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시사

회개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함 -국가 기도의 날

중일사랑 2017. 2. 4. 20:24

미국에는 5월 첫째 목요일로 국가 기도의 날로 지키는 전통이 있다. 영국도 세계 1, 2차 대전 기간 중 여러 곤궁에 처했을 때 조지 5세나 그 후임 조지 6세는 모두 국가 기도의 날을 정하고 전 국민이 기도하도록 요청함으로 국가적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국가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것은 나라 지도자의 부재와 어리석 촛불 집회 무리들 때문이다. 촛불 집회 주최 세력은 반미 종북 세력임을 백일 천하에 드러내었다. 저들이 설치며 나라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가 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이 나라를 위탁하는 일이다. 무능해 보여도 가장 능력있는 조처가 아닐 수 없다. 



Rev. David E Gardner "영국을 위한 트럼펫 소리들" (The Trumpet Sounds for Britain)

데이빗 가드너는 2차 대전 기간 중 영국 해군에 복무하면서 잠수함에서 위기 상황이 발생하여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출을 체험하였다. 이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가드너는 영국 역사상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1940년 5월 10일 히틀러가 저지대 나라들과 프랑스에 전격 번개전을 단행했다. 5월 둘째 주말에 프랑스 방어망이 무너졌다. 롬멜과 그의 팬저 기갑 7사단이 이끄는 독일 팬저 기갑 부대가 방어망을 돌파하고 번개처럼 속도전을 펼쳐 프랑스와 벨기에를 넘어 진격했다. 롬멜의 기계화 부대의 협공 작전으로 영국군은 포위를 당해서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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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수상은 영국 역사상 최고의 패배와 재앙을 선언해야 할 운명에 처했고 5월 27일 독일 최고 사령부는 영국군은 이제 포위 당하여 독일군이 그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진격 중이라고 발표했다. 

전체 전선에서 연합군은 신속하게 붕괴당하고 영국에서는 대륙에 파병된 원정 부대를 본국으로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영국 원정군을 철수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항구는 덩커크 였지만, 그곳은 이미 독일군의 공격 앞에 노출된 상태였다. 처칠은 제2차 세계 대전이란 책에서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하길, 그 때 나와 몇몇 판단력 좋은 사람들은 나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는데, 많아야 2, 3만을 재 승선 철수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영국군 전체 뿌리와 핵심부, 수뇌부는 전장터에서 죽거나 수치스럽고 배고픈 포로로 전락하거나 할 운명에 처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이제 패배로 기운 듯 보였다. 

그러나 영국은 경건한 왕을 가졌다. 이런 전쟁 상황을 주시한 조지 6세는 5월 26일 주일을 국가 기도의 날로 지키도록 요청했다. 방송망을 통해서 그는 영국 제국의 모든 국민이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요청했다. 내각 국무위원들과 왕은 웨스트민스터 교회당에 참석했고 수 많은 그의 신민들은 영국 여러 교회들에 참석해서 기도에 마음을 쏟았다. 그 날 전체 나라가 기도에 몰입했다 웨스트민스터 교회당 밖에는 사람들이 들어오고자 장사진을 쳤다. 다음 날 아침 Daily Sketch는 다음과 보도하였다:

이전에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 가장 최악의 곤궁의 때에 왕에서 국민 모두의 저 심령 깊은 곳에서의 울부짖음이 하나님께 기도로 상달되었다.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곧 세 가지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기적 The first miracle

아직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데, 히틀러는 장군들을 제지하여 기계화 부대의 진격을 중단시켰다. 계속 진격했더라면 영국군은 전멸 당했을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10마일만 더 진격하면 영국군을 압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 처칠은 회상하길, 그 때 히틀러는 의심할 나위없이 독일 공군의 우월성에 자신감을 가지고 대규모 바다 철수 작전을 막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기갑부대의 진격을 중단시키는 여유를 부렸을 것이라 했다. 

둘째 기적 The second miracle

1940년 5월 28일 화요일 전례없는 강력한 태풍이 플랑더 (Flanders) 지방에 불어 닥쳤다. 그 때문에 독일 공군기는 한 대도 이륙할 수가 없었고 영국 군은 덩커크 항구로 8-12마일 거리를 태풍과 폭우 가운데 어둠을 통해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때 어떤 독일 공습도 없었다. 독일 총통은 일기나 세상 일기를 주관하시는 그 분은 계산에 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기적 The third miracle

플랑더 지방의 그 폭풍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영국 해협 바다는 이상하게 고요했는데 저수지 같이 고요했다. 그런 고요한 바다는 거의 없었던 바였다. 이렇게 바다가 고요하니 영국의 수 많은 작은 배들이나 군함이나 큰 배나 사유 동력선이 영국 강과 하구들로부터 바다를 건너 덩커크 항구로 향할 수 있었다. 가능한 한 많은 병사를 구출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배들은 모두 동원해서 바다를 건너갔던 것이다. 

작은 배들 The Little Ships

그 철수 작전에 대하여, 입스위치 근처 마틀샴 기지에 이륙한 스핏파이어 전투기 조종사 더글라스 베이더는 그 철수 작전을 엄호하기 위해 바다 위를 경계했는데, 이렇게 회고한다. 

덩커크에서 도버 해협의 바다는 그 철수하는 날들 동안에 명절 영국의 연안 도로처럼 보였다. 바다가 빈 공간이 없이 배들로 빽빽하게 찼고 그 위로 발을 물에 적시지 않고 걸어 건너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중에서 보니 그렇게 보였다. 해군 호송함들, 구명용 고무보트들, 노 젖는 보트들, 明轮艇,실로 영국에서 알려진 모든 뜨는 기구는 모조리 거기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덩커크로부터 영국 군인들을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 덩커크에서 테임즈 강 하구까지 거대한 검은 연기 장막이, 그 항구 안에 있는 불타는 기름 저장 탱크들에서 치솟아 바람 없는 하늘에로 곧장 오르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독일 공군기들은 출격을 하지 못했다. 히틀러가 예상했던 그런 대규모 방식으로는 출격이 불가능했다. 폭풍 때문에 대부분 이륙이 불가하였다. 독일 총참모부장 하이더 장군은 (General Haider, Chief of the German General Staff) 독일군 초고 사령부가 그처럼 자신만만하게 자랑했던 바, 곧 영국군이 이제 곧 전멸당하리라는 그 자랑이 있은지 사흘 후에, 자기 일기장에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5월 30일자). 일기 불손으로 공군기들이 이륙이 불가했고 우리는 셀수 없는 많은 적군이 우리 코 아래서 영국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서서 지켜 보아야만 했다고 했다. '

기이한 면역 A strange immunity

독일 공군기 6십 대 정도가 출격해서 공습했지만, 이상하게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해안에 배를 기다리던 병사들은 이상한 면역을 받았다. 400명 정도의 병사가 기관총과 폭탄 세례를 받았는데 다른 이들과 함께 메어침을 당한 한 병사는 기총소사가 끝난 후에 보니 한 사람도 사상자가 없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또 한 군목은 해안에 누워 있을 때 기관총 세례와 폭탄 세례를 받았는데, 그 영원처럼 보인 순간이 지난 후에 자기는 다친 곳이 전혀 없었고 자기 발로 일어나서 자기 주변의 모든 모래에 총알 탄피들이 박혀 있었고 그가 누웠던 그 사람 형상의 모습이 그 자리에 보일 정도였다. 

놀라운 사건들 Amazing events

실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초자연적 능력이 역사한다는 표징들이 있었다. 장교들이나 병사들이나 구원에 능하신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보았다. 그분이 강한 원수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셨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Fleet Street은 두 기적이 불가능해 보였던 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국가 감사의 날 A Day of National Thanksgiving

1940년 6월 9일 주일은 국가 감사의 날로 지정되었다.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였기 때문이다. 그 전날 C. B. Mortlock은 데일리 텔리그라프에 기고한 글에서 The Daily Telegraph 국민의 기도가 응답되었고 만군의 하나님께서 친히 영국 원정군의 용맹한 병사들을 지원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두 큰 기적들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영국으로 무사 귀환한 장교들이나 병사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이 두 가지 현상을 말했다. 첫째는 5월 28일 화요일에 플랑더 지방에 거대한 폭풍이 불었고, 둘째는 그 다음 날부터 영국 해협에 놀라운 고요가 있었다고 했다. 고위 장교들은 영국 원정군 구출이 플랑더 지방에 불어닥친 그 무서운 폭풍과 그 이후의 도버 해협에 임한 고요가 닥치기 2일 전인 5월 26일 주일 국가적 기도 덕분이라는 점을 지적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기적"이란 단어가 전국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기적적 구출에 대한 자각이 무사 귀환한 병사들이 묵고 있는 진들 전체를 덮었다. 처칠은 6월 4일을 하원에 연설할 날로 택하였을 때, 떨리는 감정 목소리로 2, 3만 명 재 승선하는 대신 33만 5천 명이 그 죽음의 아구턱과 영국의 수치에서 건져내어 졌다고 하고, 기적의 구출이라고 불렀다. 

교회들에서는 시 124편을 불렀다

시 124: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3 그 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6월 9일 주일 국가 감사의 날 영국 국민들이 전국 각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여러 교회들에서 시 124편을 성가대나 회중이 불렀다. 시 124편의 말씀이 자기들이 당한 상황에 어쩌면 그렇게 흡사한지 놀랐다. 이 시편은 마치 이 상황을 예견하고 기록한 듯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사변을 만나 북괴군이 이남을 전격 접수하고 부산 지역 정도 남았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에서 목회자들과 기도회를 하여 나라를 멸망에서 건짐 받았을 때 이 시편이 적용될 만 하다].


[http://www.christianstogether.net/Articles/200052/Christians_Together_in/Christian_Life/The_Miracle_of.aspx]


The Miracle of Dunkirk: 70 years on

In what is still called 'the Miracle of Dunkirk' the story is told of how over 300,000 British troops were snatched from the beaches of France in an operation that was so fraught with dangers that success can only be attributed to a miraculous combination of circumstances.
 
 
by David E. Gardner

Dunkirk1MAY 1940 was a time of grave crisis for the British Empire and for the whole civilised world.

On 10 May Hitler had launched his blitzkrieg against the Low Countries and France. By the end of the second week in May the French defences had been broken. German panzer forces, led by Rommel and his 7th Panzer Division, burst through, and with lightning speed began a rapid advance across France and Belgium. Very soon Rommel's armoured pincer movement was threatening the British army with encirclement, and our forces were being obliged to withdraw.

Back at home Mr Churchill feared that it would be his hard lot to announce the greatest military disaster in our long history, whilst on 27 May the German High Command went so far as to boast that 'The British army is encircled and our troops are proceeding to its annihilation.'

With the entire front collapsing rapidly, the decision was reached at home to evacuate our forces from the Continent. But the only port from which to evacuate the British Expeditionary Force was Dunkirk, and that was already being seriously threatened by the Germans. Taking stock of the predicament, Churchill said in The Second World War. 'I thought—and some good judges agreed with me—that perhaps 20,000 or 30,000 men might be re-embarked. The whole root and core and brain of the British army... seemed about to perish upon the field, or to be led into ignominious and starving captivity.' All therefore seemed about to be lost.
 

Britain had a godly Sovereign

 


But Britain had a godly Sovereign. Seeing this situation developing, His Majesty King George VI requested that Sunday, 26 May should be observed as a National Day of Prayer. In a stirring broadcast, he called the people of Britain and of the Empire to commit their cause to God. Together with members of the Cabinet, the King attended Westminster Abbey, whilst millions of his subjects in all parts of the Commonwealth and Empire flocked to the churches to join in prayer. Britain was given inspiring leadership in those days, and her people responded immediately when this kind of initiative was taken. The whole nation was at prayer on that Sunday. The scene outside Westminster Abbey was remarkable—photographs show long queues of people who could not even get in, the Abbey was so crowded! So much so, that the following morning the Daily Sketch exclaimed, 'Nothing like it has ever happened before.'
In its hour of deep distress a heart-cry from both monarch and people alike was going up to God in prayer. And that cry did not go unanswered. For very soon, at least three miracles were seen to happen.
 

The first miracle

 


The first was that for some reason—which has never yet been fully explained—Hitler overruled his generals and halted the advance of his armoured columns at the very point when they could have proceeded to the British army's annihilation. They were now only ten miles away! Later, Mr Churchill asserted in his memoirs that this was because Hitler undoubtedly believed 'that his air superiority would be sufficient to prevent a large-scale evacuation by sea.' That is very significant in terms of the second miracle.
 

The second miracle

 


A storm of unprecedented fury broke over Flanders on Tuesday, 28 May, (1940) grounding the German Luftwaffe squadrons and enabling the British army formations, now eight to twelve miles from Dunkirk, to move up on foot to the coast in the darkness of the storm and the violence of the rain, with scarcely any interruption from aircraft, which were unable to operate in such turbulent conditions. The Fuehrer had obviously not taken the weather into his reckoning, nor the one who controls the weather! And the third miracle? 
 

The third miracle

 


Despite the storm in Flanders, a great calm—such as has rarely been experienced—settled over the English Channel during the days which followed, and its waters became as still as a mill pond.
It was this quite extraordinary calm which enabled a vast armada of little ships, big ships, warships, privately owned motor-cruisers from British rivers and estuaries – in fact, almost anything that would float – to ply back and forth in a desperate bid to rescue as many of our men as possible. 
 

The Little Ships

 


LIttle ShipsThere were so many ships involved in the evacuation that this is the way in which Douglas Bader, the legless Spitfire fighter ace, who sped over with his squadrons from the fighter base at Martlesham, near Ipswich, to help cover the operation, described the scene in Fight for the Sky: "The sea from Dunkirk to Dover during these days of the evacuation looked like any coastal road in England on a bank holiday. It was solid with shipping. one felt one could walk across without getting one's feet wet, or that's what it looked like from the air. There were naval escort vessels, sailing dinghies, rowing boats, paddle-steamers, indeed every floating device known in this country. They were all taking British soldiers from Dunkirk back home. You could identify Dunkirk from the Thames estuary by the huge pall of black smoke rising straight up into a windless sky from the oil tanks which were ablaze just inside the harbour."

Yet still, to a very large extent, the German air squadrons were unable to intervene. Certainly not in force, nor in the way Hitler had anticipated, for so many of these squadrons still remained grounded. So much so that General Haider, Chief of the German General Staff, three days after the High Command had so proudly boasted that the British Army was about to be annihilated, was obliged to record in his diary on 30 May that 'Bad weather has grounded the Luftwaffe, and now we must stand by and watch countless thousands of the enemy getting away to England right under our noses.'
 

A strange immunity

 


DunkirkEven though some squadrons did get through, it seems that yet another miracle happened.

Many of the troops on the beaches were favoured with a strange immunity. When about 400 men were being machine-gunned and bombed, systematically, by about sixty enemy aircraft, one man who flung himself down with the rest reported that, after the strafing was over, he was amazed to find that there was not a single casualty.
 
Another man, a chaplain, was likewise machine-gunned and bombed as he lay on the beach. After what seemed an eternity, he realized he had not been hit, and rose to his feet to find that the sand all around where he had been lying was pitted with bullet holes, and that his figure was outlined on the ground.
 

Amazing events

 


Truly, amazing things were happening. There were signs on every hand that an intervening Power was at work. Officers and men alike had seen the hand of God, powerful to save, delivering them from the hands of a mighty foe who, humanly speaking, had them at its mercy.
And they were not slow to say so. Even Fleet Street has placed it on record that two miracles had made possible what had seemed impossible.
 

A Day of National Thanksgiving

 


So grateful was the nation for this mighty deliverance that Sunday, 9 June 1940 was appointed as a Day of National Thanksgiving. on the eve of that day, C. B. Mortlock stated in an article in The Daily Telegraph that 'the prayers of the nation were answered', and that 'the God of hosts himself had supported the valiant men of the British Expeditionary Force.'

Two great wonders stand forth', he said. on them have turned the fortune of our troops.
'I have talked to officers and men who have got safely back to England, and all of them tell of these two phenomena. The first was the great storm which broke over Flanders on Tuesday, 28 May. The second was the great calm which settled on the English Channel during the days following.
'Officers of high rank do not hesitate to put down the deliverance of the British Expeditionary Force to the fact of the nation being at prayer on Sunday, 26 May, two days before that great storm in Flanders and the calm that came over the Channel.'

The word 'miracle' was soon being heard on all sides, and a consciousness of a miraculous deliverance pervaded the camps in which the troops were being housed back in England.
Mr Churchill, when he chose 4 June as the occasion for making a statement to the House of Commons, spoke with a voice charged with emotion when he reported that, rather than 20,000 or 30,000 men being re-embarked, '335,000 men had been carried out of the jaws of death and shame to their native land. He referred to what had happened as 'a miracle of deliverance'.
 

Psalm124 sung in the churches

 


When the services of national thanksgiving were held in all churches on the following Sunday, 9 June, it was with great feeling that many a choir and congregation sang the words of Psalm 124, for they were seen to apply to that situation through which the nation had just passed:

'If the Lord himself had not been on our side, now may Israel say: if the Lord himself had not been on our side, when men rose up against us; They would have swallowed us up quick: when they were so wrathfully displeased at us. Yea, the waters had drowned us: and the stream had gone over our soul. The deep waters of the proud would have gone over our soul. But praised be the Lord: Who has not given us over for a prey unto their teeth. Our soul is escaped even as a bird out of the snare of the fowler: the snare is broken, and we are delivered. Our help standeth in the name of the Lord: who hath made heaven and earth'

No other passage of Scripture could have more aptly described the nation's experience on that day. The words seem to have been especially written for the occ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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