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자녀를 위해 울라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서론:
주님은 울라! 고 명하십니다. 우는 일은 애통하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애통은 사람이 죽거나 참극을 당할 때, 나라에 비극이 일어날 때 하는 일입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금식하면서 울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나라의 돌아가는 형편을 보고 울고 애통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잘못된 지난 날을 회개하고 자복하며 애통하고,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형편과 앞날을 생각하고 회개하며 애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
나를
위해 울어라
때는 주후 30년 예수님은 지금 골고다 언덕으로 고난의 길을 통해 십자가를 지고 오르고 있습니다. 그 때 그를 따랐던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주님의 고통에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신 주님이 저들을 향해 지금 너희들은 나를 위해 우느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벌써 40년 이후에 예루살렘에 일어날 참극을 미리 보고 계셨기에 저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나와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긍휼의 대상이 되도록 자기와 자녀의 죄악을 애통해 하며 울며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닥쳐오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이 있겠기 때문이다.
신석구
목사의 눈물:
이덕주, 《신석구 연구》 2000년 참조
유교를 신봉하며 제사를 극진히 받들던 신석구란 사람이 많은 갈등 후에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선교사의 천당과 지옥 설교를 들으면서 그 실체는 확신했지만, “나는 천당에 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번민이 더욱 깊어갔다. 설교를 하는데 자신이 없어졌다. 강단에 올라 설교를 하는 순간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여,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여, 네가 무엇을 알아서 남을 인도하려느냐?”라는 생각이 계속 솟구쳤다. 몇 번이고 설교를 중단하고 강단을 내려오고 싶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라는 생각에서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이제 기도를 하기로 작정했다.
교인 몇 명이 장단에 있는 화장사로 피서를 간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신석구는 특별 산 기도를 하기로 생각하고 같이 따라가기로 했다. 산에 도착하자마자 쉬러 온 교인들과 헤어져서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하나님이여, 나는 미련하고 둔하여 죄도 깨닫지 못하오니 죄를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밤이 새도록 같은 제목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틑 날 아침, 같이 갔던 교인 장효경이 그에게 와서 느닷없이 “남들이 말하길, 신 권사는 교만하다고 합디다!” 라고 했다. 개성에서 책방을 하고 있던 장효경은 개성 교인들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신석구는 그 말을 처음에 웃고 들었지만 마음에 두고 두고 기도의 제목이 되었다.
“과연 내가 교만한가?” 그 때부터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
혼자 앉아 왜 남이 나를 교만하다고 하나 하고 반성해 보니, 과연 교만함이 깨달아졌다. 속으로 교만하여 교만하지 않은 척 외식했던 것을 알았다. 한 가지 두 가지를 깨닫기 시작하니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육체 중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이 죄악이 마음을 가려서 하나님의 신령한 이치를 알 수가 없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1907년 7월 친구와 대화하면서 50여 가지 죄목이 생각났고 처음으로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돌아온 그 날 저녁에 역시 기억나는 대로 죄를 아뢰며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던 상황과도 달랐다. 그때에 기억났던 죄목들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이웃 간에 실수했던 것, 인간관계에서 잘못했던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윤리적인 성격의 잘못과 허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죄는 달랐다.
“이 죄악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장벽이 되어서 부자간의 윤리적 기운이 끊어짐을 깨달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애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이때 애통함은 내 죄로 인하여 지옥에 형벌을 받을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죄악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자식의 천륜이 끊어짐을 원통함이다. 비로소 죄가 나의 원수임을 깨달았다!”
간음이나 거짓말, 도박이나 속임수 같은 윤리적 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는 죄가 더욱 무서운 것을 알았다. 교만과 위선, 시기와 탐심, 분쟁과 원망 같은 마음속의 죄가 더욱 치명적이었다.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것이 더욱 두려웠다. 전에는 수천가지 잘한 것 가운데 50가지 죄목을 골라 회개했는데 이번에는 몸과 마음 전체가 죄악 덩어리고 선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전에는 죄를 기억해 내느라 애를 썼는데 이번에는 눈만 감으면 죄악이 보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부짖으면 기도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주소서!”
그렇게 이틀 밤 하루 낮을 무덤 속에 들어간 것처럼 절망 가운데 애통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그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이여, 이제 내가 참으로 예수께서 이 죄인을 위하여 죽으심을 믿사오니 다만 이 믿음만 보시고 사하여 주옵소서!” 그 순간 은혜가 임했다. 사하여 주옵소서! 할 때에 갑자기 주님의 십자가가 내 마음 눈앞에 나타나며 주님의 옆구리 흐르는 피가 내 머리위에 떨어지는 듯하여 나는 십자가 밑에 엎드린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가슴이 찢어질 듯이 북받쳐 오르던 죄의 뭉치는 구름 흩어지듯 안개 사라지듯 아주 없어지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게 넘쳤다. 곧 일어나며 목소리를 다하여 내 주의 도를 처음 받은 날, 참 기쁜 날이 아닌가? 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라고 외쳤다.
1909년 7월 29일 아침 6시 신석구는 이제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이다. 중생의 체험, 구원의 은총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한없는 기쁨과 평화가 그 마음에 임하였고, 더 이상 죄악의 노예가 아니었다. 죄의식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는 지금 죽어도 천당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권사로 설교를 하면서도 마음으로 믿지 못했던 영혼 구원과 천당이 이제는 확실한 진리로 그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죽음의 문제
그런데 은혜가 있으면 반드시 시험도 온다. 중생의 체험을 한 이후에 신석구는 두 가지 시험을 당했다. 첫째는 죽음의 문제였다. 중생 체험 후에 그는 죽을 병에 걸렸다. 간호하던 아내까지 돌아앉으며 “아무래도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신석구는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죽으면 어찌 될까?” 죽으면 천당 가지. 너는 천당 가겠지만, 너의 처 자식은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겠는가? 부탁할만한 친척이나 친구도 없지 아니한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께 부탁하지 누구에게 부탁하리오?
천당에 대한 확신을 가진 신석구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들의 앞날까지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마음이 평안해 졌다. 그때부터 병세가 호전되어 오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되었다. 병 때문에 죽음과 가족문제를 해결 받았다.
거듭난 사람에게도 죄악된 생각이 들어오는가?
다음에 또 시험이 왔다. 그것은 중생 체험을 한 5일 정도는 마음이 평화로왔는데, 갑자기 마음에 악한 생각이 침입해 들어왔다. 거듭난 후에는 그런 악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았다. 마귀가 유혹을 해 왔다. 하루는 홀연히 악한 생각이 떠 오르는데, 마귀가 말하길, 네가 거듭났다고 하더니 거듭난 사람도 그런 악한 생각을 가지는가? 했다. 그 순간 어색하여 답을 못하고 몹시 두려운 마음과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반성할지라도 중생은 분명하게 얻었다. 그리하여 마귀의 질문에 확실한 답은 못했지만, 그의 견고한 믿음은 빼앗기지 아니했다.
구원 문제를 놓고 악한 생각이 아직도 남았으니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누가 뭐래도 거듭나서 구원받은 것은 분명하다! 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의심과 확신이 계속 싸웠다. 그렇게 평화를 얻지 못하고 며칠 간 평안한 마음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어느 날은 길을 가는 중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너는 1900년 전에 골고다에서 흘린 피가 네 범죄함을 속한 것만 믿지 말고, 이제도 살아 있는 그 피를 네 마음에 뿌림으로 네 마음이 정결함을 받으라!” 고 했다.
그리스도의 피는 과거의 죄만 아니라, 지금 나타는 신앙인들의 죄까지도 다 제거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다.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고 “나이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라는 찬송을 힘있게 부르며 마음 속에 완전한 평화를 얻게 되었다.
전도사 시험에서 낙방하고 낙담하다
1910년 신석구는 전도사 시험을 보게 되었다. 자격 심사위원들이 질문을 했다. “부채(負債)는 없습니까?” 양심을 속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60원의 부채가 남아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나중 전도사 명단을 부르는데 신석구의 이름은 없었다. 전도사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자기 친구들은 모두 전도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신석구는 전도사 시험에서 보기좋게 탈락하고 말았다. 이것은 이전의 고민과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었다.
전도사 시험에 떨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큰 죄를 지은 것 같고, 동서양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광경을 당하니 생전에 처음 보는 부끄러움이 그의 마음을 덮었다. 그곳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올 때 마음 속에 분노가 치솟았다. 오! 예수님도 돈이 있어야 믿는구나! 빚이 있다고 덕이 되지 않는다고 전도사 자격을 주지 아니했던 것이다.
떨어졌다는 자괴(自愧)심에서 오는 창피함과 공개적으로 창피를 준 선교사들에 대한 분노가 그 마음을 흔들었다. 어찌할 수 없는 분노 속에 어떻게 걷는 것도 모르고 계단을 내려와 집에 다 가까웠을 무렵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사람 보기에는 네가 부채로 인하여 전도사 직분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네가 아직 전도사 자격이 못됨으로 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 만일 네가 전도사 자격이 될 만 하면 하나님께서 부채도 갚아 주시지 않겠느냐?”
이 음성을 듣고 집에 도착하는 즉시 기도를 하는데 또 음성이 들려왔다.
“네 마음과 주님의 마음을 비교해 보아라. 주님은 지극히 높은 데서 지극히 낮은 데 떨어지실지라도 어디 불평하셨느냐? 너는 권사에서 전도사로 한 계급 올라가려다가 못 올라감으로 불평하니 만일 네가 전도사가 되었던들 네가 꽤 무던한 줄 알아서 도리어 교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느냐? 만일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사람 보기에는 올라간 것 같으나 하나님께는 떨어진 자가 된 것이 아니냐?”
아까는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느꼈다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전도사 직책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축복으로 여겨졌다.
이번에 내가 전도사 직분을 받지 못한 것은 큰 복이 넋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만약 그 때 전도사 직분을 받았다면 나는 꼭 교만한 마음이 나서 하나님 앞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찌 그리 나를 사랑하시는지 참 감사하다!
미워하는 죄
한 번은 신석구 권사가 대전도회 준비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자기 앞으로 남감리회 소속 선교사 한 사람이 지나갔다. 그 순간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네가 저 사람을 미워한 것이 죄다!”
영국 사람인 그 선교사는 한 달 전 개성에서 열린 회의에서 공개석상인데 “한국 정치는 부패하고 관리들은 탐관오리라 백성들이 곤란했는데 이제 합방이 되어 일본이 정치를 잘하니 백성이 평안하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얼마나 분한지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가 교회를 사랑하느냐? 형제를 사랑하느냐? 네가 형제나 교회를 사랑할 것 같으면 그 형제를 직접 권면하여 그런 일을 바로 잡으면 형제도 유익하고 교회도 유익할 것인데 그렇게 아니하고 속으로만 미워하였으니 어찌 죄가 아니냐?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한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라고 하신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미워한 죄를 자복하니 음성이 계속 들리는데 “네가 그에게 범죄하였으니 그에게 가서 고백해라!”
거역할 수가 없어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 선교사의 집을 찾아갔다. 마침 선교사가 출타하고 집에 없었다. 속으로 잘 됐다. 나로서는 할 만큼 했다. 이제 후로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되겠지 하고 돌아와 엎드려 기도하는데 또 그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그런 마음으로 갔다 온 것은 진정으로 형제와 화목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속인 것 뿐이다”
마음을 속일 수가 없었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행동은 또 다른 위선의 죄임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숨길 수도 없어 다시 선교사를 찾아 갔다.
그때에는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만나서 다 자기가 미워한 것을 고백하고 서로 기도하고 그 문을 열고나올 때 이상하게도 마음에는 광명한 빛이 비취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정말 그의 간증 책에서 자신을 "사랑의 붕대가 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기록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에 남편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평 신촌 성결교회가 성장해 나가고 자기는 조산원을 운영하여 소문이 나서 살마들이 밀려오고 십일조 외에 가난한 이웃 구제도 신경을 기울이고 어려운 분을 찾아 쌀도 사다 드리고 옷가지도 나눠 입고 선한 일에 열심을 했다고 합니다. 많은 교인들의 사랑과 이전을 받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전도를 하고 구제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의외로 시기하는 눈길이 있었다. 한 번은 너무도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하였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이유도 없이 그녀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성도 한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말을 지어서 퍼뜨렸는지 사모와 교인들 사이가 멀어졌다. 얼마나 심한 거짓말을 퍼뜨렸는지 권사님들, 집사님들이고 하여튼 성도 전체가 사모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분한지 몰랐다. 그렇다고 사모가 성도들에게 일일이 변명하러 다닐 수도 없고 그 사람을 찾아가서 따지고 싸울 수도 없고. . . 혼자 하도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끙끙 앓아 누웠다. 그 사람한테 내가 하나도 잘못한 일도 없고 실수한 것도 없는데 그렇게 완전한 거짓말로 덮어 씌워서 교인들 앞에서 나쁜 사람으로 몰아 세우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온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나니 어느새 새벽 기도회 시간이 되었다. 아직 분이 안 풀린 불편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성경 찬송가를 들고 교회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딱 들려왔다. "나는 너를 위해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를 지었는데, 그래 너는 나를 위해 그깟 억울한 소리 한 번 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분한 마음을 가지느냐?" 이정말 사모는 정말로 놀랐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니 사모 마음속에 분한 마음이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교회에 가서 꿇어 엎드려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다.
간절히 회개를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은 이정말 사모에게 마 7장의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받아 묵상하니 자신이 점점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얼마나 가증스러웠던지 깨닫게 되었다.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것은 헛것에 불과하였다. 불법을 행한 것에 불과하였다. 다 예수님 이름으로 전도도 한다고 하고, 없는 사람에게 옷도 사 주고 쌀도 가져드 드렸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런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 것에 불과하였다.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삼키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한다고 하고 봉사한다고 하고 또 구제한다고 했지만, 결국 주님의 마음이 아닌 제 마음으로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신 말씀을 볼 때 제가 한 것이 하나도 하늘에 오르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해야 온전한 아버지의 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정받는 사모가 되겠습니까? 이렇게 회개하고 용서를 비오니 제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이 보이는데 먼저 두 손이 나타나고, 그 위로 붕대 그것도 둘둘 감겨진 헌 붕대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붕대 역할을 하라, 그러면 인정 받는 사모가 된다" 라고 하셨다. 붕대는 아픈 상처를 씻어주고 감싸 주고 싸매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심령이 상한 교인을 찾아가 그 교인의 아픈 심령을 씻어 주고 감싸 주고 싸매어 주는 그런 사랑의 사모 희생의 사모가 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정말 사모는 억울한 소리 한 번 들었다고 분해하고 감싸 주어야 할 교인을 미워하기까지 하였으니 그런 자신이 어떻게 사랑의 붕대, 희생의 붕대가 될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곤 도저히 붕대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나도 그 사람을 싫어하고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하니, 이런 마음을 갖고 어떻게 사랑의 붕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제게 그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제게 심어 주시옵소서. 아무리 저를 미워해도 싫어해도 제가 그 사람에게 마음 중심으로 가서 이해하고 도와 주고 싸매 줄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사랑의 은사를 구하니 하나님은 고전 13장의 말씀을 주셨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늘 묵상하던 말씀이어는데 그 날은 그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제겐 진정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고전 13장 말씀을 붙들고 하루 종일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다시 똑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뜨거움이 차오르지 않았다. 그 말씀대로 실천해야하겠다는 마음은 꿀꾹 같았지만 그 말씀 그대로 마음에 살아지지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덧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다. 그대로 철야기도로 들어갔는데 기필코 사랑의 은사를 받고야 말리라는 각오로 간절히 기도에 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방법도 알고 말씀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 마음이 열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제게 진정 사랑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 어떤 미운 사람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같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겉오르가 아닌 진정 마음에서 넘쳐나는 그런 사랑을 소유케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열심히 간구하는데도 마음에 부딪혀 오는 것이 없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았다. 하다 못한 나머지 이제 아예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구했다.
"하나님 아버지,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고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신다고 하셨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이루어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제게는 주시지 않습니까? 왜 제게는 열어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오니 부디 제게 사랑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그 순간이었다. 무슨 섬광처럼 마틴 루터의 회개가 생각났다. 젖먹이 때 어머니의 젖꼭지를 아프게 물었던 것까지 회개했다는 루터의 회개. . .
어떻게 마틴 루터는 젖먹이 때까지 기억하고 회개했을까? 하나님께서 이런 영감을 주신 걸 보면, 그럼 내게도 아직 회개해야 할 죄가 많단 말인가? 난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다 내놓은 줄 알았는데. . . 바로 그 때 성령께서 사 59:1-2을 주셨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가슴이 철렁했다. 이 말씀을 주신 걸 보면 내게도 죄가 많다는 것인데. . . 어려서부터 일을 낱낱이 기억해 가며 자기 죄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 내 놓고 회개한 죄목 밖에 기억되는 게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밖의ㅡ 죄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아예 기도를 바꾸었다. 죄가 생각나지 않으니 이제 회개의 영을 주옵소서! 라고.
"하나님 마틴 루터가 젖먹이 시절의 일까지 회개했다고 하면 그 때의 일이 기억되서일 텐데, 그렇듯이 제게도 회개의 영을 주시옵소서.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은 죄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듣지 못하시고 또 사랑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니 제게도 회개의 영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제가 주님 앞에 온전히 회개하고서 사랑의 은사를 받고자 합니다. 제게 회개의 영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울면서 몇 시간을 기도한 끝에 마침내 회개의 영이 터지기 시작했다. 죄가 무슨 필름처럼 죽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던 죄가 자그마치 35가지나 줄줄이 나왔다. 원래 나에게는 죄가 하나도 없는 줄로 알았는데. 왜냐하면 부흥회 때마다 철저히 회개 했었고, 또 매일 새벽마다 언제나 그 전날 저지른 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회개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날에야 비로소 내게 숨겨진 죄가 얼마나 많았던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 낯도 들 수 없는 그 부끄러운 죄, 죄, 죄, 죄들. . .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실 수 있었겠는가? 말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그래 죄인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였나? 내 기도가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거절되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그래서 이성말 사모는 35가지 죄목을 하나하나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시니 일일이 회개가 되었다. 하여튼 다섯 살 때 엿장수한테 머리빗 하나를 엿하고 바꿔먹은 것까지 기억되고 회개가 되었다. 어떻게 그 어릴 때까지 기억이 될까? 다 회개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도라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들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또 오르지도 못하니 응답도 없고. 그래서 성도는 모름지기 자기의 전 생애의 모든 과정을 낱낱이 회개한 뒤에 깨끗한 영혼으로서 바로 서야 응답이 따르고 은사를 받게 된다.
그렇게 회개의 영을 통해서 전생애에 걸친 모든 죄목을 일일이 고백하고 회개하고 나니 마음이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홀가분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저절로 춤까지 추어졌다. 그래서 성경에서 "회개하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셨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그렇게 철저한 회개 끝에 깨끗한 영으로 거듭나자 그 때부터 응답이 오고 은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령에 감동 감화되니까 사랑의 은사는 저절로 따라왔다. 이미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하루 전부터 계속 기도해온 터라, 이정말 사모의 모든 죄가 깨끗이 용서함을 받는 동시에 사랑의 은사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물밀듯이 차 올라왔다. 아, 그 기쁨이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부터도 취할 수 없는 감격과 희열이었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무리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그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저절로 그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영혼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 영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느라 결국 자신의 상처가 더욱 깊어져 있을 불쌍한 그 영혼을 위해 절로 간절한 기도가 나왔다. 그제서야 깨달음이 임했다.
"아, 사랑하는 붕대가 되라는 건 바로 이걸 두고 말씀하시는거였구나. 상처받은 영혼을 위해 내가 달려가 그 상처를 씻어주고 감싸 주고 싸매어 주는. . . 그래, 사랑의 붕대, 희생의 붕대가 되어야 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모의 길이야"
너무 감동이 되어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계속 흘러 내렸다. 그러면서 마음은 무엇으로 형언할 수 없는 천상의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사랑의 은사를 받고 나니까 제 아무리 억울한 소리를 듣는다 해도 설혹 나를 죽인다고 야단을 친다 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목회자 사모들은 심장병에 잘 걸린다고 한다. 사모 입장에서 어디 제대로 한 번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제대로 한 번 스트레스를 풀 수가 있을까? 그러니 참고 참고 또 쌓이고 쌓이다 보니 심장병에들 걸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은사를 받고 나면 절대 심장병에 걸릴 염려가 없다. 왜 속이 안 상하니까, 사랑이 넘쳐나니까. 또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잘 늙지도 않는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왜냐하면 마음이 늘 기쁘고 평안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사랑의 은사를 받지 못한 채 그냥 세상적으로 걱정하고 짜고 그러면 괜히 주름살만 더 늘고 병까지 생겨난다.
그러니까 목회자 사모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한 분도 빠짐 없이 이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이정말 사모의 바램이다. 믿고 구하면 된다. 조금도 의심을 갖지 말고 구하면 된다.
이정말 사모는 그 후에 여러 가지 은사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 영분별의 은사도 받았다. 누구를 만나 보거나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훤히 보여준다. 그래서 영적으로 그 사람이 살았나 죽었나를 알게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막혔는지도 다 가르쳐 주신다. 이 은사를 받으니까 어떤 사람하고 나하고 막힌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기도하면 꿈 속에서도 심방을 가는데 그런 때는 그 사람이 반드시 먼저 이정말 사모를 찾아온다. 그 사람이 와서 "사모님, 글쎄 어제 밤 꿈 속에서 사모님이 심방 오셨지 뭡니까?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 ."
그러면 벌써 문제는 다 풀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응답받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간절히 기도하라고 해도 간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았는데 회개하고 나니 응답받는 기도가 터지기 시작했다. 심령이 새로와지고 감화와 감동과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다 알게 되니까 한 사람씩 그 사람을 놓고 기도하니 기도가 그렇게 잘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기도가 올라가지를 않고 그냥 울기만 한다.
한 번은 여집사 한 분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 의사 부인은 집사가 된지 7-8년이 되는데도 걸핏하면 주일을 범하곤 했다. 그래서 그 집사를 위해 기도하는데 기도가 올라가지를 않고 막 울리기만 하였다. 그 영이 너무너무 불쌍헀다. 그래서 막 울면서 기도했다.
"사랑의 하나님, 그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옵소서. 이미 집사로 세운 지가 7-8년이 지났는데 여태 한 알의 집사로 두어서는 안돼지 않습니까? 두 알 다섯 알의 집사가 되게 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게 해 주시옵소서! 그 영혼이 정말 거듭 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그 집사를 위해 며칠간 울면서 기도하고 주일이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그 동안 두 달이나 소식도 없던 그 집사가 예배 전에 이정말 사모 앞자리로 찾아왔다. "사모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아니, 무슨 용서를. . ." "어젯밤에 사모님이 제 꿈에 나타나시더니 막 야단을 치시지 뭡니까? 집사가 되어 갖고 어떻게 주일을 범할 수 있느냐며. . . 얼마나 호통을 치시는지 . . .놀라 깨어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 동안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래서 이 사모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 보세요.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크게 쓰시려는데 자꾸 주일을 범하시니까 하나님께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그 동안 집사님을 위해서 제가 줄곧 기도를 해 왔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집사님의 꿈 속에 등장시키셨나 봅니다.
"그랬군요. 사모님, 너무 고맙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까 주일 성수하며 열심히 직분에 충실하겠습니다." "어휴, 도리어 제가 고맙네요. 아무튼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크게 쓰실 모양이니 하나님 일 열심히 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준비하고 계실 테니까요."
이렇게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집사는 그때부터 완전히 영적으로 깨어나서 교회 생활에 얼마나 열심을 내는지 모른다. 주일 성수는 물론이고 매일 새벽 기도회도 빠짐없이 나온다. 하나님 일이라면 얼마나 열심인지 그 후 곧 권사까지 되었다.
이러니 기도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그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니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이냐? 그러니 기도를 안하고 배길 수가 없다.
둘째로, 자녀를 위해 울라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의 단원 고등학교 학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했다.
그
이후 배에 갇힌 학생들을 구조하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여의치 않았다.
배
안에 갇혀서 살고자 몸부림치던 학생들도 물에
수장되었다. 나는 자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있나? 저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고 지키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렇다면 왜 자녀의 안전과 영적 성장과 앞날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나 17살 때에 고향을 떠나 칼타고에 가서 10년 동안 머물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잃어 버렸다. 정욕에 이끌려서, 여자와 동거생활을 하였고 아들을 낳았으며, 페르시아의 종교 이단 마니교에 빠지게 되었다. 세상 출세를 위해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로 갔다.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죄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자식을 보는 어머니 모니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다. 모니카는 아들을 위하여서 눈물로 기도했고 그렇게 수 많은 세월이 흘렀다. 31세가 된 어거스틴이 밀라노의 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에, 담너머로 들려 오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은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라는 가사를 반복하면서 노래했다. 어거스틴은 그것이 성경책을 펴서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성경책을 폈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로마서 13:13-14절의 말씀이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일을 계기로 어거스틴은 회심하게 되고, 그 동안 긴 방황의 계곡을 지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책 ‘고백록’에서 자신의 개종이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어머니의 기도보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없다.
영국의 ‘수산나’라는 여인은 (1669-1742) 목사 남편 사이에 19남매를 낳아 9명이 유아 때 죽고 나머지를 믿음으로 키웠다. 늘 식탁에 앉아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기도했다. 엄마가 앞치마만 뒤집어쓰면 아이들이 조용히 하거나, 밖에 나가 놀았다. 결국 그녀의 눈물의 기도가 그 자녀들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다. 감리교의 창시자가 된 요한 웨슬리가 수산나의 15번째 아들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는 그녀의 18번째 아들 찰스 웨슬리의 곡도 있다. 그녀의 자녀들 중에는 변호사, 의원, 장관도 있었다고 하는데 (체크 요망) 수산나는 자녀를 돈으로 키운 게 아니라 눈물의 기도와 말씀으로 키웠다.
끝으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8)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기(고후 7:10)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그의 남은 제자들은 합심하여 기도하며 성령님을 받도록 온전한 회개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들은 성령님의 충만을 받았고, 저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됩니다.
자기 죄를 애통해 하며, 온전한 회개를 이루는 자들에게는 이 정말 사모나 신석구 목사에게 주셨던 그 성령님의 은사들을 주시고 감동과 음성을 주셔서 우리의 삶의 시의적절하게 안내자 나침반이 되게 하십니다.
주후 66년부터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지배하던 로마 당국에 반란을 일으킨다. 로마 황제 네로는 베스파시안 총독이 이끄는 6만 군대로 예루살렘을 치게 한다. 도중에 네로 황제가 사망하고, 베스파시안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아들 디도에게 예루살렘 공략을 맡기는데, 주후 70년 9월 8일에 마침내 그 성이 함락되고 로마군은 무차별로 저들을 학살하여 110만이 죽고 9만 8천이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남기신 말씀을 따라 매일처럼 애통해 하며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더니, 주님의 말씀, 눅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를 신뢰하고,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 모두 그 성에서 빠져나와 요단강 건너 펠라란 산악 지대로 도피하였다. 그 이후로 로마군의 포위망 때문에 성에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비참하게 모두 학살당하거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오직 자기 죄를 애통해 하며 온전한 회개를 이루는 자만이, 주변의 상황 변화나 하나님의 보내시는 시대적 징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위기에 대처할 수가 있게 된다. 죄를 애통해 하며 울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마지막 고난의 길을 올라 가면서도 이 부탁을 남기셨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우리는 이 말씀의 짝이 시 126:5-6이라 믿는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죄를 애통해 하며, 날마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안전보장이 되신다.
시 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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