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시사

팔레스타인 (Philistia), 팔레스타인 사람들 (Philistines)

중일사랑 2023. 10. 24. 22:04

오늘날 사람들은 중동 이스라엘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 (Philistia) 부른다. 팔레스틴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거민들이지만, 영어에서 형용사로 Philistine하면 팔레스타인 사람, 혹 물질주의에 빠진 자들, 지성과 예술적 가치들을 혐오하는 (자)란 의미이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팔레스타인이란 말은 구약 성경의 블레셋에서 유래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곧 블레셋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주전 12세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1400년 이후 약 300년 이후에 이스라엘 남부 해변 지역에 정착한 에게 해 출신 민족으로 추정된다.

초기에 블레셋 사람들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13세기 미케네 양식들의 (Mycenaean styles) 한 변형체인, 하나의 독특한 도자기 유형이 발견되었다. 아스돗, 에그론, 텔 카실에서 (Tel Qasile) 다양한 에게 해 디자인 요소들을 보여주는 블레셋 신전들과 사당들이 발굴되었다. 이런 발굴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신명기 2:23, 예레미야 47:4가 지적하듯, 갑돌 (아마도 크레타 섬 Crete) 출신들이었다는 인상을 확인시켜 준다.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최초의 성경 외 기록은 마디나트 하부에(Madinat Habu) 있는 람세스 3세의 영안실에 (mortuary temple) 있는 비문과 부조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나톨리아, 키프로스 (성경의 구브로), 시리아를 황폐화시킨 후 주전 1190년경 이집트를 침공한 해양 민족 중 하나로서 prst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이집트인들에게 격퇴당한 후, 블레셋 족속은 아마도 이집트의 허락을 받아 욥바에서 (현대의 텔아비브-야포) 남쪽으로 가자까지 팔레스타인 해안 평야에 정착했다. 그 지역에는 블레셋 동맹의 다섯 도시 국가들이 (펜타폴리스 Pentapolis;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 연맹을 맺고  존재하므로 블레셋 또는 블레셋 땅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헬라인들이 블레셋 전체를 팔레스타인이라고 (Palestine) 부르게 된 것은 바로 이 명칭 때문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주변 지역으로 팽창하면서 곧 이스라엘과 충돌하게 되었는데,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지배하였다. 삼손 이야기는 (사사기 13~16장) 그런 배경 하에 나타난다. 뛰어난 철제 무기와 군사 조직을 보유한 블레셋 사람들은 (주전 1050년경) 유대 산지 일부를 점령할 수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아나톨리아에서 (지금의 터키 지역) 습득한 철 대장간 기술을 독점하고 주변 족속에게 비밀과 금지 사항으로 간수하여 (사무엘상 13:19) 상당 기간 동안 블레셋이 주변 족속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블레셋을 패퇴시킨 이스라엘 왕은 한 때 블레셋 가드로 망명했었던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이었다 (주전 10세기). 그 이후 블레셋의 역사는 한 민족의 역사라기보다 개별 도시들의 역사였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주전 930년경), 블레셋 사람들은 독립을 되찾았고 종종 그 왕국들과 국경 전투를 벌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해안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그들을 언급하는 세속 문헌은 앗시리아 왕 아다드니라리 3세의 (주전 810~782) 연대기인데, 그는 블레셋에서 공물을 모았다고 자랑했다. 주전 7세기 초반에는 가사 (지금의 가자), 아스글론, 에그론, 아스돗, 그리고 아마도 가드가 앗시리아 통치자들의 속국이었을 것이다. 주전 7세기 후반에 그 도시들은 이집트의 속국이 되었다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 2세가 (605~562)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 블레셋 도시들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나중에 그들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차례로 받게 되었다. 그 시기에 이스라엘의 운명도 대략 유사하게 진행되었다. 


블레셋 언어로 된 문서는 없으며 아마도 가나안어, 아람어,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어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블레셋 종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구약에서는 다간, 아스다롯, 바알세불과 같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긴 신들이 언급되는데, 신들의 이름은 셈족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정복된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것 같다. 다윗에게 패할 때까지 블레셋 도시들은 하나의 연맹체를 구성하고, 5개 도시 국가들은 각기 “주”라 불리는 (세렌; 복수형 '세라님')  족장/ 방백이 통치했다. 다윗에게 패배한 후에 '세라님'은 왕들로 대체되었다.


로마가 중동 지역을 (지금의 터키, 시리아,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등) 통치하기 시작했는데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주전 63년 폼페이 장군이 유다 지역을 정복하면서였다. 로마 이전에 마케도냐 출신의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 지역을 제패한 이래 (주전 332년), 그의 사후에 (주전 323년) 그의 참모 장군들이 (Diadochi) 대 헬라 제국의 각처 총독으로 부임하여, 자기네 왕국을 건설하고 스스로 왕으로 자칭하고 (애굽의 톨레미 왕조는 주전 305년부터) 통치하면서 시리아나 유다 지역은 주전 323년부터 톨레미 왕조의 통치를 받았었다. 

 

이족들에 대해 거센 반감을 드러내고 반역에 능란한 유대인들의 땅인 유다라는 이름 대신, 지금 중동 이스라엘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 (Philistia) 부르면서 유다나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지워 버리고자 한 것은 바로 로마 사람들이었다. 즉 로마의 식민 통치자들이 반항적인 이스라엘/ 유다 란 지명 대신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블레셋 사람들의 땅이란 의미에서 '팔레스타인'이란 지명을 사용하였다. 그것이 관례가 되어 지금도 중동 이스라엘 지역은 팔레스타인이라 불리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인 서안 지구와 (West Bank; 요르단 입장에서 서편 지역) 가자 지구 거민들 사이에 전쟁이 진행 중이고, 그 인근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기타 애굽, 사우디, 이라크, 이란 등과 같은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반목이 깊었지만, 요르단, 애굽 등과는 이스라엘이 평화 조약을 체결했고, 사우디와도 조약을 체결할 찰나였다. 

 

우리는 멀리서 중동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이슬람 국가들 사이의 마찰과 분쟁이 사라지고 그 지역에 평화가 오길 기도한다. 신앙적으로 우리가 강조하는 바는, 이스라엘이나 주변 아랍 이슬람 국가들이나 불신 나라들로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이들이 생각하듯,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라는 사고는 신약이 제시하는 그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종족 중심의 언약 공동체나 하나님의 백성이 없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 새 언약 공동체에 참석한다. 예수님이 핵심이고, 그에게 속한 자들이 남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새/ 참)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구약에 예언된 모든 메시아 예언들이나 이스라엘의 회복, 혹은 예루살렘이 연루되는 종말 전쟁은 (겔 38, 39장 곡과 마곡 전쟁, 요엘 3장, 슥 14장 등) 모두 새 이스라엘인 교회에 대한 악의 세력의 공격과 연관된다. 구약 예언들은 모두가 다윗 후손 메시아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왕) 그에게 속하는 (새)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난무하고 있는 중동 이스라엘 중심의 세계사 이해는 전혀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다. 앞으로 중동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재림 할 때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려 올림받고 (휴거) 대거 예수님을 믿어 개종하고 주님이 지상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을 재건하고 1천년 동안 통치하리라는 시나리오는 비 성경적 허구에 불과하다. 이미 사단과 죄의 세력을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 이후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의 의미) 성령 부으심으로 통치를 시작하셨다면, 어떤 이유에서 지상에 다시 군사 정치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통치할 것인가? 그럴만한 아무런 이유도 근거가 없다. 주님 오실 때 즈음에 생존할 유대인들이라고 대거 개종해서 예수님을 믿는 축복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항상 언제나 구원 역사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구원에 참여하기 때문이다.