함한 네 나라를 상징한다. 9절에 언급된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에서 "한 뿔"은 셀루커스 왕국을 가리키고, "작은 뿔"은 안티오쿠스 4세를 가리킨다 (왕과 왕국은 이렇게 교차 사용된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이것이다. 곧 여기 언급된 수염소의 뿔들은 하나같이 그 수염소란 짐승이 (헬라 제국) 생존할 때에 나타난 왕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수염소가 상징한 헬라제국이 주전 30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완전히 소멸당하는데, 그 후에는 그 헬라 제국과 연관된 뿔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단 7장의 넷째 짐승이 상징하는 로마제국이 생존하는 동안에 10뿔이나 작은 뿔이 활동하는 것이지, 짐승이 죽은 후에 무슨 뿔이 힘이 있겠으며 활동하겠는가? 따라서 앞에 제시된 왈부르드의 세대주의 해석은 성립될 수 없다.
그 즈음에 소련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지만 믿기지 않겠지만 어이없이 패망하고 몰락한다고 한다 (왈부르드, 아마겟돈 전쟁, 188). 왈부르드는 이런 시나리오를 겔 38, 39장의 곡과 마곡 전쟁 예언에서 끌어온다. 즉 세대주의자들은 겔 38, 39장에 예고된 곡과 마곡 전쟁은 소련이 여러 나라를 부추겨서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대한 것이라 해석한다. 왈부르드도 참여했던 전체 성경에 대한 세대주의 주석서인 "성경 지식 주석"의 (Bible Knowledge Commentary) 에스겔 38장 주석 부분에서 이 세대주의 학자들은 주장하길,
겔 38, 39장의 예언은 세 가지 이유에서 "소련"도 언급한다고 해석된다: 1) 에스겔이 언급한 어떤 나라들은 지금의 러시아 지역에 위치하였다, 2) 침공군은 먼 북방으로부터 온다 (겔 38:6, 15, 39:2); 이는 현재 소련의 일부인 (이 책은 소련 와해 전에 기술되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바다 사이 통로지역을 포함할 것이다, 3) 에스겔은 몇몇 나라들의 연합을 언급하는데, 그 나라들 중 다수는 오늘날 소련과 동맹했거나 그 영향력 하에 있다; 예컨대, 이란 (페르시아), 수단, 북 이디오피아 (구스), 리비아 (붓), 터키 (메섹, 두발, 고멜, 벳 도갈마) 등이다. 이 모든 나라들은 소련이 아마도 주장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될 것이다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 An Exposition of the Scriptures. [Wheaton, IL : Victor Books, 1983-1985], 1299).
이 세대주의 학자들의 주석은 벌써 형편없이 엉터리 해석이었음이 탄로되었다. 소련은 1992년에 해체되었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련 대신에 러시아를 에스겔의 예언에 넣을 것인가? 여하간, 왈부르드에 의하면, 미국은 구약 예언에 없기 때문에 유럽공동체의 부상과 함께 쇠망하리라 본다.
이렇게 미소가 몰락한 다음에 세계적인 권세자로 부상한 적 그리스도는 두 개의 결정적 조처를 취하리라 한다 (왈부르드, 아마겟돈 전쟁, 187).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하고 중동 평화를 실현시켜 줄 것이라 한다. 그런 일은 단 9:24-27에 예고된 마지막 이레 기간에 (7년) 일어날 것이라. 그 7년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7년이라:
단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왈부르드는 이 구절이 바로 유럽의 통합 대통령인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라 한다. 이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그 7년의 전반 3년 반 동안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위에 인용된 말씀에서 "한 이레 동안의 언약") 독재자로 세계를 주장하지만, 3년 반이 지나면 (위에 인용된 대로 "그 이레의 절반에") 평화조약을 깨고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리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마지막 7년기간이 오기 직전 어느 때에 저 예루살렘의 시온산에, 그러니까 이전에 솔로몬 성전의 부지에 (현재는 이슬람 둥근 돔 사원이 서 있지만) 제3성전이 세워지는데, 그 성전이 세워지면 유대인에 의한 제사가 재개될 터인데, 적그리스도는 평화 조약을 깨고,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단 9:24-27의 문맥을 매우 무시한 억지 해석이다. 24-26절은 초점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것인데, 26절과 27절 사이에 신약시대라는 긴 공백기간이 있다고 가정하고 (순전히 자기 해석에 맞추어 그렇게 본문을 절단한다) 27절은 예수님의 초림 시대에서 건너뛰어 인류 역사 마지막 7년을 예고한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기들의 해석에 맞추기 위해서 저 예루살렘 시온산에 다시 성전이 세워지고 유대인이 제사를 재개하고, 그 제사를 적그리스도가 페지하리라고 해석하는 것은 더 한층의 억지이다.
오히려 27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체결하신 새 언약을 말씀하며,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것은 십자가로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 구약 제사 제도를 폐지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 . ." 이 부분의 말씀은 주후 70년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예고한다.
이처럼 단 9:24-27은 이미 그리스도의 초림과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파멸 사건으로 완전 성취된 것이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7년 대환란기란 사고는 비-성경적이며 자기들의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왈부르드는 이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 조약을 깨면서, 마지막 7년의 후 3년 반 기간에 무지막지하게 성도들을 핍박하고 유대인들을 학대하리라 한다. 이런 해석의 근거는
단 7: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등이라 한다. 왈부르드는 계 13장에 묘사된 바다 짐승을 인류 마지막 7년 기간에 등장할 그 적그리스도라 하는데, 이는 그렇게 신빙성이 있는 해석은 아닌 듯 하다 - 단 7:21에 언급된 넷째 짐승의 "작은 뿔"은 로마제국 존속 때에 있었던 어떤 왕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왜냐하면 계 13장의 바다 짐승은 그 모양이 단 7장의 네 짐승이 합성품이기 때문이다. 즉 계 13장 바다 짐승은 신약 시대 전체 기간에 등장할 교회의 원수 노릇할 세상 나라들의 총합이지, 인류 마지막 7년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라고만 못 박을 수가 없다.
왈부르드에 의하면, 유럽 통합 대통령인 적그리스도는 앞서 언급한 그 7년의 전반 3년 반 동안에는 평화의 왕, 세계의 구세주로 자처하다, 후반 3년 반에는 자기 정체를 밝히고 사탄의 행하며 모든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분쇄하리라 한다 (아마겟돈 전쟁, 189).
이 때에 성도들이나 유대인들은 무자비하게 학대를 받고 죽임을 받으리라 한다. 그런 모습이 마 24장에 예고되었다 한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대 핍박을 당할 때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 어떻게 대하느냐? 에 따라서 마 25장의 양과 염소로 갈라지게 된다고 한다. 양은 유대인을 숨겨주고 호의로 대한 이방인들이라면, 염소는 그 반대로 핍박하고 넘겨준 이방인들이라 한다. 양은 천년왕국에 들어가지만, 염소는 죽임을 당하리라 한다 (마 25장에 대한 아주 기괴한 해석이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무자비한 핍박 시기에 소위 말하는 짐승이 표 666을 사람들의 이마나 팔목에 표시하게 한다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베리칩이니 컴퓨터 칩으로서 사람 몸 속에 이식되리라고 가정하기도 한다. 이 짐승의 표를 몸에 이식하지 않으면 물건을 도무지 살 수도 없게 되리라 한다.
세대주의자들은 계시록의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은 바로 이 7년의 후 3년 반 동안의 무자비한 핍박의 시대를 묘사한다고 본다.
아마겟돈 전쟁:
그 후반 3년 반이 끝날 즈음에 세계 열국이 무자비한 핍박과 압제, 학살을 자행하는 적그리스도에게 도전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리라 하는데, 그에 대한 예언은 단 11:40이라 한다: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그렇지만 이 구절에서 남방 왕은 톨레미 왕조의 한 왕을, 북방 왕은 셀루커스 왕조의 한 왕을 지시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를 미래의 적그리스도 시대에 적용시키고 있다! 더구나 이 남방과 북방 왕들은 서로 적대하여 전쟁하는 관계이지, 왈부르드가 말하듯, 적그리스도에 도전하여 함께 연합하여 적그리스도와 싸울 군대들로 볼 수도 없다.
이 전쟁이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인류의 종말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라 한다:
홍수, 가뭄, 여러 재앙, 대기근, 유행병이 창궐하여 인류를 위협할 때, 미증유의 세계 전쟁이 발발할 것이다. 수천만의 군대가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에 투입될 것이다. 남쪽으로부터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수백만의 군대, 북쪽으로부터는 소련과 구라파에서 파견된 수박만의 군대, 전쟁의 막바지에는 중공에서 파견된 수백만의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을 횡단하여 중동 전쟁에 참전할 것이다. 유사 이래 가장 치열한 이 전쟁에서 수백만의 군대가 전멸할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 [서울: 보이스사, 1991], 34-35).
다니엘의 예언서는 또한 이집트를 위시한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모여드는 대군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어쩌면 수백만에 이를 이들 군대는 남방에서 중동을 공격할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북방의 소련과 그 맹방들이 성지에 집결하여 세계 독재자에게 도전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할 것입니다. 소련은 비록 예언의 연속적인 사건이 있었던 2년 3년 전에 치명적인 패전을 경험했을지라도 이번에는 전선에 다른 정예 부대를 투입하여 수년 전의 손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 명백합니다. 제3차 세계 대전의 초반전은 군대들이 일진일퇴하여 승패를 가름할 수 없을 것입니다. . . . 세계 독재자에게 전세가 유리하게 기울어지는 것 같이 보일 때 동방에서 대군이 진격한다는 보고가 전해질 것입니다 (단 11: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이 구절 역시 안티오쿠스 4세와 연관되는 예언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적그리스도 시대에 적용시키고 있다).
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군대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계 9:16) 독재자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의 신변을 방어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회군시킬 것입니다. 다음에 북방에서 다른 군대가 진격해 올 것입니다. 이때 주요 전선인 지중해에는 수억의 군대들이 집결한 가운데 역사상 최악의 전쟁에 임할 태세를 갖출 것입니다.
계 16:13-14에 의하면 세계 군대들이 악마의 영향을 받아 집결할 것이라 합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이것은 모순입니다. 사탄의 세력을 힘입어 전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던 적그리스도가 이제 사탄 휘하에 있는 악마에 의해 참전하도록 자극받은 군대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왈부르드, 아마겟돈 전쟁, 214).
사실은 왈부르드 자신이 모순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을 뿐, 사탄이 적그리스도를 세워서 통치하게 해 놓았다가, 다시 세계 군대를 집겹시켜 적그리스도를 치게 한다는 사고는 성경적일 수 없다. 주님은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 12:26)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전쟁이 마지막으로 해결되고 승리자가 결정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백만 천사와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권세를 가지고 영광 중에 재림하실 것이다. 그는 왕중 왕이요 세상 심판자로서 싸우는 군대를 멸하고이 땅에 주님이 평화의 나라를 세우시고 의인들에게 이를 맡길 것이다 (왈부르드, 아마겟돈 전쟁, 35).
왈부르드의 예언 관련 책들은 이것 말고도
- 천년왕국 The Millennial Kingdom
John F. Walvoord 달라스 신학교 Dallas Theological Seminary 교장을 (1952-1986) 지낸 이로 그 학교에서만 50년을 섬겼다. 그래서 달라스 하면 왈부르드를 연상시킬 정도이고, 세대주의 신학의 대변자로 연상될 정도이다. 1952-1986.
6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마겟돈 전쟁을 '물리적' 전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계시록이 묘사하는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교회에 대한 마귀 세력의 총 공격이 있을 때 하늘로부터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단번에 싸울 필요도 없이 원수가 멸절되는 것으로 기술되기 때문이다.
계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리스도)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그리스도)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이런 영적 전쟁을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곧 인류의 최종적, 물리적 전쟁으로 환원시키고, 그것도 저 중동의 이스라엘과 유럽 공동체가 (재생 로마제국이라 한다) 서로 마지막 전쟁을 벌일 것으로 말하는 것은 전연 성경의 의도와 어울리지 아니한다. 세대주의 신학의 이런 해석은 무엇보다 전쟁의 쌍방 당사자들의 설정에서 잘못되었다. 아마겟돈 전쟁이 "이스라엘 대 유럽 공동체"인양 말하는데, 이런 설정이 그릇되다는 말은 이스라엘은 교회가 아니며, 유럽 공동체가 사탄의 하수인의 대표도 아니기 때문이다.
7 왜 세대주의 신학이 "이스라엘 대 유럽 공동체"의 전쟁으로 설정하는가? 하면, 계 4-19장이 세대주의 신학에서 소위 재림 직전의 7년 대환란 기간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그릇되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계 4-19장이 말하는 바는 유대인들에 대한 적 그리스도 세력의 핍박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대주의 신학에서 계시록은 우리 교회 성도들과 무관하고, 그것도 재림 직전의 7년간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것인데, 그것도 유대인들에게 일어날 무서운 대 환란이 그 주제라고 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계시록을 우리 신약 교회 성도들과 무관한 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초대 교회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핍박당하던 상황에서 성도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해 기록된 계시록이 2천년 교회 역사와 상관이 없고오직 재림 직전의 7년 기간에 일어난다고 그릇되이 가정된그 7년 대환란에, 그것도 유대인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계시록을 유대인의 책으로 틀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세대주의 신학이 얼마나 그릇되이 나가는지, 마 5장 이하의 산상수훈은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 지상에 세워질 천년 왕국 시대에 필요한 말씀이고, 마 25장의 양과 염소 심판은 7년 대환란 기간 동안에 유대인을 핍박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하여 유대인을 숨겨주고 동정하여 도움을 주는 이방인들은 양이고, 그렇지 않은 이방인은 염소로 판결되어, 천년 왕국에 들어갈 기회를 얻거나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태복음의 내용은 주님이 전부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 중심으로 이해해야 하고 이방인들은 거기에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8 세대주의 신학 종말론에서 중요한 사고중 하나가 "환영받지 못한 왕"이란 주제이다.이 말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왕이 되시고자 오셨으나 저들은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기 때문에, 원래 의도된 다윗 왕국의 재건이 재림 이후 천년왕국 시대로 지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왈부르드, 아마겟돈 전쟁, 110페이지 이하).
주님은 지상의 생을 마감하는 그 주간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는데 그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마 21::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슥 9:9의 인용)
6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11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이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그가 메시아 왕으로 유대인의 기대하던 그 왕이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하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슥 9:9의 예언은 완전 성취되었다. 입성하신 후에 그분은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데, 그 과정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하게 되고, 주님은 저들이 자기를 죽일 것을 내다보시고 외치셨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건이 이렇게 진행된 것은 모두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 이스라엘의 회복자, 곧 야웨의 고난 받는 종은 유대인들의 손에 고난과 죽임을 당하게 예언되어 있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 .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기 사 53장의 예언에서 보듯, 메시아 곧 야웨의 종이 고난당하는 것은 야웨의 뜻이었고, 그분의 계획이었다. 유대인들의 손에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었겠는가? 마는 주님이 야웨의 고난당하는 종으로 오셨을 때, 사 53장의 예언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성취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님 당대 유대인들이 사 53장을 이방인들의 손에 고난당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관한 말씀이라고 믿고, 메시아의 고난에 관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아니한, 저들의 허점을 정확하게 때린 사건이었다. 즉 유대인들은 구약 예언들을 해석하되, 자기들의 정치 군사적으로 이방인들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다윗 같은 왕 메시아 (삼하 7장에 근거), 모세 같은 선지자 메시아를 고대했지만 (신 18:9이하에 근거), 사 53장이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한다고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이방인들의 손에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 까닭에, 자기들의 메시아께서 오셨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자기들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인가?
9 사실이 이러하다면,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듯,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때문에 원래 의도된 하나님의 계획, 곧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어 다윗 왕국을 재건하시고 왕으로 통치하실 계획, 그를 통해서 구약의 온갖 영광스런 비전들이 성취되는 시대가 닥칠 그 좋은 기회가 상실되었다고 이해해야 옳겠는가? 아니면,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셨고,그 죽음을 통해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마귀의 세력을 멸하셨으며, 부활,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다윗 후손왕 메시아로 등극하여 통치하기 시작하셨다고 보아야옳겠는가?
"환영 받지 못한 왕"의 사고는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배척했기 때문에, 사 53장의 예언이 성취되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제사장 메시아의 사역을 완성하실 수가 있었다. 그 희생의 사역을 통해서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멸하실 수가 있었다! 이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고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결과인가?
예수님이 배척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성취이지 결코 그것의 실패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주님이 어떤 성격의 왕이신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분의 왕권은 우주적이고, 영적인 것이다.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분의 통치권이 이 현상 세계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초점은 이 세상 나라들의 배후 조종자인 사탄에게 있다. 주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이다. 사탄은 아담의 범죄 이래로 이 세상의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을 멸하시고 (창 3:15) 그 세력을 무장해제시킴으로 (골 2:14-15), 그분의 우주적 왕권이 확립되게 되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이처럼 우주적이고 영적인 왕권을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지상의 현상 세계는 본질상 배후의 영적 세력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이다 (단 10장).
엡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주 예수께서 오신 것은 겨우 다윗 왕국 정도를 이 지상에 재건하시고 유대인 중심으로 혹은 그를 믿는 성도들 중심으로 지상 나라들을 통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분이 오신 것은 인류의 궁극적인 문제이자, 궁극적인 원수인 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인류를 죄와 저주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그 영화롭게 된 백성의 왕으로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10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여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사건은 단 9:24의 70이레 예언의 핵심을 성취한 일이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니엘에 예언한 이 구약 예언의 최고봉은 완전 성취되었다! 그분이 오신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11 환영받지 못한 왕은 유대인들의 배척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하셨다. 세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배척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성취되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메시아 왕으로 정식 등극하셨다. 그 등극의 장면이 단 7:13-14의 환상 묘사에 드러나고 있다: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 이것을 만화 그림으로 표현할 때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가 (계 5:6) 된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셨고, 그분의 통치 시작이 바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에게 성령님을 부어 주신 일이었다 (욜 2:28의 성취).
12 성령님의 부으심은 종말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천명의 이스라엘 남은 자가 주께로 돌이켰고, 그 이후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 5천명, 허다한 무리들이 주께로 돌이켰다. 교회사 시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주께로 돌이키고 있다. 이것이 구약이 말한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들의 성취이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 어떤 놀라운 메시아 통치의 역사가 나타나는가?
사 35: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주님은 세례 요한이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 오실 메시아 그분이 맞는지 물었을 때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고 답하셨다. 이는 자신이 구약이 예언한 (사 35:5-6) 그 메시아임을 확인시킨 말씀이었다. 구약 예언들은 선지자 자신들의 시대적 모습으로 메시아 시대를 그리고 있다. 주목할 것은 메시아 시대에는 인류에게 임한 저주가 물러가고 인간의 범죄로 자연계에 임한 저주까지 철폐될 것이 예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로 모든 만물의 중심인 인간의 구원을 통해서 자연계가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징조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세대주의 신학은 이런 자연계의 변화가 재림 이후에 가정된 천년왕국 시대가 되면 나타나리라고 가정한다. 그렇게 보려면, 주님이 사 35:5-6을 암시하면서 자신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요한의 제자에게 지적하실 때, 이사야의 예언은 일부만 성취되었고, 나머지는 천년 왕국 시대에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는 그런 암시가 없다.
주님은 사 35:5-6을 자신이 성취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요한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임한 저주가 물러가는 것은 자연계에 임한 저주도 물러 갈 것을 보장해 준다. 하나가 성취되었다면, 다른 하나도 성취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인간에게 임한 저주가 물러가고,자연계에 임한 저주가 물러가는 일은 전부 신약 시대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13 그렇다면 어디에 자연계가 치유되고 자연계에 임한 저주가 물러가는 표시가 있는 것인가?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사도 바울이 표현했듯이, 현재 우리는 성령님을 받았고, 속으로 탄식하며 기대한다. 앞으로 우리 몸까지 영화롭게 될 그 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말 못하는 피조물들도 고대하고 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장차 영화롭게 될 그 날을. 왜냐하면 그 때가 되면 자연계에 임한 저주의 상징인 엔트로피 수치가 제거되고, 썩어짐에 굴복하는 종노릇이 그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마 13장의 천국 비유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 나라가 점진적 발전을 통해 완성을 통해 나아간다는 점을 가르쳐 주셨다. 겨자씨 비유가 그렇게 누룩의 비유가 그러하다. 처음부터 자연계에 임한 저주가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발전 단계에서 최종 단계, 곧 최종 완성의 단계에 나타날 일이다. 사 11장에 묘사된 자연계의 대 조화나, 사 2:2-4에 묘사된 전쟁이 그치고 온전한 평화가 오는 것 역시 그러하다.
14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천년왕국이 되면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는 말씀이 성취되리라 한다. 그리고
행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는 말씀도 천년왕국이 되면 성취되리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만유의 회복"의 때는 장차 재림 이후가 아니라, 지금 벌써 일어나고 있다고 보며, 12지파를 심판하는 일은 지상 천년왕국이 아니라, 계 4장 환상에서 보이듯, 보좌에 앉은 24 장로들이 상징하듯, 신구약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현재 통치하는 일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 일은 재림 이후가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마 19:28의 말씀은 단 7:13-14과 마 28:18과 연결시키고, 계 5:6과 연결시켜 볼 때, 벌써 일어난 사건이지 재림 이후의 사건이 아니다.
15 다시 아마겟돈 전쟁 주제로 돌아가서 왈부르드가 어떻게 미래를 전망하는 들어보자:
왈부르드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이래 처음으로 유대인의 수중에 들어간 사실을 극적인 쾌승이라고 지적한다 (아마겟돈 전쟁, 122). 그리고 눅 21:24의 말씀을 언급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그리고 반문하길, 이스라엘이 다시 이전의 수도 예루살렘을 소유한 이상, 이제 이방인의 때가 마지막에 이른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의 소유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영광스러운 왕국 시대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왈부르드에 의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이스라엘) 해방시켜 이 땅에 공의와 평화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영광 가운데 하늘로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승리의 순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왈부르드에 의하면, 단 2장과 7장에 예언된 네 제국들 중에서 제4 제국의 종말에 관한 정확한 예언은 역사에서 성취된 적이 없다. 이 예언은 신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끝낼 사건 사이에 큰 공백을 만든다고 한다. 구약 선지자들은 신약 시대의 발전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제4제국 곧 로마 제국의 종말에 관한 사항은 언급지 아니했으며, 오직 마 13장과 24:3-14에서 구약 선지자들이 말하지 아니한 그 공백을 채울 말씀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계 4-18장까지 말씀은 신약 시대를 끝낼 7년 대환란 사건을 상세하게 말해 준다고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왈부르드나 다른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사고를 들을려하면, 왜 성경을 이런 식으로 풀어 나갈까? 라는 의문만이 일어난다. 이미 성취된 바를 저 재림 직전의 7년 대환란기라는 시기를 가정해 두고서 그 때에 다 이루어지리라고 구약의 여러 예언들을 신약 시대에서 뚝 떼어서 재림 직전의 시기로 옮겨 버리는 것이다. 다음을 보라: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여기 예고된 바는 7이레, 62이레, 마지막 1이레 등으로 삼대분 되었다. 이레는 7일인데, 7이레라면 49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70이레라면 490일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70이레는 490년의 기간이라고 대개 본다. 그래서 여기 기록된 말씀이 구약 예언의 최고봉인데, 메시아가 와서 기름 부음을 받고,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기간이 70이레로 작정되었다는 것이다. 즉 다니엘이 주전 539년에 받은 응답에 의하면, 그때로부터 70이레 기간 동안에 이런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 언급된 70이레의 기간을 어떻게 맞출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도 맞추고 저렇게도 맞추어 490년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도록 맞추고자 노력을 한다.아무리 노력해도 문자적으로 맞추기는 어렵다. 보다 좋은 해결 방안은, 우리가 보기에, 70이레란 표현을 상징적인 수자로 보는 것이다. 70x7=490이란 수치는 완전을 의미하는 7에 완전을 의미하는 10에 다시 완전을 의미하는 7이 곱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490년이란 문자적인 수치라기보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이 전부 성취되도록 의도된 특정 기간이라고 이해함이 적절할 것이다. 490년은 대략 예레미야의 70년 추방 예언 시기부터 시작하여 주후 70년 어간에까지 기간으로 보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그 기간에 하나님의 의도하신 구원 계획이 성취된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라는 단 9:25 말씀을 근거로 마지막 1이레를 제한 69이레, 곧 483년의 기간은 예루살렘 성 중건을 허락한 아닥사스다 시대인 주전 444년부터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 받으심까지 (주후 33년) 기간에 해당된다고 해석하고, 마지막 1이레는 앞의 69이레에서 연속되는 기간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공백을 건너 띄고 재림 직전의 7년을 가리킨다고 본다.
세대주의 70이레 [펌]
세대주의 70이레 [펌]
16 왜 69 이레 ----> 신약 시대 ----> 마지막 1이레 (7년) 이런 식으로 신약 시대를 70이레 예언에 삽입시켜 공백을 만드는 것인가? 그것은 앞에서 단 2, 7장의 네 제국을 다룰 때도 있었던 현상인데, 세대주의자들은 구약 예언을 해석할 때, 주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일로서 7년 대환란을 가정하고, 그 시기에 단 2, 7장에 예언된 제4제국의 멸망 사건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신약 시대는 구약 예언에 언급이 없는 괄호 시대이기 때문에 공백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 저들에 의하면, 신약의 교회는 유대인들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였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 재림 이후로 연기되면서 급조된 원래 하나님의 계획에는 없었던 임시 방편으로 만들어진 급조물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실패를 가정하는 것 자체가 벌써 세대주의 해석의 신빙성을 갉아 먹는다.
구약 예언들이 유대인들에게 성취되다가 ----- 신약 시대에 괄호시대, 공백시대를 건너 띄고 --- 마지막 재림 직전의 7년 기간에 갑자기 구약 예언들이 다시 유대인들에게 성취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구약은 전부 유대인들에게만 상관되는 예언이므로 신약의 교회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재림 직전 7년 대환난기가 시작되면서 집단으로 개종하는데, 7년 환난기 시작 때에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면, 신약 성도들은 공중으로 들림 받고 (휴거), 땅에 남은 유대인들은 대 환란의 때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공중에 재림 하신 주님을 유대인들이 바라보는 순간에 유대인들은 복음과 무관하게 그 자리에서 애통이 터지고 회개가 터져서 주님을 영접하고 집단으로 대거 개종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롬 11:26의 의미라고 슥 12장의 애통의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복음과 무관하게 그것도 집단으로 유대인들이 대거 개종하는 일이 구약이 예언한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의 성취라고 본다.
주님은 처음 재림 때에 공중에만 나타나실 뿐 지상에 오지는 않는다. 공중에서 7년간 어린 양 혼인 잔치가 벌이지고 땅에서는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환란을 당하다가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7년 환난이 끝나면, 주님이 지상에 재림하시고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원수를 멸하시고 유대인들을 건지신다고 한다.
그 때부터 주님은 천년왕국 통치를 시작하신다고 한다. 지상 낙원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런 가정은 구약에 예고된 여러 찬란한 축복들이 역사상 결코 성취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 천년왕국 기간에 이루어지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언 해석의 원리들"에서 제시한대로, 구약 선지자들은 자기들 경험의 팔레트로부터 자기들의 청중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당대 관습이나 지리적 요소들을 가지고 미래 시대를 예언한 바를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천년왕국 시대에 문자적으로 구약 예언들의 찬란한 요소들이 성취되리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정당한 70이레 도표는 다음과 같다
17 다시 단 2, 7장의 네 제국들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왈부르드는 저 유럽 공동체가 로마제국의 재생 곧 재생된 로마 제국이라고 말한다. 미국과 소련은 쇠퇴하고 유럽공동체가 강력하게 부상하여 그 공동체 대통령이 적그리스도가 되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었다가 (7년 대환란기의 전 3년반 동안), 갑자기 언약을 깨고 후 3년 반동안 무지막지하게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리라 한다. 로마제국이 재생하되, 그것이 바로 저 로마 제국이 이전에 존재했던 유럽 땅에 생겨난 유럽 공동체라고 보는 것이다. 재생 로마 제국을 가정하는 근거는 어디인가? 그곳은 바로 단 7:23, 24, 25이다.
단 7:23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밞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여기 단 2, 7장의 넷째 제국이 제시되는데, 이 제국을 상징하는 넷째 짐승은 가장 흉포한 짐승이다. 이 짐승의 머리에는 10뿔이 달렸고, 또 하나가 자란다. 그러니까 11뿔인 셈이다. 그 마지막 한 뿔이 자라면서 전의 3뿔을 없이하므로, 결국 8뿔이 된다. 이 마지막 나타난 뿔 곧 재생 로마 제국의 왕이 (적그리스도) 유대인 성도들을 괴롭게 하고, 3년 6개월을 핍박하리라 한다.
자,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 본문을 제 멋대로 다룬다는 인상이다. 왜 그런고하니, . . .
[펌, 수정]
우선 단 2, 7장에 제시된 신상의 네 부분이나 (금. 은. 동. 철/진흙) 네 짐승들은 (사자, 곰, 표범, 무명의 무서운 짐승) 모두 같은 실체들을 지시한다. 즉 단 2장과 7장은 같은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반복법인데, 단 2장은 이방인 느부갓네살이 세상 나라들을 볼 때, 영화롭고 찬란한 광채를 내는 모습이었다면, 단 7장에서 성도인 다니엘이 보기에 세상 나라들은 약육강식의 야수들에 불과하였다. 네 나라들은 각기 바벨론, 메대/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네 제국들이 어떻게 파괴당하는가? 혹은 망하였던가?
단 2:34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 . . 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단 7:11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 .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 . .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앞서 말한대로, 단 2장과 7장은 같은 실체를 약간 달리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2장에 기술된 넷째 나라나 (철과 진흙이 상징), 단 7장에 기술된 넷째 나라나 (무명의 무서운 짐승이 상징) 모두 로마 제국이다. 로마 제국이 망하는 장면을 2장과 7장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지만 결국 같은 내용이다. 먼저 2장의 묘사를 본다면, 뜨인 돌이 넷째 제국 로마를 쳐서 나머지 로마 이전의 나라들까지 박살내었고, 그 친 돌이 온 세상을 덮는다. 이 뜨인 돌이 하나님이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단 7장에서는 단 2장의 모습보다 약간 더 세밀하게 넷째 나라의 파멸을 묘사해 주고, 또 하나님 나라도 더욱 자세하게 보여준다. 반복이지만, 다음에 제시될 때는 좀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단 7장에서 10뿔 가진 그 넷째 짐승을 (로마 제국) 보면, 마지막 한 뿔이 등장해서 성도를 핍박하다가 (단 2장의 넷째 나라는 성도를 핍박한다거나 10뿔이나 또 한 뿔이 상징하는 그런 10왕이나 1왕이 로마 제국에 등장하리라고 암시조차 아니하였었다), 결국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혹은 그 권세를 빼앗기고 멸망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넷째 짐승에게는 10뿔이 있었는데, 짐승과 10뿔은 불가분리라는 것이다. 즉 짐승의 죽음은 곧 10뿔의 죽음과 같다. 현실적으로 로마제국이 짐승이라면, 그 짐승의 10뿔은 로마 제국에서 일어날 10왕들이다. 1뿔도 역시 로마 제국에서 일어날 한 왕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로마 제국이 망하면, 곧 짐승이 죽으면 뿔들도 다 죽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세대주의 신학은 그렇게 간단한 사실을 무시하고 해석하길, 로마제국이 망했지만, 그것이 재생한다고 하고 그 재생 로마제국이 바로 10뿔의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그 1뿔이 재생 로마 제국에서 나올 적그리스도라 한다. 이를 오늘날로 유럽 공동체에 소속된 나라들이 10뿔에 해당되고 거기서 나올 통합 대통령이 1뿔이라고 하고, 그 뿔이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이런 세대주의 해석의 맹점은 무엇이냐? 짐승과 10뿔을 분리시킨다는 점이다. 둘은 한 짐승이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짐승에 붙은 10뿔이 어떻게 짐승이 죽었는데 짐승과 무관하게 10뿔만 재생되어 나타나 수 있는가? 짐승이 재생한다고 본문에 언급하거나 암시라도 했던가? 전연 그런 암시조차 없다.
우리는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넷째 짐승이 죽을 때 10뿔도 사라지고, 마지막 1뿔도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이 역사적으로 망했을 때, 10뿔이나 1뿔이나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현실 역사에 예언을 맞추고자 이런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려 해서는 아니 된다.
18 자 그렇다면, 마지막 넷째 짐승의 멸망은 어떻게 해석해야 정당한가? 그것은 넷째 짐승의 멸망과 10뿔이나 1뿔의 멸망이 동시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로마제국이 망할 때 그 제국의 왕들도 모두 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달리 설명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E. J. Young 같은 복음주의 학자까지도 그릇되이 해석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짐승이 죽임을 당할 때, 10뿔이 망한 것으로 보지 않고, 로마 제국 이후로 적그리스도까지 지속될 세상 나라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면 그의 입장이 무엇인지, 세대주의 입장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넷째 짐승 |
열 뿔 |
작은 뿔 | |
J Calvin |
로마제국 |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들 |
J. Caesar와 후계자들 | |
E. J. Young, Pusey |
로마제국 |
로마 멸망에서 적그리스도까지 |
적그리스도 | |
세대주의 |
로마제국 |
7:7-8 사이에 괄호시대 공백 |
말세에 재생 로마 제국 |
재생 로마 제국 왕 |
기타 |
로마제국에서 적그리스도까지 |
로마에서 적그리스도까지 |
적그리스도 |
우리는 칼빈의 입장만이 단 7장 본문을 제대로 다룬다고 믿는다. 로마제국은 망했고, 그에게 속한 10뿔이나 1뿔도이미 망한 것이다. 10뿔이나 1뿔들의 정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이 이미 과거사로 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8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로마 제국의 멸망과 그때에 나타날 하나님 나라, 혹은 권세와 왕권 (나라)가 인자같은 이에게 돌아가거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돌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뜨인 돌은 하나님이 세울 나라를 상징한다. 그것은 바로 복음 전파를 통한 하나님의 왕권 확장을 의미한다. 뜨인 돌이 로마제국을 친, 곧 신상의 진흙과 철 부분인 다리를 쳤다는 것은 로마 시대에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로마 제국을 포함한 세상 나라들의 임금인 사탄의 머리통을 박살내었다는 의미이다 (창 3:15, 골 2:14-15). 영적인 사건이다. 주님은 결코 로마를 정치 군사적으로 쳐서 멸한 적이 없다. 단 2, 7장에 묘사된 넷째 나라의 멸망, 아니 온 세상 나라의 멸망은 결국 십자가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만화로 그린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은 계 20:1-3에서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쳐 넣고 감금하는 만화 그림으로도 표현될 수 있고, 계 12:7이하에 제시된 대로 하늘에서 사탄의 세력이 추방당하는 그림으로도 제시될 수 있다. 마귀의 완전한 패배이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 사건이었다.
이렇게 영적으로 설명해야 왜 넷째 부분을 쳤는데 그 앞서 지상에 존재하다 사라진 세 제국들까지 그 뜨인 돌의 침을 받아 멸망했다고 말하는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 나라는 마귀의 지배하에 조종되고 통치되는 것이기에 마귀를 멸하는 순간이 세상 나라의 멸망 순간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세상 나라 곧 불신 나라들은 지속되고 있지만, 원리상으로는 이미 끝장 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된 종말론이며, 실현 도중에 있는 종말론이다. 다니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시각에서 볼 때, 실현된 종말론을 보여준다.
19 이제 현실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왜 이 세상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 나라들이 존재하는가? 예컨대, 중공이나 북한 같은 나라들을 보라, 이슬람 국가들을 보라, 이스라엘을 보라 모두 기독교를 핍박하지 아니하는가? 왜 이미 망하였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십자가가 결정적 승리를 얻은 사건이긴 하나, 사탄의 잔당들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미 십자가로 마귀는 결정적 패배를 당하였다. 그렇지만, 그 마지막 발악은 할 수 있다. 일본의 천황이 이미 1945년 8월 15일 패배를 선언하고 항복을 선언했음에도 여전히 일본군은 무장 해제를 당하지 않고 중국이나 저 동남아, 조선 땅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싸울 여력을 지니고 있었고, 순순히 천황의 의지대로 무기를 내려 놓지 아니했고, 여러가지 절차를 밟아서 자기들의 안전한 귀국이 완료되기까지 무장을 놓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필리핀의 정글에서 전 일본제국군 장교 오노다 히로(小野田寛郎, 1922년 3월 19일 - )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는데도 29년 동안 필리핀의 정글에 숨어서 지내며 항복을 거부하고 있었다.
계 13장에 묘사되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이 단 7장에 묘사된 세 짐승들의 합성품이다. 즉 신약 시대 전체 기간에 나타날 세상 나라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땅에서 나온 짐승은 거짓 선지자 곧 세상의 거짓 종교들이다. 이 두 짐승과 용 곧 사탄이 거짓 삼위일체를 구성하고 교회를 핍박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 13장의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십자가로 사탄의 세력이 치명타를 받아 궤멸당하였고 잔당들이 최후 발악을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겼고,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는 자들이다!
20 인자 같은 이 (단 7:13-14)
"인자 같은 이"는 세상 나라들이 권세를 박탈 당할 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malku, 왕권) 옛적부터 계신 자로부터 받는다. 구약에서 이렇게 삼위일체에 대한 암시를 볼 수 있다. 옛적 부터 계신 자는 하나님 아버지, 인자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부활하신 그분이 아버지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선언하실때 (마 28:18) 이 단 7:13-14의 환상 예언은 성취되었다.그 성취된 모습을 그림 만화로 보여주는 것이계 5장의 어린 양이 아버지께 만유 통치에 관한 책을 받는 장면이다.
"인자 같은 이"란 명칭은 쉽게 말해 "사람같은 이"란 의미이다 ["인자"란(人子) 말은 구약 시가서에서 주로 "인생"이나 "사람"의 병행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환상 중에서 다니엘이 보았기 때문에 단 7장에 언급된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네 짐승들과 달리 짐승이 아니라, 사람과 같은 이인데 정확하게 사람은 아니고 사람같이 보이는 이라고 한 것이다.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구름을 타고 왔다는 것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 "구름"은 신적인 존재의 현현에 동반되는 영광이며, 신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눈에 보이는 표지이다.
이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음의 비교에서 드러나듯, 다니엘의 꿈 부분에서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졌다면, 꿈의 해석 부분에서는 그 같은 것들이 지극히 높은 자의 성민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welëh yehîb šol†än wîqär ûmalkû)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 7:14)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ûmalkûtâ wešol†änä´ ûrebûtä´ Dî malkewät TeHôt kol-šemayy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단 7:27)
꿈 부분과 꿈의 해석 부분을 비교하면,
<!--[if !supportEmptyParas]--> <!--[endif]--> |
꿈 (단 7:14) |
해석 (단 7:27) |
주어질 것 |
권세, 영광, 나라 |
나라, 권세, 천하 열국의 위세 |
주어질 대상 |
인자(人子) 같은 이 |
지극히 높은 자의 성민(聖民) |
꿈과 해석 부분을 비교하면, “인자 같은 이” = “지극히 높은 자” |
이런 결과가 나온다. 눈여겨 볼 것은 인자 같은 이에게는 무제한의 권세 (dominion), 영광 (glory), 나라가 (kingship 왕권) 주어진다면, 성민들에게는 나라 (kingship), 권세 (dominion), 그리고 제한된 (하늘 아래 열국의) '위세'가 (greatness) 주어진다. 학자들은 단 7:14 = 7:27이라는 그릇된 공식을 기정 사실화시켜, 인자 같은 이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잘못 해석하곤 했다 (예컨대, 김세윤, The Son of Man as Son of God, 15-21). 그렇지 않다. 인자 같은 이는 해석 부분에서 "지극히 높으신 자"와 같은 실체이며, "성민" 곧 이스라엘은 그에게 속한 백성을 가리킨다. 둘은 분명 구분되는 것이다. 신약적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처럼 말이다.
21 세상 나라가 망할 때 = 인자같은 이가 권세, 통치권, 영광을 받을 때
이 때가 언제인가? 앞으로 일어날 것인가? 이미 성취된 것인가? 마 28:18은 단 7장의 인자 같은이의 영화롭게 되심의 때가 이미 과거의 일임을 보여준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심이 결국 단 7장에 보여진 인자 같은 이의 높여지심의 성취였다. 재림 때에 그런 높여지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바울 사도는 이미 분명한 말로 이를 확증해 주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도 베드로 역시 오순절 때 설교를 통해 성령강림의 역사가 높여지신 왕 메시아의 통치권의 행사임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행 2:33 하나님이 자기 우편에로 (한역,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나 사도 바울의 말씀은 하나같이 부활 승천으로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이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의미이다. 사도신경에서 "하늘에 오르사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라고 고백할 때, 보좌 우편에 앉다란 표현은 단순히 앉는 동작이 아니라, 왕으로의 즉위를 의미한다. 곧 그가 메시아 왕으로 통치를 시작하셨다는 의미이다. 그의 즉위식 장면이 비록 만화 그림이지만, 계 5장에서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서 만물을 통치하는 것과 연관된 (특히 심판) 책을 받는 장면으로 보여지고 있다. 주님은 보다 분명한 평이한 말로 마 28:18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고 선언하셨다.
우리는 주님이 부활 승천으로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제 단 7장에로 눈을 돌리면,
단 7:11 . . .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12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았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단 7: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넷째 짐승의 한 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라고 한다. 즉, 인자가 높임 받는 것과 세상 나라가 망하는 것은 거의 동시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인자에게 권세가 주어지면, 당연히 세상나라는 그 권세를 박탈당할 것이다. 이를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주님이 부활 승천 후에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천하 왕권을 받으셨다. 그런데 그보다 일찍 십자가에서 주님은 죽으심으로 마귀의 머리통을 박살내셨다 (창 3:15). 그 십자가 사건은 사탄의 세력의 무장해제를 가져왔다 (골 2:14-15, 계 20:1-3, 12:7이하).
십자가 사건은 사탄에게서 세상 통치권을 박탈하는 사건이었다면, 부활 승천과 보좌 우편에 앉으심의 사건은 주님이 온 우주의 대왕으로 즉위하여 세상 통치권을 행사하는 시작이었다. 둘은 이렇게 엄밀하게 말해서 구분되는 시점들이지만, 단 7장에서는 넷째 짐승이 (로마 제국의 상징) 죽임을 다하고 인자같은 이에게 권세, 영광, 통치권이 주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자의 높여지심은 (승귀昇貴) 삼하 7장에 예언된 다윗 후손 메시아 왕의 출현에 다름 아니었다 (눅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22 인자 같은 이와 그의 백성은 모두 왕권을 받았다
단 7:14과 단 7:27은 서로 비교되는데, 앞에서 본 바와 같았다. 그런데 인자 같은 이, 곧 신약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 후에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메시아 왕으로 등극하셨다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 곧 이스라엘에게 권세, 왕권, 위세가 주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극히 높으신 자는 "인자 같은 이"와 동일 실체라고 앞에서 규명한 바 있는데, 그 인자 같은이에게 속한 백성이 신약적으로 성도들, 곧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높여지심과 함께 성도들 역시 왕적 지위에로 격상된다. 그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왕권에 참여하여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천년왕국의 왕노릇 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ekathisan epi autous)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ezesan)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他們都復活了、與基督一同作王一千年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使我們與基督一同活過來 6 또 함께 일으키사 (sun-egeiren)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하늘 보좌에) 앉히시니 (sun-ekathisen) 他又叫我們與基督耶穌一同復活、一同坐在天上 (중국 화합본)
이미 성도들은 첫째 부활에 (= 중생) 참여한 자들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왕적 존재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중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하였다 (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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